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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저장용량 1000배 이상 늘리겠다”

[창의연구단] 박재훈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장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컴퓨터 저장용량 뒤에는 물리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 1990년대 이전의 컴퓨터 하드디스크는 금속판의 표면을 잘게 나누고 각 구역을 자석의 N극, S극으로 바꿔가며 0과 1(2진수)을 표현하는 방법을 썼다. 한 구역의 넓이가 워낙 작다 보니 N극과 S극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어 용량도 수백 메가바이트(MB) 정도에 그쳤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은 어쩔 수 없는 불가항력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프랑스 물리학자 알베르 페르가 1988년 거대자기저항(GMR) 기술을 개발한 뒤부터 이야기가 달라졌다. 알베르 페르는 자기화 방향이 서로 다른 얇은 박막을 겹쳐 붙인 뒤 전류를 흘려주면 매우 큰 전기저항이 생기는 현상을 발견했다. 이른바 ‘거대자기저항’(GMR, Giant Magnetoresistance)이다. GMR은 1기가바이트(GB) 이상 고용량 하드디스크가 등장한 기본 원리이기도 하다. 현재 거의 모든 컴퓨터 저장장치는 GMR 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알베르 페르는 이 연구 성과로 200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물리학자들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GMR 기술을 한 단계 뛰어 넘을 수 있는 신물질 개발을 넘보고 있는 것이다. 박재훈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가 이끄는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은 이 같은 신물질 연구에서는 국내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박재훈 포항공대 교수


원자 속 ‘전자’를 건드리면 미래가 보인다
물질의 표면에 데이터를 저장하는 방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박 교수는 크게 4가지 방법이 있다고 설명한다.

먼저 초창기 하드디스크처럼 금속 표면의 자성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전자기력을 사용해 물질의 표면 성질을 바꾸는 식이다. 두 번째로는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의 회전 운동을 이용한다. GMR 역시 이런 원리로 만들어졌다. 세 번째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도는 궤도를 조정하는 방법이다. 가령 타원궤도를 도는 전자는 0, 원형 궤도를 도는 전자를 1로 구분하는 식이다. 마지막으로 원자핵 주위를 도는 전자의 위치에 따라 데이터를 표현할 수 있다. 이들은 각각 전하, 스핀, 궤도, 그리고 격자로 불린다.

만약 이 4가지 특성을 한 가지 물질에서 모두 구현할 수 있다면 어떨까. GMR 기술만 해도 물질의 자기장(전하)과 전자의 회전 운동(스핀) 두 가지를 결합했을 뿐이다. 4가지 특성을 모두 구현할 수 있다면 데이터 저장 용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박 교수는 “GMR 기술로 이전보다 수천 배 더 많은 저장 용량을 손에 넣었다”면서 “4가지 특성을 모두 구현할 수 있는 신물질을 만든다면 저장 용량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가 이끄는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연구단은 이런 IT 혁신을 준비하는 현대의 연금술사 집단인 셈이다.

현재 신물질 후보로는 다중강성 물질(다강체)이 있다. 다강체는 필요에 따라 N극, S극을 바꾸어 줄 수 있는 강유전성과 자석과 동일한 성질을 갖는 강자성 등 상반되는 두 가지 특성을 지녔다. 지금까지 개발된 다강체로는 터븀망간산화물(TbMn2O5)이 대표적이다.

이런 물질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대부분 순수한 자연물질을 산소와 반응시킨 산화물인 경우가 많다. 물질이 산화되면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로 바뀌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이 산화돼 모래가 되거나, 알루미늄이 산화돼 루비가 되는 것과 같은 식이다. 연구단은 요즘 이런 산화물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포항방사광가속기는 필수장비
연구단이 산화물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장비는 바로 거대한 가속기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원자 내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기 위해서는 지름이 80m에 이르는 큰 가속기가 필요하다. 연구단은 포스텍에 있는 포항방사광가속기를 100% 활용하고 있다.

‘빛공장’이라고도 불리는 방사광가속기는 원자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분석 장비다. 연구단은 이 분석 장비로 원자 내부의 전자가 전하-스핀-궤도-격자의 4가지 움직임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목적이다. 다양한 산화물을 만든 뒤 이 산화물이 터븀망간산화물처럼 다강체의 성질을 갖는지 살펴보기 위해서 방사광가속기를 ‘현미경’으로 사용하는 셈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빛을 산화물에 쬔 뒤 산화물의 구조를 분석하면 된다. 연구단은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오는 많은 빛 중에서도 물질투과에 유리한 X선을 자주 활용한다. X선을 스프링처럼 구부리거나 물결무늬로 만들기도 한다. 산화물의 구조를 더욱 정확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다.

올해 출범한 신생 연구단이지만 벌써 세계적으로 입소문이 나고 있다. 2006년부터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에 3편의 논문을 게재하는 동 지금까지 SCI급 논문 7편을 게재했다. 현재 2편의 논문은 준비 중이다. 박 교수는 이런 성과로 4월 한국물리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 박재훈 교수 약력
1981 ~ 1985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1985 ~ 1987 :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석사
1987 ~ 1994 : 미국 미시간대 물리학과 박사
1994 ~ 1996 : 미국 루센트 테크놀로지 연구원(AT&T Bell 연구실)
1996 ~ 1999 : 미국 브룩헤븐연구소 연구원
1999 ~ 현재 : 포스텍 물리학과 조교수, 부교수
2009 ~ 현재 :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연구단장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연구단. 사진제공 박재훈 포항공대 교수
상호결합복합기능성물질 연구단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라. 창의력은 적극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다.”

박 교수가 연구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그는 “박사과정 학생을 포함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대부분은 적극성과 도전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박 교수는 “연구단 제자들을 지도할 때도 항상 질문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연구과정에서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어떤 실험을 어떤 순서로 했는지 묻고 또 묻는다. 스스로 생각하고 대답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아직 젊은 연구자들이다 보니 모르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합니다. 중요한건 부족한 지식을 스스로 찾아내고 보충할 수 있는 능력이죠. 그래야 연구도 자발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 너무 숫기가 없어요.”

IT 신소재 개발의 첨병을 맡고 있는 상호결합기능성물질연구단의 철학은 ‘자신감’ 이다.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내야 한다는 박 교수. 그의 말 속에 IT 강국 대한민국의 또 다른 미래가 엿보인다.

박사후연구원 1명, 박사과정 7명, 석사과정 3명으로 구성된 연구단은 올해 4월 창의적연구진흥사업단에 선정됐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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