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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미컬 에세이] 자연의 우연이 준 선물


얼마 전 모처럼 소테른 와인을 마셨다. 프랑스의 와인 주산지인 보르도 남동부의 작은 지역인 소테른(Sauternes)은 독특한 화이트 와인으로 유명하다. 곰팡이가 핀 포도를 수확해 만든 와인이기 때문이다. 포도송이에서 곰팡이가 핀 걸 골라 없애고 난 뒤 즙을 짰다고 해도 개운치 않을 텐데 일부러 곰팡이가 핀 포도를 쓰다니. 게다가 소테른 와인은 보통 화이트 와인보다 훨씬 비싸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일까.

이 일대는 가론강과 시롱강이 흐르는데 보르도 남동쪽에서 두 강이 합류해 북서쪽으로 흘러간다. 두 강이 만나는 사이가 소테른 지역이다. 가을밤, 차가운 시롱강과 따뜻한 가론강이 만나면서 짙은 안개가 피어 이 지역의 포도밭을 덮는데 다음날 아침 늦게까지 머문다. 이때 포도껍질에 붙어있던 보트리티스 시네레아(Botrytis cinerea)라는 곰팡이 포자가 깨어난다. 이렇게 몇 주가 지나면 회색 곰팡이가 핀 쭈글쭈글한 포도송이가 남는데 이걸 수확해 포도주를 담근다.


곰팡이가 피어있는 소테른 지역의 포도송이. 여기서 꿀처럼 달콤한 와인을 얻는다.

소테른 와인은 일반 화이트 와인에 비해 노란색이 짙고 꿀 같은 향이 난다. 또 무척 달고 약간 걸쭉한 느낌이다. 화이트 와인 한 병에 꿀 한 숟가락을 넣고 잘 섞은 것 같다고 할까. 보트리티스가 감염되면 포도알맹이의 타타르산과 당분이 급격히 늘어나고 글리세롤 함량이 높아져 점도가 커진다. 또 포도의 향도 변한다고 한다. 곰팡이가 펴 흉하게 변했지만 그 대가로 기존 와인에서는 기대하지 못했던 맛과 향을 갖게 된 셈이다. 그래서일까. 와인 애호가인 영국인들은 이 곰팡이에 noble rot, 즉 ‘고귀한 부패’(貴腐)라는 이름을 붙였다.

자몽으로 더 알려진 그레이프프루트는 다른 방식으로 자연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다. 그레이프프루트는 18세기 중미 카리브 해 제도의 한 곳(자메이카가 가장 유력한 후보지다)에서 스위트오렌지와 포멜로(pomelo)라는 감귤류 식물이 자연교배해 탄생했다. 소프트볼 공 만한 이 과일을 왜 그레이프프루트(grapefruit), 즉 포도열매라고 부를까. 열매가 워낙 다닥다닥 나무에 붙어있다 보니 멀리서 보면 마치 포도송이처럼 보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취향이겠지만 기자는 오렌지보다 그레이프프루트를 좋아한다. 시원하면서도 달콤한 오렌지 향도 좋지만 좀 더 맑고 선선한 그레이프프루트의 상쾌함은 일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과즙의 맛도 오렌지는 너무 단데 그레이프프루트는 적당한 단맛에 씁쓸한 맛이 어울려 미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그레이프프루트의 독특한 쓴맛은 나린진(naringin)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그런데 수년전부터 그레이프프루트가 인기를 얻고 있다. 과즙에 포함된 나린진의 쓴맛이 식욕을 떨어뜨려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연구자들은 나린진이 C형 간염바이러스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http://www.dongascience.com/Ds/contents.asp?mode=view&article_no=20080227135007)

오렌지 나무가 포멜로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레이프프루트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포멜로는 가장 큰 감귤류로 배구공만한데 그레이프프루트는 오렌지와 포멜로의 중간 크기다. 흥미롭게도 포멜로는 달콤하고 다소 싱거운 맛으로 그레이프프루트의 쓴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레이프프루트의 맛과 향은 어디서 왔을까.
| 글 | 강석기 기자ㆍsukki@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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