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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 지키는 식욕 호르몬


이상적인 몸매의 대명사 ‘밀로의 비너스’. 비너스가 2008년 대한민국에 나타난다면 어떨까. 비너스는 키가 204cm이고 허리둘레는 97cm(38인치)인데, 이를 한국 20대 여성 평균 신장인 160cm로 환산하면 허리둘레가 72cm(28인치)나 된다. 삐쩍 마른 패션모델이 넘치는 지금 ‘통통족’으로 분류되기 십상이다.

사실 비너스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이유는 균형 잡힌 몸매에 흐르는 건강미다. 아름다움의 근원이 건강함에 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의 현실을 보자. 우리나라 여대생의 절반은 자신이 뚱뚱하다고

생각하고, 놀랍게도 이 가운데 3%가 저체중이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식욕 패턴을 무시하고 오로지 굶으려고만 한다. 우리 몸 속에 있는 생체시계는 배고플 땐 먹으라고, 배부르면 그만 먹도록 신호를 보낸다. 또 졸리면 자도록 하고 아침이 밝으면 잠을 깨운다. 이 생체시계에 귀 기울이면 우리는 건강한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제 시중에 넘쳐나는 다이어트 방법과 슬리밍 제품보다 내 몸 속 식욕호르몬에 관심을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식욕호르몬의 일변화
아침, 점심, 저녁을 먹기 전 식욕을 촉진하는 그렐린 호르몬의 분비가 급증해 시장기를 느낀다. 음식을 배부르게 먹은 뒤에는 그렐린의 양이 급격히 적어지는 반면 렙틴의 양이 점점 증가해 포만감이 든다. 그러나 새벽 1시에는 식사에 관계 없이 그렐린의 수치가 높아진다. 이때 깨어 있으면 야식의 유혹을 견디기 어렵다.

‘먹어야 산다’는 단순한 논리가 ‘안 먹어야 예뻐진다’는 논리로 바뀐 요즘 체중을 줄이려는 사람은 식욕이 일 때마다 괴롭다. 그러나 원래 식욕의 목적은 생명 유지다.
우리 몸은 몸이 사용할 에너지의 양만큼 음식으로 섭취하도록 진화해왔다. 섭취한 에너지의 양과 소비할 에너지의 양이 같으면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원리다. 하지만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시소’가 한 쪽으로 기울어지면 살이 찌거나 마른다.




몸속에 다이어트 시계 있다
우리가 음식을 먹고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은 생체주기를 따른다. 하루를 주기로 아침엔 잠에서 깨고 밤엔 잠이 오며 하루 세번 ‘배꼽시계’로 배고픔을 안다. 이를 관장하는 ‘생체시계’는 뇌 시상하부의 ‘일주기 시계’다. 또한 눈은 해가 뜨고 지는 과정을 감지해 생체시계를 조정한다. 중추시계와 말초시계가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셈이다.

생체시계는 음식을 적당히 먹도록 제어한다. 잠을 못 자 생체시계가 무너지면 과식을 할 수 있다. 미국 미시간대 성장 센터 줄리 루멩 박사팀은 생체주기가 망가지면 고지방 식품의 섭취가 늘어난다는 연구결과를 2007년 11월 ‘소아과학회지’에 발표했다. 수면시간이 부족한 어린이의 비만비율이 그렇지 않은 어린이의 비만비율보다 높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하루 10~12시간 잠을 잔 아이들 중 6학년 때 비만이 된 경우는 12%였다. 그러나 수면시간이 하루 9시간 이하인 아이들은 22%가 6학년 때 비만이 됐다.

최근에는 역으로 식습관이 생체시계를 망가뜨린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미국 북부에바스톤대 내분비학과 조셉 베스 박사팀은 쥐에게 지방의 양을 45% 늘린 먹이를 줬더니 생체주기가 23.6시간(정상)에서 23.8시간으로 바뀌었다는 연구결과를 2005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이 결과를 인간에게 적용하면, 고지방식을 먹은 사람은 밤에 잠이 들기 힘들 수 있다는 결론을 얻는다.




박자가 맞지 않는 노래는 듣기 괴롭다. 마찬가지로 생체시계가 맞지 않는 몸과 뇌도 괴롭다. 엉망이 된 생체시계는 식욕 과 수면 패턴을 교란시켜 건강한 삶을 방해한다. 날씬하고 싶으면 먼저 자신의 생체시계가 정확한지부터 체크해야 하는 이유다.

식욕은 뇌의 시상하부와 호르몬이 조절한다. 시상하부에는 포만과 배고픔을 느끼는 부위가 있다. 시상하부는 뇌와 말초신경계, 소화기관인 위에서 오는 각종 신호를 종합한다. 음식을 먹기 전엔 혈중 그렐린의 농도가 높아지고 NPY(배고픔을 자극하는 생체분자)의 양이 늘어나 기아 중추가 활성화된다. 배고픔을 느낀다는 말이다. 체온이 떨어지고 신진대사도 저하된다. 그러면서 식욕은 커진다.

음식을 먹어 식욕을 채우고 나면 그렐린의 양이 줄고 렙틴의 양이 늘어난다. 동시에 CART(배부름을 자극하는 생체분자)가 늘어나고 포만중추가 자극된다. 이때 배가 부르다는 느낌을 갖는다. 체온이 올라가고 신진대사도 촉진된다. 몸이 음식을 소화시킬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렐린의 농도변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식사다.
미국 워싱턴대 데이비드 커밍스 박사팀 연구에 따르면 그렐린의 농도는 식사 직전 평상시보다 최고 78% 높아지며, 식사 1시간 뒤엔 최저수준으로 떨어진다.







식욕 조절하는 그렐린과 렙틴의 작용 그렐린과 렙틴은 상호작용하며 식욕을 조절한다. 위에서 분비된 그렐린은 시상하부의 GHS-R을 자극해 식욕을 돋운다(1). 반면 피하지방에서 분비된 렙틴은 시상하부의 OB-R을 자극해 식욕을 잠재운다(2).
식탐의 배후 그렐린
그렐린은 먹는 음식의 양을 늘릴 수도 있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앨리슨 렌 박사팀은 2001년 뷔페식당에서 사람들이 먹은 음식의 양을 조사했는데, 주사로 그렐린을 투여받은 사람은 주사를 안 맞은 사람보다 뷔페음식을 28% 더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를 ‘임상 내분비와 신체대사지’에 발표했다. 하지만 렌 박사는 “몸에서 그렐린의 농도가 무한히 높아지지는 않는다”며 “렙틴이 과식 욕구를 완화하는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그렐린은 발견 과정이 흥미롭다. 1999년 그렐린을 처음 발견한 일본 심혈관연구센터 마사야수 고지마 박사는 그렐린이 성장호르몬인 줄 알았다. 이 때문에 호르몬 이름에 성장을 의미하는 고대유럽어 ghre를 붙였다. 그런데 3년 뒤 고지마 박사는 성장호르몬인 줄로만 알았던 그렐린이 체중도 늘린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때부터 그렐린은 체중증가 호르몬측면이 더욱 부각됐다.

그렐린은 독특하게 위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다. 2002년 커밍스 박사가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식이요법으로 체중을 줄인 환자는 그렐린 농도가 높아지지만 ‘위절제술’을 받은 환자는 그렐린 농도가 77% 낮아졌다. 위에서 그렐린을 내놓는 부위까지 절제됐기 때문이다. 옛날 할머니들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 “밥통이 밥 달란다”고 했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 아닌 셈이다.




비만 극복의 파트너
그렐린은 식욕을 자극하는 ‘몹쓸’ 호르몬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인간을 보호하는 ‘착한’ 호르몬이다. 몸은 체중이 늘어 에너지가 넘친다고 판단하면 그렐린의 분비를 줄여 음식 먹는 양을 줄인다. 반면 식욕이 없거나 체중이 줄 땐 혈중 그렐린 농도를 보통 때 보다 2배나 높여 음식 먹는 양을 늘린다. 몸이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이렇듯 그렐린은 굶주림과 비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즐긴다.

역발상을 하면 그렐린을 비만 극복의 좋은 파트너로 삼을 수 있다. 배가 고프다는 의미는 음식 섭취량이 약간 모자란다는 뜻으로 식단조절에 성공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 방법에 관심을 기울이는데 사실 배고픔과 식욕에 대한 인식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필자가 진료하는 환자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가 약해 식욕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없을까?’‘잘 참다가도 블루베리 치즈케익 한 조각에 무너지는 내가 너무 부끄럽다’는 식이다. 체중을 감량할 때 나타나는 음식갈망은 기존에 먹던 칼로리에 익숙한 대뇌와 위가 연합해 그렐린 분비를 부추기는 현상일 뿐이다. 뇌는 지방 함량이 높고 당도가 높은 음식을 먹을 때 더 행복해진다. 이런 만족감을 한두 번 느낀 뇌는 달고 기름진 음식을 먹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사람은 이 유혹에 쉽게 무너진다.






피하지방의 분해과정 살이 빠지려면 피하지방층의 두께가 얇아지고 피하지방 세포의 크기가 작아져야 한다. 지방분자가 3개의 유리지방산과 글리세롤로 분해되려면 에너지(ATP)가 필요하다. 분해된 글리세롤은 간으로 이동하고 유리지방산은 모세혈관으로 이동해 근육의 에너지원으로 쓰인다.

살을 빼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때 그렐린이 만드는 식욕은 좋은 지표다. 식욕으로 하늘이 빙빙 돌고 배가 고파서 못 견디겠으면 쾌재를 불러라. 체중 조절의 ‘산’ 5부 능선을 넘고 있는 셈이니.

아름다운 몸은 건강한 몸이다. 건강한 몸을 유지하려면 몸 속의 생체시계를 따라야 한다. 이 생체시계가 식욕을 조절하는 그렐린과 렙틴의 균형을 맞춰주기 때문이다. 굶거나 과도한 운동으로 체중을 감량하면 생체시계가 깨져서 몸의 균형이 무너저버릴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배고플 때 먹고 졸릴 때 자는 것이 가장 현명한 다이어트 방법일지도 모른다.

P r o f i l e
박민수 원장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서울대병원과 건국대병원에서 가정의학과 임상강사를 했다. 현재는 유태우의 신건강인센터에서 비만과 스트레스, 건강관리, 내 몸 개혁에 대해 연구를 하며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또한 직접 ‘내 몸 다이어트’를 실천해 3개월만에 7kg을 감량한 경험도 있다.




호르몬 그렐린이 만드는 식욕 유형
인터넷에는 ‘몸짱’연예인들의 식단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이 식단을 이용해 살을 뺐다는 사람은 보기 드물다. 어떤 사람은 매일 야식을 먹는데도 삐쩍 마르고 스트레스를 받는데도 살이 찐다. 이는 사람마다 식욕 유형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식욕 유형은 몸이 습관에 적응한 결과다. 독자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



아침식사형
아침엔 밥맛 없다 vs. 아침을 먹어야 힘이 난다

아침엔 식욕이 없다는 사람이 많다. 반면 아침을 안 먹으면 하루 종일 힘이 없다는 사람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부산대 의대 김형회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침을 먹는 사람은 식사 2시간 전부터 그렐린의 농도가 높아지는 반면, 아침을 안 먹는 사람은 식사 시간이 되도 그렐린 농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아침을 반복적으로 거르는 데 몸이 적응했기 때문이다.

‘2005년 국민건강영양조사’ 에 따르면 20대 성인 10명 중 4명이 아침을 거른다. 그런데 아침을 거르면 신체 발달이 저하될 수 있다. 동국대 오상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아침을 거른 아동은 아침을 챙긴 아동보다 비만이 될 확률이 1.4배나 높다.

아침을 거르는 아이들은 다음 식사 때 과식을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밥맛이 없더라도 아침을 먹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일단 습관을 들이면 식사시간이 다가올 때 그렐린이 증가하고, 식욕도 생길 것이다.



야식형
새벽 1시에 먹는 라면은 꿀맛 vs. 밤엔 물도 먹기 싫어
야식이란 단어에 침이 ‘꼴깍’ 하고 넘어가는 당신은 이미 그렐린에 정복당한 경우다. 야식이 당기는 이유는 새벽 1시쯤 그렐린의 농도가 최고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렐린이 새벽 1시에 많이 분비되는 이유는 성장호르몬과 관계가 깊다. 그렐린은 성장호르몬의 한 종류이므로 여느 성장호르몬처럼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분비량이 증가한다. 그런데 성장호르몬의 분비량은 줄어도 그렐린 분비량은 오히려 증가한다. 만약 자고 싶은 마음이 배고픈 욕구보다 크면 야식을 안 먹겠지만, 반대 상황이라면 어느 순간 라면 한 젓가락을 뜨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물도 먹기 싫어한다. 이들은 그렐린 수치가 높아지기 전 잠을 잔다. 그렐린은 저녁식사를 한 뒤 급격히 낮아졌다가 4~5시간 뒤 다시 높아지기 시작하는데, 그 전에 잠이 들면 야식 욕구가 없다. 또한 그렐린의 분비량이 유독 적은 사람은 심야에도 그렐린의 분비량이 덜 늘어난다. 평소 배고픔을 많이 느낀다면 야식 욕구도 높은 셈이다.



스트레스형
잠 못 자면 살 빠진다 vs. 잠 못 자도 살찐다
일반적으로 잠을 못자면 살이 빠진다. 불안하거나 우울증이 있을 때 잠을 못 자는데, 이때 세로토닌의 양에 변화가 생긴다. 뇌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식욕중추에 영향을 주는 물질이므로 그 분비량이 적어지면 식욕도 떨어진다.

반면 잠도 못 자는데 살이 찐다는 사람들이 있다. 잠을 못 자면 그렐린의 농도가 높아져 식욕이 당긴다. 2008년 미국 피츠버그대 의대 패트릭 스트롤로 교수는 20대 남성 12명을 이틀 동안 4시간만 자게 한 뒤 그 변화를 살폈다. 그 결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검사 기간 내내 군것질거리를 입에서 떼지 않았다. 이들의 혈중 그렐린 수치는 28% 증가했고 렙틴 수치는 평균 18% 감소했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미국 성인 8만 7000명을 대상으로 한 미국건강통계청 연구에서 수면시간이 6시간 미만인 사람 중 33%가 비만이었다. 충분히 잠을 자는 사람의 22%가 비만인 것에 비하면 높은 수치다.



알코올형
술 먹으면 살찌는 유형 vs. 술 먹으면 살 빠지는 유형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술이 위로가 된다. 그러나 술로 ‘위로’를 자주 받으면 살을 감수해야 한다.

2004년 스웨덴 캐롤린스카대 얀 칼리센도르프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술을 마시면 그렐린 수치가 높아지고 렙틴 수치가 감소한다. 그 결과 술을 계속 마시게 되고 안주에도 자꾸 손이 간다. 게다가 술을 마시면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글리코겐을 포도당으로 분해하는 비율도 적어진다. 이때 사람은 배고픔을 더 많이 느낀다. 늦은 회식이 있던 날 새벽에 해장국으로 허기를 달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술을 마시면 살이 빠진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과음을 한 경우인데, 알코올이 영양소의 흡수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은 술을 마신 다음 날 식사를 거르거나 식사를 거르고 술만 마시는 경우가 많아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

| 글 | 박민수 유태우의 신건강인센터 원장 ㆍmspark@unhp.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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