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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쏘는 헤라클레스의 자세는 85점


어른 키를 훌쩍 넘는 248cm 높이의 대형 청동상. 신화 속 영웅답게 울퉁불퉁한 근육에 커다란 활의 시위를 당기는 역동적인 동작이, 바라보는 이의 온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거장 에밀 앙투안 부르델(1861~1929)의 대표작 ‘활 쏘는 헤라클레스’.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제우스와 인간 사이에 태어난 영웅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의 본처인 헤라의 질투를 받아 위험천만한 12가지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부르델의 조각은 이 가운데 스팀팔로스 호수의 거대한 식인새를 활을 쏴 없애는 6번째 관문의 결정적 장면을 묘사한 것. 오른 무릎을 꿇고 왼다리를 번쩍 들어 앞쪽 바위에 디딘 채 쭉 뻗은 왼손에 커다란 활을 들고 오른손으로 한껏 시위를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활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며 시위에 물린 화살이 금방이라도 앞으로 나가 창공의 새를 떨어뜨릴 것 같다.


활 쏘는 헤라클레스(1906~1909) 복부근육이 빈약한 반면, 등 쪽은 승모근을 비롯한 다양한 근육이 우람하다. 활 쏘는 자세는 등과 허리를 더 펴야 효과적이다.

흥미롭게도 이 조각상에는 활시위나 화살은 없다. 사실 부르델은 습작을 여러 개 만들었다. 이은혜 ‘부르델 전’ 가이드는 “가느다란 실 같은 시위를 넣는다면 역동적인 분위기가 반감됐을 것”이라며 “시위나 화살을 뺀 작품에서 오히려 남성적 힘이 잘 드러난다”고 말했다.

‘활 쏘는 헤라클레스’를 감상한 관람객 중 상당수가 헤라클레스의 얼굴이 보이는 면보다 등 쪽이 더 멋있다고 느낀다. 왜 그럴까. 헤라클레스가 활 쏘는 자세는 운동역학적으로 효과적일까. 고대 그리스 조각상인 ‘원반 던지는 사람’처럼 원반을 던지면 원반은 멀리 못 가고, 로댕의 작품인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하기는커녕 숨쉬기도 힘든 자세라고 한다. 조각상 속 주인공의 진실을 만나보자.



헤라클레스 등 쪽이 멋있는 이유
활 쏘는 헤라클레스’는 부르델이 해부학적인 세부 묘사를 버리고 하나의 선, 면, 덩어리로 인체를 표현하던 시기의 작품이다. 일부가 과장돼 있지만 전체적인 균형감에다 예술성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작품은 한때 초등학생의 공책에 찍는 스탬프에도 등장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조각상의 주인공인 헤라클레스를 찬찬히 뜯어보면 팔, 다리, 가슴, 배의 근육이 불균형을 이룬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고려대 문국진 명예교수(법의학)는 “팔, 다리, 가슴 근육은 우람해 헤라클레스의 것이라 해도 손색이 없지만 복부근육은 다른 부위 근육에 비해 덜 발달된 점이 눈에 띈다”며 “이는 아마도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서 활 쏘는 자세의 예술적 감각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조각은 조명이 뒤에서 비칠 때 복부가 그늘져 어두운 대신 활 쏘는 우람한 양팔이 두드러져 보인다.


에밀 앙투안 부르델(1861~1929) 고대 그리스식 조각에 현대성을 가미하며 내면을 담기 위해 노력한 프랑스의 거장.

그는 또 “헤라클레스의 등을 보면 승모근을 비롯한 다양한 근육이 잘 발달돼 있다”며 “이 때문에 앞모습보다 우람한 뒷모습을 관람객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승모근은 천사의 날개처럼 생겨 양쪽 어깨뼈를 움직이는 삼각형의 근육이다.

활 쏘는 자세는 어떨까. 체육과학연구원 이순호 박사는 “신체의 무게중심이 안정돼 있지만 등과 가슴을 더 펴야 활 쏘는 데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활이란 태산을 끌어안듯 시위를 당기고 호랑이가 꼬리를 치듯 시위를 놔야 한다’는 국궁 관련 문헌자료를 예로 들었다. 그는 “팔이나 어깨가 아니라 등의 큰 근육인 등배근이나 견갑근을 사용해야 활시위를 충분히 당길 수 있다”며 “조각상의 주인공이 등과 허리를 편다면 등 근육을 이용해 화살을 더 멀리 날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헤라클레스의 활쏘기 자세를 기술동작으로 보고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85점 정도를 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각상처럼 원반 던지면 낭패
다음으로 높이 40cm의 소형 청동상 ‘검을 든 전사’를 보자. 경련이 일어난 얼굴, 실핏줄이 툭 튀어나온 근육뿐 아니라 대각선으로 몸을 뻗어 검을 휘두르는 동작으로 전쟁터의 극적인 분위기를 한껏 살린 작품이다. 이 박사는 “칼을 휘두를 때 허리를 움직여 팔을 채찍처럼 휘둘러야 효과적”이라며 “라켓을 휘두르거나 원반을 던지는 운동기술에서 허리, 아랫배, 허벅지 근육은 신체의 무게중심이자 힘의 원천인 파워 존”이라고 밝혔다. 검을 든 전사는 양발로 잘 지지한 상태에서 등과 허리를 쫙 펴고 신체 중심을 움직여 검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을 든 전사(1896~1897)

기원전 5세기 미론의 조각상인 ‘원반 던지는 사람’은 어떨까. 허리가 휘어 있는 자세에 원반을 던지는 투사각이 너무 높다는 게 이 박사의 평가다. 그는 “오늘날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우수한 선수들은 원반을 34~37°의 투사각으로 던져 멀리 보낸다”며 “투사각이 너무 크면 원반이 하늘 위로 높게만 날아가 멀리 가지 못하거나 원반이 뒤집혀 역시 멀리 못 간다”고 설명했다.

보통 선수는 원반을 잡고 좌우로 가볍게 돌리다가 발끝을 축으로 몸을 충분히 회전시켜 최대의 힘을 원반에 실어 던진다. 이 박사는 “조각상의 주인공은 어떤 단계의 동작이라고 말하기 힘들다”며 “어느 동작에서든 허리를 거의 편 상태여야 허리 회전에 따른 힘을 원반에 충분히 실어 멀리 던질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자신의 저서 ‘서양미술사’에서 ‘원반 던지는 사람’은 실제 동작을 표현한 게 아니라 예술작품이며 이 자세를 따라 연습했던 현대의 운동선수들은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원반 던지는 사람(기원전 5세기, 미론) 예술적으로 아름답지만 운동선수가 이대로 따라하다간 낭패를 보기 쉽다. 허리가 휘어 있고 원반의 투사각이 너무 높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사람’, 숨 쉬기도 힘들다
부르델의 스승인 오귀스트 로댕의 대표 조각인 ‘생각하는 사람’은 의학적으로 보면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문 교수는 “손을 뺨이나 턱에 대는 자기접촉은 ‘명상 중’ ‘생각 중’ ‘깊은 사고에 잠겨 있는 중’을 뜻하는 몸짓언어”라며 “하지만 ‘생각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손목을 ㄱ자로 꺾어 손등 부위로 턱을 괴고 있는 자세는 다른 그림이나 조각에서 생각하는 주인공이 턱을 엄지손가락과 나머지 손가락들 사이에 대고 있는 자세와 상당히 다르다. 또 복부근육에 힘을 줘 복벽(복강의 앞쪽 벽)이 뒤로 당겨지고, 호흡과 관계되는 대원근(겨드랑이 근육)이나 광배근(활배근, 등의 아래쪽과 위팔뼈 위쪽을 연결하는 좌우 한 쌍의 넓은 근육) 같은 흉부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있다. 그는 “복벽과 흉부근육이 이런 모양이라면 횡격막도 움직일 수 없어 호흡곤란을 느낄 수 있다”며 “이런 상태로는 무엇을 생각하기는커녕 살아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담(1888~1889) 좌우 무릎과 어깨 높이를 서로 다르게 해 불안을 나타내는 한편, 얼굴에 댄 왼손으로 괴로움을, 말아 쥔 오른손으로 삶의 의지를 각각 표현했다.

그렇다면 조각상의 주인공은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문 교수는 “조각을 옆에서 보면 허리와 등을 잔뜩 구부리고 얼굴과 눈길이 밑으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래 이 조각상은 로댕이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을 토대로 만든 390cm 높이의 대작인 ‘지옥의 문’ 위에 있는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은 높은 곳에서 벌을 받는 지옥 속 인간군상을 내려다보며 깊은 고뇌에 차 흥분된 상태로 전신에 힘을 준 모습”이라고 해석했다. 사실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이름은 로댕이 아니라 이 작품의 주물을 뜬 사람이 오해해 붙였다.


지옥의 문 (1880~1917, 로댕) 단테의 ‘신곡’ 중 지옥 편을 토대로 만든 작품. 질병과 죽음의 고통으로 괴로워하는 180여 명의 인간군상을 조각했다. ‘생각하는 사람’은 문 위쪽에 있다.
엄지발가락에 숨겨진 ‘부르델 코드’
부르델도 로댕의 제자답게 바위에 걸터앉아 고뇌에 빠진 주인공을 조각했다. 태초에 원죄를 짊어진 인간을 표현한 높이 63.7cm의 청동상인 ‘아담’이다. 이 작품을 자세히 살피면 앞에서 봤을 때 오른 무릎이 왼 무릎보다 높은 데 비해, 뒤에서 봤을 때는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더 올라가 있다.

문 교수는 “이렇게 균형을 깨뜨린 목적은 내면의 불안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며 “앞뒤의 높이가 다르고 등을 구부린 채 엉덩이를 살짝 걸쳐 자칫 뒤로 넘어질 것 같이 보이게 만든 것 또한 불안을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고 설명했다.

또 아담의 손자세도 주목할 만하다. 왼손은 얼굴에 대고 괴로워하면서 오른손은 둥글게 말아 쥐고 있다. 그는 “부정적 감정은 주로 얼굴 왼쪽에 잘 나타나는데, 아담이 왼손을 얼굴에 댄 것은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반성하는 자세”이고 “오른손은 ‘앞으로 뭔가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내면을 조각에 담은 부르델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사포(1887~1925)

부르델이 38년간 공들인 높이 220cm의 청동상 ‘사포’도 놓칠 수 없다. 그리스 여류시인 사포가 리라라는 악기에 오른손을 얹은 채 영감을 끌어내려고 한없이 명상에 잠겨 있는 듯하다. 전체가 완벽한 이등변삼각형의 틀 안에 갇혀 있는 조형미도 돋보이지만 치마 밖으로 살짝 나온 오른발의 엄지를 올린 모습이 특이하다. 문 교수는 “보통 무언가를 느낄 때 발가락 근육을 당긴다”며 “조각 속 주인공은 겉으론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만 마음속에는 이미 좋은 착상을 떠올렸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내면을 외부로 표현해 살려놓은 부르델의 ‘코드’가 기발하다.

| 글 | 이충환 기자 ㆍcosmos@donga.com |


생각하는 사람 (1880~1902, 로댕) 해부학적으로 보면 생각하기는커녕 숨 쉬기도 힘든 자세다. 사실 ‘지옥의 문’ 위에서 지옥 속 인간들을 내려다보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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