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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 휴대전화 속 보물지도


“소니에릭슨 1등, 삼성전자 2등, 노키아 9등, 애플 11등, 닌텐도 꼴찌!”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한데 모여 달리기라도 한 걸까. 지난해 11월 국제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는 친환경 전자기업의 순위를 1등부터 18등까지 발표했다. 대상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노키아, MS(마이크로소프트), 필립스 같은 전자제품 생산업체로 제조과정에서 유독성 물질을 사용하는지, 적극적으로 중고제품을 재활용하는지 평가해 점수를 매겼다.

그 결과 소니에릭슨과 삼성전자가 나란히 선두권에 들었고 LG전자는 7등을 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플라스틱 성분을 쏙 뺀 LCD(액정표시장치) TV와 유독성 화학물질을 제거한 휴대전화를 생산해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지난번 평가에서 1위를 차지한 노키아는 중고제품 재활용 정책이 부실하다는 이유로 9등으로 밀려났다. 애플은 아이폰에서 신경계 질환을 유발하고 환경호르몬을 배출하는 화학물질이 발견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지난해 휴대용 게임기를 100만 대 넘게 판매한 닌텐도는 0점을 맞으며 친환경 기업의 이미지와는 아득히 멀어졌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을 책임진다
한번 생산한 전자제품을 ‘요람에서 무덤까지’ 관리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오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3년부터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를 단계적으로 시행해 전자제품과 휴대전화, 복사기를 생산한 기업이 폐기물을 수거하고 재활용 비용을 부담하도록 했다. 2006년 유럽연합(EU)은 *특정 유해물질을 사용한 전자제품을 추방하는 강력한 환경규제를 마련한 데 이어 올해 8월부터는 친환경적으로 설계되고 에너지 효율이 높은 제품만 시장에서 팔릴 수 있게 할 전망이다. 자연스레 쓰레기를 덜 배출하면서 가치 있는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컴퓨터나 휴대전화의 인쇄회로기판에는 금, 은 같은 귀금속이 포함돼 있다.

평생 살아가면서 버리는 폐전자제품의 양은 어느 정도일까. 2006년 영국 왕립예술협회(RSA)는 영국 시민의 경우 평균적으로 냉장고 5대, 전기난로와 TV 각각 6대, 세탁기 3대, 컴퓨터 8대, 휴대전화 35대를 포함해 모두 3.3톤의 ‘전자쓰레기’를 배출한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2005년 국내에서 발생한 TV, 세탁기, 냉장고 같은 폐전자제품은 약 860만 대로 무게로 치면 29만 2000톤에 이른다. 매일 800톤 분량이 버려진 셈인데, 이 전자쓰레기를 10톤 트럭 80대에 나눠 싣고 소각장이나 매립지로 운반한다고 가정하면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소모되고 온실기체가 배출될 것이다. 게다가 전자제품의 주성분은 플라스틱과 금속이므로 불에 태우면 다이옥신 같은 유독물질이 발생하고 땅에 묻으면 수백 년간 썩지 않는다. 결국 대안은 재활용뿐이다.

독일의 대표적인 휴대전화 재활용업체인 그린솔루션은 지난해 독일과 영국에서 중고 휴대전화 약 100만 대를 수집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중고 휴대전화를 무료로 수거해 재활용했는데, 여기서 약 20톤의 구리를 회수했다고 지난 1월 밝혔다. 휴대전화 속에 구리라니 대체 무슨 말일까.




컴퓨터와 휴대전화 속에 금광 있다?
무심코 버려지는 전자제품 속에는 금과 은, 구리 같은 값비싼 금속이 포함돼있다. 컴퓨터는 플라스틱, 유리, 철, 알루미늄 등 다양한 재료가 섞여있는 인쇄회로기판으로 이뤄진다.

특히 인쇄회로기판에 탑재돼있는 중앙처리장치(CPU)에는 약 0.05~0.2g의 금이 존재한다. 컴퓨터 한 대를 기준으로 하면 금 농도가 750~1050ppm (1ppm=100만분의 1)에 이르는데, 웬만한 광산의 금 농도가 10ppm인 것과 비교하면 경제적으로도 손색없다. 휴대전화의 인쇄회로기판은 kg당 금 0.8g, 은 1.1g, 팔라듐 0.29g, 구리 140g이 들어있는 보물지도나 마찬가지다. 귀금속들을 가격으로 매기면 약 2만 7500원에 해당한다.

영국 왕립예술협회는 2006년 영국 시민 한 사람이 평생 배출하는 폐전자제품을 모아 조형물을 만들었다.

금속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굳이 해외의 광산에 눈독 들일 것이 아니라 휴대전화 속 ‘노다지’를 노려볼만 하다. 광석에서 금속을 뽑아내는 제련산업은 ‘에너지 먹는 하마’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양의 화석연료를 소모한다. 하지만 폐전자제품에서 금속을 회수할 경우 알루미늄은 제련산업의 5%, 구리는 15%, 니켈은 20%, 아연은 40% 수준의 에너지만 필요하기 때문에 돈과 환경 모두를 잡을 수 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의 인쇄회로기판을 재활용하기 위해 지금까지는 제련소의 뜨거운 용광로에서 녹이는 방법을 사용했다. 그러나 제련산업과 마찬가지로 에너지 소모가 크고 온실기체도 많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하 지질연)은 인쇄회로기판의 금속을 전처리하고 액체 상태로 만드는 과정에서 다양한 환경친화적인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철 맛있게 먹는 미생물
인쇄회로기판에는 플라스틱 층이 10겹 이상 모여 있으며 각 층 사이에는 얇은 판 모양의 금속이나 선이 존재한다. 따라서 꼭꼭 숨어있는 금속을 찾아내는 일이 첫 번째 숙제다. 방법은 두 가지로 일단 인쇄회로기판을 7mm보다 작은 크기로 분쇄한 뒤 자력과 풍력, 정전기를 이용해 성분에 따라 분류한다. 철을 많이 포함한 금속 성분은 자석에 붙고 플라스틱처럼 가벼운 성분은 바람에 날리는 성질이 있다. 또 물질에 따라 서로 마찰시켰을 때 다른 극성을 띠는 점을 이용하기도 한다.

두 번째는 인쇄회로기판을 유기용매에 담근 채 100℃로 가열해 기판의 층들이 벌어지게 하는 방법이다. 이때 구리선이나 금속이 떨어져 나오는데, 지난해 말 지질연이 특허를 출원한 신기술이다. 두 방법을 이용해 인쇄회로기판에 붙어있는 금속을 싹싹 긁어모은 뒤 액체 상태로 만든다.

금속을 액체 상태로 만들 때는 미생물을 이용한다. 지질연은 땅에서 추출한 ‘철을 먹는 미생물’(박테리아인 Thiobacillus ferrooxidans, 효모인 Aspergillus niger)에 주목했다. 이들 미생물은 금속을 맛있게 먹고 난 뒤 금속 용액 상태로 ‘배설’하는 특성이 있다. 실제로 수십억 마리의 박테리아가 인쇄회로기판의 구리와 알루미늄, 코발트, 니켈 같은 금속을 녹이는 데는 5일 정도면 충분하다.





인쇄회로기판의 금속을 강한 산에 녹이는 방법도 있다. 다만 이 경우 폐수를 배출한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지질연은 효율이 99%에 가까운 습식회수기술을 최근 개발해 미국과 중국에서 특허를 출원했다. 전극이 설치된 반응기에 염산을 넣고 전기분해하면 염소가 발생한다. 여기에 인쇄회로기판을 넣으면 염소가 기판의 금속과 반응하면서 금속을 녹인다. 구리나 금, 은, 알루미늄은 양이온상태로 녹아나와 (-)극으로 이동하고 이를 회수해 정제하면 순도 높은 귀금속을 얻을 수 있다. 반면 염소는 다시 염산으로 변하고 같은 반응이 끝없이 이어진다. 한번 염산을 넣으면 추가로 더 넣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액체 상태의 금속 가운데 금이나 백금은 매우 안정된 상태로 다른 물질과 잘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응성이 좋은 알루미늄을 넣어주면 알루미늄이 녹으며 내놓은 전자를 받아들여 금이나 백금 알갱이로 변한다. 구리, 니켈, 코발트 같은 귀금속은 각각의 금속을 녹이는 용액에 순차적으로 통과시켜 분리한다. 이 금속들을 다시 녹이거나 추출하면 순도 높은 귀금속을 얻을 수 있다.

지난 1월 미국 환경보호국(EPA)은 AT&T, LG전자, 모토로라, 노키아, 삼성전자 같은 기업과 함께 휴대전화 리사이클링 캠페인을 시작했다. 안 쓰는 휴대전화를 이들 기업의 영업점이나 EPA 사무실에 맡기기만 하면 되는데, 20%를 밑도는 휴대전화 재활용률을 끌어올리려는 목적이다. EPA에 따르면 미국인 가정에서 잠자고 있는 고물 휴대전화는 1억 대가 넘고, 이를 재활용하면 1년간 19만 4000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정도의 에너지가 절약된다.





컴퓨터는 구입한지 1년만 지나도 구식이 되고 휴대전화는 번호이동성제도를 미끼로 뜨거운 유혹을 던진다. 오는 2013년 지상파방송이 디지털방송으로 전환되면서 수많은 구형 TV들이 사망선고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제 돈 되고 자원 절약하고 환경 지키는 일석삼조 폐전자제품 재활용 기술이 활약할 때다. 재활용으로 고물 휴대전화와 컴퓨터에게 새 생명을 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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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r o f i l e
정진기 박사 충북대 화학공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서 25년째 자원재활용을 연구 중이다. 현재 폐전기전자기기 재활용과제의 책임자이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 겸임교수를 지내고 있다.

특정 유해물질*
납, 카드뮴, 수은, 6가크롬(Cr6+), 브롬계 난연제(PBB, PBDE)를 일컫는다. 신경계나 간을 손상시키는 납, 카드뮴, 수은이 그대로 매립될 경우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6가크롬은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들어가 암을 일으킨다. 브롬계 난연제는 소각했을 때 독성물질을 생성해 두통과 복통, 폐렴을 일으킨다.

| 글 | 정진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자원활용소재연구부 책임연구원, 신방실 기자 ㆍjinkiz@kigam.re.kr, weezer@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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