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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韓紙)요? 복원에도 뛰어납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실…한지를 이용해 옛날 문서 수명을 늘려
이달 22일 서울시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실. 오래된 책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하얀 가운을 입은 서너 명의 연구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갈라지고 찢어진 고문서와 신문을 한지로 메우는 복원 작업이 한창이다. 이날 대상은 1981년 2월 26일 발행된 동아일보 1면이었다.







28년 전 동아일보 1면. 찢어진 곳을 놔두면 부식이 더 심해진다.

두꺼운 모자를 쓴 채 손에 입 바람을 불어넣는 사진과 함께 ‘기습 寒波(한파)’란 기사 제목이 눈에 띈다. 이날의 서울 아침 기온은 영하 15.6도. 기사는 “올 겨울의 끝막음 추위가 마지막 기승을 떨치고 있다”며 “시베리아의 찬 공기가 유입됐기 때문”이라는 중앙관상대(현 기상청)의 말을 전한다. 하지만 끝 부분이 찢겨 있어 기사를 온전히 읽을 수 없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보관 중인 신문을 상태점검을 한 적이 있어요. 그중 보전처리가 시급한 게 약 97%정도나 되더라고요. 특히 신문을 만드는 종이는 질이 좋지 않아 다른 종이에 비해 산성화 등이 쉽게 일어나 큰 문제죠.”







신문을 물에 담근(왼쪽) 다음 한지 섬유를 그 위에 붓는다(위). 그럼 한지 섬유가 가라앉아 찢어진 곳을 메운다(오른쪽).

이귀복 보존담당사무관이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하지만 그는 “한지(韓紙)를 이용하면 신문이나 옛날 문서에 사용된 종이의 성질을 유지하면서도 손쉽게 복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사무관은 지난 4월 한국펄프종이공학회 학술대회에 이런 내용을 발표했다.

이전의 복원 방법은 구멍이 뚫리거나 찢어진 문서 뒤에 종이를 덧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원지가 빳빳해져 본래의 특성이 사라진다는 게 문제로 지적됐다. 또 접착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원지에 훼손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나온 게 ‘리프캐스팅’이란 방법. 종이 성분과 비슷한 섬유질을 흘려 구멍을 메우는 작업이다.

박소연 연구원이 찢어진 신문 밑을 촘촘한 그물로 받친 다음 물을 튼다. 신문이 물에 잠긴다. ‘신문이 젖으면 나쁘지 않냐’고 묻자 그는 “물에 적시면 종이에서 산성성분이 빠져나와 오히려 좋다”고 말했다. 또 “유성 잉크를 써서 잉크가 번질 일도 없다”고 덧붙였다. 물에 푼 한지를 그 위에 쏟자 한지 섬유가 퍼지면서 가라앉는다.







현미경을 이용해 한지(왼쪽), 리프캐스팅 종이(중간), 목재펄프(오른쪽)를 관찰한 사진. 한지 섬유가 가장 길고 섬유량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 국립중앙도서관 자료보존실

이 사무관의 설명이 이어진다. “외국에서 목재펄프를 수입해서 리프캐스팅 원료로 사용을 했어요. 그런데 실험을 해보니 목재펄프보다 한지가 훨씬 더 적합하더라고요.” 실제 연구결과 한지 섬유의 길이(3.05㎜)가 목재펄프(0.66㎜)보다 약 5배 정도 긴 것으로 나타났다. 접착력이 세다는 의미다. 테이프를 붙일 때 짧게 해서 붙이는 것보다 길게 잘라 붙이는 게 접착력이 좋은 것과 같은 이치다.

한지는 또 셀룰오로스 함량이 목재펄프에 비해 월등히 높다. 셀룰오로스는 식물의 세포막을 이루는 성분으로 ‘섬유소’라고 부른다. 이 사무관은 “목재펄프는 셀룰오로스, 헤미셀룰로오스, 리그닌으로 구성돼 있다”며 “리그닌이 빛과 반응해 산성 성분을 만들고, 이 물질이 셀룰오로스에 영향을 미쳐 종이가 부식되는 것을 촉진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한지에는 리그닌이 없다. 한지로 복원을 하면 상대적으로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 사이 한지 섬유가 다 가라앉았다. 박 연구원이 진공을 이용해 물을 서서히 뺀다. 한지 섬유가 촘촘한 그물에 걸린다. 물이 빠질수록 한지 섬유는 신문의 갈라진 곳, 찢어진 곳으로 몰린다. 물이 빠지는 속도가 갈라진 곳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물을 빨아들이는 블루팅 페이퍼를 이용해 신문을 말린다. 그 다음 찢긴 부분 이외의 곳에 얇게 붙어 있는 한지를 떼어내면 리프캐스팅은 끝이 난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찢어진 부분은 다시 볼 수 없지만 앞으로 더 이상 훼손되지 않을 것”이란 박 연구원의 말과 함께 1981년 2월 26일 동아일보 1면은 새 생명을 찾았다.

이 사무관은 “리프캐스팅 방법은 한 번에 여러 장의 신문과 옛날 문서를 복원할 수 있다”며 “앞으로 한지를 이용한 좀 더 정밀하고 다양한 복원 방법을 연구할 것”이라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한지가 구멍을 메웠다. 온전한 면에 붙은 한지를 떼어내면 리프캐스팅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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