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 연구소

척척박사 연구소과학이야기제목별로 보기해설이 있는 과학

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면역학에 이끌려 들어선 ‘암 파수꾼’ 외길

[창의연구단 공동기획]배석철 암억제 유전자기능연구단장


우리 몸 안에는 자물쇠와 열쇠처럼 딱 들어맞아야 작용하는 반응이 있다. 바로 항원-항체 반응이다. 예를 들어 몸 안에 침입한 바이러스(항원)가 세모꼴 홈을 갖고 있다면 세모꼴 항체가 이를 인식해 항원을 파괴한다. 네모꼴이나 둥근 모양의 항체는 이 바이러스와 반응할 수 없다. 신기한 건 일정 수의 항체가 거의 무한한 항원에 대해 반응한다는 점. 1970년대 후반, 당시 약대생이던 배석철 교수는 어떻게 몸 안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궁금했다.






사진은 면역세포가 암세포의 덩어리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사실 배 교수는 고등학교 때까지 약대에선 약 만드는 일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1977년 약대에 진학한 이유도 약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막연한 생각은 막막한 현실로 다가왔다. 생각과 달리 약대에선 주로 약 처방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책을 통째로 외우는 일도 다반사였다. 대학에 들어가면 암기보다는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할 것이란 그의 생각은 또 한 번 깨졌다.

공부에 흥미를 잃어갈 때 쯤, 면역반응에 호기심을 느꼈다. 유한한 항체로 무한한 항원을 방어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책을 읽고 다른 과학자들이 했던 연구를 살폈다. 하지만 책조차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궁금증이 커질수록 호기심도 깊어졌다.

“암기에 대해 막연한 거부감을 갖고 있었는데 새로운 생각을 하려면 먼저 그 분야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러다보니 남들이 밝히지 못한 부분을 내가 한 번 해보겠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배 교수는 1991년부터 3년간 일본 교토대 바이러스 연구소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지내며 큰 전환점을 맞았다. 바이러스가 자기 복제를 할 때 훔쳐 쓰는 숙주세포의 단백질을 찾다가 ‘렁스(RUNX)’ 유전자를 발견한 것. 그는 이 유전자가 암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항원-항체 반응에 대한 학문적 호기심이 암 연구로 이어진 셈이다. 그렇게 배 교수는 암의 영역에 발을 들였다.



논문 리뷰기간만 2년 걸려
이전까지 사람들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바뀌어 암이 생긴다고 여겼다. 세포분열과 죽음을 조절하는 p53 같은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변해 암이 발병한다고 생각한 것. DNA에 메틸기(CH3)가 붙으면 암이 발생한다는 연구도 진행됐지만 학계에서 큰 주목을 끌지 못 했다. 메틸기가 붙는 범위가 넓어 어떤 유전자에 영향을 주는지 집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1995년 배 교수는 렁스3 유전자에 메틸기가 붙으면 암 발병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렁스3 유전자는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변하는 순간을 포착해 그 세포를 파괴하는 렁스3 단백질을 만드는데, 렁스3 유전자에 메틸기가 붙으면 이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2000년 배 교수는 이 내용을 ‘셀’에 투고했다. 하지만 암에 대한 기존 이론을 바꾸는 것이다 보니 꽤 긴 리뷰 기간을 거쳤다. 그의 연구결과는 2002년 4월에야 세상의 빛을 봤다.

“지금은 우리를 비롯한 수십 개 연구팀이 100편 이상 논문을 냈기 때문에 누구도 의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처음 렁스3 유전자를 발견했을 때는 다른 학자들의 동의를 구하는 게 어려웠어요. 이젠 시간이 오래돼 기억도 가물가물 하네요(웃음).”





배석철 암 억제 유전자 기능 연구단장


"내 연구는 아직 진행 중"


배 교수는 2002년 위암과 렁스3 유전자가 관련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후 이 유전자가 방광암이나 폐암과도 관련돼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하지만 메틸기 몇 개가 붙어야 암이 발생하는지, 렁스3 유전자는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선 여전히 정확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배 교수는 연구가 더디지만 낙담하지 않는다.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일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다.

배 교수가 이끄는 암억제유전자기능연구단은 몸 안에서 쉽게 분해되는 렁스3 단백질도 연구 중이다. 렁스3 단백질이 분해되는 현상을 막으면 암을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실제 배 교수는 렁스3 단백질에 아세틸기(CH3CO)가 붙으면 단백질이 분해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암 치료에 한 발 다가간 셈이다.

하지만 렁스3 단백질만 콕 집어 아세틸기를 붙이는 기술개발은 넘어야할 산이다. 지금까진 아세틸기를 떼어내는 효소를 억제해 렁스3 단백질에 아세틸기가 많이 붙도록 했다. 그러다보니 렁스3 단백질뿐 아니라 히스톤 등에도 다수의 아세틸기가 붙어 문제가 됐다.

“DNA가 감겨 있는 히스톤에 아세틸기가 붙으면 DNA가 풀리기 때문에 전사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렁스3 단백질에만 아세틸기를 붙일 수 있을 지 연구 중입니다.”




"예방과 치료 일석이조 효과 노린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표적으로 삼는 현재의 항암제로는 암을 치료하는데 한계가 있다. 돌연변이 수만큼 약의 종류도 늘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배 교수는 “렁스3로 광범위하게 쓸 수 있는 항암제를 개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렁스3 유전자가 현재 발병하는 암 가운데 50% 정도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어요. 이 유전자에 메틸기가 붙지 않도록 하거나 렁스3 단백질에 아세틸기를 붙이면 그것만으로 암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배 교수는 암 예방도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렁스3 유전자에 메틸기가 붙는 속도나 수를 주기적으로 검사하면 암에 걸릴지, 안 걸릴지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
내과학상자담기  E-MAIL 프린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RSS

나도 한마디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목록


내 당근 보러가기

내 뱃지 보러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