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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보며 눈물 흘리게 하는 거울뉴런


평소 건망증이 심한 아내(손예진 분)가 어느 순간 남편(정우성 분)을 못 알아본다.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녀가 모든 기억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름도, 나이도, 사랑했던 나조차도….” 육체는 함께 해도 영혼이 이별하는 과정을 그린 ‘내 머리 속의 지우개’는 진한 감동을 안겨준 영화였다.

이처럼 슬픈 영화를 보다보면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하나같이 여자들이다. 눈을 번득이며 여전히 살아있는, 살이 발라진 광어가 함께 나오는 회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먹는 여자들이 100% 허구인 영화에 울다니 남자친구에게 약하게 보이려는 연기일까. 혹 남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지만 여자친구에게 강하게 보이려고 참고 있는 것일까.

최근 신경과학은 여성이 남성보다 감수성이 더 풍부하다는 해답을 내놓았다. 여성은 거울뉴런(mirror neuron)이 남성에 비해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더 크다는 설명이다. 거울뉴런이란 무엇일까.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대 생리학연구소 소장인 저명한 신경과학자 자코모 리촐라티 박사는 뇌가 목표한 행동을 어떻게 계획하고 실행하는지 연구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원숭이 뇌속의 행동뉴런 하나하나에 전극을 꽂아 활동을 모니터할 수 있는 실험방법을 개발했다. 원숭이가 특정한 행동을 할 때 활성화되는 행동뉴런은 전두엽의 전운동피질 아래쪽에 있다.

원숭이가 어떤 행동을 하자 특정 뉴런이 활동했다. 예를 들어 어떤 뉴런은 원숭이가 접시 위의 땅콩을 집으려할 때만 반응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 우연히 실험자가 똑같은 행동, 즉 땅콩을 집었는데 이를 지켜보던 원숭이의 뇌에서 동일한 뉴런이 활동했던 것. 직접 동작을 하지도 않고 지켜보기만 했는데도 뇌는 비슷한 반응패턴을 보였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을 또 발견했다. 손 대신 집게로 땅콩을 집을 때는 뉴런이 반응하지 않았던 것. 결국 이 뉴런은 스스로 행동하거나 자신과 같은 종 또는 비슷한 종이 행동하는 걸 볼 때는 작동하지만 무생물이 같은 동작을 할 때는 꺼져있었다. 자코모 리촐라티 박사는 신경과학분야 저널인 ‘브레인’에 이 결과를 실으며 이 뉴런을 ‘거울뉴런’이라고 이름 지었다. 타인의 행동을 ‘비춰주는’ 신경세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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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거울 뉴런은 글자 그대로 시각적 정보를 비추는 데만 관여할까. 일상생활에서 ‘거울’이란 말을 비유적으로 쓰듯 거울 뉴런 역시 넓은 의미에서 상대의 행동을 비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원숭이에게 땅콩이 담긴 접시 쪽으로 손이 다가와 집는 장면을 보여줬다. 다음으로 접시를 가리고 그쪽으로 손을 내미는 광경을 보여줬다. 원숭이들은 손이 땅콩을 집는 장면을 직접 보지 못했음에도 볼 때와 같은 뉴런이 반응했다. 한편 땅콩을 봉지에 싼 뒤 봉지를 뜯어 땅콩을 집는 광경을 보여준 다음에 봉지를 뜯는 소리만 들려줘도 역시 동일한 뉴런이 활성화됐다.

리촐라티 박사팀은 2001년 신경과학 저널인 ‘뉴런’에 이 결과를 실으며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Are Doing)라는 영화이름 같은 논문 제목을 달았다.





눈치도 거울뉴런의 작품
엄마와 아이가 식탁을 놓고 나란히 앉아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프가 나오자 엄마는 한 스푼 떠서 ‘후후’ 입으로 불어 식힌다. 그리고 아이를 한번 보고 난 뒤 스푼을 자기 입으로 가져간다. ‘뭐 저런 엄마가 있어?’ 정겨운 눈빛으로 모자를 지켜보던 웨이터는 뜻밖의 광경에 깜짝 놀란다. “놀람을 통해 우리는 그 직전의 순간에 우리가 어떤 기대를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대니얼 길버트 교수의 설명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상대방의 의도를 추측할 수 있고 남도 그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딴소리 하거나 엉뚱한 행동을 하는 사람이 흔히 ‘고문관’이라는 별명을 들으며 때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되는 이유다. 눈치, 즉 타인의 의도를 살피는 능력은 매끄러운 사회생활을 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

악취를 맡으면 뇌섬엽(파란색)의 앞쪽이 활성화된다(빨간색). 악취를 맡는 장면을 봤을 때도 이 영역(노란색)이 활성화된다.

그런데 타인의 행동에서 의도를 파악하는 데도 거울뉴런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이 컵을 집는 장면을 관찰할 때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변화를 관찰했다. 첫 번째 상황은 잔에 커피가 가득 담겨있고 쿠기를 담은 접시, 설탕 단지, 크림 단지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두 번째 상황은 빈 잔에 먹다 남은 과자가 담긴 접시, 뚜껑이 열려있는 설탕 단지와 쓰러진 크림 단지가 놓여있다. 참가자들은 첫 번째 상황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잔을 든다고 해석했고 두 번째는 잔을 치우기 위해 집는다고 이해했다.

두 상황에서 거울뉴런의 작동 패턴도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마시기 위해 잔을 들었을 때 전운동피질 아래 부분이 훨씬 강하게 반응했다. 리촐라티 박사는 “사람의 전운동피질 아래쪽에는 동작의 이유를 파악하는 거울뉴런이 있어 의도에 따라 다르게 반응한다”며 “‘치우기 위해서’보다‘마시기 위해서’처럼 좀 더 원초적인 생물학적 의도일 때 강하게 활성화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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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눈물이 많은 이유
혐오감이나 간지러움 같은 원초적인 감정이나 감각을 느끼는 데도 거울뉴런이 관여한다. 오지탐험에 나선 연기자가 엄지손가락만한 징그러운 벌레를 먹어야하는 상황을 TV에서 보기만 해도 역겨움에 몸서리를 치고, 솜털로 발바닥을 간질거리는 장면만 봐도 내 몸이 근질거리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연구자들은 유리잔을 들어 냄새를 맡으면서 역겨워하는 장면을 실험 참가자에게 보여줬다. 이들은 직접 냄새를 맡지 않았음에도 구토반응을 보였고 기능성핵자기공명(fMRI)으로 뇌의 활동을 분석한 결과 왼쪽 측두엽의 뇌섬염 앞부분(anterior insula)이 활성화됐다. 이 부분은 실제 역겨운 냄새를 맡았을 때 강하게 활성화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뇌졸중으로 이 부분이 손상된 사람은 타인이 역겨워하는 장면을 봐도 반응이 없었다.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는 데도 거울뉴런이 관여한다. 피험자의 손끝을 찔러 통증을 줄 때 감정 상태를 주관하는 뇌 영역인 대상회(gyrus cinguli)의 뉴런이 활성화됐다. 그 뒤 타인에게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주는 장면을 보게 했을 때도 이 뉴런이 발화함을 관찰했다. 가족이나 친구가 아파하는 장면을 보면서 “가슴이 아프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실제로도 고통을 느낀다는 얘기다.


신발 냄새에 코를 틀어막는 사진을 보면 왠지 악취가 느껴지는 듯하다. 이는 거울뉴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은 남성보다 여성이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많이 나와 있다. 여성은 타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테스트에서 점수가 더 높고 주변 상황에 대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 일상대화에서 사용하는 단어수가 더 많고 남아보다 여아가 말을 빨리 배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부설 자폐연구센터 시몬 바론-코헨 교수팀은 두 가지 측정척도를 도입해 남녀의 뇌 차이를 뚜렷하게 보여줬다. 즉 교감지수(EQ, empathy quotient)와 체계화지수(SQ, systemizing quotient)가 그것이다. 교감이란 타인의 생각을 짐작해 그 행동을 예측하고 적절한 감정으로 대응하는 능력이다. 반면 체계화란 대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파악해 결과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능력이다. 시험을 망쳐 낙담하고 있는 친구에게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과정이 교감의 결과라면 중력을 고려해 링보다 높은 각도로 농구공을 던지는 건 시스템화의 결과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은 교감지수가 높았고 남성은 체계화지수가 높았다. 연구팀은 이런 차이를 남녀 뇌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즉 남자의 뇌는 여성의 뇌보다 평균 9% 더 무겁고 백색질이 많아 뉴런이 빽빽하게 들어차있다. 반면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의 용적은 오히려 작다. 따라서 남성의 뇌는 국소적인 회로가 잘 발달돼 있고 좁은 범위의 과제 처리에 능하다. 반면 여성은 교량을 통해 좌우뇌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고 전두엽과 두정엽의 동조활동도 뚜렷하다. 그런데 거울뉴런이 발견된 부위가 바로 전두엽, 두정엽, 측두엽이다. 대만 국립양민대 흐시에흐 옌추엔 교수팀은 2006년 ‘뉴로리포트’에 여성의 거울뉴런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했다. 결국 거울뉴런은 뇌의 영역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셈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
“사람들은 내가 쉽게 작곡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실수라네. 단언컨대 친구여, 나만큼 작곡에 많은 시간과 생각을 바치는 사람은 없을 걸세. 유명한 작곡가의 음악 치고 내가 수십 번에 걸쳐 꼼꼼하게 연구하지 않은 작품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음악의 신동’으로 알려진 모차르트가 한 친구에게 쓴 편지의 구절이다. 창조성이 높게 평가되는 예술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 가운데는 모방이 출발점이었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다. 소설가 이순원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베껴 쓰면서 소설을 공부했다고 한다. 해외 유명 미술관 앞에는 거장의 그림을 모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연주를 잘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연주를 많이 들어야한다는 건 상식이다.

이같은 ‘모방을 통한 학습’의 효과적인 배후에 거울뉴런이 있다. 특정 동작을 보기만 해도 실행할 때와 같은 신경회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리촐라티 박사팀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숙련된 기타 연주자가 연주할 때 손가락의 움직임을 관찰하게 했다. 그러자 전두엽과 두정엽에 있는 뉴런이 활성화됐다. 그 뒤 같은 동작을 해보게 하자 동일한 부위의 뉴런이 강하게 반응했다.


모방은 영장류가 살아남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다. 혀 내미는 동작을 보고 따라하는 새끼 원숭이.

최근에는 사람이나 원숭이뿐 아니라 새도 거울뉴런으로 모방을 통한 학습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탈리아 파르마대 피에르 페라리 교수팀은 ‘네이처’ 1월17일자에 발표한 논문에서 새가 지저귈 때뿐만 아니라 다른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을 때도 비슷하게 활성화되는 뉴런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새는 같은 종이라도 서직지에 따라 지저귀는 패턴이 다르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는데, 이 과정이 거울뉴런을 통해 후천적으로 학습된다는 것. 결국 거울뉴런은 동물이 좀 더 복잡하고 미묘한 행동을 인지하고 습득하기 위해 진화시킨 뇌의 회로인 셈이다. 페라리 교수는 “이번 발견은 영장류 이외의 종에서 처음 확인한 거울 시스템”이라며 “거울뉴런은 척추동물 뇌의 기본 특징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창조성을 높이 평가하는 게 예술이지만 출발은 모방을 통한 학습이다. 모범이 되는 동작을 보기만 해도 거울뉴런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맹모삼천지교’의 깊은 뜻
유복자인 맹자를 키우며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아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맹자의 어머니는 거울뉴런의 위력을 알았던 걸까. 독일의 정신과 의사인 요아힘 바우어 박사는 2005년 펴낸 저서 ‘공감의 심리학’에서 어린 시절 접하는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TV나 게임을 통해 폭력적인 장면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경우 아이 자신이 폭력적인 행위를 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폭력의 거울뉴런이 활성화되는 셈이다.

또 어릴 때는 부모 같은 역할 모델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한다. 거울뉴런이 제대로 반응하려면 살아있는 대상이 행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로봇기술이 발달하고 있지만 현재 수준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아무리 그럴 듯한 행동을 해도 결코 생명체의 역할을 대신할 수는 없다. 거울뉴런은 귀신같이 생물과 무생물을 구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거울뉴런이 제대로 자극되지 못하면 개인의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한 집단이 의도적으로 어떤 사람을 따돌리면 그 사람의 거울뉴런 시스템이 제대로 활성화되지 않아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행동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최근 숭례문 방화사건이나 수년 전 대구지하철 화재사건 등 사회에 적개심을 품은 범죄들이 모두 자신이 고립됐다고 느끼는 남성들이 일으킨 사건이라는 사실은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자신 속의 여성성, 즉 ‘거울뉴런’을 깨끗하게 닦아 서로를 비춰주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 글 | 강석기 기자 ㆍsukk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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