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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상 위에 작은 슈퍼컴 하나

[창의세상]매니코어프로그래밍연구단 이재진 교수


‘듀얼 코어’는 최신형 PC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용어다. 컴퓨터에서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부품 속에 중앙연산처리장치(CPU) 2개가 들어있어 CPU 1개가 장착된 기존 컴퓨터에 비해 처리 속도가 30% 가까이 빨라졌다.

최근에는 4개의 CPU가 하나의 칩 안에 집적된 ‘쿼드 코어’가 나왔다. 머지 않아 ‘헥사(6개) 코어’, ‘옥타(8개) 코어’도 PC 시장에 선보일 것이다. 칩 하나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에 따른다면 말이다.

CPU의 성능은 지난 30여년 간 무어의 법칙의 따라 가파르게 향상돼 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혔다. CPU 클럭 속도가 3GHz가 넘어서자 전력 소모가 많아져 열이 많이 발생하고, 냉각 장치도 그만큼 더 가동해야 돼 전력 소모량이 더욱 많아지는 악순환이 일어났다. 여기서 3GHz는 초당 약 30억 회의 기본연산을 수행한다는 의미로 클럭은 CPU의 처리 속도를 말해주는 단위다. 이 같은 이유로 CPU 내부의 트랜지스터 수를 늘려 성능을 올리는 방식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이를 두고 ‘전력 장벽(Power Wall)’이라고 부른다.



이재진 매니코어프로그래밍연구단장.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ㆍsypyo@donga.com



해결책은 CPU 여러 개를 묶어 하나의 칩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CPU 한 개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키는 쪽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는 아예 CPU 여러 개를 이용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듀얼 코어, 쿼드 코어와 같은 ‘멀티 코어’라는 용어다. 중단될 뻔 했던 무어의 법칙이 멀티 코어라는 돌파구를 만난 셈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무어의 법칙에 따라 7~8년 안에 1000개 이상의 CPU가 손톱만한 칩 안에 집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슈퍼컴퓨터 수준의 성능을 내는 PC가 등장한다는 의미다.




멀티 환경에 맞는 소프트웨어 개발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장벽이 버티고 있다. 바로 ‘프로그래밍 장벽(Programming Wall)’이다. 하드웨어가 멀티 코어로 전환된다면 프로그램, 즉 소프트웨어도 바뀌어야 된다. 장비가 아무리 좋아져도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나 콘텐츠가 없다면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다.

기존 프로그램 대부분은 단일 코어(CPU 1개)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하지만 앞으로는 CPU 여러 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하다. 여러 명의 일꾼을 부리게 됨으로써 숙련된 일꾼 한 명을 부릴 때 고려하지 않아도 됐던 업무의 분배부터 효율까지 신경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른바 ‘병렬프로그래밍’이라는 골치 아픈 숙제가 생긴 셈이다.

이재진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매니 코어’에서의 병렬 프로그램을 연구하고 있다. 매니 코어는 하나의 칩에 8~16개 이상의 CPU가 집적되는 경우를 통칭하는 용어다. 이 교수는 일반 프로그래머들이 손쉽게 병렬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실행환경 개발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

만약 어떤 워드프로세서에 그림 크기 조절이나 도표 수정과 같은 기능이 없다면, 사진과 도표를 활용한 문서를 만들 때마다 원하는 위치와 모양에 맞추려고 애를 먹을 터. 마찬가지로 실행환경이 부실하다면 프로그래머는 멀티 코어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할 뿐 아니라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때마다 병렬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500만원이 들어 있는 통장이 있다고 하자. 한 사람이 400만원을 인출할 때 다른 사람도 그 통장에서 거의 동시에 200만원을 인출하려고 한다. 이 경우 먼저 400만원을 빼주고 통장 잔액을 100만원으로 만든 뒤 다음 업무인 200만원 인출에 응답하는 게 순서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결과를 낳거나 혼돈이 발생한다.

멀티 코어에서는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업무를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섬세하게 제어해야 한다. 이 교수는 “만약 이같은 일을 프로그래머가 일일이 신경써야 한다면 슈퍼컴퓨터 급의 고성능을 발휘하는 게임이나 멀티미디어, 실시간 기상예측, 각종 특수 목적의 시뮬레이션과 같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일은 요원해진다”고 말했다.




병렬처리 환경 패러다임 전환


이 교수는 학부시절 물리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3학년이 될 무렵 늘 마음 속에 품었던 전산학으로 방향을 틀었다. 중학생이던 1980년대 초반 8비트 컴퓨터에 빠져 프로그래밍과 게임, 그래픽에 즐거워했던 경험이 잠자던 그의 열정을 다시 일깨운 것이다.

이 교수는 졸업할 때까지 물리학과 전산학 전공과목을 모두 이수했다. 그가 학부시절 이수한 학점은 모두 169학점. 보통 학생보다 약 30학점이나 많다. 그가 10학기를 채우고 졸업한 이유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본격적으로 전산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석사과정에서 프로그래밍 언어 이론을 공부한 이 교수는 일리노이대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 연구 영역을 병렬처리로 바꿨다. 2002년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뒤에는 휴대전화와 같은 모바일 전자 기기에 쓰이는 임베디드 시스템에 매진했다.




매니코어 실행환경 개발을 위한 서버 장치.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ㆍsypyo@donga.com



그렇다고 병렬처리에 관한 연구를 완전히 놓은 것은 아니었다. 2005년 듀얼 코어가 나오고 이후 쿼드 코어까지 등장하자 이 교수는 ‘바로 이것’이라는 전율을 느꼈다. 박사과정이던 1990년대 후반, 당시 연구자들이 예상했던 그대로 현실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2007년부터 병렬처리 영역에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이후 이 교수의 연구는 지난해 10월과 올 2월 열린 컴퓨터공학 분야의 세계적 학술대회에서 연이어 인정받았다. ‘PACT 2008’에서는 병렬처리에서 메모리 작업 처리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실행환경 ‘COMIC’ 개발에 관한 논문이, ‘HPCA 2009’에선 멀티 코어에 붙는 캐시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논문이 각각 채택됐다.

두 학술대회에서 한국 연구진이 주도한 연구결과가 논문으로 채택된 사례는 최근 15년간 각각 3건에 불과하다. 그만큼 논문을 인정받기 힘든 저명한 학술대회다. 이 교수의 연구진은 그동안의 성과를 인정받아 올해 4월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에 선정됐다.




세계 소프트웨어의 표준 만든다


이 교수는 사업이 끝나는 2018년까지 매니 코어 프로그래밍에 관한 원천 기술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앞으로 매니 코어의 소프트웨어 환경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이미 미국 스탠퍼드대, 일리노이대 등 규모가 큰 연구단 세 곳이 이와 관련한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 교수는 “한국과 비교할 때 출발선은 비슷하다”며 “우리 손으로 만든 새로운 실행환경이 전 세계 소프트웨어 산업의 표준이 되도록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매니 코어가 과학계를 비롯, 산업 전반에 미칠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매니 코어에 적합한 프로그래밍 실행환경까지 갖춰진다면 거대한 슈퍼컴퓨터에서나 겨우 수행할 수 있는 복잡한 계산을 PC 규모에서 적은 비용으로 쉽게 처리할 수 있다. 매니 코어가 휴대전화와 같은 모바일 기기까지 확대된다면 파급 효과는 더욱 커진다.



::이재진 교수는::
1986~1991 서울대 물리학과 학사
1993~1995 미국 스탠퍼드대 컴퓨터과학과 석사
1995~1999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컴퓨터과학과 박사
1999~1999 미국 어바나샴페인 일리노이대 컴퓨터과학과 박사후연구원
2000~2002 미국 미시간주립대 컴퓨터과학과 조교수
2002~ 현재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부교수
2009~ 현재 매니코어프로그래밍연구단 단장




매니코어프로그래밍연구단은?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
이 교수의 교육 철학은 공자(孔子)가 말했던 이 문구로 정의할 수 있다. 공부는 재미를 느껴야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그 분야의 연구를 접거나 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공부의 재미는 단번에 찾아오지 않는다고 믿는다. 처음에는 어렵고 힘들어도 일단 뛰어들고 깊이 빠져들다보면 어느 순간 공부의 ‘참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참재미를 느끼기까지 이 교수는 “강하게 채근하는 채찍과 수시로 이뤄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매니코어프로그래밍연구단.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ㆍsypyo@donga.com

이 교수는 “거의 매일 연구원 각자의 연구 진행상황을 점검하고 때로 스파르타식으로 몰아 붙이기도 한다”며 “어떤 주제에 뛰어든 뒤 한 달 안에 최소한의 성과도 얻지 못하고 재미도 못 느꼈다면 과감히 다른 주제로 바꾸라고 조언한다”고 말했다.

1년 365일 밤 11시가 넘어야 연구실 불이 꺼진다는 매니코어프로그래밍연구단. 박사과정 6명, 석사과정 6명으로 구성된 연구단 식구들은 오늘도 꿈을 향한 발걸음으로 연구실을 밝히고 있다.

 

 

 

 



서영표 동아사이언스 기자 sypy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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