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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우주인, 겨울철 생존훈련 ‘생생’ 현장


편집자 주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www.dongasci-ence.com)에서 고 씨와 이 씨의 겨울철 생존훈련과정과 가가린우주센터의 여러 곳을 촬영한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우주인개발단 공동기획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4일까지 한국 첫 우주인 고산 씨와 예비우주인 이소연 씨가 러시아에서 겨울철 생존훈련을 받았다. 지구로 귀환하던 소유즈 우주선이 추운 산악지대에 불시착할 경우를 대비한 훈련이다. 2박3일 동안 고립무원의 설원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인 이들의 훈련과정을 밀착 취재했다.




영하 15℃에서 비스킷으로 연명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40km 떨어진 자작나무 숲. 며칠 동안 내린 폭설로 사방이 하얗게 뒤덮인 나무 사이로 소유즈 우주선이 ‘덩그러니’ 엎어져 있다. 생존훈련은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우주인 3명이 영하 60℃에서도 견딜 수 있는 특수방한복을 갈아입고 차례대로 나오면서 시작됐다.

“올레크, 나 울리체 홀로드노?”(올레크, 밖이 추워?)
“네트 노르말리노. 비호지체.”(그렇게 춥진 않아. 어서 나와.)

고 씨가 우주선 밖의 추위를 의식한 듯 밖을 향해 질문을 던지자 러시아 우주인이 고 씨에게 빨리 나오라고 재촉했다. 고 씨와 팀을 이룬 이들은 러시아 우주인 노비츠키 올레크와 세로바 옐레나. 지난해 가가린 우주센터에 입교한 새내기 우주인이다.

소유즈 우주선은 지구로 귀환할 때 낙하산에 매달려 러시아 초원지대에 착륙한다. 그러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 헬리콥터가 착륙지점으로 날아가 우주인을 구조한다. 이런 방식으로 지금까지 우주인 수백 명이 안전하게 우주에 다녀왔다.


고산(왼쪽)씨와 러시아 우주인 노비츠키 올레크가 겨울철 생존훈련을 받는 도중 발이 무릎까지 빠지는 눈숲에서 길을 찾고 있다.

하지만 귀환 도중 대기가 불안정하거나 우주선 제어시스템에 이상이 생기면 예상착륙지점에서 벗어나 엉뚱한 곳에 불시착할 수도 있다. 불시착한 우주인은 우주선에 미리 준비된 비상식량으로 끼니를 때우며 구조대와 연락이 닿을 때까지 살아남아야 한다.

실제로 소유즈 우주선은 예상착륙지점에서 700km 떨어진 우랄산맥 한 가운데에 불시착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는 말레이시아 최초 우주인이 탄 소유즈 우주선이 이상기류로 예상착륙지점에서 300km 떨어진 곳에 착륙하기도 했다.

이번 훈련은 소유즈 우주선이 눈 덮인 산악지대에 불시착했다고 가정하고 실전과 거의 똑같이 진행됐다. 우주인들에게는 고작 3일치 비상식량과 물 6L, 그리고 무전기와 신호탄만 주어졌다.

방한복으로 모두 갈아입은 우주인들은 피난처를 만들었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ㄷ’자 모양으로 벽을 만들고,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막기 위해 우주선에서 떼어낸 낙하산을 바닥에 깔았다. 그 사이 선장 역할을 맡은 올레크가 계속해서 무전기로 구조신호를 보냈지만 시끄러운 잡음만 돌아왔다.


생존훈련은 지구로 귀환하던 소유즈 우주선이 불시착한 경우를 대비했다. 고산 씨가 눈밭에 엎어져 있는 소유즈 우주선의 문을 열고 있다.


날이 저물자 기온이 영하 15℃로 뚝 떨어졌다. 이따금 부는 바람에 코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이들은 모닥불 둘레에 모여 앉아 초콜릿과 비스킷, 그리고 트보로크(우유로 만든 러시아 전통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고 씨는 비상식량 주머니 안에서 찾은 홍차를 끓여 마시다 이내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 씨가 몸을 부르르 떨며 잠을 깼다. 낮에 나무를 하는 동안 땀에 젖었던 내복이 밤이 되자 차가워지며 체온을 급격하게 떨어뜨렸기 때문이다. 모닥불 옆에서 옷을 말리던 고 씨는 옆에서 뒤척이는 옐레나에게 방한복을 벗어 덮어줬다.




생존능력과 협동심 평가하는 인디언텐트
이튿날 아침, 차가운 눈으로 얼굴을 비벼 세수를 하고 비스킷으로 식사를 대신한 세 우주인은 나무와 낙하산 천을 이용해 원뿔 모양의 인디언텐트를 짓기 시작했다. 조난 상황이 길어진 경우를 대비해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는 훈련이다.

고 씨는 “수년 전 한 미국 우주인이 생존훈련을 받을 때 인디언텐트를 처음 지었는데 그 쓸모에 감탄한 러시아 측이 이를 아예 훈련프로그램에 넣었다”고 배경을 소개했다.
길이가 3m 쯤 되는 나무 몇 그루를 베어와 텐트의 뼈대를 세우고 주변을 낙하산으로 감쌌다. 몇 시간 뒤 텐트는 대충 모양을 갖춘 듯 했다. 하지만 텐트 안에 모닥불을 피우자 나무가 타며 내뿜는 연기가 텐트 안에 가득 찼다.

고 씨는 연기가 위로 잘 빠져나가도록 텐트 꼭대기에 구멍을 내고, 공기가 잘 통하도록 텐트를 둘러싼 낙하산 천 가운데 부분을 트자고 제안했다. 날이 저물도록 텐트 ‘보수작업’이 이어졌다.

완성된 텐트 안에 기자가 직접 들어가 봤다. 가운데 모닥불을 피우니 연기도 잘 빠졌고 제법 훈훈했다. 하루 종일 눈밭에서 ‘집짓기’에 씨름했던 우주인들은 텐트 안에 들어가 곧 너부러졌다.


조난 상황이 길어질 경우를 대비해 인디언텐트를 지은 우주인들. 땔감용 나무가 젖지 않게 낙하산 천으로 덮고 있다.

달콤한 휴식도 잠시. 무전기에 구조대의 신호가 잡혔다. 고 씨는 텐트 밖으로 나가 모닥불을 피우고 신호탄을 터뜨려 피난처의 위치를 알렸다.

하지만 무전기에서는 “헬리콥터의 연료가 충분치 않은데다가 날이 어두워 구조가 힘드니 내일 아침까지 견디라”는 답이 돌아왔다.

동이 트기가 무섭게 우주인들은 짐을 챙겨 눈밭으로 나섰다. 텐트에는 숯으로 자신들이 언제 어디로 이동했는지 알리는 표식을 남겼다. 훈련의 마지막 관문은 우주인 가운데 한 명의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가정해 헬리콥터가 착륙할 수 있는 곳까지 옮기는 것. 시간은 단 40분.

고 씨와 올레크는 능숙한 솜씨로 환자 역할을 맡은 옐레나의 다리에 부목을 대 응급처치를 했다. 그리고 그를 낙하산에 눕힌 뒤 앞에서 끌기 시작했다.

“니 흐바따옛 브레미니.” (시간이 얼마 안 남았어.)
“산, 브이스뜨레!” (산, 더 빨리 달려!)
두 사람은 숨이 턱에 차도록 내달렸다. 발이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밭을 헤쳐 달리기를 10여 분. 사방이 트인 목적지에 도착하자 올레크가 신호탄을 터뜨렸다.
구조 헬리콥터 대신 나타난 훈련 감독관은 세 사람에게 “수고했다”며 훈련종료를 알렸다.


인디언텐트 꼭대기에 구멍을 내고 모닥불을 피우니 연기도 잘 빠졌고 제법 훈훈했다.
러시아 우주인과 이룬 팀워크 돋보여


우주인 가운데 한 명이 다리가 부러진 상황을 가정해 응급처치 훈련을 하고 있는 고산(가운데)씨.
러시아 우주인과 이룬 팀워크 돋보여
고 씨가 훈련을 마친 이튿날, 예비우주인 이 씨도 러시아 공군조종사 출신 우주인 2명과 팀을 이뤄 생존훈련을 시작했다. 전날에 비해 기온이 더 떨어진 데다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 관계자들을 잔뜩 긴장시켰다.

하지만 첫날 저녁 우주인의 거처를 찾아가니 우주인들은 낙하산 천으로 바람막이 벽을 쳐 놓고 모닥불을 피운 채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있었다.

이 씨는 기자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비상식량을 맛 볼 수 있는 기회도 줬다. 못 먹을 정도로 맛이 없진 않았지만 푸석푸석한 비상식량만으로 눈밭에서 3일을 버티는 일이 그리 쉬워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이 씨도 동료 우주인들과 협력하며 인디언텐트도 짓고 구조신호를 보내며 2박3일 동안 큰 탈 없이 훈련을 마쳤다. 훈련 마지막 날 이 씨는 “잠잘 때 동료 우주인의 코고는 소리가 심했다는 점만 빼면 훈련 과정에서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말해 주위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번 훈련의 책임자인 가가린우주센터의 알렉산더 게르만 중령은 “동계생존훈련은 극한 상황에 대처하는 우주인의 능력뿐만 아니라 협동심을 함께 평가한다”며 “두 사람이 러시아 우주인들과 이룬 팀워크가 돋보였다”고 칭찬했다.


예비우주인 이소연 씨가 겨울철 생존훈련을 시작하기 전 선내우주복 ‘소콜’을 입고 소유즈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1분 1초도 소홀히 할 수 없어
고 씨와 이 씨는 생존훈련을 마친 바로 다음날 가가린훈련센터로 돌아가 소유즈 우주선 실습과 저압실 훈련 같은 강도 높은 훈련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우주인 훈련 과정을 사실상 대부분 마무리하고 2월부터 그동안 받은 훈련을 반복하고 있다.

고 씨는 “우주에서 보낼 10일을 머릿속에 그릴 때마다 가슴이 뛴다”며 “그동안 쏟았던 땀이 헛되지 않도록 발사 때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 씨도 “마지막 훈련의 1분 1초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이들은 3월 초 의학검사를 받은 뒤, 3월 중순 우주인이 되기 위한 마지막 절차인 ‘우주선탑승최종시험’을 치른다. 이 시험에 합격하면 두 사람은 발사장이 있는 바이코누르 기지로 이동해 발사일인 4월 8일까지 컨디션을 조절한다.
두 우주인 후보의 쿵쾅거리는 심장소리가 로켓 발사의 카운트다운처럼 들린다.

훈련을 시작한 첫날 밤, 낙하산으로 만든 방풍벽 앞에서 동료 우주인들과 모닥불을 쬐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이소연 씨.
‘세계 우주인의 요람 ’가가린우주센터를 가다
[그림설명:1 국제우주정거장 즈베즈다 러시아 모듈 실물이 잠겨있는 ‘하이드로랩’의 풀 내부 모습. 우주인들은 우주복을 입고 물에 들어간 뒤 부력과 똑같은 무게의 추를 달아 무중력 상태와 비슷한 환경을 경험한다. 2 세계 최대의 중력가속도 훈련장치. 이곳에서 우주인은 8G(지구중력가속도의 8배)를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 3 러시아의 2세대 우주정거장 ‘미르’의 실물이 전시된 박물관. 살아있는 우주교육이 이뤄지는 학습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산 씨와 이소연 씨의 생존훈련 취재를 마친 다음날 기자는 모스크바에서 북서쪽으로 40km 떨어진 ‘즈뵤즈드늬 가라독’(별의 도시)에 있는 가가린우주센터를 방문했다. 지금까지 전세계 30여개 나라에서 420명이 넘는 우주인을 배출한 아곳은 ‘세계 우주인의 요람’으로 불린다. 고 씨와 이 씨도 지난해 3월부터 이곳에서 훈련을 받아 왔다.

1960년에 지어진 가가린우주센터는 그동안 군사보안시설로 외부인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현재는 약 45일 전에 출입신청을 하면 내부 관람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개방됐지만 아직 출입제한 구역도 많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깊이 12m, 지름 23m인 원형 풀 안에 국제우주정거장의 즈베즈다 러시아 모듈 실물이 잠겨 있는 ‘하이드로랩’이었다. 이곳에서 우주인들은 특히 우주복을 입고 국제우주정거장 바깥으로 나오는 선외활동(EVA) 훈련을 한다. 우주복을 입고 물에 들어간 뒤 부력과 똑같은 무게의 추를 달아 무중력 상태와 비슷한 환경을 만든다.




하이드로랩의 규모도 놀라웠지만 세계 최대의 중력가속도 훈련장치는 그 이상이었다. 1980년에 지어진 이 훈련장치는 무게가 305톤, 길이가 18m에 이르는 거대한 ‘팔’을 돌려 최대 30G(지구 중력가속도의 30배)를 만든다. 5G를 견디는 훈련을 받은 경험이 있는 기자는 훈련장치의 규모에 머리가 쭈뼛 섰다. 우주인은 이곳에서 보통 4~8G를 견디는 훈련을 받는다.

1998년 수명을 다한 러시아의 2세대 우주정거장 ‘미르’의 실물이 전시된 박물관을 둘러본 뒤 훈련센터 투어를 마쳤다. 아쉽게도 우리 우주인이 훈련 받는 모습을 볼 수는 없었다. 최근 강화된 가가린우주센터의 보안 정책 탓이었다(올해부터 우주인들도 훈련장에 카메라를 가져갈 수 없게 됐다).

50년 역사를 가진 우주센터를 둘러보며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 유인 우주개발역사에 첫발을 내딛는 우리나라가 이곳 부럽지 않은 우주센터를 가질 날을 기대해본다.

| 글 | 쉘콥스키=안형준 기자 ㆍbutnow@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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