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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 에세이]마음의 거울을 닦을 때


케미컬 에세이

지구상의 원소는 100여개 남짓하지만 분자의 수는 몇 개인지 헤아릴 수도 없습니다. 원자 사이의 화학반응으로 새로운 분자를 만드는 경우의 수가 사실상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각 분야나 문학, 철학, 미학, 역사 등을 하나의 원자로 생각한다면 이들 각각을 다룰 때보다 이들 사이의 관계를 포함시킨다면 좀 더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요.




기자의 첫 직장인 LG생활건강연구소에 다니던 시절이 가끔 떠오른다. 당시는 일본의 기술과 시장트렌드에 많이 의존하던 때라 일본어가 중요했다. 기자가 있던 향료연구팀의 부장님은 일본어가 수준급이었다. 6주간의 일본 향료회사 연수를 앞두고 히라가나와 가다가나조차 못 외어 걱정하는 기자를 본 부장님은 ‘속성 일본어 기초과정’을 개설해 기자와 몇몇 연구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다. 덕분에 일본에 가서 큰 고생은 면했다.

부실한 기숙사 ‘짠밥’을 먹어 더 마르는 것 같다며 집으로 불러 사모님(또는 형수님)이 손수 마련한 따뜻한 ‘가정식 백반’을 먹던 기억이 아련하다. 당시 LG의 사훈이 ‘인화’(人和)였는데 정말 좋은 분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전 TV에서 씁쓸한 뉴스를 봤다. 직장에서 왕따를 당했다며 소송을 낸 사람에게 회사가 2000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있었다는 뉴스였다. 별일이다 싶어 자세히 보니 책상을 구석에 배치하고 일거리를 안주는 건 물론 ‘아무개를 왕따시키자’는 이메일까지 돌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 회사가 LG계열사였다.

사람, 개, 고양이.

이들 가운데 가까운 둘을 고르라면 아마 개와 고양이를 택할 것이다. 분류학상으로도 사람은 영장목(目)이고 개와 고양이는 둘 다 개목에 속한다. 그러나 동물행동학의 관점에서는 좀 다르다. 특히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사람과 개가 한 묶음이다. 독신자처럼 애완동물을 집에 혼자 둬야 할 시간이 많은 경우는 개보다 고양이를 키우는 게 낫다. 사회적 동물인 개는 혼자 오래 방치되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유인원도 사회성이 발달해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못 미친다. 지난해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두 살 반 된 아이는 같은 나이의 침팬지나 오랑우탄보다 학습이나 의사소통, 상대의 의도를 헤아리는 능력에서 더 뛰어나다고 한다. 반면 공간이나 양, 인과관계를 인식하는 능력은 비슷했다. 오늘날 인류가 문화를 이루고 만물의 영장이 된 데에는 고도로 발달한 사회성이 배후에 있다는 ‘문화 지성 가설’(cultural intelligence hypothesis)을 지지하는 결과다.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대 연구자들은 원숭이의 뇌에서 ‘거울뉴런’(mirror neuron)을 발견했다. 연구자들은 원숭이가 접시 위 땅콩을 집을 때 활성화되는 뉴런이 사람이 땅콩을 집는 장면을 볼 때도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우연히 발견해 이런 이름을 붙였다. 남의 행동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뉴런이기 때문이다. 그 뒤 모방, 교감, 의도 파악 등 다양한 사회적 인식과정에 거울뉴런이 관여함이 밝혀졌다. 자폐나 정신분열증인 사람들은 거울뉴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갓 태어난 원숭이가 사람을 따라 혀를 내밀고 있다. 이런 모방 행동에 ‘거울뉴런’이 관여한다. (사진제공 파르마대)

사람의 뇌는 사회적인 관계를 생존의 문제로 판단한다고 한다. 우리는 여전히 수렵채취인의 뇌를 갖기 때문이다. 이 시절 홀로 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현대사회는 얼마든지 혼자 살 수 있지만 거울뉴런이 자극받지 못하면 아직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진화가 안 된 뇌가 위기로 해석해 심신에 이상이 생긴다.

독일 프라이부르크대 정신신경면역과 요아힘 바우어 교수는 2005년 펴낸 저서 ‘공감의 심리학’에서 왕따를 ‘사회적 죽음’이라고 불렀다. 그는 “개인이 공동체에서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배제되면 예외 없이 질병이 발생하고, 심각한 경우에는 목숨마저 잃을 수가 있다”며 “한 사람을 제외시킨다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거울 반응을 사람들이 체계적으로 거부한다는 뜻”이라고 쓰고 있다.

오늘은 집 떠나 자취하고 있는 후배동료들에게 맛있는 점심 한 끼를 대접해야겠다.

강석기 기자는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석사)을 마치고 엘지생활건강연구소에서 향료에 빠져있었습니다. 우연히 과학기자의 세계에 발을 담군지도 10년이 됐지만 중간의 방황으로 실제 기자생활은 3년을 조금 넘었을 뿐입니다. 이제 막 초보를 벗어났지만 이미 불혹의 나이. 남과 비교하며 초초해하기보다는 과학을 완상(玩賞)하며 하루하루를 지내야겠습니다
| 글 | 강석기 기자ㆍsukk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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