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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연구단]물리가 사는 생물학

[여기에 오기까지]내 심장의 부동맥


“중학교 때 물상 선생님이 잘 가르쳐줬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물리, 수학 등 이과계열 과목을 좋아했습니다. 지금은 공학과 이학의 차이를 알지만 그 때만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을 했어요. 만약 그 때 공학을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웃음).”

유난히 물리에 관심이 많던 고등학생은 1982년 서강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좀 더 큰 곳에서 배우고 싶었다. 이듬해 그는 미국 노스이스턴대로 유학을 떠났다. 현재 세포동력학연구단을 이끌고 있는 이경진 고려대 물리학과 교수. 그는 “20세라는 어린 나이에 낯선 이국땅에 적응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문화적 차이가 컸고 언어도 문제였다.

“그래도 학교의 학구적인 분위기가 좋았어요. 이왕 미국에 왔으니 제대로 공부해보자고 생각했죠. 학부 3년 동안 물리 공부를 정말 많이 한 것 같아요. 성적도 좋았죠. 공부만 하느라 동아리 활동을 못 해본 게 조금은 후회되기도 해요.”




이경진 세포동력학연구단장. 동아일보 자료사진



‘학구파’ 이 교수는 이후 미국 오스틴 소재 텍사스대에서 비선형동력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비선형계는 선형계의 반대말이다. 예를 들어 작은 상자에 1을 넣으면 10이 나오고 2를 넣으면 20이 나오는 경우, 3을 넣으면 30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이 선형계다. 이와 달리 비선형계에서는 일정한 법칙이 없다. 상자에 넣으면 1을 10이 나오고, 2를 넣으면 4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카오스 이론, 나비효과 등이 대표적인 비선형계다.

지극히 물리적인 학문을 공부한 이 교수가 생명현상을 물리적으로 해석하는 생물물리학(biophysics)에 ‘꽂힌’ 건 1995년.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있을 때다. 고체물리학을 전공한 레이몬 골드스타인 교수, 생물학을 가르친 에드워드 콕스 교수와 함께 단세포생물인 아메바가 군집을 이룰 때 어떤 행동 패턴을 보이는지 연구한 게 생물물리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됐다.




[어려움을 넘어]세포배양조차 어려웠던 시절


당시 이 교수의 의욕은 차고 넘쳤다.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처음 연구를 시작하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때까지 물리만 공부해온 물리학도에게 생물학은 너무나 생소한 학문이었다.

“실험방법을 익히는 게 어려웠어요. 경험이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이었죠. 심장이나 뇌 현상을 물리적으로 설명하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연구를 진행하려니 여러 난관이 있더라고요. 뇌를 꺼내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고, 세포배양조차 제대로 못했으니까요.”

책을 사다 읽고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생물학을 조금씩 배워갔다는 이 교수. 그 때를 회상하며 잠시 미소는 짓던 그는 이내 농을 던진다. “지금은 연구실이 생물학 실험실처럼 바뀐 것 같아요.” 그의 웃음에선 어려움을 딛고 일어선 자의 여유가 묻어났다.

하지만 이 교수는 “생명체를 가지고 실험하는 일은 여전히 조심스럽다”고 말한다. 같은 생명체라도 환경에 따라 상태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 데이터를 검증해야 믿을 수 있는 연구결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아는 이 교수에게 생물학은 여전히 큰 숙제다.

“세포가 주변 환경에 민감해요. 또 세포마다 환경에 대한 반응이 다르죠. 그러다보니 실험을 여러 번 해도 확신할 수가 없어요. 물리학에서는 2~3번 실험한 뒤 검증하면 되는데 생명체를 통한 연구는 그게 힘들어요. 시간이 많이 걸리는 만큼 노력도 많이 들여야 됩니다.”







세포동력학연구단은 ‘토네이도 전기 활성’이 심실세동의 원인이란 사실을 밝혔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나의 성공담]토네이도로 심장을 이해하다


이 교수는 심장마비의 원인 중 하나인 심실세동이 심실 표면에서 생긴 불규칙한 전기 자극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 2004년 물리학 분야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다. 심실세동은 심장이 뛸 때 심실의 각 부분이 무질서하고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상태를 말한다.

심실세동의 시작은 심실 표면에 토네이도 모양으로 생기는 비정상적인 전기 활동. 정상인의 경우 우심실에 있는 박동원이 규칙적으로 뛰며 전기 자극을 만들고, 이 자극이 심장 곳곳에 전해져 심박동을 만든다. 토네이도 전기 활동은 이런 현상을 방해한다. 심장이 빨리 뛰게 하는 빈맥을 일으키다가 여러 개 작은 토네이도로 나뉘어 심실세동을 유발한다.

마치 수면 위에 여러 개의 돌을 던지면 곳곳에 파장이 이는 현상과 비슷하다. 이 상태가 되면 심장은 펌프질 하는 게 아니라 부르르 떨게 된다. 피를 제대로 순환시킬 수 없게 되는 것. 심장마비가 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토네이도 전기 활동의 세기가 달라지는 현상이 심실세동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가령 한 번은 강한 자극, 다음번은 약한 자극이 오는 식이다. 이로 인해 심장조직세포의 전위차가 심하게 변한다. 보통 세포 안과 밖의 전위차는 -50㎷(미리볼트·1㎷는 1000분의 1V)인데, 강한 전기 자극을 받아 심장이 한 번 뛸 때 전위차는 80~100㎷로 높지만 약한 전기 자극을 받으면 전위차가 20㎷로 뚝 떨어진다. 이 연구결과는 2007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렸다.




[세포동력학연구의 미래상]생명현상 해석하는데 도움 될 것


물리학자들이 생명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교수는 앞으로 생물물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세포의 특성을 조사한다 해도 그것이 실제 환경에서는 다를 수 있어요. 세포 사이의 상호작용, 세포 내 칼슘 농도 변화나 전위차 등 세포 상태는 환경에 따라 변하거든요. 물리학자의 접근방식이 생명현상을 설명하는데 기여할 바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세포동력학은 [세포 언어 연구]다


기러기는 V자로 무리지어 난다. 다랑어 무리는 빙글빙글 돌며 원운동을 한다. 이처럼 세포 군집도 여러 상호작용을 통해 다양한 행동을 보인다. 세포 사이의 칼슘 농도와 전위차가 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포동력학 연구는 세포 사이의 ‘언어’를 해석하는 셈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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