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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문명을 넘어 광문명으로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 함병승 교수

1947년 반도체 트랜지스터가 발명된 이후 인류는 60여년간 전자문명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전자문명의 총아이자 근본인 컴퓨터가 머지않아 속도한계에 다다른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인텔사에 따르면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인 CPU가 현재 기술로는 2012년이면 최대속도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속도를 높이려면 소자의 크기를 줄여야 하는데 무한정 작아질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힌다. 소자의 크기가 원자크기인 10nm(나노미터, 1nm=10억분의 1m)에 이르면 불확정성원리와 같은 양자효과의 영향을 받아 디지털 정보를 표시하는 0과 1의 구분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전자가 아닌 빛을 사용한 광컴퓨팅 기술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빛의 속도를 느리게 만들다
광컴퓨팅 기술은 1990년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진이 제안한 전자기유도투과(EIT) 방식에서 출발한다. 어떤 물질에 강한 빛을 쏘면 물질의 굴절률 상태가 변한다. 이와 함께 공진하던 다른 약한 빛은 물질을 바로 통과해 버리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이것을 EIT라고 한다. 흥미롭게도 EIT 현상이 일어나면 물질 굴절률의 변화율이 커져 빛의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다. 심지어 빛을 잠시 가둘 수도 있다. 빛을 가두었다 풀었다 하는 기술은 기존의 전자 신호를 대신하는 광신호로 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초고속 광대역 광스위치, 광버퍼메모리 등도 구현할 수 있다.

EIT에 기초해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포드대는 1999년 빛의 속도를 초속 17m/s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냉각기체를 사용했기 때문에 실제 산업에 응용하기 어려웠다. 인하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함병승 교수는 2002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재직 시절 미국 메사추세츠공대(MIT), 텍사스A&M대와의 공동연구에서 고체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초속 45m/s까지 줄이는 데 성공했다. 또한 3㎜ 길이의 고체(희토류 프레스디오뮴(Pr)이 첨가된 이트륨실리케이트(YSO)) 내에 빛을 가두는 데 성공해 산업에 응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 결과는 물리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RL)에 2002년 게재됐으며,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도 소개됐다.


전자기유도투과(EIT) 현상

빛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양자스위칭
함병승 교수는 2000년 EIT를 활용해 빛의 흐름을 스위치처럼 제어할 수 있는 양자스위칭 방식을 세계 최초로 제안했다. 2004년에는 이를 실험적으로 증명해 응용물리분야의 세계적 권위지인 ‘어플라이드 피직스 레터스’(APL)에 발표했다. 기존의 양자스위칭 연구는 미국, 일본, 유럽에서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크기가 큰 반도체증폭기를 사용한 것이어서 펜티엄 초기모델 수준의 컴퓨터를 만들려고 해도 집채만한 크기에 소비전력도 100kW에 달할 정도로 현실성이 떨어졌다.

연구단은 EIT에서 빛을 제어하는 기술을 이용해 반도체증폭기에 비해 크기와 소비전력이 100만분의 1에 불과한 양자스위칭 방식의 광컴퓨터 기술을 개발했다. 속도는 요즘 컴퓨터 CPU보다 100배 이상 빨라 소자크기의 한계를 가진 전자 CPU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광문명을 개척하고 있는 함병승 교수

빛으로 정보 담는 양자메모리
연구단의 또 하나의 성과는 양자메모리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지금까지 양자메모리는 짧은 저장시간 때문에 정보처리에 한계가 있었다. 연구단은 EIT 현상으로 빛을 가두는 시간이 1초에도 못 미치던 것을 수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했다. 양자메모리 저장시간이 늘어나면 정보처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또한 연구단은 대다수 연구그룹과 달리 빛을 균질하지 않은 물질에 통과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균질한 물질을 쓰는 기존의 양자메모리는 한 번에 하나의 정보만 읽고 쓸 수 있었다. 비균질적인 물질을 사용하면서 한 번에 여러 개의 정보를 읽고 쓸 수 있는 초고속 양자메모리가 가능하다. 연구단은 앞으로 정밀한 레이저 기술을 보유한 호주국립대나 스웨덴 룬드대와 협력해 양자메모리 연구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느린빛 연구를 위한 저온장치 및 광학실험장치

2006년 창의연구단에 선정된 이후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은 3년 동안 기초연구에 몰입하면서 광컴퓨팅 기술의 성공 가능성을 타진해 왔다. 이제 연구단은 기초연구를 응용연구로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그러나 2004년 반도체에서 처음으로 느린 빛을 관측한 이래 응용기술이 정체 상태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다양한 반도체 및 광섬유 소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한다. 이와 함께 양자이론분야의 기초연구도 병행할 예정이다. 연구단의 최종 목표는 언제나 동일하다. 전자를 완전히 제거하고 오직 빛을 이용해 소자 크기에 구애받지 않는 광양자 CPU를 구현하는 것과 새로운 원리에 기초한 양자메모리를 현실화하는 것이다.

함병승 교수 약력

1986년 서강대학교 물리학과 이학사
1993년 미국 웨인주립대학교 물리학과 이학석사
1995년 미국 웨인주립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과 공학박사
1996년~1999년 미국 MIT 및 공군연구소 박사후연구원
1999년~2003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선임연구원 및 창의사업단장
2003년~현재 인하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교수 및 창의사업단장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은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은 2006년 4월 ‘유니버설광양자컴퓨팅연구’를 위해 당시 과학기술부가 지정한 창의연구단이다. 전자에 의한 기존 컴퓨터의 한계가 조만간 도래할 것을 대비해 빛만을 사용하는 광양자 CPU 연구를 진행한다. 차세대 정보처리연구의 핵심원리 및 원천기술 연구도 함께 담당한다.

연구단은 현재 박사후연구원 2명, 박사과정 6명으로 구성돼 있다. 함 교수는 이들에게 연구란 결국 혼자 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박사급 연구원들에게 연구자율성을 100% 부여하되 6개월 내에 연구 성과를 보이라고 요청한다. 학생인 경우는 1년을 지켜본다. 능력이 부족할 수 있지만 발전 가능성에 더욱 주목한다. 연구단에서 레이저를 담당하고 있는 박사과정 한준성 씨는 함 교수를 능가하는 레이저 전문가가 됐다. 자율과 홀로서기 연습이 연구원을 자라게 한다는 지론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세계적인 인명사전인 ‘후즈후 인 더 월드’는 2003년 이후 지금까지 함 교수를 21세기 광문명을 개척할 과학자로 등재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단은 두뇌의 정보처리 속도와 비슷한 수준의 정보처리기술을 목표로 연구하고 있다. 60여년전 트랜지스터가 이뤄낸 전자문명이 장차 광양자 CPU가 이끄는 광문명으로 대체될 날이 머지 않았다.

<출처: 창의세상>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ㆍilju2@donga.com



광양자정보처리연구단은 빛을 이용한 광컴퓨팅 기술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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