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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조원’ 벌어온 과학자 콤비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짓고 있는 신고리원자력 1, 2호기. 출처: 한국수력원자력

 


최영상 한수원 전 센터장, 오승종 실장…한국형원전 개발 주도


“자네, 원자력을 공부 했다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자랑하는 ‘하나로’ 실험용 원자로 출입구에는 누렇게 바랜 흑백 사진 한 장과 함께 이 문구가 선명하게 박혀 있다.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7년 국내 첫 원자력 행정부서인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 원자력과 윤세원 박사를 경무대로 불러들인 후 처음 꺼낸 말이었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윤 박사가 백방으로 뛰어다닌 결과 2년 후인 1959년 국내 첫 연구용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II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원자력 연구개발이 처음 시작된 것이다. 과학자들이 윤 박사를 ‘원자력의 선구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로부터 50년. 27일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아랍에미리트(UAE)의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대통령(아부다비 왕)과 힘차게 악수했다.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 ‘3세대 한국형 표준원자로(APR1400)’를 400억 달러(약 47조 원)에 팔게 된 것이다.





승용차 200만대에 달하는 수출가격도 놀랍지만 한국이 연구개발 50년만에 독자적인 원전기술을 개발하고 수출까지 해 ‘에너지 기술강국’으로 발돋움 했다는 의미가 더 크다. 앞으로 한국은 원전시장을 적극 개척해 ‘에너지 수출국’ 입지를 다져나갈 계획이다.

이런 APR1400 연구개발 사업엔 매년 평균 300명의 전문인력이 투입됐다. 전문화 된 파트별로 ¡Ç주역¡Ç이라 불릴 만한 사람도 수없이 많다. 이런 수많은 주역들 중 누구보다 APR1400 개발에 앞장선 사람은 누구일까.

APR1400의 개발에 직접 참여했던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열수력안전연구부장은 서슴없이 두 사람을 꼽는다. 최영상(62) 전 한국수력원자력 신형원전개발센터장(현 미래와도전 고문)와 오승종 한수원 운영기술실장이다. 윤 박사가 한국에 원자력 기술을 도입한 선구자라면 이 두 사람은 한국형 3세대 표준원자로를 만들어낸, 기술자립의 선구자인 셈이다.




한전의 현장형 연구자… 최영상 한수원 전 센터장


APR-1400은 1994년 12월부터 개발이 시작됐다. 핵심 기술과 설계는 2002년경 완료돼 한국원자력연구원과 공동으로 2005년까지 안전성평가를 마쳤다. 이 기술을 바탕으로 신고리 3·4호기, 신울진 1·2호기 등 총 4대의 원전을 짓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안정성 등 몇 가지 기술을 꾸준히 가다듬고 있는 ‘현재 진행형’ 기술이기도 하다.

최 전 센터장은 이런 APR1400 개발과정을 모두 머릿속에 담고 있는 핵심인물이다. 2005년 여름 원자로 연구개발을 마치고 한수원을 퇴직했다. 지금은 한수원을 퇴직하고 원자력관련 분석전문 벤처기업인 ‘미래와 도전’ 기술고문을 맡고 있다.

그는 1994년 사업이 처음 진행되던 당시부터 기획과 사업조정, 기본설계과정 등에 모두 조정하고 추진해 온 총괄사업책임자. 박사급 인재가 즐비한 한국전력에 학사학력으로 1969년 입사한 이후 현장을 뛰며 연구와 실무를 모두 맡아왔다.

백원필 원자력연 부장은 최 전 센터장에 대해 “APR1400의 산 증인”이라며 “최 전 센터장님 같은 인재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라고 소개했다.





최 전 센터장은 1984년 초까지는 발전소 운전 및 건설 등을 설계하고 지휘하는 일을 맡았다. 이런 현장경력을 인정받아 한국수력원자력이 한전으로부터 분사한 1984년 중반부터 그는 연구개발자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1994년 12월, 최 전 센터장이 APR1400 연구 책임을 맡기에 이른다. 학사 학위 학력으로 책임연구원 역할을 맡는 일은 기업과 공공기관을 통털어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최대 500명이 넘는 참여인력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며 “날 보고 APR1400 개발의 주역이라고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노력한 성과일 뿐”이라며 개발당시를 회고했다.

최 전 센터장은 “초기 사업결정 당시 기존의 경수로형 원자로를 개량, 발전하자는 의견과, 폭발사과 방지 성능이 강화된 피동형 원자로를 놓고 갑론을박이 많았다”면서 “지금 생각하면 언제까지 개발이 계속돼야 할지 모를 피동형 원자로를 깨끗하게 포기한 것이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원인 중 하나”라고 밝혔다.



APR1400 설계 총괄… 오승종 한수원 실장
APR1400 개발은 총 3단계 사업을 거쳐 진행됐다. 1단계 사업의 목표는 철저한 사전검토와 정보수집 과정. 목적은 어떤 형태의 원자로를 개발할 것인지, 그 성능과 작동방식을 결정하는 ‘노형선정’ 과정이었다. 뛰어난 연구개발 보다는 전문가 의견 등을 끝없이 수렴하며 앞으로 벌어질 연구개발 과정의 효과를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한 기획 역량이 더 중요하다.

이 때 최적의 기량을 보여준 것은 다름 아닌 최 전 센터장. 하지만 기본설계 과정인 2차 연구개발과정이 시작되자 또 다른 전문가가 필요했다. 한수원 측은 귀국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에 따라 고국으로 돌아온 오승종 실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 실장은 버클리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미국 전기연구소(EPRI)에서 근무했던 원자력 전문가였다.

오 실장이 한수원으로 온 것은 96년. 즉시 2단계 연구개발 사업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종합분석그룹장 직함으로 업무를 시작해 2000년부터는 설계개발그룹장을 맡았다.

오 실장의 설계목표는 간단하다. 값싸고 효율 높은 원자로를 만드는 일이다. 안전성 한 가지만을 높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각종 부품을 두텁고 튼튼하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다른 나라보다 싼 값에 효율성 높은 원자로를 만들면서 안전성까지 확보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오 실장은 “같은 크기에서 더 높은 성능을 내도록 원전의 총 발전용량을 1400MW 정도로 끌어 올렸다”면서 “그 이후 안전성과 관계가 적은 부품을 하나씩 새롭게 재구성해 나갔다”고 개발 당시를 소개했다.

이렇게 APR1400의 설계 및 개발을 사실상 총괄하던 오 실장에게 2004년이 되자 또 다른 일이 주어졌다. 개발이 거의 끝나 안전성 평가가 진행 중이던 APR1400 연구를 마치고, 지금까지 개발한 기술을 신고리 3, 4호에 적용하기 위한 프로젝트 팀장역할이 주어진 것이다. APR1400의 직접적인 개발에서는 한 발 물러나 실제 산업에 응용하기 위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오 실장은 현재 안정적인 운영 기술을 확보해 나가기 위한 ‘운영기술실장’을 맡고 있다.

오 실장은 앞으로의 숙제도 남아 있다. APR1400의 설계인증을 국내와 UAE를 넘어 미국 국가조사위원회(NRC)로부터 받아내는 일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는 “APR1400은 첨단 3세대 원자로인 프랑스의 ETR3와 견줄만한 첨단 원자로”라면서 “안전성 측면에선 세계 어떤 원자로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원자로 안전성 검증용 실험 원자로인 아틀라스(ATLAS)를 한국원자력연구원 내에서 운영 중인 백원필 원자력연 역수력안전연구부장은 “2005년부터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고, 아직도 미진한 국산기술을 가다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최영상, 오승종 박사 같은 인재들이 협심해서 덕분에 이룩한 한국의 자랑스러운 기술”이라고 말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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