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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물방울’ 빚은 주인공 흙


와인을 소재로 한 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다다시 는, 1964년 1000만 원에 낙찰돼 세간의 관심을 모은 와인 샤또 마고를 클레오파트라에 비유했다. 그는 “‘샤또 마고’는 땅속 깊은 곳까지 자갈을 넣어 배수성을 높인 토양에서 자란다”며 “최고 수준의 ‘떼루아’(Terroir)가 강점” 이라고 전했다. 중요한 것은 이 와인의 가치가 땅 속에서 흘러나왔다는 점이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생떼밀리옹 지방은 ‘신이 내린 천국’이란 찬사를 받는다. 전 세계인의 미각을 사로잡을 정도로 품질이 좋은 포도가 이곳에서 생산되기 때문이다. 와인 애호가들은 포도의 산지와 빈티지(포도를 수확한 년도)를 따져 품질 좋은 와인을 고른다. 토양과 포도가 수확될 당시의 기후가 와인의 맛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떼루아’다. 떼루아는 프랑스어로 ‘토양의 맛’(gout de terroir)이란 뜻이다.


프랑스 생떼밀리옹 지방의 한 포도밭. 생떼밀리옹의 척박한 석회암토는 포도의 당도와 폴리페놀 농도를 높인다.
땅은 와인 맛 요리사
작물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수분과 양분을 흡수한다. 땅에 물을 주고 비료나 영양제 같은 첨가물을 넣는 이유는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 작물로 영양분이 풍부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데 작물마다 선호하는 땅의 유형이 다르고 동일한 작물도 토양의 조건에 따라 열매의 맛이 달라진다.

밀은 토양이 비옥할수록 알이 많이 달리고 굵다. 반면 포도는 토양이 척박할수록 당도가 높고 영양소가 풍부하다. 특히 포도는 토양의 특성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 특히 핵심적인 요소는 토양의 배수성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 영양식품과학과 루스 데 안드레아스 프라도 교수는 포도밭 토양의 배수성이 와인의 맛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 지난해 1월 13일 식품분야 전문저널인 ‘농업과 식품과학’에 발표했다. 그는 ‘붉은 그르나슈’라는 포도품종을 키우는 스페인의 두 포도농장에서 2004년부터 2년 연속 포도를 수확했다. 그리고 동일한 방법으로 와인을 제조한 뒤 특징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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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물과 양분이 적은 척박한 땅에서 고품질의 포도가 생산됐다. 포도의 맛은 포도당과 폴리페놀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포도당은 단 맛을 내고 폴리페놀은 떫은 맛을 낸다.

연구 결과 자갈과 모래로 이뤄져 토양의 배수성이 좋은 곳에서 자란 포도는 사과 껍질 향이 강하면서 떫었다. 반면 가는 모래와 점토 성분이 많아 물이 잘 안빠지는 땅에서 자란 포도는 건포도 맛이 강하고 성숙한 과일 맛이 났다. 프라도 교수는 “떼루아 중 하나인 토양이 와인의 풍미에 영향을 준 것”이라며 “양질의 포도나무가 특정 지역에서만 자라는 이유도 전 세계 토양의 물리적 구성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송정보대 김윤희 교수도 프랑스산 와인이 유명한 이유로 토양을 지목하며 “생떼밀리옹 지방은 석회암 지대이고 메독 지방은 자갈 지대, 뽀메롤 지방은 자갈과 모래지대”라고 말했다. 세 곳 모두 수분이 적어 척박하기로 유명하다.





수분이 적은 환경은 포도의 풍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물이 잘 빠져 수분의 양이 적은 토양에서 ‘힘들게’ 자란 포도는 당도가 높고 폴리페놀성분이 많다. 농촌진흥청 원예연구소 김승희 박사는 “자갈토는 토양 알갱이 사이의 공간이 넓다”며 “토양 알갱이 사이의 산소가 포도 뿌리로 영양분이 잘 들어가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게다가 식물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로 폴리페놀을 만든다. 식물은 수분이 부족한 지역에서 수분 스트레스를 받으면 엡시스산(ABA) 호르몬의 함유율이 높아진다. 이때 폴리페놀을 만드는 유전자가 활성화돼 포도껍질과 포도씨에 폴리페놀을 축적한다.

한편 유럽 포도의 당이 높은 데는 포도 수확기의 기후도 한 몫 한다. 포도는 10월에 수확하는데, 유럽에는 8, 9월에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건조한 기후에서 포도나무는 열매에 당을 축적한다.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한 농가에서 와인을 만들고 있다. 포도를 한 삽 가득 퍼 올린 모습에서 와인에 대한 애정이 엿보인다.

한국의 포도밭은 비교적 수분이 풍부하다. 한국의 포도밭은 과거에 논으로 쓰인 사례가 많다. 이 때문에 프랑스의 포도는 당도가 20%를 넘을 정도로 달지만, 한국의 포도는 당도가 최대 18%를 넘지 못한다. 이 때문에 한국산 와인은 알코올 도수가 9% 정도로 프랑스산보다 도수가 약 3~4% 낮다. 그는 “국내 포도밭은 프랑스의 포도밭과 조건이 다르지만 와인용 포도가 아니라 열매를 그대로 먹는 식용 포도용으로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의 와인이라 불리는 ‘샤또무주’나 ‘샤또마니’는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들은 각각 전북 무주와 충북 영동군에서 생산되는데, 이곳은 다른 지역과 달리 기반암이 석회암이다. 따라서 열매용 포도보단 와인용 포도로 경쟁력이 있는 셈이다.





질소 높은 쌀은 맛없어
흙은 쌀맛도 결정한다. 토양에는 수분과 공기, 다양한 영양소가 녹아 있다. 토양에 녹아있는 칼슘 이온(Ca2+)이나 마그네슘 이온(Mg2+) 등이 전기적 인력에 의해 물의 히드록시기(OH-)와 반응하면 수소이온이 분리된다. 수소이온이 늘어날수록 토양의 산도는 높아진다.

수소이온은 알루미늄 이온을 활성화한다. 그리고 이 이온이 다시 수소이온을 활성화한다. 이 과정이 반복돼 알루미늄의 양이 1~2ppm으로 많아지면 무기염류가 뿌리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무기염류가 부족해진 작물은 단백질을 적절하게 만들어내지 못해 열매가 덜 자라거나 수가 확연히 줄어든다. 알칼리성 토양에서도 마찬가지다. 알칼리성 토양에서는 철이 3가 이온(Fe3+) 형태로 존재해 물에 거의 녹지 않는다. 결국 철분을 흡수하지 못한 식물은 시들어 죽기 쉽다.

그렇다면 작물에게 최적 산성도(pH)는 얼마일까. 식물이 흡수하는 이온은 pH6.5에서 활성도가 가장 높다. 그러므로 토양의 pH도 이 수치에 맞추는 것이 최적이다. 특히 밭 토양은 pH5.8, 논토양은 pH6.8이 적당하다. pH가 기준치보다 낮아지면 알칼리성인 석회가루를 뿌려 pH를 적정 수준까지 높여줘야 한다. 농사꾼은 이 작업을 3~4년 주기로 반복한다.







논토양은 질소의 양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질소가 많으면 쌀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토양의 양분은 작물에 흡수된 뒤 어떤 작용을 할까. 토양의 양분은 뿌리의 삼투압이 토양보다 높을 때 물과 함께 뿌리로 흡수된다. 양분은 식물의 건강뿐 아니라 맛까지 좌우한다.

대표적인 예가 쌀이다. 밥을 했을 때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찰진 쌀이 맛이 좋다. 그런데 질소(N)의 농도가 높은 토양에서 자란 쌀은 맛이 없고 품질도 떨어진다. 질소 성분이 벼에 흡수되면 아미노산으로 바뀌어 결국 단백질의 양을 높이기 때문이다. 농업과학기술원 김이열 박사는 2000년 논 58곳에서 수확한 쌀의 유기물 함량을 조사해 2007년 ‘한국토양비료학회지’에 발표했다. 그는 “밥을 지었을 때 맛있는 쌀일수록 단백질 함량이 낮고 탄수화물인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았다”고 설명했다.

포도도 질소가 많은 땅에서 자라면 맛이 떨어진다. 김승희 박사는 “토양에서 질소를 많이 흡수한 포도나무는 생장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에 열매를 탐스럽게 만드는 데 소홀하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농업과학기술원에서는 논토양 1kg당 유기물 함량이 30g을 넘지 않도록 권장하고 있다. 질소성분이 담긴 비료를 적당량 살포하도록 하는 것. 김이열 박사는 “현재 우리나라 논토양의 유기물 함량은 토양 1kg당 22g 수준”이라며 “아직까지는 토양이 우리 저녁상에 맛있는 쌀밥을 올려주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토양은 자신이 가진 물리적 특성과 화학적 특성을 그대로 작물에게 넘겨준다. 토양은 모든 식물의 ‘안식처’이자 ‘충전소’인 셈이다.
| 글 | 목정민 기자 ㆍloveeach@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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