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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단풍의 변신은 무죄

진딧물을 속이기 위한 전략

“오매! 단풍 들것네! / 장광에 골 붉은 감잎 날라와 / 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 보며 / 오매 단풍 들것네. // 추석이 내일모레 기둘리니 / 바람이 자지어서 걱정이다 /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 / 오매 단풍 들것네.” - 김영랑의 ‘오매 단풍 들것네’

한반도가 더워진 것일까. 올해는 추석이 지났지만 아직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다. ‘어머나’란 의미의 ‘오매’, ‘장독대’란 뜻의 ‘장광’. 전남 강진이 고향인 시인 김영랑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추석을 앞둔 시점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어린 시절 남부지방에는 추석쯤 붉게 물든 감나무 잎이 장독대로 날아왔다.

반면 기상청은 설악산 단풍이 이달 20일경 시작돼 다음달 20일경 절정을 이룰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 전체 면적의 20% 가량이 붉게 물들었을 때를 단풍 시작일로 계산한다고 하더라도 시인이 살던 때와 비교하면 올 가을 단풍은 많이 늦은 편이다.

단풍은 하루 최저 기온이 5℃ 아래로 떨어질 때 물들기 시작한다. 기온이 떨어지면 녹색을 띠는 엽록소가 파괴된다. 이때 노란 단풍은 녹색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색상이지만 붉은 단풍은 새롭게 만들어지는 색상이다. 




붉은 단풍은 낮밤의 기온차가 클수록  색상이 곱게 물든다.

옛 조상들은 단풍나무를 집에 심지 않았다. 지조(志操)없이 계절마다 색상을 바꾼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은행나무는 녹색에서 노란색으로 색상이 바뀌어도 사랑을 받았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노란 단풍이 은행나무의 본래 색상인 것을 알았던 것이 아닐까.

노란색과 갈색으로 변하는 나뭇잎에는 카로티노이드이란 색소가 들어있다. 이 색소는 엽록소의 광합성 작용을 돕는데, 엽록소와 달리 어두운 환경에서도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실내에서 키우는 화초는 햇볕이 부족하면 엽록소는 파괴되지만 카로티노이드가 있어 잎이 노랗게 변한다. 햇볕 있는 곳으로 화초를 옮겨달라는 신호다.

이와 달리 붉은 단풍은 안토시아닌이란 색소가 만들어져 생겨난 것이다. 나뭇잎뿐 아니라 열매와 꽃이 붉은 것도 대부분 안토시아닌이 만든 색상이다. 안토시아닌은 낮에 화창하고 밤에 서늘한 날씨가 지속될 때 많이 생겨난다. 같은 사과나무에서 햇빛이 잘 드는 쪽의 사과열매가 그늘진 곳보다 더 붉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붉게 단풍이 드는 나무가 추운 겨울을 앞두고 색소를 만드는 데 에너지를 쓰는 이유가 궁금했다. 노란 단풍은 엽록소가 파괴되면서 생기는 자연스런 과정이지만 붉은 단풍은 별도의 색소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영국 임페리얼대 토마스 되링 교수는 “나뭇잎을 갉아먹는 곤충에게 붉은 색은 덜 매력적이기 때문에 붉은 단풍이 식물의 해충을 물리치기 위한 방어용이다”고 이달 9일 영국왕립학회가 발행하는 ‘왕립학회보B:생물학’지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파랑과 녹색, 노랑, 빨강, 검정 계열의 70가지 색상을 물에 탄 그릇을 놓고 곤충의 반응을 관찰했다. 이 결과 나뭇잎에서 수액을 뽑아먹고 사는 곤충인 진딧물은 빨간색보다 노란색은 6배, 녹색은 3배나 더 많이 몰려들었다.

가을철 열매를 맺기 위해 나무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이때 진딧물 같은 곤충에게 양분을 빼앗긴다면 크나큰 손실이다. 진딧물이 노란색을 탄 물그릇에 많이 몰려든 것도 결실의 계절인 가을의 색, 노란색을 알아차리기 때문이다.

되링 교수에 따르면 진딧물은 붉은 색을 알아보지 못하는 색맹이다. 그들은 여름의 푸른 잎과 가을의 붉은 잎을 구별할 수 없다. 인간에게 아름답게 보이는 붉은 단풍이 진딧물에게는 맛없는 녹색 잎으로 보이는 셈이다. 김영랑의 누이를 놀라게 한 붉은 단풍, 당신의 변신은 무죄다.


서금영 동아사이언스 기자 symbio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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