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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또다른 표현, 그림

희로애락 고스란히…불안-우울증 줄이는 미술치료


《“화원이 그리는 것은 자신의 꿈과 욕망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일 것입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나온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대사다.

드라마는 여자로 살고 싶은 신윤복의 꿈과 욕망이 ‘미인도’라는 작품 속의 고혹적인 여성으로 표현됐다고 해석했다.

신윤복이 남장여자라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든 설정이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표현함으로써 스트레스나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일반인도 그림을 통해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응용하려는 시도가 미술치료다. 》





미술치료 불안-우울증 줄이는데 효과


○ 현대미술로 보는 작가의 내면



10월 2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이색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현대 미술작품이 등장했다. 미술평론가와 정신의학자들은 이들 작품에 대한 ‘예술성’이 아니라 작가 내면의 정신적 배경을 해석했다.

화가 민경숙 씨의 작품 ‘1994년 4월에서 5월’. 중성적 이미지의 한 사람이 슬픈 표정으로 볼록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본다. 그런데 거울 속 심장 부분부터 여러 갈래로 금이 가 있다.

경기대 미술경영학전공 박영택 교수는 “화가가 그림을 그릴 당시 심적 고통을 겪은 것으로 안다”며 “자신의 심정을 깨진 볼록거울로 표현했을 것”이라고 했다.

조각가 천성명 씨의 작품 ‘그림자를 삼키다’도 마찬가지. 작품 속의 남자는 작은 인형을 안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둘이 닮았다.

천 씨는 젊어서부터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다른 사람 앞에 나서길 꺼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고 한다. 박 교수는 “인형은 작가가 위축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작품을 연구하는 정신의학자인 경북대 의대 이죽내 교수는 “예술가는 편안할 때보다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면서 이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며 “이것이 예술가 특유의 창의성으로 발휘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가 민경숙 씨의 ‘1994년 4월에서 5월’. 깨진 볼록거울에 비친 사람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이다. 전문가들은 거울의 금과 슬픈 표정은 화가 자신이 받은 심적 고통을 뜻한다고 분석했다.


그림으로 마음속 깊은 고민 나타내


예술가는 결국 말로 표현하지 못한 속마음을 작품을 통해 나타내면서 안정을 얻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를 일반인으로 확대해 적용하려는 시도가 바로 미술치료다.

포천중문의대 임상미술치료전공 김선현 교수팀은 유방암 수술 환자 22명에게 6주에 걸쳐 자화상을 그리게 하면서 설문조사(HAD)를 실시했다. HAD는 자신의 감정 상태를 묻는 14개의 문항에 대해 수치로 답변하는 방식으로 주로 병원에서 우울이나 불안 정도를 측정하는 데 쓰인다. 수치가 클수록 우울이나 불안 정도가 심하다는 뜻이다.

평소 환자들의 평균 우울 수치는 4.27. 자화상을 그린 6주 뒤엔 2.45로 43% 낮아졌다. 불안 수치도 평소의 평균 5.77에서 6주 뒤 3.72로 36% 줄었다.

김 교수는 “처음엔 혼자 있는 그림을 그리다 점점 가족 등 주변 사람을 함께 그렸으며, 분위기도 경직된 자세에서 화목한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결과는 ‘대한임상미술치료학연구’ 9월호에 실렸다.






사진

 



미술치료 과학적 검증 계속돼야


미술이 인지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김 교수팀은 시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이 손상돼 색과 형태를 거의 구분하지 못하는 60세 뇌중풍(뇌졸중) 환자에게 10주 동안 주어진 그림을 따라 그리게 했다.

그 결과 연구팀은 자기 얼굴 그리기나 숨은 그림 찾기가 가능할 정도가 됐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미술치료협회저널’ 11월 3일자에 소개됐다.

김 교수는 “미술치료를 함께 진행하면 의학적 치료의 효과를 높이거나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말했다.

미술치료 연구는 아직 초기단계다. 속마음을 표현하면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의 치료효과는 과학적으로 정확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여전히 많다







사진

 



미술치료란…:
미술작품을 창작하는 활동을 통해 마음의 고통이나 정서 불안을 진단하거나 해소하도록 돕는 심리치료법이다. 19세기 유럽에서 정신질환자나 노인들의 그림을 정신질환 진단의 보조도구로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미술치료라는 용어는 1961년 미국의 ‘미술치료학술지’ 창간호에서 편집자인 미국 작가 엘리노 울만이 처음 사용했다. 한국에 미술치료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건 10여 년 전. 국내에선 아직 의학적 치료의 보조요법으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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