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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명탐정이 벌이는 과학수사 셜록홈즈


| 글 | 이한음 과학저술가 lmgx@naver.comㆍlmgx@naver.com |

편집자 주

이번 호부터 영화 속 과학이야기 ‘뉴 시네마 사이언스’ 연재를 시작한다. 영화의 재미를 한 차원 더 높이는 감초 같은 과학을 만나보자.









줄거리 1891년경 영국. 산업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에 주인공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와 그의 친구 왓슨(주드 로 분)이 등장한다. 그들은 미궁에 빠진 사건만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최강의 탐정 콤비. 어느 날 여인들이 종교 의식의 제물로 끔찍하게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그 뒤에는 어둠의 마법을 쓰는 비밀 종교집단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사이언스 평점 ★★★★☆
관전포인트 추리력뿐 아니라 강도 높은 액션까지 선보이는 새로운 홈즈의 등장
명대사 셜록 홈즈(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가장 사소한 단서가 가장 중요한 증거가 되는 법이지.”





1891년경 영국. 세계 각지에 건설한 식민지들로부터 돈과 물자가 쏟아져 들어오고, 국내에서는 공업과 산업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렇게 빅토리아시대는 수십 년째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교양 있는 중산층이 늘고, 신문과 잡지 등 출판물도 늘었다. 1859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출간된 이후 학문, 특히 과학은 종교의 영역에서 거의 벗어나 있었다. 자유주의와 이성을 토대로 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는 시대였다.

하지만 번영의 이면에는 그늘이 있는 법. 수십 년 사이에 영국 인구는 두 배로 늘었고, 주택 부족과 물가 상승으로 런던 같은 대도시에는 빈민이 늘어났다. 돈 많은 귀족들과 한량들은 과학 지식뿐 아니라 도박, 강신술, 점성술에도 흠뻑 빠져 있었다. 귀부인의 응접실마다 사람들이 탁자 앞에 둘러앉아서 손을 잡고 혼령을 부르는 주문을 외곤 했다. 당시엔 이런 사기극으로 돈을 버는 사기꾼들이 많았다. 10년 넘게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잭 더 리퍼라는 연쇄 살인마도 있었다. 바로 이 시기가 영화 ‘셜록홈즈’의 배경이다.







영화의 배경은 1891년경 영국. 공업과 산업이 발전하고 과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다.
‘죽은 범인’이 다시 살아난 이유


홈즈의 추리는 영화 초반, 왓슨의 연인 메리를 만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귀에 잉크가 두 방울 묻었군요. 인디아블루는 잘 닦이지 않아요.” 인디아블루는 짙은 청색을 띠는 인도의 염료로 인디고블루라고도 한다. 이 염료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인도에서 유럽으로 수입됐다. 지금은 인공적으로 합성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는 땅비싸리류의 식물에서 이 염료를 얻었다.

인디고는 천연 염료로도 널리 쓰이며, 청바지를 물들이는 데에도 쓰인다. 최근에는 유전공학으로 이 염료를 만드는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어서 합성하기도 했다. 인디고블루는 잘 지워지지는 않지만 햇빛에 쉽게 바래는 특성이 있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장면도 식물에 의해 탄생한다. 교수형에 처해진 악당 블랙우드가 며칠 뒤 다시 살아서 나타나는 장면이다. 의사인 왓슨은 블랙우드의 손목과 목에 손을 대 맥박이 없음을 확인하기도 한다. 블랙우드가 정말 죽었다가 살아난 게 아니라면 어떻게 왓슨을 속인 것일까. 영화가 끝날 무렵, 홈즈는 악당 중 한 명인 레오던의 집에서 본 나뭇잎을 단서로 추리를 해낸다. 블랙우드가 독성이 있는 식물을 먹고 겉으로는 죽은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살아 있는 ‘가사(假死)’ 상태에 빠진 것이라고 말이다.


홈즈의 놀라운 추리는 작은 단서도 놓치지 않는 꼼꼼한 관찰에서부터 비롯된다.

영화 속에서 블랙우드가 먹은 식물은 ‘로도덴드론 폰티쿰’이다. 폰티쿰(만병초의 일종)은 진달래, 철쭉과 같은 로도덴드론속 진달래과 식물이다. 같은 과 식물이라도 진달래는 독성이 없지만 철쭉이나 폰티쿰에는 독성이 있다. 특히 폰티쿰에는 ‘그라야노톡신’이라는 독소가 들어 있어 여기에 중독되면 몸에 힘이 빠지고, 토하거나 진땀을 흘리는 증상이 나타난다. 침을 흘리거나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또 먹은 양에 따라 심장이 빨리 뛰거나 늦게 뛰기도 하며 심하면 사망한다.

그렇다면 폰티쿰 나뭇잎만 피하면 무사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그라야노톡신 독소는 꽃의 꿀에도 들어 있다. 꿀벌은 꿀을 채집할 때 꽃의 종류를 가리지 않기 때문에 가끔씩 사람이 폰티쿰 꽃의 꿀을 먹는 경우가 발생한다. 과거 페르시아군과 싸우던 아테네 병사들이 이 꿀을 먹고 토악질을 하며 하루 동안 걷지도 못했다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일까. 이런 증상을 일으키는 병은 ‘미친꿀병’이라고 불린다.

홈즈는 왓슨의 애완용 개에게 폰티쿰의 꿀을 먹여 친절한(?) 시범을 보여주기까지 한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이나 동물을 가사 상태에 빠트렸다가 다시 깨우려면 수없이 많은 실험을 거쳐야 하지 않을까. 독소를 어느 정도로 주입하느냐에 따라 더 이상 ‘가짜 사망’이 아니라 ‘진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홈즈와 왓슨은 정확한 과학지식을 바탕으로 미궁에 빠진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 나간다.
무선 통신과 청산가리 이용한 마법
악당 블랙우드는 과학기술을 마치 어둠의 마법인 것처럼 속여 범죄를 저지른다. 대표적인 예가 무선으로 작동하는 독가스 살포기계다. 블랙우드는 국회의사당에 모인 의원들을 독살하기 위해 의사당 지하에 기계를 숨겨 둔다. 금속과 유리, 톱니바퀴와 실린더 등으로 굉장히 복잡하게 만들어진 기계는 신기하게도 멀리서 버튼만 누르면 무선으로 작동한다. 무선 신호를 받으면 동그란 금속 공 두 개 사이에 전기 불꽃이 일면서 실린더에 들어 있는 가루가 의사당 안으로 들어가도록 설계돼 있다.

그런데 그 시대에 무선 통신이 가능했을까. 무선 통신은 전자기파에 정보를 실어 주고받는 통신 방법이다. 전자기파 이론은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맥스웰이 1864년 처음 주장했고, 전자기파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1888년 독일의 과학자 하인리히 헤르츠가 처음으로 밝혔다. 영화에서처럼 두 금속 공 사이에 전기 불꽃을 유도하는 실험은 그보다 먼저인 1885년 미국의 토머스 에디슨이 했다.

니콜라 테슬라는 이들의 연구를 바탕으로 무선 통신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는 1891년에 무선 통신을 시연하기도 했다. 비록 모스 부호 같은 간단한 전신을 전송하는 수준이었지만 홈즈와 왓슨이 활약할 당시에 무선 통신의 기초는 조금씩 쌓여가고 있었던 셈이다.







악당 블랙우드는 식물의 독으로 자신의 아버지를 마비시켜 죽이는 범행을 저지른다.

의원들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을 뻔했던 가루의 정체는 뭘까. 홈즈는 이 가루가 시안화물, 즉 일종의 청산가리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가루를 마시고 죽은 쥐가 꼬리가 푸른색으로 변했고, 거기서 아몬드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이는 대표적인 청산가리 중독 증상이다. 청산가리는 금속을 도금하거나, 농약이나 실험 약물을 제조할 때 쓰이는데, 소량으로도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홈즈는 또 블랙우드를 따르는 무리가 청산가리 가루를 마셔도 죽지 않도록 해독제를 미리 먹었을 것이라고 추리한다. 실제로 아질산염과 티오황산나트륨, 히드록시코발라민 같은 물질들은 시안화물을 다른 화합물로 바꿔 소변으로 배출시키기 때문에 해독제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들을 미리 먹어도 해독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어쨌든 홈즈는 블랙우드가 발명한 살인 기계를 최초의 화학 무기라고 평가했다.








작지만 중요한 단서, 곤충
소설과는 달리 영화 속 왓슨은 법의학에 일가견이 있다. 블랙우드의 관에 들어 있는 엉뚱한 시체를 보고, 시체 위를 기어다니는 구더기 크기를 재서 사망시간을 추정해내는 모습은 조금 엉성하긴 하지만 미국 드라마 CSI의 요원 같다. E. J. 와그너가 지은 ‘셜록 홈스의 과학’에 따르면, 곤충과 범죄 수사를 관련짓는 생각은 1668년 프란체스코 레디의 실험에서 비롯됐다. 이탈리아 아레초 출신의 의사 겸 시인인 프란체스코 레디는 고기를 세 단지에 나눠 담고 하나는 그대로 두고, 하나는 천으로 덮고, 하나는 밀봉한 뒤 고기의 변화를 관찰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결과 밀봉하지 않은 단지의 고기에는 구더기가 생겼고 레디는 그것이 파리가 낳은 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구더기는 자라서 다시 파리가 됐다. 이는 곤충이 언제 알을 낳았고 시간에 따라 얼마만큼의 속도로 자라는지 알면 시신의 사망 시각을 거꾸로 계산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

곤충학이 실제로 사건에 활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850년이었다. 당시 벽에서 아기 시신이 발견된 끔찍한 사건이 있었는데, 시신과 함께 발견된 곤충들을 꼼꼼히 관찰한 결과 아기 시신은 벽 속에 적어도 2년 넘게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그 사실을 바탕으로 용의자를 찾아냈다. 그 뒤로도 곤충학은 범죄 수사에 다양하게 활용됐다. 시대 분위기가 그러했으니 영화 속 왓슨이 구더기를 바로 보고 사망 시각을 알아낸 것도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영화는 셜록 홈즈 소설의 속편 격이다. 홈즈와 왓슨은 정확한 과학지식과 독특한 추리력으로 미궁에 빠진 난제를 함께 해결해 나간다. 작은 단서를 토대로 내놓는 명쾌한 논리 앞에 미신과 주술은 힘을 잃는다. 비록 주인공의 성격과 분위기는 달라졌지만, 영화에서도 그 기본 줄기는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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