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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초 슬로시티 태평염전에 가다!


항암 성분이 많은 된장찌개가 암을 일으킬 수 있다? 지난 7월 발간된‘항암 식탁 프로젝트’란 책이 전국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대한암협회와 한국영양학회가 3년간 한국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의 항암 및 발암 효과를 정리해서 펴낸 이 책에는 된장찌개도 암을 유발하는 음식 리스트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전통음식은 무조건 몸에 좋다는 고정관념이 깨져 버린 셈이다. 무엇이 된장찌개를 암을 유발하는 음식으로 만들었을까. 전문가들은 그 속에 숨어 있는 소금, 그중에서도 짠맛을 내는 나트륨을 진짜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된장은 이소플라본 같은 암 예방 물질을 포함하고 있지만 너무 짜서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나트륨은 암뿐만 아니라 중풍, 당뇨, 고혈압 같은 질병을 유발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엔 유난히 맛이 짠 음식이 많다. 사람들은 한국인이 세계보건기구가 정해 놓은 나트륨 권장량의 2.5배나 섭취한다는 국민건강영양조사결과에도 무덤덤하다. 이쯤 되면 소금을 적게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소금을 먹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하지 않을까.

그 해답을 찾아 국내 최대 규모의 천일염 생산지인 전남 신안 태평염전을 방문했다. 햇빛, 바람, 물이 만나 느릿느릿 빚어내는 천일염은 99% 염화나트륨으로 만들어진 정제염과 달리 나트륨 함량이 적고 그 자리를 갯벌에서 나온 미네랄이 채우고 있다. 미네랄은 몸속에서 나트륨을 배출시켜 혈압을 낮춘다는데, 과연 천일염이 현대인의 건강을 살리는 소금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천일염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떤 효능을 발휘하는지 지금부터 그 참맛을 느껴보자.




이번이 벌써 두 번째다. 9월 2일 전남 신안군 지도읍 지신개 선착장에서 증도(曾島)로 들어가는 배를 타는 감회가 새로웠다. 날씨가 좋아야 할 텐데…. 두 달 전쯤에도 이곳에 왔다가 날씨 때문에 아쉽게 발걸음을 돌렸던 기억에 자꾸 하늘을 살피게 된다. 다행히 오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다.

2007년 아시아 최초로 슬로시티(slow city)에 선정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지 배에탄 사람 중에는 관광객처럼 보이는 사람도 몇몇 있다. 10분쯤 갔을까. 배가 증도의 버지선착장에 닿았다. 선착장 매점에서 담배 한 보루를 샀다. 진중환 소금장인에게 드릴 선물이다.



소금결정은 나트륨 이온(회색)과 염소 이온(연두색)이 이온결합을 하고 있다. 하나의 이온이 다른 이온 6개에 둘러싸여 있어 항상 일정한 육면체 모양을 이룬다.
슬로시티(slow city)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범지구적 운동. 슬로시티 국제연맹이 신청 지역을 직접 방문해 선정한다. 인구가 5만 명 이하인지, 생태계가 철저히 보호돼 있는지,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는지 등 24개 항목을 심사해 선정한다. 현재 전남 신안군, 담양군, 장흥군, 완도군, 경남 하동군이 슬로시티로 지정돼 있다.




선착장에서 차로 3분을 달리니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여의도 절반 면적(462만m2)인 땅에 반듯하게 구획된 염전 판 1000여 개. 제각각 태양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마치 거울로 만든 타일을 깔아 놓은 것 같다. 매년 국내 천일염 생산량의 6%인 1만 6000t의 소금을 생산해내는 태평염전의 위용은 다시 봐도 정말 대단했다. 오후 4시. 아직 작업하기엔 이른 시간인지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코에 익숙한 짠 내와,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광경이 두 달 전 모습 그대로였다.

소금장인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염전 바로 옆에 컨테이너로 지은 숙소에서 그가 나타났다. 땅땅한 체구에 걸걸한 목소리, 굵게 마디진 손과 검게 그을린 피부. 전형적인 이곳 염부(鹽夫)의 모습이다. 태평염전에서는 2004년부터 해마다 한 명씩 염전 일에 경험이 많은 염부를 장인으로 선정하고 있다. 경력 30년의 베테랑 염부 진중환 씨는 2008년 소금장인이다.











PM 5:00. 결정지에 소금 꽃이 가득 피어 있다. 소금결정은 물 표면에서부터 생기기 시작해 무거워지면 바닥에 가라앉는다.
소금장인에게 듣는 천일염 이야기
다시 만난 반가움도 잠시, 소금장인이 바쁘게 움직인다. 지금 시각은 해가 서서히 저물기 시작하는 오후 5시. 한쪽에선 염부 6명이 ‘대패’라는 나무 밀대로 염전 바닥에 깔린 소금결정을 긁어모으고, 소금장인은 염전에 바닷물을 새로 채워 넣고 있다. 염전 판에 다가가 소금을 관찰했다. 얕게 깔린 소금물에 반듯한 직육면체 모양을 한 소금 일부가 떠 있다. 소금을 조금 집어 힘을 줬더니 가루처럼 쉽게 으스러졌다. 맛은 어떨까. 윽! 짜다.

“그렇게 우유 빛깔이 나고 잘 으깨지는 소금이 좋은 소금이여. 먹어 봐. 끝 맛이 달제.”언제 왔는지 소금장인이 불쑥 말을 건넨다. 소금이 달다는 소금장인의 설명에 처음엔 머리를 갸우뚱했지만 다시 한 알을 입에 넣어 보니 그 의미를 알 것 같기도 하다. 일반 소금보다는 덜 짜면서 풍부한 바다 내음이 난다.

“저 끝에 큰 저수지 보이제? 저기에 바닷물을 가둬놨다가 저쪽 멀리 있는 염전에서부터 차례로 물을 실어 증발시켜 오는겨. 원래 바닷물은 소금 농도가 3% 정도 되는데 결정지에 올 때쯤 되면 22~25%까지 올라가지.”

안 그래도 이 넓은 염전에서 왜 가장 가까이에 있는 네 개의 판만 긁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소금이 생길 수 있는 염전 판은 결정지라고 따로 부른다. 나머지 판들은 모두 소금의 농도를 서서히 높여가는 증발지라고 한다. 얼추 세어 보니 저수지에서 나온 물이 자그마치 18단계나 거쳐결정지에 들어온다. 판과 판 사이에는 물꼬가 나 있는데, 소금물이 일정한 농도까지 증발하면 물꼬를 통해 소금물을 그 다음 단계의 증발지로 이동시킨다. 저수지의 바닷물이 결정지에 도착하는 데 보통 20여 일이 걸린다.







"천일염을 만드는 게 결코 쉬운 게 아니여. 햇빛, 바람, 물 모든 게 알맞아야 굵고 잘생긴 소금이 생기제." 진중환 소금장인이 소금결정이 생기는 과정을 진지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중간에 비라도 오면 어쩌죠?” 며칠 동안 애써 증발시킨 소금물이 빗물에 희석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됐다.“저기 염전 중간에 지붕 보이제? 저기가 함수 창고여. 비가 올 것 같다 싶으면 소금물을 전부 끌어다 창고에 보관허지.”

가까이 가서 보니 정말 지하실처럼 생긴 창고가 있다. 비가 오면 잠시 소금물을 저장했다가 비가 그치면 다시 염전 판으로 돌려보내는 소금물 창고다. 소금물을 저장하고 다시 돌려보내는 일은 염전 전체에 그물처럼 퍼져 있는 수로를 통해 이뤄진다. 비가 올지, 또는 언제 올지 미리 파악하고 소금물을 대피(?)시키는 노하우는 소금장인의 수십 년 경험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소금 꽃을 피우기 위해선 비만 피해서 되는 게 아니었다. 진 소금장인은 이를 “햇빛, 바람, 물 3박자가 맞아야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햇빛이 약하면 소금물이 제대로 증발하지 못해 결정이 생기지 못하고, 바람이 너무 세도 소금물이 자꾸 흔들려서 소금이 잘 안 생긴다. 소금물의 염도도 25~27%로 적당해야 소금 알이 굵게 생기지, 너무 높거나 낮으면 알이 가늘다.

이렇게 세 가지 조건이 다 갖춰진 상태에서 6~9시간을 기다려야 소금이 만들어진다. 날씨가 안 좋으면 며칠씩 더 기다리기도 한다. 이 작업은 4월 중순부터 10월 초까지 이뤄진
다. 그래 봐야 천일염을 제대로 수확할 수 있는 날은 1년에 90일 정도밖에 안 된다.









“햇볕이 예전만 못해. 10년 전만 해도 1년에 100일은 작업했는데, 요즘은 80~90일이 전부여. 염전 물에 발을 담그는 순간 딱 알제. 옛날엔 뜨거워서 발도 못 담궜는디, 요즘엔 하나도 안 뜨거워.” 기후변화의 영향이 이곳 증도까지 미친 것일까. 날씨는 계속 더워지지만 일조량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금장인의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다.

오후 6시. 해가 많이 기울었다. 바닥에서 긁어모은 소금이 칸마다 수북이 쌓였다. 염부들은 수레에 소금을 실어 염전 바로 옆에 있는 소금 창고로 옮겼다. 따라가 보니이미 창고엔 소금이 산처럼 쌓여 있었다. 눈처럼 하얀 금이 쌓여 있는 보물 창고 같았다.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는 기자에게 소금장인은 “천일염은 창고에 6개월간 보관하면서 결정체 속에 들어 있는 간수를 빼야 한다”고 설명했다. “간수를 빼지 않은 천일염은 쓴맛이 강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햇빛과 바람으로 말렸다고 다 똑같은 천일염이 아니다. 국산 천일염이 미네랄 함양이 높은 것은 비옥한 갯벌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 덕분이다. 오른쪽 사진은 갯벌에서 짠 바닷물을 흡수하며 자라는 식물 퉁퉁마디.


갯벌이 키워낸 미네랄 덩어리


간수가 쓴 이유는 채취한 천일염에서 물이 빠져나올 때 결정 속에 들어 있는 마그네슘 이온이 물에 녹아 함께 빠져나오기 때문이다. 천일염에는 마그네슘 외에도 칼륨, 칼슘 같은 미네랄 성분이 전체에서 4~6%나 들어 있고, 우리가 흔히 소금이라고 생각하는 염화나트륨의 비중은 80~85%에 불과하다.

과거엔 이런 미네랄 성분을 불순물이라고 생각해 제거하거나, 순수한 염화나트륨으로만 이뤄진 소금을 인공적으로 합성했다. 하지만 요즘은 미네랄이 고혈압, 심근경색 같은 심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나트륨 이온을 배설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미네랄이 풍부한 천일염은 오히려 건강한 소금으로 환영받고 있다.

놀라운 사실은 똑같이 바닷물을 햇빛으로 말려서 만든 천일염이라도, 국산 천일염이 외국 천일염보다 미네랄 성분이 3배 가까이 많다는 것. 전문가들은 천일염이 생산되는 비옥한 서해의 갯벌을 그 비결로 꼽았다.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인 서해안 갯벌은 마그네슘 매장지인 황해 주변 중국 해안과 가깝고, 육지로부터 엄청난 양의 식물성 유기물이 유입되는 지역이다.


PM 7:00 염전에 서서히 어둠이 깔린다. 소금을 모두 걷어낸 판은 물로 깨끗이 씻은 뒤 새로운 소금물을 채운다.

이런 갯벌 속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번식하고 있는데, 염도가 높아지면 소금 속에 미네랄을 뱉어 놓고 죽는다. “결정지에 가둬놓은 물이 미끌미끌한 이유는 미생물들이 짠물에서 견디기 위해 글리세롤이라는 특별한 성분을 만들기 때문”이라던 소금장인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증도의 태평염전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도 지정돼 있을 만큼 생물자원이 풍부하다.




염전을 떠나며
벌써 오후 7시. 이 얘기 저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염전에 해가 저문다. 동행한 사진작가는 빨갛게 노을 진 염전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바쁘다. 뭍으로 나가는 배 시간이 바싹 다가왔지만 이곳 증도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는 시곗바늘에 익숙해졌는지 서두르고 싶지 않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분다. 염부들은 넘어가는 해가 염전에 장관을 그려내는 데도 아무 관심 없다는 듯 오늘 수확한 소금을 꾸준히 창고로 나르고 있다. 우직하게 기다려온 태양과 바람의 결실이 창고에 그득히 쌓여간다. 햇빛과 바람과 함께 일하는 그들의 모습은 미련스러우면서도 평화롭다. 진정 슬로시티에 와 있음을 가슴으로 느끼는 순간이다.




조선 로켓, 팔만대장경에 쓰인 소금을 맛보다




소금박물관에 가면 소금의 이모저모가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다.규모가 크지 않아 부담 없이 볼 수 있다.

소금박물관은 1953년 태평염전이 처음 생겼을 때 지었던 소금 창고를 2007년에 박물관으로 개조한 건물이다. 이곳은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돌로 만들어진 소금 창고였다. 박물관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볼거리는 많다. 과거 염전에서 쓰이던 도구에서부터 소금과 관련된 다양한 속담까지, 소금이라는 한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내용은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소금의 다양한 쓰임새. 소금박물관에는 음식의 맛을 내는 식품으로서의 소금뿐만 아니라 무기나 건축, 의복 같이 생활 전반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소금이 전시돼 있다.

조선시대 로켓 화살포였던 신기전의 폭약을 제조하는 데 소금이 쓰였다는 점과, 옷감에 염색을 할 때 염료가 잘 흡수되도록 도와주는 매염제 역할을 소금이 해낸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팔만대장경이 보존된 해인사 창경각의 지반을 조성할 때도 해충을 막고 습기를 흡수하기 위해 소금을 사용했다고 하니 그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






여러 종류의 소금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소금은 바닷물을 가둬두고 햇빛에 수분을 증발시켜 얻는 천일염이지만 소금 중에는 소금 광산에서 캐낸 암염도 있고, 한때는 바다였던 지역이 지각변동에 의해 호수로 변한 뒤 물이 증발하면서 만들어진 호수염도 있다.

그 밖에 바닷물을 끓여서 채취한 소금인 자염, 바닷가 인근 지하수를 증발시켜 얻은 정염, 바닷물에서 염화나트륨만 분리해 만든 정제염 등이 있다. 현재 식용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소금은 암염과 정제염이다.

암염은 생산량이 많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지만 염화나트륨 함량이 99%를 차지하고 있어 다른 미네랄 성분은 거의 없다. 정제염 또한 바닷물에서 나트륨 이온과 염소 이온을 분리 추출해서 만든 거의 순수한 염화나트륨이다.

천일염이라고 해서 모두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호주나 멕시코에서 생산되는 천일염은 대규모 염전에 해수를 가둔 뒤 1~2년에 한 번씩 소금을 채취하기 때문에 염화나트륨 비중이 98~99%에 이른다.

반면 국산 천일염처럼 갯벌을 개조한 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은 생산 과정이 번거롭다는 단점이 있지만 미네랄 함량이 높다. 소금박물관은 증도 입구에 위치해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 관람료는 성인이 2000원, 소인은 1000원. 홈페이지 주소는 saltmuseum.org다.

 

 

 



| 글 | 신안=이영혜 기자 · 사진 김인규 ㆍyhlee@donga.com · imagemob@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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