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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는 사이코패스 위에 나는 프로파일러


“여성만 보면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여대생, 노래방 도우미 등 10여 명의 여성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강호순. 경찰 조사과정에서 내뱉은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많은 사람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강 씨를 ‘사이코패스’로 진단한다. 사이코패스란 간단히 말해 타인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살인을 일종의 유희로 여기는 이상 성격자다. 하지만 ‘미치광이’와는 다르다. 상당수가 평균 이상의 지능 수준을 가졌으며, 평범한 이웃으로 우리 곁에 사는 경우가 많다. 강호순을 ‘인사 잘하고 인상 좋은 동네 청년’으로 기억하는 주변인들이 많은 이유다.

몇 해 전 개봉한 한국 영화 ‘검은 집’을 보면 이 같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이 나온다. 아들을 살해하고, 남편의 신체를 훼손해 거액의 보험금을 타 내는 여주인공의 표정에선 일말의 동요도 발견할 수 없다. 일부 전문가들은 양심의 가치를 파악하게 하고 분노를 억제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뇌에서 적게 분비되는 게 사이코패스를 만드는 한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이전에 사이코패스는 연쇄살인범이라는 용어로 통칭됐다.
그런 면에서 사이코패스는 치정, 돈, 명예와 같은 명확한 동기 없이 살인을 저질러 일반적인 상식으로 검거할 수 없는 이들에게 붙여진 별칭인 셈이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만큼 사이코패스를 잡기 위해선 특별한 능력을 지닌 이들이 필요하다. 바로 프로파일러다. 경찰에 소속되거나 이들을 지원하는 임무를 띤 범죄심리전문가인 프로파일러는 범인의 동선과 행동 방식을 세세히 분석해 용의자의 모습을 들춰낸다.
수집된 정보를 조합해 범인의 특징에 최대한 가깝게 ‘밑그림’을 만드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경찰은 한정된 수사력을 집중할 수 있다. 범인 검거 가능성이 그만큼 높아진다는 얘기다.
프로파일러는 1970년대 미국연방수사국(FBI) 소속 행동과학부 요원들이 효시이며, 한국에선 최근 3~4년 사이 심리학 전공자와 선임 경찰을 중심으로 본격 양성되고 있다. 문제는 대인(對人)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게 사이코패스의 일반적인 유형이긴 하지만 이것이 그들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학계 일각에선 국가 원수를 저격하는 암살자, 감쪽같은 속임수를 구사하는 사기범,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을 펴는 적국 지도자를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분석하는 일이 많다. 드러나진 않지만 사이코패스 기질을 지닌 이들이 우리 주변 곳곳에 다양한 얼굴을 한 채 도사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을 잡기 위한 프로파일링이 사회 전방위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프로파일러의 활약상을 들여다본다.




셜록 홈즈의 추리법


코넌 도일의 소설 주인공 셜록 홈즈는 대표적인 프로파일러다.
사람이나 물건을 쓰윽 훑어보고 과거 행적을 알아내는 솜씨는 ‘과학의 힘을 빌린 무속인’에 다름 아니다.
코넌 도일의 소설 ‘네 개의 서명’에서 묘사되는 홈즈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소설에서 홈즈는 그의 파트너인 왓슨이 가져온 고급 시계를 잠시 살펴보고는
“시계 주인은 단정치 못하고, 많은 재산을 물려받았지만 이를 탕진해 오랜 시간 가난한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대답을 단박에 내놓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홈즈는 시계 여기저기에 흠집이 많이 난 점을 눈여겨 봤다.
고급 시계를 열쇠나 동전이 든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면 단정한 사람으로 보기 어렵다.
이런 값비싼 시계를 지니고 다닐 정도면 큰 재산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높지만
시계 안쪽에 날카로운 핀으로 4건이나 되는 전당포 수령증 번호가 새겨진 점을 확인하고 궁핍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당시 영국에서 전당포 주인은 주인이 맡긴 물건에 수령증 번호를 적는 일이 관행이었다.
이 같은 추리법을 보통 귀납적 접근이라고 부른다.
물샐틈없는 논리적인 접근은 많은 사람이 셜록 홈즈에 열광하는 이유다.




사건파일1_선혈 튄 현장에 남은 죽은 자의 외침


사이코패스가 저지르는 대표적인 범죄는 성폭력을 동반한 살인이다.
범행 수법은 잔인하고 주기는 연쇄적이다. 보통 사람, 보통 범죄자라면 엄두를 못 낼 행동을 서슴없이 한다.
억제할 수 없는 성욕과 상대를 지배하려는 욕구가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감정 속에서 폭발한 결과다.
이 같은 범죄에 이르는 과정을 세세히 들여다보는 일이 프로파일러의 임무다.

강호순 사건을 접한 경기지방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들이
‘호감형 남성’으로 용의자를 그려낸 과정도 강 씨의 범죄 유형을 세세히 분석한 데에서 비롯됐다.
보통 사람들은 엽기적인 범행을 저지른 이들이 험상궂은 인상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프로파일러들은 달랐다.
피해자들이 자발적으로 강 씨의 승용차에 올라탔을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면 비교적 좋은 인상을 지닌 남성일 것이라는 추정이 나왔다. 최근 공개된 강 씨의 얼굴이 이를 입증한다.
사건이 일어났던 경기 서남부 일대에 용의자가 살 것이라는 점도 프로파일링의 결과였다.
자신이 잘 아는 지역을 활동 영역으로 삼는 사이코패스의 특성상 용의자가 먼 거리에 거주할 가능성은 낮게 평가됐다.

프로파일러의 활약은 강호순 사건 이전부터 두드러졌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알리는 데 큰 영향을 미친 유영철이 잡힌 지 2년여가 지난 어느 날,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가정집에서 참혹한 살해 현장이 발견됐다.
한 방에서 자고 있던 여러 명의 여성이 둔기에 머리를 맞아 숨져 있었고, 현장의 흔적을 없애려 한 듯 방화를 시도한 흔적이 있었다.
피해자의 치마가 말려 올라간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국내 대표적인 프로파일러 양성소인 경기대 범죄심리학과의 이수정 교수는
당시 현장 사진을 보고 “방화를 저지르는 데 능숙하지 않고 절도나 가택 침입 전과가 있으며,
지능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이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왜였을까.

우선 굳이 이불에 불을 붙이려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범인은 주방의 가스레인지에서 불을 끌어 와 방화를 하려 했다.
빨래까지 걷어 와 화재의 강도를 키우려는 시도도 했다. 하지만 통상 이불은 불이 붙기 어려운 재료다.
시너와 같은 인화물질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방화를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전형적인 아마추어 방화자의 냄새였다.
희생자의 지갑이 열려 있는 점도 이 교수의 눈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 교수는 “보통 사람은 지갑을 열어 둔 채 잠을 자진 않는다”며 “절도와 연관된 범죄자일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실제 범인을 잡고 보니 이 같은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았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13명의 무고한 시민을 살해한 정남규가 장본인이었다.
전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을 별다른 동기 없이 살해하는 사이코패스에게 프로파일링 기법으로 접근해 성과를 거둔 대표적인 사례다.




사건파일2_“대통령을 쏴야 조디 포스터를 얻는다”
1981년 3월 30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암살하려 한
존 힝클리 또한 사이코패스의 한 유형으로 분석하는 것이 외국 학계의 시각이다.
유명 정치인에 대한 테러는 보통 정치적 목적에 따라 가해지지만 그의 범행 이유는
광적으로 좋아하던 영화배우 조디 포스터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황당한 이유다. 정상적인 수사 절차에 따랐다면 기소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 직후 검거된 힝클리가 20대 중반의 미혼이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 출신의 청년이라는 점을 알아낸 FBI는
그가 묵고 있는 숙박업소의 위치까지 파악했다. 문제는 ‘어떤 증거를 수집할 것인가’였다.
힝클리의 ‘이상한’ 특성을 파악한 FBI는 고민에 빠졌다.
자칫 허둥대며 그의 방에 진입했다가는 기소에 꼭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조디포스터가 등장한 영화 ‘양들의 침묵’.

이 같은 어려움을 타개한 사람이 당시 FBI 프로파일러였던 로버트 레슬러였다.
그는 프로파일링의 뼈대를 세운 책으로 인정받는 ‘살인자들과의 인터뷰’ 저자로 유명하다.
레슬러는 “암살 시도에 정치적 배경은 없으며, 개인적인 외로움이 동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그의 부유한 배경과 내성적인 성격 등 여러 요인을 종합 분석한 결과였다.
레슬러는 “FBI에 책, 잡지, 메모지, 일기장, 녹음기처럼 범인이 자신의 심경을 기록할 만한 증거물을 수집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FBI는 그의 방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부인 낸시 여사의 사진이 있는 엽서를 발견했다.
엽서에는 “우리(자신과 조디 포스터) 두 사람이 언젠가 백악관에 입성할 것이며, 바보들은 우리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조디 포스터와의 전화 통화가 녹음된 테이프, 그녀의 출세작인 영화 ‘택시 드라이버’의 시나리오도 나왔다.
“난 대통령을 쏘러 간다. 돌아오지 못할 테지만 이건 조디 포스터 당신을 위한 일이다”라는 내용이 적힌, 부치지 않은 편지도 발견됐다.
‘개인적인 외로움이 범행 동기’라는 프로파일러 레슬러의 조언이 없었다면
어느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하찮은 물건들에서 나온 증거였다.
레이건 대통령 저격 사건은 이렇게 매듭지어졌다.




사건파일3_대학을 속이고 나라를 속인 희대의 ‘가짜’


일찍이 사이코패스에 대한 연구가 발달했던 미국과 유럽에선 사이코패스의 활동 영역을 좀 더 넓게 본다. 강력 범죄가 아니더라도 도덕 불감증에 걸린 이들은 사회의 규범을 번번이 거스른다는 얘기다.
그 한 유형이 사기다.

미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사기꾼 페르디난드 왈도 데마라가 대표적이다.
그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기 위해 사기극을 펼쳤다. 그의 대담성은 상상을 초월한다.
데마라는 하버드대 심리학 박사 신분을 위조해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학장까지 했다.
가짜 교수인 셈이다. 학교 측은 이 같은 그의 행각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신출귀몰한 사기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과 친분이 있던 한 의사의 학적 기록 전부를 위조해 캐나다 해군에 군의관으로 입대했다. 고도의 전문지식이 필요한 의료 영역에까지 뛰어든 것이다.
혼자 익힌 의학 지식으로 한국전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구해낸 뉴스가 크게 보도되면서 신분을 위조당한 의사의 신고로 덜미가 잡히긴 했지만 이런 ‘돌발 변수’가 없었다면 그가 어디까지 사기를 쳤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희대의 사기꾼이 나오는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

이는 2003년 국내에도 소개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을 연상시킨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유명 항공사 조종사, 연방수사요원, 의사, 변호사 등을 넘나들지만 자신에 대해 걱정하거나 주변의 시선에 주눅 드는 일이 없다.

반면 주인공을 뒤쫓는 영화 속 FBI는 허둥대기에 바쁘다.
프로파일링 기법을 적용하지 않은 탓에 뒤통수를 맞고 탄식하는 게 다반사다.
FBI는 사기를 치면 양심의 가책이나 위기감을 느끼는 보통 사람을 염두에 뒀던 탓이다.
어떤 상황에도 전혀 당황하지 않는 주인공의 연기력은 수사관을 따돌리는 가장 중요한 무기였다.




사건파일4_“히틀러는 반드시 자살한다”


유태인 수백만 명을 가스실로 내몬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프로파일링은 당시 연합국의 주관심사였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정책을 구사하는 그가 어떤 인물인지 가늠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3년, 미국중앙정보국(CIA)의 전신인 전략사무국이 정신병리학자인 월터 랑어 박사에게 의뢰한 내용의 핵심은 독일이 전쟁에 졌을 때 나타날 그의 행동이었다.
랑어 박사는 유명 서적 ‘히틀러의 정신분석’의 저자다.
그의 분석 결과는 “히틀러는 자살할 것이다”였다.

근거는 이러했다.
당시 히틀러의 건강은 양호했기 때문에 자연사할 가능성은 적었다.
자신이 독일을 지킬 유일무이한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중립국으로의 망명도 거부할 가능성이 높았다. 쿠데타 암살 가능성도 검토됐으나 성공 가능성은 낮게 평가됐다.
결국 히틀러는 랑어 박사의 예측대로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격하는 가운데 지하 벙커에서 권총으로 자살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로파일링 대상이 됐던 아돌프 히틀러

사이코패스를 가려내기 위해 프로파일러들은
1991년 캐나다의 브리티시 컬럼비아대 로버트 헤어 교수가 개발한 ‘사이코패스 체크리스트 개정판’(PCL-R)을 활용한다.
강호순도 이 검사에서 사이코패스 판정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충격적인 것은 사이코패스가 가뭄에 콩 나듯 나타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기대 이수정 교수와 한림대 조은경 교수가 최근 전국 10여 개 중구금 시설 수감자 4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가운데 15%가 사이코패스인 것으로 밝혀졌다. 판
정을 받은 사람 모두가 희대의 살인마로 변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섬뜩한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PCL-R 점수는 범인의 행동 특성, 가족이나 친구를 향한 반응, 법정 기록 등을 모두 고려해 프로파일러가 매긴다.
점수는 항목당 0, 1, 2점을 부여해 합산한다. 총 항목 수는 20개다. 대개 30점이 사이코패스 판단 기준이 된다.
각 문항은 과도한 자존감·병적인 거짓말(대인관계), 죄책감 결여·냉담(정서),
충동성·무책임성(생활방식), 청소년 비행·다양한 범죄경력(반사회성) 등의 지표로 구성돼 있다.





최근에 인터넷에서 확산된 사이코패스 테스트는 PCL-R과 상관없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PCL-R은 자가 진단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몇 가지 문항에 스스로 답한 뒤 ‘혹시 내가 사이코패스인가’라고 고민하는 건 어이없는 행동이라는 얘기다.

이수정 교수는 “프로파일링 기법은 외국에서 건너온 탓에 한국 현실에 맞는 자료가 더 많이 필요하다”며
“큰 범죄가 생겼을 때 외에도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분야”라고 강조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이코패스를 제압하는 프로파일링이 한순간에 탄생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 글 | 이정호 기자 ㆍsunrise@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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