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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의 솔직한 자기소개서

‘건강 알림이’ 7형제와 피부색


| 글 | 조유경 가톨릭 의대 소화기내과 교수 · 이정아 기자 ㆍykcho@catholic.ac.kr · zzunga@donga.com |

사찰에 가보면 화장실 대신‘해우소’라는 간판을 볼 수 있다. 근심과 걱정, 번뇌를 한꺼번에 푸는 곳이라는 뜻이다. 음식물 소화가 끝나고 쓸데없는 찌꺼기와 몸속에 침투한 병원균을 대변으로 내보내는 곳이니 전혀 틀린 말은 아닌 듯싶다.

그런데 대변으로 오염이나 에너지 문제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세계 곳곳에서는 코끼리나 캥거루 같은 초식동물 배설물 안에 많이 들어 있는 셀룰로오스를 분리해 종이를 만든다. 동물과 사람이 배설한 대변으로 전기를 생산하는 일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과 한진중공업이 공동으로‘축산 바이오가스 생산 시스템’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맛과 향이 최고급인 루왁 커피는 사향고양이가 잘 익은 커피열매를 골라 먹고 배설하면, 대변에서 커피 씨앗만 가려내 만든다.

그런가 하면 대변에서 나는 불쾌한 냄새는 재스민에서 나는 향기와, 구성성분이 비슷하다. 대변 냄새를 유발하는 인돌은 농도가 짙을 땐 불쾌한 냄새를 만들지만, 농도가 옅을 때는 꽃향기가 난다. 쓸모가 없어(?) 바깥으로 버려지는 대변은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변신을 한다. ‘꽃보다 똥’이라고 느낄 만큼 대변의 화려한 모습을 만나보자.

기획·진행 이정아 기자 zzunga@donga.com | 디자인 유한진 mojjiron@donga.com | 일러스트 박장규 thinkfish@msn.com




이름 대변. 일명 ‘똥’



외모 키는 때에 따라 다르고 몸무게는 100~200g 정도. 잘 빠진 몸매에 비해 얼굴은 ‘대략난감’하다.

사는 곳 사람 몸속 대장 안. 곧 출가 예정.

취미 장 속 여행. 입에서 항문까지 9m나 되는 먼 길을 남자 몸에서는 50시간, 여자 몸에서는 57시간 동안 이동한다. 바깥세상으로 나가면 빙글빙글 물 미끄럼틀을 탈 수 있다는 말에 잔뜩 기대하고 있다.

특기 사람 불쾌하게 만들기. 사람들은 나만 보면 코를 쥐고 눈살을 찌푸린다. 나를 몸속에 만들어 넣고 다닐 때는 언제고, 왜 밖에서 만나면 다들 싫어할까. 그런데 “장이 건강해야 오래 산다”는 말을 아는가. 내가 황금색으로 탄탄하게 만들어져서 바깥으로 나와야 몸에 독소가 덜 쌓이고 건강하단 얘기다. 그렇지 않으면 뱃속이 불편한 것은 물론, 몸속에 독소가 많이 쌓여 쉽게 피로해지고 결국 온갖 병의 근원이 될테니까. 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내가 정상적으로 바깥에 나가는 일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면 모두들 내가 더러워도 더 이상 하찮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가장 많이 듣는 말
“에잇, 더러워” “아유, 냄새 나” “보기 싫어” 등. 하지만 내가 며칠만 안 보여도 다들 전전긍긍할 만큼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출생의 비밀


나는 예전에는 먹음직스럽게 생겼었다. 믿거나 말거나~. 사람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 중 하나인 식사시간, 음식을 먹으면 침에 있는 아밀라아제가 탄수화물을 잘게 자르면서 소화가 시작된다. 위는 위액을 분비하면서 식도를 타고 내려온 음식물을 주물럭거리면서 위산과 섞는다. 위액은 강한 산성으로 세균을 죽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펩신이 단백질을 잘게 부순다.

위산과 섞인 음식물, 즉 유미는 소장으로 이동한다. 위의 뒤에 있는 이자는 단백질과 지방, 탄수화물을 분해하는 소화효소를 소장으로 분비한다. 이때 대부분의 영양소가 소장 안쪽에 털처럼 나 있는 수많은 미세융모로 흡수돼 혈액으로 들어간다.

소화과정을 거친 음식물은 마지막으로 대장으로 이동하는데, 여기가 내가 태어나서 사는 곳이다. 대장은 영양소가 거의 빠져 버린 음식물에서 수분을 흡수하고 콜레스테롤이나 담즙산, 호르몬 등을 이루는 스테로이드를 흡수한 뒤 간으로 보내 재순환시킨다(장간 순환). 결국 나의 정체는 흡수되지 않은 음식물 찌꺼기와 세균 등이 뭉쳐진 덩어리다. 음식물로 들어와 내가 태어나기까지 50여 시간이 걸린다. 하루에 대개 1번씩 태어난다.




가장 친한 친구
나의‘절친’은 물이다. 몸속에서 약 9m를 여행하다가 만난 친구인데, 내가 예쁜 몸매를 유지하게 도와준다. 가끔은 우정이 너무 뜨거워서 내가 팥죽처럼 묽어지기도 한다. 물은 음료나 음식을 통해 소화기관으로 들어오거나 침이나 위액, 이자액, 쓸개즙, 십이지장액처럼 몸속에서 태어나기도 한단다. 위와 장에서 살고 있는 걔네 가족을 모두 합하면 9~10L나 된다. 그중 약 99%는 소장과 대장에서 흡수되는데, 소장에서 약 8.5L가 흡수되고 대장으로 약 1.5L가 들어간다.

거의 모든 물 가족이 소장이나 대장에 머무르기 때문에 나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물은 겨우 0.1L 정도다. 만약 우리 집(대장)에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감염원, 독소처럼 몸에 해로운 물질이 있다면 더 많은 물이 나를 도와주러 달려온다. 나와 함께 해로운 물질을 바깥으로 내보내 사람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장에서 살고 있는 세균의 모습. 장내세균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부티르산염, 아세트산염 같은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든다

 

 


외모 중 가장 자신 있는 부분
바로 피부다. 매끄럽게 윤기가 나는 것은 물론 색깔도 고귀한 황금색이다. 내가 타고난 멋쟁이라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우리 대변의 피부색은 주인의 건강을 나타내는데, 황금색이 가장 건강하다는 증거다.

가끔 몸이 까만 변들이 있는데, 이는 식도, 위, 그리고 소장 윗부분인 십이지장 부위(상부 위장)에서 출혈이 일어나 혈액이 위산과 섞인 결과다. 적혈구에 있는 헤모글로빈이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과 반응하면 어두운 색을 띠는 헤마틴으로 변해 대변에 섞이기 때문이다.

빨간 변들은 소장이나 대장, 직장 부위(하부 위장)에서 출혈이 일어났음을 알린다. 혈액이 위액과 섞이지 않아 여전히 핏빛을 띠기 때문이다(혈변). 그 외에도 유미가 우리 집을 너무 빨리 지나가 쓸개즙이 충분히 흡수되지 않으면 그대로 배설돼 녹색이 되거나, 간질환이나 담도폐쇄 질환을 앓는 경우에는 회색인 애들이 있다. 사람들에게 건강 이상 유무를 알릴 수 있으니 우리 대변들의 피부색은 중요하고 특별하다.





 



사람의 소화기관


입에서 탄수화물이 분해돼 위에 도착한 음식물은 위액과 섞여 단백질이 분해된다. 음식물은 십이지장으로 이동해 이자액, 쓸개즙과 섞인다. 이자액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을 분해한다. 쓸개즙은 간에서 만들어지는데, 지방을 부드럽게 만들어 소화를 돕는다. 소장에서 지방과 탄수화물이 분해되고, 대장에서 수분이 흡수되면 대변이 탄생한다.



가족 소개


우리 대변 형제는 모두 7명인데, 어떤 조건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모양과 크기, 굳기 등이 전혀 다르다.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굳었는지, 일주일에 몇 번이나 나오는지, 얼마나 많은지 등에 관심이 많다. 얼마나 단단한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고 우리가 장을 얼마나 빨리 통과했는지 판단한다는 뜻이다.

1997년 영국 브리스톨대 케네스 히튼 박사는 우리가 장 안에 오래 있을수록 단단해진다는 사실을 고려해 우리 7형제(브리스톨 대변형태 척도)를 굳기와 형태에 따라 분류해‘스칸디나비아 위장병학 저널’에 발표했다.

우리 집에서 가장 오래 버틴 터줏대감 첫째 형은 키가 호두알처럼 짤막한데다 딱딱하게 굳었다. 둘째 형은 키는 소시지처럼 크지만 첫째 형만큼 딱딱하다. 사람들은 두 형이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데 까다롭게 굴 때를 변비라고 부른다.





나랑 가장 친한 셋째 형은 둘째 형과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부드럽다. 나는 넷째로 성격이 가장 온화하다. 외모도 가장 매끈하게 잘빠졌으니 7형제 중 사람들에게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스타일이라 자부할 수 있겠다. 나는 바깥으로 나가기 전에 사람에게 미리 나가고 싶다는 신호를 보내는 편이다. 또 주인이 의식적으로 힘을 주지 않아도 쑥쑥 빠져나간다.

내 동생들도 나처럼 성격이 온화한 편이다. 하지만 너무 물러 터져서 걱정이다. 다섯째는 바깥으로 나가자마자 뚝뚝 끊어지면서 부서진다. 설사라는 별명을 가진 여섯째는 더 물러서 진흙처럼 생겼다. 가장 걱정되는 건 막내다. 주로 식중독이나 콜레라에 걸린 환자 몸속에서 나오는 막냇동생은 그마저도 형체가 없다. 마치 미숫가루를 탄 물처럼 묽다.

내가 다른 형제들에 비해 월등히 인기가 많은 이유는 역시 바깥으로 나오는 속도다. 병원에서는 우리가 장을 얼마나 빨리 통과하는가를 정확하게 측정하려고 방사선 비투과성 표지자를 이용한다. 주인이 방사선 비투과성 표지자가 든 캡슐을 20개 정도 복용한 뒤, 5일이 지나면 복부를 X선으로 찍는단다. 방사선 비투과성 표지자가 20%(4개) 미만이 남아 있어야 내가 제때에 집에서 독립한다고 판독한다.






이미지

 


브리스톨 대변형태 척도 전문의가 사용하는 대변형태 분류. 제1형과 제2형은 장을 느리게 통과하고(변비), 제6형과 제7형은 빠르게 통과하지만 너무 묽다(설사). 제3형과 제4형, 제5형이 이상적인 대변이다.


고마운 존재


나를 키운 건 8할이 장내세균이다.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은 식구가 많아 언제나 득실득실 붐빈다. 약 10조~100조 마리가 있으며 400여 가문이라고 하니 대단하다. 산소를 싫어하는 세균이 가장 많고 발효균인 효모도 있다.

장내세균은 주로 윗방(대장 윗부분)에서 산다. 거기에 맛있는 탄수화물이 많아서다. 그들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에너지를 얻는다. 그래서 윗방에서 발효가 많이 일어나며 수소이온농도(pH)도 낮아져 산성을 띤다.

장내세균은 탄수화물을 발효시켜 부티르산염, 아세트산염, 프로피온산염처럼 분자를 구성하는 탄소가 2~4개인 ‘짧은 사슬 지방산’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 물과 수소, 이산화탄소 등이 발생해 장운동을 자극시키고 덩달아 나도 바깥구경을 나간다. 우리 집의 벽을 이루는 대장세포는 짧은 사슬 지방산을 영양소로 이용한다. 결국 장내세균과 대장세포는 서로 돕는 관계다.




내가 가야 할 길


집(대장) 안에서 장내세균들과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곧 바깥으로 나가야만 한다. 만약 내가 대장 안에서 오래 머물면 어떤 일이 생길까. 사람들은 우리한테 독소가 있어 몸이 피로해지고 질환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게 독소가 정확히 발견된 적도 없고 실험적으로 입증된 적도 없다.

물론 내가 태어나는 과정을 잘 살펴보면 정상적으로 바깥에 나가는 일이 사람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우선 우리가 만들어지기 전단계인 유미를 생각해보자. 유미가 대장을 통과하는 시간은 소장을 통과하는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 유미가 소장을 천천히 통과하면 소장에서 영양분이 흡수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대장으로 들어오는 유미의 흐름도 줄어든다. 유미가 장을 조금씩 지나가면 대장 끝부분에 있는 짧은 사슬 지방산의 양이 적어지고, 유미가 충분히 지나가야 짧은 사슬 지방산이 생기는 양도 많아진다.

 


장 운동이 느린 변비 환자의 대장을 X선으로 촬영한 사진. 대장 윗부분(사진 왼쪽)에 동그란 방사선 비투과성 표지자가 여러 개 관찰된다.

장내세균들에게 직접 물어보니 짧은 사슬 지방산은 대장세포를 튼튼하게 만들어 암 같은 위장관 질환이나 심혈관 질환에 걸릴 확률을 줄인다고 한다. 대장을 산성으로 유지해 병원균의 활성을 억제하기 때문이라나. 특히 대장세포의 주요한 에너지원인 부티르산염은 대장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지 않게 해 대장암의 위험도를 낮춘다고 하니 우리 집에서 장내세균들이 우쭐대는 이유도 알 것 같다.

우리가 독소는 아니지만 대장에서 너무 오랫동안 머물면 사람에게 악영향을 준다는 생각에, 어서 빨리 바깥으로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내가 나가고 싶다고 신호를 보낼 테니 미루지 말고 화장실로 향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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