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 연구소

척척박사 연구소과학이야기제목별로 보기해설이 있는 과학

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도시를 통째로 옮겨라


바람 불 때마다 흩날리던 희뿌연 먼지도, 공장 굴뚝에서 나오던 연기도, 도시 곳곳에 넘쳐나던 쓰레기도 사라졌다.
하늘에서 내려온 빗물은 나무뿌리처럼 지하세계에 뻗어 있는 은백색 파이프를 타고 흐르며 도시를 비옥하게 만드는 ‘생명수’(生命水)로 변한다.
사람들은 분해해서 다시 조립할 수 있는 집에 살며 화장실에서 사용한 물을 정수해 마시고 폐플라스틱을 태워 만든 전기로 TV를 본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 ‘세미라미스’(가상의 도시, 기원전 500년경 존재한 고대도시 신(新) 바빌론의 공중정원 ‘세미라미스’를 따라 붙인 이름)에서는 건축폐기물, 빗물이나 하수돗물, 폐종이와 폐플라스틱이 도시를 움직이는 힘이 된다.
신 바빌론의 세미라미스가 사막을 가로질러 유프라테스 강에서 끌어온 물을 이용했듯 2020년의 세미라미스도 폐기물 배출량을 최소로 줄이기 위해 재활용(Recycle), 재사용(Reuse), 감축(Reduce), 즉 ‘3R’을 목표로 설계될 것이다




건물을 분해해서 다시 조립한다


세미라미스에는 용산 재건축 참사처럼 안타까운 목숨을 잃는 아픔이나 오랜 가뭄으로 물이 부족해 고생한 강원도 태백시 주민들의 고통도 없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로 가는 가스관을 막아 발생한 가스분쟁처럼 에너지를 무기로 삼아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일도 없다.

정부가 최근 미래전략으로 내놓은 ‘저탄소 녹색성장’ 계획 가운데 ‘폐기물 에너지화’ 산업은 세미라미스처럼 폐기물 발생량을 0%로 줄이는 도시를 목표로 한다. 미래의 친환경도시는 3R을 기반으로 한 리사이클링시티가 될 것이다.
2020년 떠오를 ‘천공(天空)의 도시’ 세미라미스에 미리 올라타 보자. 폐기물을 활용해 도시를 움직이는 놀라운 기술을 만나볼 수 있을 테니.

지난 1월 20일 서울 용산 재개발 사업에 반대 시위를 하던 철거민 5명과 이를 진압하던 특공대원 1명이 화재로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분노와 정부의 무력진압이 충돌했기 때문이다. 재개발이 결정되면 모든 건물을 부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방식이 참사를 불렀다. 이런 방식으로 건물이 철거되면 나오는 건축폐기물도 엄청나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 ‘세미라미스’에서 도시 재개발은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 눈앞의 건물을 통째로 수십km 떨어진 곳으로 옮긴 뒤 반나절 만에 다시 짓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비밀은 바로 집을 지었다가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주택에 있다.







레고블록처럼 조립하는 주택





‘기이이~잉’, 세발집게 모양의 로봇 팔이 굉음을 내며 직육면체의 대형 구조물을 들어 트럭에 싣는다.
그 뒤로 크기와 형태가 조금씩 다른 구조물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얼핏 작업장 모습만 봐선 대형컨테이너를 하역하는 부두가 떠오른다.

이곳은 어딜까.
일렬로 늘어선 구조물 속에서 간간이 화장실용 변기와 세면대가 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공장 한쪽에서는 뼈대만 있는 직육면체의 철골 구조물에 네모난 창문이 달린 벽과 바닥판을 붙이는 모습도 보인다.
공장 한쪽 벽면에 붙은 ‘3R(Recycle, Reuse, Reduce)을 달성하자’란 문구가 인상적이다.
그 밑으로 ‘세미라미스 유닛모듈라 주택 공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란 글귀가 보인다.

‘뚝딱뚝딱! 쿵쿵!’ 가상 도시의 시장이 돼서 도시를 건설하는 게임 ‘심시티’에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눈 깜짝할 사이에 집 한 채가 건설된다. 그뿐 아니라 집을 통째로 들어서 원하는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에서 사람들은 심시티에 나오는 집과 비슷한 유닛모듈라 주택에 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유닛모듈라 주택은 지었다가 부술 때 발생하는 폐기물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주택이다.




유닛모듈라 주택은 현장에서 직접 시공하는 기존방식과 달리 공장에서 직육면체 형태의 유닛을 여러 개 만든 뒤 건물이 들어설 곳에 옮겨 와 조립하는 방식이다.
단열재나 방음벽과 같은 내장재, 전기배선, 기계설비도 모두 공장에서 각 유닛을 만드는 과정에서 설치된다.
마치 레고블록을 조립해 건물을 만드는 것과 비슷하다.
예를 들어 안방, 거실, 작은방, 욕실은 모두 개별적인 유닛으로 공장에서 생산되는데,
이렇게 완성된 유닛을 결합하면 단독주택뿐 아니라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도 지을 수 있다.

유닛모듈라 주택이 폐기물 배출량 ‘제로’에 도전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건축자재와 설계의 표준화로 자원 재사용률을 높이고 발생하는 폐기물을 줄이기 때문이다.
자재와 설계의 표준화가 이뤄지면 모든 주택에 같은 규격, 강도, 품질의 자재를 사용하기 때문에 자재의 재사용률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자재를 재가공하지 않고 현장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어 발생하는 폐기물량이 줄어든다.

2020년 지능형 로봇이 주택의 시공과 해체를 담당한다면 더 쉽고 빠르게 건물을 지을 수 있다.
자재와 설계의 표준화 덕분에 로봇의 접근성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건물을 해체했을 때 그대로 다시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어떤 게 있을까.
천장을 가로지르는 구조물인 보, 기둥, 바닥판이 그 대상이다.
이들은 각 유닛이 받는 하중과 같은 힘을 지탱하기 위한 뼈대다.
이 주요 구조부재(보, 기둥, 바닥판)는 강철로 만드는데,
표면에 생긴 녹을 제거하고 새로 생길 수 있는 녹을 방지하기 위해 표면에 도료를 바르는 방청처리를 하면 90% 정도 재사용할 수 있다.

보온, 방음, 방풍 등의 역할을 하는 외벽에 쓰이는 압출성형시멘트 벽판, 고온·고압에서 만든 기포 콘크리트(ALC)판,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을 연결하는 창문이나 문과 같은 창호도 특수처리를 해 재사용하거나 재활용할 수 있다.
재사용은 떼어낸 자재를 간단히 보수한 뒤 그 형상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것이며
재활용은 원래 물질에 화학처리를 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폐목재를 간단히 다듬어서 그대로 다시 쓰면 재사용, 폐목재를 분쇄해 화장지를 만들면 재활용이다.




한옥에서 배운다


기존의 건축방식은 물을 사용해 시멘트와 모래를 섞어 만든 모르타르를 접합재로 사용하는 습식공법을 이용하기 때문에
단열재나 석고보드 같은 내장재와 부품을 재활용하기 어려웠다.
주택을 해체할 때 콘크리트, 단열재, 석고보드, 종이, 목재 등이 뒤엉켜 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닛모듈라 주택은 콘크리트 대신 특수 리벳을 이용(건식공법)하기 때문에 이물질이 섞이지 않고 거의 원형에 가까운 형태로 내장재와 부품을 해체할 수 있다. 건물을 수리하거나 낡은 부분을 고치기 쉬운 이유다.

사실 유닛모듈라 주택은 우리에게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살던 전통 가옥인 한옥은 기둥이나 보, 바닥재를 해체한 뒤 다른 장소에 옮겨 다시 짓거나 재사용할 수 있었다.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온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녹아 있는 한옥도 유닛모듈라 주택인 셈이다.
서울 중구에 있는 남산골 한옥마을은 곳곳에 있던 한옥을 해체해 그대로 옮겨온 대표적인 사례다.
갑신정변을 주도했던 박영효의 집은 당시 종로구 관훈동에 있었는데 해체한 뒤 남산골 한옥마을에 그대로 복원됐다.




내가 살 집을 쇼핑한다


심시티 게임에서처럼 집 한 채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리사이클링시티에서는 기존 주택건축 기간(약 100일)의 절반 정도면 주택을 공급할 수 있게 된다. 공장에서 유닛을 생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50일, 유닛을 옮겨 주택을 조립하는 데는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표준화된 공정으로 공장에서 ‘생산’하는 주택 유닛은 설계 자동화시스템으로 건축설계와 구조설계, 도면작성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백화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설계단계에서 거주자가 원하는 대로 유닛을 골라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취향이나 생활양식에 따른 맞춤형 설계도 할 수 있다.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기존 방식과 비교했을 때 유닛모듈라 주택은 현장 작업이 80% 가량 줄어든다. 인건비는 약 80%, 주요 구조부재 가공과 시공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20%를 줄여 더 싼 가격에 주택을 보급할 수 있다.




강원도 평창에 완성된 유닛모듈라 주택의 모습. 환경부는 2020년 건축폐기물이 1억t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전체 폐기물량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많은 수치다. 리사이클링 시티에는 유닛모듈라 주택이 들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한다.

이미 일본과 미국에서는 친환경 건설의 중요성이 부각되며 유닛모듈라 주택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일본의 금강공업은 생산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4분마다 1개꼴로 가로, 세로, 높이 2.7m 또는 3m의 유닛을 생산한다. 이 덕분에 일본은 고베지역을 비롯해 곳곳에 매년 수만 호의 유닛모듈라 주택을 새로 짓고 있다. 자신이 살던 집을 해체한 뒤 주요 구조부재를 유닛모듈라 업체에 70% 정도의 가격으로 되파는 처리 방식도 이미 자리를 잡았다.

미국은 플로리다에 전원주택 형태의 유닛모듈라 주택을 계속 짓고 있다. 미국은 자동화 생산라인보다는 수작업의 반자동 소량 생산체제로 주택 유닛을 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과 비교했을 때 유닛모듈라 주택 건설법도 비교적 단순하다. 일본의 경우 주택 1채를 만들 때 10여 개의 유닛을 조립하기 때문에 조립과정이나 설계가 다소 복잡한 반면, 미국은 2개의 거대유닛(가로 4m, 세로 20m)으로 1채의 단층 주택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미국은 땅이 넓어 주택 부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고 도로교통법상 유닛을 운반하는 차량의 크기에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에 들어설 한국의 유닛모듈라 주택은 일본과 유사한 형태가 될 것이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는 도로가 좁아 도로교통법에서 운반차량의 폭을 2.4m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 푸른 초원 위에 뚝딱뚝딱 집을 짓고


현재 우리나라는 아파트가 주택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구가 감소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거주하려는 사람들의 욕구가 커지며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 형태의 주택에 대한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타운하우스는 2~3층짜리 단독주택을 이어 붙인 형태로 아파트와 단독주택의 장점을 결합한 유닛모듈라 주택이라고 볼 수 있다. 수직공간을 한 가구가 독점하는 점이 연립주택과 다르다. 주택전문가들은 10년 뒤 유행할 주택 형태로 타운하우스를 꼽는다.

게다가 2012년 교토의정서가 만료되고 이듬해 포스트 교토의정서가 발효되면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의무감축국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각종 폐기물 배출량을 줄이는 기술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력도 더욱 커질 전망이다.

건축물의 수명을 늘리고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유닛모듈라 주택이 그 해법이다. 2020년 리사이클링시티에는 주택기술과 로봇기술이 만날 전망이다. 각종 건물을 시공하며 해체하는 로봇이 등장해 눈 깜짝할 사이에 뚝딱뚝딱 집을 짓는 마치 게임 같은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임석호 연구원은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1년부터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축연구부에서 건축법과 주택법 표준화, 공동주택 및 일반건축물의 리모델링 설계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최근 3년 동안 국가 핵심연구개발사업인 ‘리모델링의 효율성 제고를 위한 유지관리프로그램 개발연구’와 ‘자원순환형 유닛모듈라주택 개발연구’ 2개 부문의 총괄연구책임자를 맡았다.

 
| 글 | 임석호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 ㆍshlim@kict.re.kr |



관련주제가 없습니다.
내과학상자담기  E-MAIL 프린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RSS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나도 한마디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목록


내 당근 보러가기

내 뱃지 보러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