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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소재 가능성 연 문과생 출신 과학자




고분자 질량을 측정하기 위해 크로마토그래피 실험을 하는 모습. 사진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창의연구단 공동기획]김진곤 블록공중합체자기조립연구단장


[여기에 오기까지]문과에서 출발한 화학의 길

문과생이 화학공학과 교수가 됐다? 이야기 주인공은 블록공중합체 자기조립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김진곤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다. 본격적인 산업화가 이뤄지던 1970년대 초 그는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선택했다. 당시 그는 법대나 상대 진학을 목표로 했다.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은 은행원이나 법정에 선 변호사가 괜히 멋있게 보였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조치가 내려졌다. 2학년을 마치자 3학년부터 이과로 옮기게 된 것. 당시 서울 소재 명문대에 어느 고교가 몇 명의 학생을 보냈는지 경쟁적으로 따지던 비평준화 시절이었다. 단과대학이 별로 없어 상대적으로 경쟁률이 센 문과를 피하고 이과대학에 학생을 더 많이 입학시키고자 했던 학교측의 노림수였다.

김 교수를 포함해 문과에서 성적이 좋던 10여 명의 학생은 졸지에 이과생이 됐다. 특히 수학과 과학이 문과에서 배우던 것과 달라 애를 먹었다. 그래도 이과생이 된 것에 대한 후괴가 그리 크진 않았다. 1976년 김 교수는 서울대 자연대에 입학했다. 대학에 진학한 뒤 김 교수는 한때 문과 지망생이었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물리와 화학에 푹빠졌다. 물리 성적은 1학년 1, 2학기 모두 A, 화학은 A+였다. 물리보다 화학이 조금 더 끌렸다. 김 교수는 그렇게 화학의 길에 발을 들여놨다.




[어려움을 넘어]블록공중합체 연구, 외계인 쳐다보듯 해


김 교수가 두 가지 이상 고분자가 합성된 물질인 블록공중합체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폴리테크닉대 화학공학과 한창대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면서부터였다. 이 물질은 스스로 형태를 바꾸는 자기조립 성질을 갖고 있어 압력을 주면 다양한 구조로 변하게 할 수 있다.

당시 한 교수의 블록공중합체 연구는 시작 단계였다. 김 교수 역시 고분자를 원하는 형태로 만드는 고분자 가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터라 블록공중합체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 블록공중합체에 관한 이론만 연구하는데 꼬박 3년 반이 걸렸다. 그 사이 같이 유학 온 동기들은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금의환향하는 동기들이 부럽기도 했다. 이곳저곳 수소문해 다니며 실험 기구를 만들고 실험을 하느라 1년 반이 더 흘렀다. 5년 만에 김 교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

“블록공중합체는 공기, 습도가 조금만 있어도 반응을 안 합니다. 저는 거의 8개월 만에 블록공중합체를 처음으로 만들었어요. 아침에 반응을 시작하면 저녁때나 돼야 결과가 나오는데 매번 되는 게 아니다 보니 진이 빠지기도 했었죠.”

1991년부터 약 2년 6개월 정도 LG화학에서 근무하다가 김 교수는 1993년 말 포스텍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당시 한국에서 블록공중합체를 연구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고 기업도 이 물질을 만들지 않았다.

“1994년 제 연구실에 찾아온 한 학생이 묻더라고요. 블록공중합체를 왜 연구하냐고. 지금은 안 그렇지만 1990년대 초반만 해도 블록공중합체가 뭐냐며 외계인 보듯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나의 성공담]신소재 개발 가능성 열어


어려움도 잠시였다. 김 교수는 2003년 10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40~200도에서 나노 구조를 갖는 블록공중합체 ‘폴리스티렌-폴리펜틸메타크릴레이트(PS-PnPMA)’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 그전까지 특정 온도에서 나노 구조를 갖는 물질이 발견된 적은 거의 없었다. 이 연구결과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머티리얼스’에 실렸다.

PS-PnPMA에 자외선을 쬐면 PnPMA 부분이 사라진다. 김 교수는 ‘-PS-PnPMA-PS-PnPMA-PS-PnPMA-’로 이어지는 블록공중합체 구조물을 만든 다음 자외선으로 PnPMA 부분만 없앴다. 그러자 마치 치즈처럼 구조물에 구멍이 났다. 구멍은 전체 부피의 약 70%를 차지했지만 블록공중합체 구조물은 여전히 튼튼했다. 김 교수는 이 방법을 이용하면 바이러스 같은 작을 물질을 거르는 ‘필터’로 쓸 수 있을 거라 보고 있다.



한 연구원이 고분자중합체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또 블록공중합체의 전체 부피에서 구멍의 부피가 약 70% 이상이면 이 물질이 빛을 반사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이 성질을 이용해 무반사 코팅을 연구 중이다. 무반사 코팅은 들어오는 빛이 반사되지 않고 100% 모두 투과되는 현상을 말한다. 빛의 산란을 막기 때문에 LCD 같은 디스플레이 장치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기술이다.

모래시계와 유사한 기술도 연구 중이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좁은 관을 통해 일정한 속도로 매 시간 거의 비슷한 양이 떨어진다. 김 교수는 “블록공중합체에 약을 넣은 다음 블록공중합체 표면에 약물 분자보다 1.5배 정도 큰 구멍을 내면 모래시계처럼 약이 일정한 속도와 양으로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단은 블록공중합체 표면에 7~8nm(나노미터·10억 분의 1m) 구멍을 뚫어 3~4nm 크기의 성장호르몬이 일정하게 방출되도록 연구 중이다.




[블록공중합체의 미래상]첨단산업 이끌 나노 거푸집


1997년부터 전 세계에서 블록공중합체와 관련해 발표되는 논문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나노기술이 각광받으면서다. 옛날 청동검을 만들던 거푸집처럼 하나의 틀로 이용하되 크기는 나노미터 수준이기 때문에 정밀한 공정에 이용될 수 있다. 김 교수는 “반도체 메모리 집적도를 늘리거나 연료전지를 만드는데 활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블록공중합체는 여러 개의 고분자가 결합해 만들어진다. 결합한 상태에서도 원래 저마다 갖고 있던 성질을 잃지 않기 때문에 유용하다. 일례로 볼 수 있는 게 아스팔트다. 도로 포장재로 쓰이는 아스팔트는 여름에 녹아 찐득해지고 겨울에는 너무 굳어 깨지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아스팔트에 블록공중합체를 넣는데, 이 물질은 여름엔 아스팔트가 녹는 것을 막고 겨울엔 깨지는 현상이 나타나지 않도록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김진곤 블록공중합체 자기조립연구단장, 사진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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