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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리면 아프게 하는 유전자, 부셔버리겠어~”

[창의연구단] 양영덕 통증발현연구단 박사후연구원


“만지면 느낌이 오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으세요? 제가 연구단에 들어와서부터 계속 그 이온채널을 찾고 있거든요. 때리면 아프게 하는 유전자, 꼭 찾아서 통증을 줄일 수 있게 할 겁니다.”

통증의 뿌리를 연구하는 서울대 통증발현연구단. 이곳에는 6년간 ‘기계적 자극에 의한 이온채널’을 찾고 있는 한 연구원이 있다. 주인공 양영덕 박사는 원래 유전 공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연구영역을 넓히고 싶어 2001년 통증발현연구단과 인연을 맺었다.

유전공학에서 약학과로 전공을 옮긴데다 신경생물학 분야 중 가장 말초에 존재하는 이온채널, 그 중에서도 통증과 관련된 이온채널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연구하느라 처음에는 좀 애를 먹었다. 그러나 이제는 통증의 근원을 찾는 실험이 익숙한 일상이 됐다.

“이온채널은 세포 안팎으로 이온을 통과시키는 막단백질입니다. 우리가 오감을 느끼고 걷거나 뛸 수 있도록 신호를 주고받게 해주는 통로인 셈이죠. 제가 관심을 갖는 기계적 자극에 의한 이온채널은 촉각의 원리를 찾는 것인데요, 30년 동안 연구자들이 찾고 있는데 아직 밝혀내지 못했어요.”



양영덕 통증발현연구단 박사후연구원

 



우리가 손으로 무엇을 만지거나 물체에 부딪쳤을 때 자극을 느끼게 된다. 이 역시 이온채널에 의해 조절되지만 30년 넘게 아무도 이 원인 유전자를 찾아내지 못한 것. 화학물질 자극은 반응 물질의 경로를 찾아 연구할 수 있지만 기계적 자극은 직접적인 물질이 없어 연구가 매우 어렵다.

“그 유전자를 찾는데 4년을 투자했는데 실패했습니다. 심증이 가는 유전자가 있는데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거든요. 그 때 정말 큰 슬럼프가 왔는데 교수팀 두 분 덕에 훌훌 털고 일어났습니다.”

양 박사를 일으켜준 멘토는 경상대 홍성근 교수와 오우택 단장. 홍 교수는 “실패를 모른다면 나중에 실패하는 제자들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실패는 나중을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그를 다독였다고 한다. 오 단장은 반대로 혼을 냈다. 덕분에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세계 최초 염소이온채널 유전자 밝혀
기계적 자극에 의한 이온채널을 잠시 뒤로 하고 양 박사는 다른 연구에 집중했다. 2년 동안은 새벽 1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을 정도로 연구에 몰두했다. 그리고 작년 여름 아노원(ANO1)이라는 유전자를 찾아 네이처에 보고했다. 이 유전자 역시 세계의 과학자들이 30년간 찾으려 했던 것이다.

아노원은 체내의 침이나 눈물, 땀 등을 분비하는 데 관여하는 염소이온채널의 유전자다. 염소이온채널은 세포 내 염소이온의 이동을 조절해 신경세포나 근육세포의 전기적 흥분성을 조절하는 통로다.

특히 칼슘(Ca2+)으로 활성화되는 염소이온채널(CaCC)은 상피세포에서의 분비나 신경세포의 흥분성을 조절한다. 생물학적 기법으로 ‘TMEM16A’라는 유전자가 염소이온통로라는 것을 세계 최초로 발견한 것이다. 연구결과는 네이처 2008년 10호에 기조논문형태로 게재됐다.

“우리 인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고 잘못하면 낭포성 섬유종 등의 질병도 생기는 것인데 한국인이 찾아냈다고 하니까 네이처에서 안 믿더라고요. 그래서 리뷰어(reviewer)들의 질문이 A4 용지 10장에 빡빡하게 왔습니다. 그렇게 8개월 정도 수정본이 오간 뒤 우리 성과를 인정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연구단이 논문을 낸 2주 후에 사이언스에 같은 결과가 게재된 것. 그 논문이 게재된 지 1주 후에는 셀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양 박사는 “조금만 늦었다면 큰일날 뻔 했다”면서도 “우리의 결과를 검증해준 것 같아 고마웠다”고 말했다.




통증발현연구단은 신경세포와 피부세포에서 흥분을 조절하고 수분분비에 관여하는 ‘아녹타민 1’ 유전자를 발견해 지난해 8월 영국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당시 연구 결과는 백인들이 많이 걸리는 희귀 불치병 ‘낭포성 섬유증’ 치료제 개발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 데이터미팅 없는 포닥 생활이 부럽다고요?


그런데 이렇게 세계적인 연구를 자주 발표하는 통증발현연구단에는 ‘데이터미팅’이 없다. 양 박사도 데이터미팅이 없는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에 처음에 적응하는데 애를 먹었다.

데이터미팅은 연구팀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모여 각자의 실험결과를 공유하는 시간이다. 한 번 시작하면 2~3시간은 기본이고 심하면 6시간 정도 걸리는 경우도 있다. 이 시간을 통해 정보 공유는 물론 연구방향의 결정까지 이뤄지기 때문에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거의 모든 연구팀이 데이터미팅 시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통증발현연구단은 처음부터 데이터미팅이 없었다. ‘창의적인 연구는 틀에 박히고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나올 수 없다’는 오우택 단장의 확고한 생각 때문이다. 대신 오 단장은 일상생활에서 데이터미팅을 유도한다. 실험실 가운데에 있는 커다란 화이트보드 앞에서 연구원 한 명과 자유로운 대화를 시작하면 연구단 전체의 시선이 집중되다가 이내 자유로운 토론이 이뤄지는 식이다.

“데이터미팅이 없는 실험실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에 속합니다. 사실 그 시간은 저를 비롯한 연구원들에게는 무척 괴로운 시간이거든요. 칭찬을 받기보다는 꾸중을 듣기가 쉬우니까요. 그래서 옆 연구단에서는 무척 부러워해요. 하하.”





이 연구단은 데이터미팅 대신 저널클럽을 운영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세계 최고저널에 게재된 논문을 연구해 발표하고 연구동향을 살피는 시간이다. 최근 동향을 보면서 실험에 필요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양 박사의 설명이다.

특히 통증발현연구단은 이온채널 유전자를 복제하면서 세 번이나 외국보다 늦게 결과를 냈던 아픈 기억이 있다. 연구단이 미국 국립생물정보센터(NCBI)에서 공개된 유전자은행의 정보를 활용하고 있을 때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파타푸티안 박사팀은 미국 셀레라 제노믹스의 정보를 이용해 연구단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와사비의 매운맛을 감지하는 TRPA1 유전자를 밝혀낸 것이다.

양 박사는 “우리 연구단이 세 번이나 늦게 결과를 내면서 정보력의 한계를 느꼈다. 게놈프로젝트가 끝난 만큼 앞으로는 정보력이 연구의 관건이 될 것”이라며 “저널클럽을 통해 해외 우수연구들을 보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 등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 “새 치즈로 옮겨가서 그것을 즐겨라”


“재미있는 강의를 하고 싶은 게 먼 미래의 제 꿈입니다. 어떤 세미나에서 들었는데 젊었을 때는 연구를 열심히 하게 되고, 늙으면 강의를 준비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아직 젊으니까 열심히 연구하고 기회가 되면 재미있는 강의를 하고 싶습니다. 아직 기계적 자극에 의한 이온채널을 찾아야 하니까요.”

앞으로의 비전을 묻자 양 박사는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라는 책을 내민다. 그는 “꿈꾸는 사람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가 책에 다 나와 있다”고 말했다. 마법의 치즈를 먹으면서 꿈을 꾸는 주인공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희망을 찾았으며, 과거에 얽매지 않아 새 치즈를 발견할 수 있었다. 또 옛날 치즈를 빨리 잊고 새 치즈로 옮겨가서 그것을 즐겼다.

양 박사는 “원하는 치즈를 상상하면 결국은 그것을 얻게 되는 것이 세상”이라며 “하는 일을 즐기며 열심히 살면 성공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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