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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당신의 뇌파는 안녕하십니까


덥다. 밤에도 이불이 부담스러워진다. 잘 자야 다음날 일도 공부도 더 잘 하는데 말이다. 잘 잤는지 못 잤는지는 뇌파를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뇌에서 나오는 이 미세한 파동에 간밤의 수면상태가 그대로 담겨 있다.




“으앙, 으앙!”

또 시작이다. 아직 동틀려면 멀었는데 말이다. 한두 시간이 멀다 하고 깨는 통에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질 못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기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볼 수도 없고 알아듣게 타이를 수도 없고…. 정말 답답할 노릇이다. 안고 어르고 젖도 물리고 한동안 수선을 피우다 겨우 다시 잠이 든다.

신생아를 키우는 부모라면 흔히 겪는 일이다. 초보 엄마아빠는 ‘우리 아기가 왜 잠을 푹 못 잘까’ 하며 고민도 한다. 하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신생아가 밤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이유를 수면전문가들은 뇌파에서 찾는다. 깊은 잠을 유도하는 특수한 뇌파가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깊은 잠에 빠질 때 나오는 2가지 뇌파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할 때 우리 뇌에서는 2가지 특이한 뇌파가 나온다. 잠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이를 각각 ‘K-복합체’(K-complex)와 ‘수면방추’(sleep spindle)라고 부른다. 이들 뇌파는 깨어 있을 때나 얕은 잠, 깊은 잠을 잘 때 발생하는 뇌파와 다른 독특한 모양을 보인다.

깨어 있을 때 뇌는 베타파를 내보낸다. 주파수 20Hz(헤르츠) 이상의 베타파는 간격이 매우 촘촘하고 키(진폭)가 작다. 그만큼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얘기다. 수많은 생각을 하고 끊임없이 몸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깨어 있는 동안 우리 뇌는 아주 복잡하고 빠르게 활동한다. 뇌의 여러 부위가 제각각 기능을 수행하면서 내는 신호가 뒤섞여 나오는 뇌파가 바로 베타파다.

하루 일과를 끝내고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면 뇌파의 양상이 달라진다. 잠들기 직전 눈을 감은 채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 주파수가 8~13Hz인 알파파가 나온다. 기록된 알파파의 모양을 보면 마치 빗살무늬 같다. 일단 이때까진 깨어 있는 상태로 본다.

본격적으로 잠이 들기 시작하면 뇌파의 주파수는 점점 느려진다. 언제든지 깰 수 있을 정도로 얕게 잠이 들었을 때(1단계 수면)는 2~7Hz 주파수의 세타파가 발생한다. 주파수가 느려지는 만큼 뇌파의 진폭도 조금씩 높아진다.





같은 환경에서도 누군 잘 자고 누군 선잠을 잔다. 잠의 질은 뇌파 측정으로 판단할 수 있다.
K-복합체’와 ‘수면방추’라는 독특한 뇌파가 나타나는 건 바로 2단계 수면에 접어들었을 때다. 이때 뇌파를 측정하면 세타파 중간마다 아래위로 갑자기 삐죽하게 솟아오르거나 마치 실이 감겨 있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파동이 촘촘해지는 부분이 나타난다. 솟아오른 부분이 K-복합체이고, 촘촘해진 부분이 수면방추다.

지난 5월 22일자 ‘사이언스’에는 K-복합체에 관한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종합병원 신경과 시드니 캐쉬 교수팀이 간질 환자의 뇌파 패턴을 분석한 결과다. 신경학자나 수면생리학자는 지금까지 주로 두피에 붙인 전극에서 K-복합제 신호를 얻었다. 이번에 캐쉬 교수팀은 아예 환자의 두개골을 열고 대뇌피질에 직접 전극을 꽂은 뒤 K-복합체를 측정해 이 뇌파가 뇌의 기능을 안정시키고 기억력을 강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깨어 있을 때의 뇌파 위부터 첫째와 둘째 파동은 망막의 반응을 측정한 데이터 (EOG), 그 아래 둘은 뇌파(EEG), 맨 아래는 근육의 반응을 기록한 데이터(EMG). 깨어 있을 때는 빗살무늬 같은 알파파가 나온다.
아기가 자주 깨는 까닭
한번 잠들면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자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의 뇌파에서는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특히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이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잠을 쉽게 깨지 않게 한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실제로 자는 사람 옆에서 이름을 부르거나 물건을 떨어뜨려 큰 소리를 내면 뇌파에서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생긴다는 사실도 이 같은 가설을 뒷받침한다.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잘 형성되면 소리가 나도 쉽게 깨지 않는다.






① 수면 1단계의 뇌파 언제든 깰 수 있는 얕은 잠. 기본 뇌파인 세타파가 나온다. ② 수면 2단계의 뇌파 깊은 잠 전의 준비 상태. K-복합체와 수면방추 같은 독특한 뇌파가 생긴다. ③ 수면 3단계의 뇌파 깊이 잠든 상태. 느리고 키가 큰 델타파가 나온다. ④ 수면 4단계의 뇌파 가장 깊은 잠. 절반 이상이 델타파다.

결국 2단계 수면에서 생긴 K-복합체와 수면방추는 3단계 수면을 유도하는 신호 역할을 한다. 깨지 않고 더 깊은 잠에 빠지도록 만든다는 얘기다.

흥미롭게도 신생아의 뇌파에는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없다. 국제수면전문의인 신홍범 코모키수면센터 원장은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나타나는 시기는 생후 3개월 이후부터”라며 “100일이 되기 전의 신생아가 수시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K-복합체와 수면방추가 생긴 뒤엔 수면의 3단계로 넘어간다. 완전히 깊은 잠에 빠진다는 뜻이다. 이때 나오는 뇌파의 20~50%는 주파수 0.5~2Hz의 델타파다. 잘 때 나오는 뇌파 가운데 가장 느리고 키가 크다. 뇌가 델타파를 내보낼 때는 호흡처럼 생존에 꼭 필요한 생리작용만 일어나는 상태다. 뇌파의 절반 이상이 델타파인 경우 4단계 수면이라고 설명하는 과학자도 있다.





8시간을 잔다고 하면 건강한 사람은 자기 시작한 지 1시간 이내에 4단계 수면까지 빠져드는 게 보통이다. 초기 수면 때는 주로 2~4단계 수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깊은 잠을 자다가 새벽으로 갈수록 2단계 정도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진다.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사람은 이 같은 전형적인 수면 단계의 흐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불면증 환자는 잠이 2단계에서 머무른 채 3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뇌파도 여러 가지가 마구 뒤섞여 나타나기도 한다.




수면제를 먹어 인위적으로 생기는 뇌파와 자연적인 뇌파는 차이가 있다. 잠의 질도 당연히 다르다.
인위적인 뇌파 만드는 수면제의 부작용
불면증은 전 세계 인구의 약 30%가 일생에 한 번쯤은 경험할 정도로 흔하다. 불면증으로 괴로워하다 하는 수 없이 수면제를 복용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면제에 의존해 자고 일어나면 깊이 잤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가 바로 수면방추 때문이라고 본다.

수면제를 먹으면 뇌파에서 수면방추가 많이 생긴다. 잠에서 깨지 않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뇌파다. 그러나 수면제가 만든 수면방추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조금 차이가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수면방추의 주파수는 12~16Hz이며 뇌파의 간격도 빽빽하다. 이에 비해 수면제 때문에 생기는 수면방추는 12Hz 정도에서 느슨하게 나타난다.

결국 자연적으로 생기는 수면방추는 잠을 깨지 않게 막는 역할을 하지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수면방추는 오히려 잠이 3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걸림돌이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단계 수면에서 머무르며 더 깊이 잠드는 걸 방해한다는 얘기다.




불면증과 반대로 수시로 잠이 오는 경우도 있다. 도저히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잠이 오는 병이 바로 기면증이다. 자신도 모르게 갑자기 잠이 쏟아진다고 해서 ‘수면발작’이라고도 부른다. 수면발작은 대부분 깨어 있는 상태에서 1, 2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깊은 수면 단계로 진입하면서 나타난다.

최근 코모키수면센터 신홍범 원장 연구팀은 호주 시드니대 뇌과학연구소 김종원 박사팀과 함께 기면증 환자의 뇌파 흐름을 ‘탈경향변동분석법’(DFA)이라는 새로운 기법으로 분석했다. DFA는 생명과학 분야에서 DNA 염기서열을 해독하는 데 쓰는 데이터 분석기법. 불규칙적으로 보이는 연속 신호를 분석해 규칙이나 특징을 찾아내는 기법이다. 신 원장은 “DFA 기법을 기면증 환자의 뇌파 연구에 적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기면증 환자와 건강한 사람의 DFA 분석 결과를 수치로 변환했더니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 수치가 기면증을 진단하는 새로운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지난 5월 20일 기면증이 국내 희귀난치성질환으로 등록됐다. 1000명 중 1, 2명꼴로 드물게 나타나지만 현재로선 완치가 어렵다. 운전이나 기계 조작 도중에 잠이 들어 버리면 생명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저 피곤해서 졸린 거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도 많아 발견도 쉽지 않다.

잠을 잘 자야 공부도 일도 잘된다. 여러 날 밤잠을 잘 못 이루거나 낮에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졸음이 쏟아진다면 한 번쯤 뇌파를 의심해 보라. 당신의 뇌파는 이미 SOS 신호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웅~ 졸려~”제때 잠을 잘 자야 일도 공부도 잘된다. 기억력이나 학습능력은 잠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암기과목과 체육 성적, 잠이 좌우한다


잘 알려진 수면 단계 가운데 ‘렘’(REM, Rapid Eye Movement)이 있다. 렘수면은 세타파가 나오는 1, 2단계 수면에서 주로 생기는 독특한 현상이다. 잠이 들어 눈도 감고 있는데, 안구(눈알)가 활발히 움직인다.

이때 나오는 뇌파는 형태가 세타파와 비슷하다. 그러나 뇌 여러 부위에서 나온 뇌파가 혼합돼 있다는 점이 1, 2단계 수면의 세타파와 다르다. 자는 동안에도 뇌가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인 세타파는 뇌가 최소한의 활동만 하면서 나오는 게 보통이다. 새벽으로 갈수록 렘수면 비율이 많아진다. 수면 전문가들은 렘수면 동안 뇌가 활동하는 이유는 낮 동안 얻었던 다양한 정보를 차곡차곡 정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렘수면이 기억력이나 학습능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밤을 새거나 선잠을 자며 벼락치기로 공부한 내용은 보통 시험만 끝나면 싹 잊혀진다. 렘수면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뇌에 일시적으로 저장된 정보로 시험을 치르긴 했지만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며칠 지나면 그 정보가 흩어져 버리는 셈이다.






최근에는 렘수면 외에도 거의 모든 수면 단계가 학습능력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벨기에 리에주대 필리페 페이뉴 박사팀은 3, 4단계의 깊은 잠까지 잘 자고 나면 다음날 공간지각 능력이 더 향상된다는 연구결과를 2004년 10월 신경생물학 분야의 국제학술지 ‘뉴런’에 발표했다.

과학자들은 암기과목처럼 머리를 써서 얻는 지식은 주로 렘수면에서, 길 찾기나 자전거 타기처럼 몸으로 익히는 학습능력은 깊은 잠인 3, 4단계에서 각각 강화된다고 보고 있다.

 

 

 




글 | 임소형 기자 ㆍ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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