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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본 한반도는 하나였다”


“당신 꿈의 리스트를 만드세요.”
4월 8일 러시아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날아간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9박 10일간의 임무를 마치고 19일 무사히 돌아왔다.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 둥둥 떠다니며 지구를 내려다본 이 씨는 어린 시절 꿈을 이뤘다.
이제 세계 우주 강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우리나라의 꿈이 싹트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7일 “내일이면 진짜 우주에 간다”
한국 최초 우주인 이소연 씨가 우주로 향하기 하루 전인 지난 4월 7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남부 바이코누르의 날씨는 화창했다. 구름 한 점 없는 코발트 빛 하늘은 마치 다음 날 발사될 로켓의 앞길이 ‘탄탄대로’라고 말해주듯 투명했다.

이 씨가 탑승할 소유스FG 로켓이 서 있는 발사대는 사막 한복판에 있었는데, 기지 정문에서도 자동차로 40분을 달려 들어가야 했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는 건 로켓과 발사대, 그리고 전날 8km 떨어진 조립공장에서 로켓을 싣고 온 거대한 화물열차뿐이었다. 15층 건물 높이에 무게만 310t이 넘는 소유스FG 로켓은 의외로 아담했다. 로켓 상단에는 태극기가, 그 아래로 교육과학기술부와 항우연 로고가 선명히 박힌 모습이 눈에 띄었다. 취재기자단의 안내를 맡은 아스트라시스템스 관계자는 “소유스 로켓은 1600여 차례 발사돼 98% 성공률을 보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로켓”이라며 뽐내듯 말했다.

이날 저녁 우주인들의 전용 숙소인 코스모노트 호텔에서 만난 이 씨는 “내일이면 진짜 우주에 간다”며 싱긋 웃었다. 세균 감염을 막기 위해 유리벽에 격리된 상태였지만 특유의 여유와 쾌활함은 그대로였다.


소유스FG 로켓이 바이코누르기지 한복판에 세워진 발사대에서 카운트다운을 기다리고 있다.
4월 8일 땅을 힘차게 박차고 우주로 출발!
이른 아침 출정식을 마치고 숙소에서 나와 기지로 향하는 이 씨의 표정은 해맑았다. 이날 따라 그의 푸른색 제복에 박힌 태극기도 아침 햇빛에 유난히 밝게 빛났다. “좋은 꿈을 꿨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정말 푹 잤다. 잘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주로 향할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는 듯 엄지손가락을 추켜올렸다.

이날 오후 5시(바이코누르 현지 시각 오후 2시) 발사대 부근의 에네르기아사 건물 앞은 이번 발사를 응원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온 500여 명의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최초 여성우주인 발렌티나 테레슈코바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발사 전 마지막 의식인 우주인 보고식을 치르기 위해 소콜 우주복을 입고 걸어 나오는 이 씨의 발걸음은 한결 가벼워 보였다. 그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힘차게 흔들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곧이어 그를 태운 버스가 발사대를 향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8년 4월 8일 오후 5시 16분 39초. 이소연 씨가 탄 소유스 로켓이 굉음을 내며 하늘로 치솟았다. 발사 9분 48초 뒤 러시아연방우주청은 이소연 씨가 ‘한국 최초 우주인이 됐음’을 공식 선언했다.

이 씨가 로켓에 올라 2시간 반가량을 대기하고 있는 사이 발사장에서 1.8km 떨어진 관람대는 묘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너머로 이 씨를 태운 소유스 로켓이 작은 점처럼 보였다. 자식을 험난한 오지로 보내는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관람석 한쪽에 앉아 있던 이 씨의 어머니 정금순 씨의 눈에 촉촉이 눈물이 맺혔다.




발사를 불과 1분여 남기고 소유스 로켓을 붙잡고 있던 발사탑 두 개가 연달아 쓰러졌다. 곧이어 로켓에서 흰 연기가 서서히 피어오르며 불꽃이 2, 3차례 반짝이자 ‘크르릉’ 하는 굉음과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후 8시 16분 39초. 이 씨를 태운 로켓은 힘차게 땅을 박차고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관람대에서도 일제히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내며 성공적인 귀환을 기원했다. 흰 불꽃을 길게 뿜으며 치솟아 오른 로켓은 눈 깜짝할 사이 흰 연기만 남긴 채 시야에서 사라졌다. 발사 9분 48초 뒤 로켓이 220km 상공의 우주 궤도에 진입하자 러시아 모스크바의 임무통제센터(MCC)는 ‘발사 성공’을 선언했다.


소유스 호 탑승 직전 우주로 향한 자신감을 보인 이소연 씨.
4월 11일 ISS 방명록에 157번째로 이름을 올리다
10일 오후 이 씨를 태운 소유스 호가 ISS와의 도킹을 앞둔 MCC에는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도킹 예정시간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관제사들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도킹 예정 1시간 전. 관제실 화면에 소유스 호에서 보내온 ISS 사진이 나타났다. 소유스 호는 30여 분에 걸쳐 초속 수~수십cm 속도로 조심스럽게 ISS에 접근했다. 1초에 7.4~8km 속도로 지구 주위를 도는 ISS와의 도킹은 러시아와 미국만이 보유한 최첨단 정밀 제어기술에 속한다.

오후 9시 57분(모스크바 현지시간 오후 4시 57분). 소유스 호는 예정보다 3분 빨리 ISS와 도킹에 성공했다. 도킹 성공을 알리는 ‘카자니아(접촉)’라는 관제 책임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소유스 호가 자동조종장치를 이용해 ISS에 접근하는 모습은 임무통제센터(MCC)의 화면을 통해 생중계됐다.

11일 새벽 0시 50분 해치가 열리며 우주선 선장인 세르게이 볼코프가 얼굴을 드러냈다. 이어 이 씨도 밝게 손을 흔들며 ISS에 들어섰다. 6개월 전 ISS에 미리 도착해 있던 러시아 우주인 유리 말렌첸코가 이 씨를 손으로 잡아당기며 반갑게 맞았다. 이날 이 씨는 ISS 방명록에 157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목적지인 ISS까지 이틀 간 비행하는 동안 이 씨는 지구 주위를 34번 돌면서 얼굴도 붓고 멀미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두 손을 동그랗게 모으며 지상에 남은 관계자들에게 애정 공세를 펼치는 여유를 보였다.







11일 새벽 0시 57분 도킹에 성공한 이소연 씨가 ISS에 머물던 우주인 3명과 도킹 후 첫 인터뷰에 나섰다.
4월 12일 분초를 나눠 가며 과학실험 일정 소화
이소연 씨는 11일 오후 4시 20분 ISS 벽에 붙어 있는 자신의 침낭에서 일어나며 ISS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우주에서 보낸 첫 사흘간 이 씨의 얼굴은 많이 부어올랐다.

젖은 티슈와 물이 필요 없는 샴푸로 세면을 마친 이 씨는 간단히 아침 식사를 했다. 메뉴는 ISS운영위원회가 정해놓은 우주식단. 우주인의 영양상태를 고려해 발사 6개월 전 미리 짜둔 음식들이다.
ISS 도착 직후 이 씨는 가져간 식물 씨앗과 초파리가 담긴 실험장비를 꺼내 ISS에 지정된 위치에 붙이는 것으로 첫 번째 임무 수행에 들어갔다.

우주에서 얼굴이 얼마나 변했는지 ‘셀카’를 찍어보는 실험도 진행했다. 이날 오후 열린 첫 원격의료 검진에서 이 씨는 “아직 둥둥 날아다니는 게 익숙하지 않아 다리에 온통 멍이 생겼다”며 싱긋 웃어보였다.







(왼쪽 그림)이소연 씨는 매일 아침 우주에서 얼굴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셀카’를 찍어야 했다. (오른쪽 그림)ISS 도착 직후 이소연 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가지고 올라간 초파리 상자를 꺼내 지정된 장소에 붙이는 것이었다.

ISS에 머무는 동안 이 씨는 시간을 분초 단위로 나눠 써야할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온종일 ISS를 이리저리 오가며 실험 장치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져간 생물 샘플들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그는 “몸은 힘들지만 지상에서 애타게 실험 결과를 기다리는 과학자들을 떠올리니 게으름을 피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350km 상공에서 힘겹게 12일을 보낸 초파리와 세포들이 훗날 한국의 과학 발전에 큰 보탬이 되리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마음이 벅차 오른다”고 밝혔다. 이 씨가 사용한 국산 과학실험 장비는 대부분 폐기처분되지만, ISS 내 소음을 측정하는 소음측정기와 우주저울은 그대로 남아 우주인들의 과학연구에 활용될 예정이다.


ISS에 처음으로 올라간 우주저울. 무중력 상태에서 질량을 측정하는 데 쓰인다.
4월 16일 ‘피겨 요정’ 김연아와 화상통화
이 씨는 주요 임무인 과학실험을 수행하면서도 틈틈이 국내와 원격 화상 통화로 사람들을 만났다. 12일 이명박 대통령과, 16일에는 ‘피겨 요정’ 김연아와 화상 통화로 만났다. 평소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는 이소연의 ‘입담’은 우주에서도 통했다.

이 대통령이 먼저 “정말 옆에 있는 것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거기 정말 우주 맞나”고 하자, 이 씨는 “여기 우주 정말 맞다. 인형이 이렇게 둥둥 떠 있는 걸 보면 (이곳이 우주인 것을) 알 수 있지 않느냐”며 가져간 작은 인형들을 띄워 보였다.

대통령이 이 씨의 옆에 서있는 동료 우주인들에게 “볼쇼이 스파시바(대단히 감사합니다)”라고 러시아말로 인사말을 건네자, “대통령님이 러시아어까지 할줄 정말 몰랐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 씨는 갑자기 머리끈을 풀어헤치며 “대통령님을 만난다고 해서 이렇게 아침 일찍 머리까지 감고 나왔다”며 주위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우주에 올라간 뒤 밥과 김치로 식사준비를 마친 이 씨의 표정이 마냥 밝기만 하다.



16일 저녁 ‘피겨 요정’ 김연아 양과 만난 이소연 씨가 밝게 웃으며 그동안 키운 콩나물을 보여주고 있다.

나흘 뒤 김연아 양을 만났을 때 이 씨는 손을 흔들며 “안녕”이라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은 지난해 1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빙상경기연맹 시니어 그랑프리 대회에서 김 양이 1위를 차지한 직후 만난 일이 있다. 이 씨는 “연아에게 보여주기 위해 어제 한 시간 동안 재주넘기 연습을 했다”며 앞으로 한 바퀴를 돌아 보였다.







13일 새벽(한국시간) 이소연 씨는 밥과 볶은 김치, 된장, 수정과 등 한국의 전통식품을 동료 우주인들과 나눠 먹었다.

이 씨는 동료 우주인들과 한국 음식을 나눠먹고 기념품을 교환하는 등 우주 공간에서 한국 문화 알리기에도 힘썼다. 13일 열린 인류 최초 우주 비행을 기념해 열린 만찬에서는 한국에서 가져간 밥과 볶은 김치, 된장, 수정과를 나눠먹으며 한국의 맛을 알렸다. 그는 “김치와 라면, 고추장이 인기가 매우 좋았다”며 “돌아올 때 체류하는 우주인들에게 선물하겠다”고 했다.




4월 19일 무사귀환 뒤 첫마디 “정말 멋진 경험”
12일간의 달콤한 우주비행을 마친 이 씨를 태운 소유스 귀환선은 19일 오후 2시 6분 30초 ISS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오며 지구로의 마지막 비행에 들어갔다. 출발 직전 이 씨는 6개월간 ISS에 머물 3명의 동료들과 작별의 아쉬움을 나눴다.

그로부터 3시간쯤 뒤인 5시 7분. 귀환선은 7˚ 각도로 흑해 상공에서 지구 대기권에 진입했다. 진입각도가 7˚보다 크면 우주선이 타버리고 그보다 작으면 우주 밖으로 튕겨나가 영원히 ‘우주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었다. 귀환선은 곧 섭씨 2000~3000℃의 고온 플라스마로 뒤덮이고, 지상과의 교신도 완전히 두절됐다.

예상 귀환 시간인 오후 5시 30분 45초를 훨씬 지난 오후 5시 49분. MCC 관제실 화면에 ‘무사 귀환’을 알리는 표시가 나타났다. 그로부터 20분 뒤 귀환선 선장을 맡은 유리 말렌첸코가 “세 사람 모두 건강하다”는 무선 교신을 보내왔다. 숨죽인 채 이 씨의 귀환을 지켜보던 관계자들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이 씨를 태운 소유스 귀환선은 원래 착륙 장소인 카자흐스탄 북부도시 코스타나이 남동쪽 382km지점에서 서쪽으로 420km이나 떨어진 지점에 착륙했다. 대기권 진입 직후 자세 조정에 실패해 예상 지점을 크게 벗어난 지역에 떨어진 것이다. 구조 직후 이 씨는우리말로 “정말 멋진 경험이었다. 지금까지 지켜봐주셔서 고맙다”고, 러시아어로는 “지구에 다시 내려오니 허리가 좀 아프다”며 첫 소감을 밝혔다.






19일 오후 5시 30분 이 씨를 태운 소유스 호가 예상 착륙지점보다 420km 벗어난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서부 초원지대에 착륙한 직후 모습.



귀환 직후 이소연 씨는 “온 국민이 다 함께 다녀온 것처럼 기뻐해주셔서 감사하다. 우주과학실험 결과를 알리는 데 앞장서겠다”고 귀환 후 첫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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