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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장실의 강선생님’ 만든 분장화장품의 세계






마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풍부한 색감으로 연출한 분장예술에는 일반 색조화장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무게와 강렬함이 있다. 이산화티탄, 울트라마린 같은 광물에서 식품에 첨가되는 타르색소까지…. 기능과 안전을 겸비한 색소들이 있어 가능했던 분장화장품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정경미 씨가 선배 허락 없이 몰래 바르다 혼쭐이 났던 ‘콧물’ 물감은 어딨지? 총천연색의 분장화장품은 일반화장품과 달리 채도가 높다.

화장거울을 향해 앉아있던 유치원 꼬마가 관객 쪽으로 돌아앉았다. 그런데 귀여운 의상과 달리 꼬마의 얼굴은 짙은 숯검정 눈썹에 허연 콧물자국 범벅이다. 헉 소리가 나오려는 찰나 이번엔 시뻘건 눈두덩 화장과 ‘죠스바’ 입술을 한 중국 캐릭터 춘리가 돌아앉았다. 예쁘장하기로 소문난 두 개그우먼의 기괴한 분장에 관객들은 한 순간 ‘빵 터져 버렸다’.

KBS 개그콘서트(개콘)의 인기코너로 자리 잡은 ‘분장실의 강선생님’이 ‘영광인 줄 알아 이것들아~’ ‘니들이 고생이 많다’ 같은 감칠맛 나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연기자들이 선보이는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분장 또한 연일 화제다. 여성 개그우먼들이 골룸, 둘리, 마이콜, 방귀대장 뿡뿡이, 스머프, 케로로로 변신한 모습에 시청자들은 박수갈채를 보낸다. 하지만 정작 박수를 받아야 하는 주인공은 만화나 영화 속 캐릭터를 ‘분장실의 강선생님’ 코너에서 재탄생시킨 분장화장품이 아닐까. 물감에 버금가는 생생한 색깔을 발현시킨 분장화장품의 세계로 떠나보자.




골룸의 머리는 쫀득쫀득한 라텍스


파란색, 검은색, 노란색…. 책상 가득 화려한 총천연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을 비롯해 개콘의 분장을 총 책임 지고 있는 배미화 분장사가 얼굴에 색을 낼 때 사용하는 분장화장품이라며 책상 가득 꺼낸 제품들이다. 화장품이라기보다는 미술용 물감에 더 가까워보인다. 일반화장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짙은 색상 때문이다. 이 제품은 스펀지에 물을 조금 묻혀 펴 바르거나, 미용용 붓에 찍어 바른다.
배 분장사가 연기자들의 얼굴에 마술을 부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한 시간. 일반적으로 색조화장 전에 기초화장을 하듯 색조분장 전에도 피부자극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기초화장은 필수다. 분장화장품에는 색소 외에도 커버력을 높이기 위한 백색안료나 탤크, 방부제 같은 다양한 첨가물들이 섞여있기 때문에 피부에 이물감을 줄 수 있다. 배 분장사는 “기초화장으로 피부의 노폐물을 제거하고 영양과 수분을 공급해 피부를 진정시킨 뒤 색조화장을 한다”며 기초화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분장을 맡고 있는 배미화 분장사. 앳된 외모지만 경력 7년째인 베테랑 분장사다.

화장은 하는 것보다 지우는 게 중요하다’는 광고 문구처럼 연기자들은 피부 트러블을 우려해 방송 녹화가 끝나면 바로 화장을 지우는 편이다. 배 분장사는 “대부분 수용성이라 물로도 쉽게 지울 수 있고, 오일 성분이 들어간 분장용 파운데이션 제품은 일반 클렌징크림으로 쉽게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분장실의 강선생님’에는 색조화장품 외에도 다양한 분장재료가 사용된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분장기법인 대머리 분장에는 어떤 재료가 사용될까. 골룸 분장 때문에 대머리 분장을 자주하는 안영미 씨의 머리를 보면 얇은 막으로 된 볼드캡이 덮여 있다. 이 볼드캡은 고무를 농축한 라텍스나 글라찬이라는 액체 물질을 굳혀 만든다. 이 재료들은 상온에서 빠르게 굳고 원하는 모양으로 주형이 가능하며 쉽게 씌우고 떼어낼 수 있는 탄성력을 갖추고 있다. 골룸의 머리는 쫀득쫀득한 고무인 셈이다.




대머리 분장에는 여러 사람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볼드캡을 머리에 씌운 뒤 고정시키기 위해 피부용 접착제인 스프릿 고무를 이마와 목에 바르고 있다.

볼드캡은 착용할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 쓴다. 사용자의 머리 크기와 비슷한 마네킹에 붓으로 글라찬을 얇게 바르고 하루 정도 두면 볼드캡이 완성된다. 캡을 머리에 씌우고 고정할 때는 송진과 알코올을 혼합해 만든 피부용 접착제인 스프릿 고무(sprit gum)를 사용한다. 볼드캡을 착용하기 전에 접착제가 닿는 이마나 목은 알코올로 닦아내 화장기나 기름 성분을 없애야 잘 고정된다.

스프릿 고무는 골룸 머리에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이나 긴 코털을 붙일 때도 쓰인다. 분장용 털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만든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사용한 털은 대부분 재활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배가 사용한 코털을 후배의 얼굴에 붙일 일은 다행히 없다는 말이다.





색 만드는 자색고구마, 파프리카, 산화철


분장화장품은 유기물이나 무기물로 이뤄진 안료로 색을 낸다. 요즘 식물성 화장품이나 유기농 화장품에 많이 쓰이는 치자황, 자색고구마, 파프리카로 만든 천연 색소는 유기 안료다. 실험실에서 합성한 유기 안료도 저비용으로 다양한 색상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많이 쓰이고 있다.

무기안료는 산화철이나 규산염 화합물, 점토 같은 광물에서 얻는다. 철은 산화되는 정도에 따라 적색, 흑색, 황색 등 여러 색을 띠는데, 불순물을 함유하고 있어 이를 제거한 뒤 화장품의 색소로 많이 이용된다. 무기안료는 사용하는 광물의 희귀성에 따라 그 값이 천차만별이어서 그 중에서도 가장 값비싸다고 알려진 울트라마린은 1kg에 1500만 원이나 한다. 하지만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무기안료가 사랑받는 이유는 유기안료에 비해 색이 오래 지속되고 외부의 온도나 충격에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장용 털과 수염은 스프릿 고무(왼쪽)로 붙이고 알코올 성분인 전용 제거제(오른쪽)로 떼어낸다. 스프릿 고무의 접착 강도는 털을 잡아떼면 단번에 떨어지는 수준이다.

하지만 무기안료 중에는 인체에 축적되는 중금속을 포함한 물질도 있다. 대표적으로 카드뮴 옐로우에는 카드뮴 셀렌화합물이, 흰색을 내는 실버화이트에는 연납화합물이, 코발트 바이올렛에는 비소화합물이 들어 있다. 서양에서는 이러한 광물과 금속을 곱게 빻아 걸쭉한 점성을 가진 아라비아고무와 섞고 기름에 개어서 유화 물감으로 만들어 썼다. 현재는 재료시험에 대한 기준에 따라 유해성 있는 카드뮴, 코발트, 연납, 수은, 비소, 크롬 등은 사용이 금지됐다. 하지만 카드뮴과 같이 다른 물질로 대체할 수 없는 독특한 색감을 나타내는 일부 안료들은 지금도 전문가용 물감에 한해 사용되고 있다. 분장화장품을 비롯한 색조 화장품에 들어가는 색소는 인체에 사용하는 만큼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청이나 국제화장성분사전에 등록된 원료만 사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안료가 색을 내는 이유는 특정 파장의 빛을 선택적으로 반사하고 나머지 파장의 빛은 흡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빨간 립스틱은 빨간색을 제외한 나머지 파장의 빛은 흡수하기 때문에 빨갛게 보인다. 물론 빨간색도 비슷한 계열의 색상을 총망라하면 가짓수가 엄청나다. 미묘한 색상의 차이에 따라 반사하는 파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를 구분해 다양한 색상을 개발하는 것이 안료회사의 독자적인 기술이다.

분장기술의 발달은 분장 재료의 발달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우리나라에 분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1950~60년대에는 색조화장품을 거의 쓰지 않았다. 흑백TV 시대였기 때문에 색조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분장이라면 가난했던 시절, 너무 말라서 볼이 움푹 패인 배우들을 위해 볼을 하얗게 만들어줘 도톰하게 살이 오른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정도였다. 이후 1980년 일반 가정에 컬러텔레비전이 보급되면서 색을 전할 수 있게 됐지만 분장용 색조화장품의 발달은 미미했다. 40년 경력의 한국 분장 강대영 대표는 “예전에는 거의 모든 분장 재료를 선배에게 전해들은 방법으로 직접 제작했다”며 “색조화장품은 공업용 안료를 바셀린과 오일에 섞어 만들고, 특수 분장에 사용하는 피는 설탕을 끓여서 만들었다”고 말했다.









현재의 색조화장품은 기능은 높이면서도 인체에 안전한 재료를 사용하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과거에는 마스카라 같이 검은색이 필요한 화장품에 카본블랙을 사용했다. 카본블랙은 천연가스나 타르를 불완전 연소시켰을 때 배출되는 그을음을 모아서 열분해해 제조한 물질이다. 이 물질은 색이 진하고 착색력이 좋아 1970년대부터 주요 화장품에서 사용됐는데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되면서 1985년부터는 사용이 금지됐다. 현재는 흑색산화철로 검은색을 표현하고 있다.

커버력을 높인 새로운 재료의 개발도 눈에 띈다. 색조화장품이 피부에 곱게 발라지기 위해서는 입자도 고아야 하지만 안정된 제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루가 날리지 않고 오랫동안 피부에 남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사용하는 재료가 실리콘 오일이다. 일반적으로 실리콘이라고 하면 인체보형물이나 방수용 접착제를 떠올린다. 하지만 고중합 반응으로 만들어 분자크기가 큰 고체형 실리콘과 달리 저중합 반응으로 실리콘의 분자크기를 작게 하면 액체인 오일이 만들어진다. 실리콘 오일은 유연성이 좋아 파운데이션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화장품과 일반물감의 차이, 타르색소


요즘은 인체유해 성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화장품의 모든 성분을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것이 의무화됐다. 화장품의 뒷면을 보거나 해당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화장품에 쓰인 성분을 모두 확인할 수 있다.
분장화장품의 성분은 기본적으로 일반화장품과 같지만 색소의 함량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일반 메이크업 화장품의 경우 색소 함량이 낮다. 색소의 함량을 높일 경우 인위적인 화장으로 보이거나 피부색을 좋게 하고 결점을 보완하는 기본적인 색조화장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장용 화장품은 확실한 색상을 표현하기 위해 색소 함량을 높인다. 분장화장품에 들어가는 색소의 함량은 화장품 질량의 15%에 해당한다. 이는 전체 질량에서 색소 성분의 질량이 30~40%나 나가는 미술용 일반물감에 비하면 적은 양인 셈이다.
이렇게 매우 적은 양으로도 색이 또렷하게 발현되는 이유는 뭘까. 비밀은 합성착색료로 사용되는 타르색소에 있다. 화장품의 색소 목록에서 황색 4호, 적색 202호, 청색 1호처럼 색상과 숫자 번호로 적혀 있는 것들이 타르색소다. 타르색소는 석탄의 콜타르에서 추출한 벤젠, 톨루엔, 나프탈렌에서 만드는데, 분자 구조에 발색단(발색의 원인이 되는 유기화합물의 원자단)을 포함하고 있다. 이런 분자 구조에서는 발색단과 색을 더 짙게 하는 기능을 가진 조색단의 종류나 개수에 따라 발색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분자구조에 따라 다양한 색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천연색소에 비해 색상 종류가 많고 선명하며 발색이 뛰어나다는 장점을 가진다. “야, 나 완전 예쁘지 않냐?”라고 말할 만한 근거는 타르색소에 있었던 셈이다.









물론 벤젠계 물질이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우리 생활에서 타르색소를 멀리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하지만 화장품에 포함된 타르색소의 양은 전체 성분에서 소수점 셋째자리 퍼센트 정도의 함유량이므로 피부에 바르기에는 무해하다고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복숭아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특이 체질이 있듯이, 천연재료가 누구에게나 안전한 것은 아니라며 오히려 위생관리가 없으면 천연재료가 더 위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르색소는 화장품의 경우 현재 71가지가 안전하다고 허용돼 있다. 분장화장품 세계에서 더 보기 좋고 화려한 색을 원하는 욕심과 피부 안전지대를 지향하는 노력은 아직 진행 중이다.

중합
분자가 두 개 이상 결합해 분자량이 큰 화합물을 만드는 과정으로 결합하는 개수가 적으면 저중합, 많으면 고중합으로 분류한다. 예를 들어 올리고당은 저중합, 다당류인 녹말은 고중합의 결과물이다.

 

 

 


글 | 김윤미 기자 ㆍym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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