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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50주년 하이라이트 10

밴앨런대 발견한 미국 최초 인공위성


[ 미국 최초 인공위성 익스플로러에서 화성탐사로봇 피닉스까지 ]

NASA 50년은 우주를 향한 도전의 역사다.
미국 최초 인공위성 익스플로러부터 최근 화성에서 물을 발견한 탐사로봇 피닉스까지,
우주개발 역사에 큰 획을 그은 NASA의 10대 사건을 만나보자.

[ 밴앨런대 발견한 미국 최초 인공위성 ]

미국과 구소련의 냉전이 한창이던 1957년 10월 4일.
구소련은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지구 궤도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충격에 빠진 미국은 그동안 개발해 온 해군의 뱅가드 로켓을 같은 해 12월 서둘러 발사했다.
하지만 로켓은 발사대에서 폭발했다.



1958년 미국의 첫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하는 데 성공한 직후, 기자회견장에서 로켓 모형을 들어 보이고 있는 세 사람. 왼쪽부터 윌리엄 피커링 NASA 국장, 제임스 밴 앨런, 베르너 폰 브라운.

자존심을 구긴 미국 정부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V2 로켓을 개발해 연합국을 긴장시켰던 독일인 베르너 폰 브라운 박사였다.
그는 독일이 전쟁에서 패하기 직전 미국으로 망명한 ‘과거의 적’이었다.

폰 브라운 박사는 3개월 만에 ‘주피터 C’ 로켓을 만들었고, 1958년 1월 31일 미국 최초 인공위성 ‘익스플로러 1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데 공을 세웠다.
익스플로러 1호는 단순히 전파 신호만 보냈던 스푸트니크 1호와 달리 지구 자기장에 붙잡힌 대전 입자들의 거대한 띠인 ‘밴앨런대’를 발견해 지구과학연구에도 공헌을 했다.




익스플로러 1호 발사 11일 전인 1958년 1월 20일. 한 엔지니어가 익스플로러 1호 위성체를 로켓 상단에 결합하고 있다.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진 미국을 구하라, ‘머큐리 7’


NASA는 공식적으로 출범한 지 일주일 만인 1958년 10월 7일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인간이 우주에 갔다가 지구 궤도를 돌고 안전하게 귀환할 수 있는지 증명하겠다는 것.

NASA는 이듬해 4월 1일 공군 조종사 110명 가운데 7명의 우주인 후보를 뽑았다.
‘머큐리 7’로 이름 붙여진 이들은 ‘스푸트니크 쇼크’에 빠진 미국의 자존심을 회복시켜줄 영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미국은 또 다시 ‘최초’ 수식어를 뺐기고 말았다.
구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 12일 보스토크 우주선을 타고 1시간 48분 동안 지구궤도를 돈 뒤 지구로 돌아온 것. NASA는 23일 뒤인 5월 5일 머큐리 7 가운데 한 사람인 앨런 셰퍼드를 ‘프리덤 7’ 우주선에 태워 15분 동안 우주에 머물게 하는 데 성공했다.


1961년 5월 5일 ‘머큐리 7’ 가운데 한 사람인 앨런 셰퍼드는 프리덤 7호를 타고 우주에 간 첫 미국인이 됐다.

인류의 커다란 도약, 달 착륙
“휴스턴 나와라. 고요의 바다에 이글이 착륙했다. 이제 사다리를 타고 아래로 내려갈 것이다. 개인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커다란 도약이다.”
1969년 7월 21일,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을 내딛는 장면을 텔레비전 생중계로 본 전 세계 6억 명이 넘는 사람들은 흥분에 휩싸였다. 1961년 5월 25일 당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0년 안에 사람을 달에 착륙시킨 뒤 지구로 안전하게 귀환시킬 것이라고 한 약속이 지켜진 셈이었다.

우주경쟁에서 수차례 구소련에 밀린 미국이 ‘배수의 진’을 치고 덤벼든 달 탐사 과정은 쉽지만은 않았다.
1967년 초 아폴로 1호 캡슐에서 불이 나 훈련 받던 우주인 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났지만, 미국은 약 40만 명의 인력과 국가 예산의 4.5%를 투입하며 아폴로 계획을 이어갔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다녀온 뒤 1972년까지 5대의 아폴로 우주선을 타고 12명이 달을 밟았다.
그 뒤 지금까지 달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국 최초 우주인 후보 7명. ‘머큐리 7’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이들 가운데, 6명은 머큐리 계획으로, 나머지 1명은 아폴로-소유스 계획으로 우주에 다녀왔다



달 착륙선 이글호 옆에서 포즈를 취한 버즈 올드린.
달에 첫 발을 디딘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지만, 그의 옷에 카메라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사진은 한 장도 못 찍었다.
냉전의 두 나라, 우주에서 만나다
1975년 7월 17일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과 구소련의 소유스 우주선을 잇는 범용도킹모듈(UDA)의 문이 열리자 두 사람이 만나 악수를 나눴다. 한 사람은 아폴로 우주선의 선장 토머스 스태포드였고, 또 한 사람은 소유스 우주선의 선장 알렉세이 레오노프였다.

달 착륙 경쟁에서 체력을 소진한 미국과 구소련은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아폴로-소유스 프로젝트다. 두 나라가 각각 달 탐사에 사용했던 우주선을 지구 궤도에서 결합시킨 뒤 공동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아폴로-소유스 프로젝트는 냉전 중이던 두 나라가 우주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다는 상징적 의미가 컸지만, 두 나라는 우주선 랑데부 기술을 발전시키는 큰 경험을 쌓았다. 도킹을 하기 위해 두 나라는 우주선의 생명유지장치의 표준을 만들었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우주인들은 2년 동안 서로의 언어를 익혔다.

미국 우주인 3명과 러시아 우주인 2명은 결합된 아폴로-소유스 우주선에서 함께 이틀을 보내며 ‘우주협력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하지만 두 나라 우주인은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와 미국 우주왕복선이 도킹한 1994년에야 우주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1975년 아폴로-소유스 프로젝트로 우주에서 처음 만난 미국과 러시아의 우주인들
보이저가 보낸 ‘창백한 푸른 점’
지구 궤도와 달을 정복한 NASA는 태양계로 눈을 돌렸다. NASA는 1976년~1980년에 태양계 행성 가운데 화성의 바깥쪽을 도는 4개의 외행성이 비스듬한 일직선상에 놓이는 동안 탐사선을 보내는 계획을 세웠다.

1977년 여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1979년과 1981년 목성과 토성을 차례로 지난 뒤 태양계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반면 보이저 2호는 목성과 토성뿐만 아니라 1986년과 1989년 천왕성과 해왕성을 차례로 지나며 수많은 사진을 찍어 지구로 전송했다. 1990년 2월 14일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약 60억 km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 사진을 보냈다. 태양계를 돌아보며 찍은 사진에는 지구가 ‘창백한 푸른 점’으로 찍혀 있었다.

현재 두 우주선은 태양이 방출하는 방사선 입자인 태양풍이 도달하는 태양계 끝부분을 여행하며 약한 전파 신호를 보내고 있다.


보이저 호에는 저명한 우주과학자 칼 세이건의 제안으로 지구의 소리와 영상을 담은 레코드 판이 실렸다. 사진은 레코드 판의 덮개로 재생 방법이 그림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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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A 역사상 최악의 참사
1981년 4월 12일 최초 우주왕복선

컬럼비아가 날아올랐다.
붉은 색의 커다란 연료통 양쪽에 고체로켓 2개를 붙인 뒤, 그 위에 비행기 모양을 한 왕복선을 얹어 발사했다.
우주왕복선의 공식 명칭은 우주수송시스템(STS). 5~7명의 승무원과 23t의 화물을 동시에 우주로 실어 나른다.

NASA는 한 번밖에 사용할 수 없는 기존 로켓 대신, 재사용이 가능한 우주왕복선을 개발해 발사비용을 줄이려 했지만 실제 비용은 거의 줄지 않았다. 대신 우주왕복선은 기존 로켓보다 천천히 지구궤도에 오르기 때문에, 전투기조종사가 아닌 과학자도 쉽게 탈 수 있고, 허블우주망원경 같은 크고 약한 구조물을 지구궤도에 안전하게 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우주왕복선은 곧 NASA의 상징이 됐지만, 큰 비극을 낳기도 했다.
1986년 1월 28일 두 개의 고체 로켓 부스터 연결부위가 새는 바람에 챌린저가 이륙한 지 1분 13초 만에 공중 폭발했다. 또 2003년 2월 1일 컬럼비아가 대기권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또다시 폭발했다.

현재 NASA는 아틀란티스와 디스커버리, 엔데버 3대의 우주왕복선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2010년까지 모두 퇴역시킬 예정이다.







1 NASA 50년 가운데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 폭발사고. 2 현재 NASA는 우주왕복선 3대를 운영하고 있다.


우주를 바라보는 눈, 허블우주망원경
1990년 4월 24일 NASA는 우주를 바라보는 새 ‘눈’을 얻었다. 약 600km 상공에서 96분마다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구경 2.4m짜리 허블우주망원경을 발사했기 때문. 그러나 우주왕복선 엔데버에 실려 우주에 간 허블우주망원경은 반사경 광축이 틀어지는 문제가 생겨 1993년 수리를 받고서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이 지난 18년 동안 지구를 10만 바퀴 이상 돌며 찍은 사진은 75만 장이 넘는다.
과학자들이 허블우주망원경의 자료로 발표한 논문은 4000편 이상이다.
1994년 슈메이커-레비 혜성이 목성과 충돌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보여줬고,
우주의 나이가 137억 살이라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기도 했다.

당초 수명이 15년이었던 허블우주망원경은 우주왕복선을 타고 간 우주인이 우주유영을 하며 수리하는 과정을 4번이나 거치며 수명을 연장해왔다.
2009년 2월, 5번째이자 마지막 수리를 받으면 차세대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발사되는 2013년 까지 임무를 계속할 전망이다.


지난 18년 동안 75만 장이 넘는 우주 사진을 찍어 지구로 보낸 허블우주망원경.


국제 우주협력의 상징
NASA는 1975~1976년에 지구궤도에 인간이 상주하는 실험실인 스카이랩을 운영한 뒤 1980년대 더 큰 규모의 우주정거장 ‘프리덤’을 세울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예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자국의 두 번째 우주정거장 ‘미르2’를 짓고 있던 러시아와 손잡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마침 우주개발에 관심을 보이던 유럽연합 11개 나라와 일본, 캐나다, 브라질이 이 계획에 동참하며 1998년 21세기 우주기술의 결정체이자 세계우주협력의 상징물인 국제우주정거장(ISS)이 탄생했다.

2000년 12월 2일 미국 우주인 1명, 러시아 우주인 2명이 러시아의 소유스 우주선을 타고 처음 ISS를 방문했다. 그 뒤 지금까지 16개 나라 164명이 ISS를 방문했다. 우리나라 이소연 박사가 2008년 4월 10일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ISS에 가서 18가지 과학실험을 하고 돌아왔다.


NASA의 한 과학자가 화성탐사로봇 피닉스의 ‘로봇손’을 점검하고 있다. 피닉스는 지난 7월 로봇손으로 화성의 땅을 파 물을 발견했다.


음속의 10배로 나는 비행기 X-43A


2004년 12월 16일 지구에서 가장 빠른 공기흡입식 엔진 비행기 기록이 갱신됐다. 1967년 X-15가 작성한 음속의 6.7배 기록을 NASA의 무인 항공기 X-43A가 음속의 9.6배에 이르는 속도를 내며 가볍게 추월한 것. 인천~뉴욕을 한 시간 만에 주파할 수 있는 속도다.

NASA는 1996년 극초음속 실험기 개발 계획인 ‘X-프로젝트’를 시작했다. X-43A는 X-프로젝트의 결과물이다. 기존 로켓 엔진은 연료를 태울 산화제를 함께 실어 무겁지만, 스크램제트엔진은 공기 중의 산소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행체의 무게를 줄일 수 있다. NASA는 스크램제트엔진을 이용해 인공위성을 지구궤도에 올리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NASA의 항공기술은 우주기술에 맞닿아 있다. 1959년 음속의 3배로 나는 비행기 X-15를 개발한 NASA는 10년 동안 X-15를 200번 가까이 비행시키며 초음속 동역학과 비행기 구조에 대한 지식을 축적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아폴로 우주선이나 우주왕복선 동체를 설계했다.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은 X-15의 조종사였다.



2004년 지구에서 가장 빠른 공기흡입식 엔진 비행기 기록을 세운 NASA의 무인기 X-43A. 음속의 약 10배로 날았다.


화성에서 생명체 증거 찾는 탐사로봇
2008년 7월 31일,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피닉스팀 윌리엄 보인턴 박사는 기자회견에서 화성에서 물을 찾았다고 공식 발표했다. 처음으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서 물이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찾은 주역은 탐사로봇 ‘피닉스’다. 피닉스는 2008년 5월 25일 화성 북위 68° ‘바스티타스 보레알리스’ 지역에 착륙한 뒤 10월 현재까지 땅을 파고 토양을 분석하는 임무를 계속하고 있다. 피닉스는 로봇손으로 채취한 화성의 토양을 분석기에 담아 가열한 뒤, 그 안에서 물 분자를 찾아냈다.

화성은 NASA 탐사로봇의 활약이 두드러진 곳이다. 피닉스 이전에도 화성에 성공적으로 착륙한 선배 탐사로봇이 5대나 있다. 1975년 화성에 처음 발을 디뎠던 ‘바이킹 1, 2호’를 시작으로 1996년에 ‘마스 패스파인더’가, 그리고 2003년에는 쌍둥이 탐사로봇 ‘스피릿’과 ‘오퍼튜니티’가 나란히 화성에 착륙했다. 2010년에는 대형 정밀 탐사로봇 ‘마스 사이언스 래보러토리’(MSL)가 피닉스의 뒤를 이을 예정이다.
NASA는 이들 로봇들의 탐사로 얻어진 연구결과를 토대로 2037년까지 화성에 사람을 보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 글 | 안형준 기자 ㆍbutnow@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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