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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줄 놓다 에 대한 3가지 고찰


| 글 | 정용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ㆍyong@kaist.ac.kr |

흔히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할 때 우리는 ‘정신줄을 놓다’라는 표현을 쓴다. 정말 우리의 뇌는 정신줄을 놓듯 두꺼비집이 팍하고 꺼지는 걸까. ‘정신줄 놓다’는 과연 과학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세 가지 상황으로 살펴봤다.







#1.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한 장면
갑작스런 폭설에 산에서 길을 잃은 두 사람. 서로를 꼭 껴안고 체온이 떨어지지 않게 애를 쓰지만, 다리를 다친 한 사람에겐 점점 졸음이 몰려온다. “정신줄 놓지 마! 그러면 큰일 나!”

#2. 집에서 흔한 장면
오늘도 게임기에 빠져 있는 우리 아들 윤성이. “윤성아! 숙제는 다 했니?” “…….” “너 또 게임에 정신줄 놓고 있구나. 너 3일간 게임 금지!”

#3. 학교에서 흔한 장면
커피 한 잔을 들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옆방 정 교수님. 옆에서 한참을 쳐다봐도 낌새를 못 차리신다. “정 교수님, 뭐 그렇게 정신줄 놓고 계세요?”





첫 번째 상황에서 정신줄은 의식을 유지하는 것, 즉 깨어 있음을 의미한다. 의식은 ‘깨어 있는 정도(alertness)’와 ‘현재 상태에 대해 알고 있음(awareness)’으로 구분할 수 있다. 깨어 있음에 해당하는 의식은 의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많은 환자들이 의식 저하로 응급실로 실려온다. 응급실의 의사는 환자의 의식이 저하된 원인이 심한 출혈인지, 뇌손상인지, 심장마비 또는 약물이나 과음의 영향인지를 신속히 가려내야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수술실에서는 오히려 인공적으로 환자의 정신줄을 놓게 만든다. 수술 중에 정신줄을 잡고 있게 되면 ‘수술 중 각성’이라는 문제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때의 의식은 나에게, 또는 내 주위에 일어나는 상황을 알고 있고, 그 상황을 내가 알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뇌과학에서 매력적이고 중요한 주제이지만 과학적으로 접근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우리가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다른 자극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실 집중하지 않은 상황이라도 우리 뇌는 대부분의 자극을 인지하지 못한다. 연말연시에 화려하고 복잡한 서울 시내 거리를 지나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중 누구라도 기억나는 얼굴이 있는가. 아니면 조금 전 과학동아를 사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본 사람, 아니 계산해준 점원의 얼굴을 기억하는가. 우리는 분명히 그 얼굴을 봤고 머리 모양도 봤을 테지만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나는 것은 빨간 옷을 입은 어여쁜 아가씨, 사탕을 빨던 귀여운 어린 아기 정도랄까.





우리는 깨어 있는 동안 무한한 자극에 노출되지만 우리 뇌가 그 모든 자극을 처리하기란 무리다. 또 대부분의 자극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자극이다. 그래서 뇌는 ‘주의집중’이라는 책략을 사용한다. 필요하지 않은 자극은 걸러내고 중요한 자극이나 정보만을 추려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극대화된 경우 주위에서 보기에는 정신줄을 놓은 듯 보인다.

세 번째 상황은 요새 말로 ‘멍 때리다’라고 하는 상태이다. 이때 우리 뇌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예전에는 멍하게 있는 상태에서는 뇌에서 아무 활동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여겨 왔다.

그러나 최근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이나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한 연구 결과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 상태에서 더 활성화되는 뇌 영역들이 발견됐다. 멍하게 있는 상태를 신경과학에서는 휴지기 상태(resting state) 또는 내정된 상태(default mode)라고 부른다.

이때 활성화되는 부위는 쐐기전소엽, 후대상회, 내측전전두엽과 일부 내측측두엽을 포함한다. 이 부분들은 서로 기능적으로 연결돼 있어 일부 학자들은 이를 ‘내정 상태 회로(default mode network)’라 부르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이 상태의 기능에 대해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파수꾼 역할이라 해서 주위 자극을 감시하고 예상되는 변화를 감지하는 기능이다. 다른 가설은 방대한 자극에서 해방된 ‘자유롭게 생각이 일어나는 상태’라고 보는 입장인데, 이는 마음의 방황(mind wondering) 또는 백일몽 상태로 여겨진다. 두 번째 가설은 내정 상태 회로를 구성하는 부위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부합된다. 즉 자전적인 기억, 미래에 대한 전망, 타인의 마음에 대한 이해 등이 이 부위들과 관련돼 있다. 또 창조적인 생각이 일어나려면 이런 상태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인의 뇌는 안정할 때 쐐기전소엽, 후대상회, 내측전전두엽이 활성화된다. 이에 반해 알츠하이머병 환자는 이 부위의 활성이 떨어진다.

다만 이런 기능들은 청소년기가 지나야 나타나며 뇌영상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최근에는 치매의 가장 흔한 원인인 알츠하이머병이나 자폐증, 정신분열증 등의 뇌질환에서 내정 상태 회로의 활성이 저하돼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보고됨에 따라 과학자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아무래도 요즘 정신줄을 놓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예전보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정보가 흘러넘치다 보니 필연적으로 뇌가 적응하게 된 건 아닐까. 그러나 그런 상태에서도 어쩌면 뇌는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마치 동양화의 여백이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편집자 주

‘정신줄 놓다’, ‘뚜껑 열린다’처럼 우리 주위에는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주 쓰는 관용어들이 많다. 과연 과학적으로도 말이 안 될까. 매달 생활 속 다양한 관용어들을 찾아 과학적으로 속 시원히 해결할 계획이다. 궁금한 관용어가 있다면 ymkim@donga.com으로 보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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