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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 흔적 찾아 장보고號 출항

미국서 남미 거쳐 태평양 건너는 411일간 대장정


지난 6월 필자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하나였다.
“권 박사 미쳤어?” 쉰을 바라보는 나이에 20년간 몸 담아온 연구원을 떠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한쪽에선 “용기 있는 도전”이라며 격려하는 이들도 있었다.





30년 전 꿈 찾아

 

찰스 다윈. 이 이름에는 아련한 향수가 배어 있다. 사실 이번 항해는 거슬러 올라가면 어린 시절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를 읽으면서 시작됐다. 책을 읽는 내내 어린 가슴에는 먼 바다를 향한 동경이 싹텄고, 마치 과학자라도 된 듯 ‘과연 그럴까?’라는 반문을 거듭하며 한 자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꼼꼼히 읽었다. 비글호를 타고 항해하는 상상을 할 때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대학 시절 요트부에 가입해 요트 운전을 배운 일도 단순한 취미용은 아니었다. 당시 요트는 평범한 대학생 신분으로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사치품이었기 때문이다. 또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을 딴 일도 어쩌면 언젠가는 이룰 항해의 꿈을 위한 준비과정 중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411일간의 대장정을 떠나기 전 권영인 박사(왼쪽)가 후배 강동균 씨와 함께 동아일보와 동아사이언스 깃발을 흔들며 무사항해를 다짐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는 권 박사의 탐사를 후원한다.

1988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입사하면서 그 꿈은 잠시 잊힌 듯 했다. 하지만 연구원에서 석유를 탐사하기 위해 몇 차례 항해를 하면서 항해를 향한 열정은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2005년 ‘불타는 얼음’으로 불리는 해저자원인 가스하이드레이트를 찾아 동해를 샅샅이 뒤질 때는 두세 달씩 배 위에서 생활하기 일쑤였다.

2007년 마침내 국내 최초로 망망대해인 동해 2000m 아래에서 지름 몇 m에 불과한 가스하이드레이트 기둥을 찾아내자 연구자로서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볼 만큼 짜릿함을 느꼈다. 이 성과로 필자의 연구팀은 많은 연구비와 안정적인 미래를 보장받았다.

하지만 원 없이 연구했다는 생각 때문일까. 이제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좋은 직장을 두고 왜 떠나냐”며 팔을 붙잡던 사람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한다. 배 위에서 생활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다. 지루함과 멀미로 인한 두통, 식욕부진까지 다시는 바다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만큼 고통스럽다.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아름답지만 바다 위에서 느끼는 바다는 지루함과 거친 파도뿐이다.

아마 필자도 항해에 미치도록 열정을 갖지 않았다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터다. 하지만 새로운 세계를 밟아본다는 그 설렘을 알기에 지난해 초 드디어 필자는 다윈의 발자취를 따라 항해할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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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일간 대장정 시작


우선 몸을 실을 배부터 준비했다. 선박 제조업체인 미국의 퍼포먼스 크루징에 소형 돛단배를 주문했다. 다윈이 탔던 비글호는 235t 규모의 범선이었기 때문에 수십 명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마땅한 후원자가 없어 살던 집을 저당 잡히고 그간 모은 사재(私財)까지 턴 마당에 비글호처럼 ‘호화로운’ 항해를 꾸릴 순 없었다.

돛단배 규모를 약 4t으로 줄였다. 동료 1명과 함께 생활하기엔 넉넉한 공간이다. 일부 후원을 약속한 장보고기념사업회에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돛단배에 ‘장보고’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보고호는 선체가 2개인 쌍동선이다. 쌍동선의 장점은 흘수(배가 물에 잠기는 깊이)가 낮아 수심이 얕은 해안가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산호를 관찰하기에도 유리하다.

항로는 미국 동부 아나폴리스 항에서 출발해 카리브 해와 남미 동부 해안을 돌아 태평양을 건너 전남 여수항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계획했다. 항해 거리는 지구 둘레보다 긴 4만 3990km, 예상 항해시간은 411일 18시간이다. 장보고호가 평균속력 2.6노트(1노트는 1시간에 1해리, 즉 1852m를 움직이는 속력)로 움직인다고 가정해 계산했다.





사실 장보고호가 돛을 달고 순풍을 받으면 최대 15노트까지, 엔진을 사용하면 여기에 5노트가량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지만 항해 도중 수시로 과학탐사를 위해 배를 멈춰야 하고 필요한 물품을 공급받기 위해 육지에 머물러야 하는 사정을 감안했다.
비록 장보고호가 규모는 작지만 탐사에서는 비글호에 뒤지지 않는다. 바람으로 항해한다는 점에서는 비글호와 같지만 장보고호는 자체 엔진을 갖추고 있어 해안에 접근하기가 더 유리하다.

비글호에는 없었던 과학 장비들도 여럿 갖췄다. 항해에 필요한 위성항법장치(GPS)와 레이더, 수심계는 물론 생물을 관찰할 현미경, 해수의 화학 성분(염도, 수온, 전도도, pH, 용존산소)을 측정할 센서, 퇴적물을 채취할 핸드 코어, 주변 해역의 가스하이드레이트 매장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해수 중 메탄(CH4) 함량 측정 장비, 그리고 지구 온실효과를 야기하는 해수 및 대기 중 이산화탄소(CO2) 측정 장비가 장보고호에 실렸다.

다윈은 비글호로 항해하며 진화라는 주제를 연구했지만 필자는 이 장비들로 환경과 자원 연구에 주력할 계획이다. 비글호 항로를 따라 해양 환경과 광물 자원, 연안의 주요 동식물을 관찰해 현지의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 문제를 추적할 생각이다.




지질과 환경 문제 연구
지난 7월 12일 출항 준비를 위해 미국 아나폴리스에 도착한 지도 벌써 세 달이 다 돼간다. 아나폴리스에 도착해 출항하기 전까지 머물 숙소를 구한 뒤 가장 먼저 장보고호를 제작 중인 퍼포먼스 크루징을 찾았다. 이것저것 확인할 사항이 많았다. 탐사 장비 외에 구명뗏목, 무전기, 발전기, 엔진 예비부품, 비상조난신호기, 보조 닻, 보조 식수탱크, 보조 연료탱크, 레이더 반사기 같은 작은 부품들을 장보고호에 실었다.

출항 전 장보고호에 실릴 과학 장비를 테스트하는 일도 중요했다. 실제로 이산화탄소 측정 장비를 점검하기 위해 아나폴리스 선박 정박지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했더니 400vppm(volume parts per million, 400vppm은 입자 100만 개 중 400개가 이산화탄소라는 뜻)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는 일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387vppm)보다 높은 수치인데, 주변에 유기물이 풍부한 습지가 있고 각종 선박이 정박해 있어 특별한 오염 지역이 아니더라도 높게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 다행히도 장보고호는 주로 바람을 동력원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화석연료 사용을 줄일 뿐 아니라 이산화탄소 측정 오차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권 박사를 태우고 태평양을 건널 장보고호. 길이 10.5m, 높이 14.02m인 4t짜리 돛단배다. 선체 2개를 연결해 갑판이 넓어 파도에 안전하다.

머릿속에만 있던 항해 경로에 대한 노하우를 얻기 위해 현지 전문가들도 만났다. 복잡한 운하 구조도 파악하고 허리케인 같은 기상 여건에도 대처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8~9월에는 매주 열리는 항해 세미나에서 남아메리카 탐사에 필요한 다양한 정보도 얻었다.

10월 2일 현재 장보고호 출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장보고호는 거의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마지막 마무리 작업에 있다. 수십 년을 꿈꿔온 항해에 첫 발을 내디딜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몸이 떨려온다. 14개월 뒤 한국 땅을 무사히 밟을 그 날을 기약하며 파이팅을 외쳐본다.

편집자 주
2009년은 찰스 다윈 탄생 200주년이자 그의 유명한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론이 담긴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입니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원 출신인 권영인 박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직접 주문제작한 ‘장보고호’를 타고 다윈의 비글호 항로를 따라 미국 동부의 아나폴리스 항구를 떠나 남아메리카 대륙을 거쳐 태평양을 건너는 411일간 항해에 나섭니다. 과학동아는 이번 달부터 현장감 넘치는 권 박사의 항해기를 연재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권 박사는 왜?


권영인 박사가 다윈의 발자취를 따라 험난한 항해를 결심한 이유는 뭘까?
10월 9일 출항 직전 권 박사가 e메일로 그에 대한 답을 보내왔다.

1. 권영인은 어떤 사람?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회사원 스타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자세로 인생을 살고 있다.

2. 장보고호에 같이 탈 동료는 누구?
원래 장보고호는 김현곤 선장이 움직일 예정이었다.
김 선장은 태평양을 횡단한 경험이 있어 내가 탐사에 전념하려면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인사정으로 이번 탐사에는 동행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장보고호는 내가 직접 키를 잡아야 한다.
같이 항해하는 강동균 씨는 지질학을 공부한 대학 후배로 현재 개인 사업가다. 남해안을 종주한 경험이 있고 요트대회에서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3. 사재(私財)를 털어서까지 탐사를 계획한 이유는?
평생 꿈꿔온 의미 있는 일은 돈보다도 더 중요하다. 지구온난화나 자원 고갈에 대해 말은 많지만 막상 선진국에서도 이와 관련된 실질적인 탐사나 연구비 지원은 미흡한 형편이다. 이번 탐사에서 사재보다 더 중요한 환경과 자원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

4. 배 위에서 생활 중 가장 힘든 부분 3가지를 꼽으라면?
배 멀미, 수면 부족, 그리고 외로움.

5. 탐사에서 어떤 결과를 얻고 싶은가?
다윈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기록한 내용을 현장에서 눈으로 확인하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다. 연구자로서는 1년 남짓한 짧은 기간에 전 지구적 관찰로 환경과 자원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6일차 무사항해 앵커링 정박 좌표 36도 32점 630 076도 00점 553’. 권 박사는 지난 10월 15일(한국시각) 휴대전화 메시지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왔다. 사진은 출항 직전 장보고호 앞에 선 권 박사.

권영인 박사 >

연세대 지질학과를 졸업한 뒤 동대학원에서 지질학으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오레곤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다. 1988년부터 20년간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재직했다. 2007년 국내 최초로 동해에서 가스하이드레이트를 발견해 자원탐사전문가로 이름을 알렸다. 아마추어 무선사 자격증과 해기사 면허를 갖고 있다

 

 




| 글 | 아나폴리스=권영인 자원탐사전문가ㆍ kwon4966@hotmai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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