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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현재의 과학적 상상력은 왜 과거만 못할까



| 글 | 박건형 과학칼럼리스트ㆍrollerboy@naver.com |



인간의 지식은 끊임없이 세분화되고 있다. 매년 수많은 직업들이 새로 생겨나고 있는데, 이는 특정 분야에 좀 더 전문화된 사람들이 탄생하고 그룹화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식의 지나친 세분화가 발전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대학의 같은 학과 내에서 옆방 교수의 연구 분야를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과학자들은 자신이 가진 지식에 지나친 맹신을 갖고 있고, 인문학자들은 과학기술의 발달을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하기 일쑤다.

벽을 허물자는 외침은 끊임없이 있었다. 이제는 식상하게까지 느껴지는 학제 간 연구부터 통섭, 문진 등의 새로운 실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도전들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이들 시도의 성과를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2000년대 초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한국 사회에 던진 ‘통섭’은 시대의 변화를 이끌 화두로 주목받았지만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고 각 대학이 앞다퉈 도입한 자유전공학부는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지향점이 없다는 점이다. 특히 고등학교 때부터 이과와 문과로 나뉘어 교육받아온 한국에서는 통합에 대한 논의 자체가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시도로 느껴져 외면받기 일쑤다. 세계의 대세로 떠오른 융합과 협력연구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하지만 정작 어떻게 첫걸음을 떼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의 길을 묻다’는 학문 간 영역을 허물고자 하는 움직임에 숨통이 트이게 하려는 취지로 기획됐다. 매달 하나씩 총 12개의 질문을 각 분야의 석학부터 소장학자, 전문가에게 공통으로 던지고 그들의 의견을 모아 소개한다. 정답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옆방 교수님, 옆방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궁금증을 풀고자 하는 의도다. 기획이 진행되는 동안 역사학자가 생각하는 생물학, 물리학자가 생각하는 경제학, 국문학자가 생각하는 자동차공학에 대한 신선한 시각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본인의 전공이 아닌 다른 학문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싹트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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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주신 분들 왼쪽부터 엄정식 서강대 명예교수, 금동화 KIST 전 원장, 유범재 KIST 인지로봇연구단장, 니컬라스 네그로폰테 미국MIT 교수, 제럴드 에델만 미국신경과학연구소장, 이식 KISTI 실장, 최영주 포스텍 교수, 정재우 MIT 연구원, 이외에도 박지영 KISTEP 연구위원과 김홍구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도 참여하셨습니다.




“2040년 지구는 대단히 첨단 지향적으로 변모했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상당히 발전해 모든 일을 로봇이 해주고,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 덕분에 집안에서 컴퓨터로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다. 지금과 다른 사회 시스템, 사고방식이 등장했다. 인간의 과학기술에 대한 끝없는 믿음이 그 속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주도 서귀포에 자리한 테디베어 박물관의 미래관에는 이 같은 설명이 적혀 있다. 전시관 속 테디베어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공중에 떠 있는 도시 속에 살고 있다.

2040년 과연 인간은 이 같은 생활을 누릴 수 있을까. 시간을 돌려보자. 1951년 ‘만화의 신’으로 불리던 일본의 데츠카 오사무는 2003년 4월 7일 탄생할 한 로봇을 창조해냈다. 135cm의 키와 30kg의 몸무게를 지닌 이 로봇은 무쇠처럼 단단한 팔과 레이저 빔을 발사하는 손가락, 로켓으로 추진하는 다리, 발칸포를 발사하는 엉덩이를 갖고 있었다. 바로 우주소년 아톰이다.

그러나 오사무의 상상 속 미래는 이미 과거가 됐고 아톰은 실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닮은 휴머노이드는 하늘을 날기는커녕 계단을 걷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1951년 기대했던 2003년의 세상이 오히려 2010년 현재, 그리고 2040년의 미래보다 더 앞섰던 셈이다.




상상력의 고갈 vs 과학기술의 정체
인간의 상상력은 오래전부터 과학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하늘을 날고 싶다는 오랜 소망이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로 현실화된 것이 대표적이다. 포탄을 쏴 달에 가는 모습을 묘사한 쥘 베른의 ‘달나라 여행’이나 핵잠수함의 모델이 된 ‘해저 2만리’ 의 노틸러스호는 과학자들에게 비전과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2010년 우리는 이미 과거의 인류가 상상했던 미래에 살고 있다. 조지 오웰이 그린 미래의 1984년과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2001년은 이미 오래된 과거가 됐고 영화 ‘백투더퓨처’의 2020년은 코앞에 다가왔지만 소설과 영화 속의 모습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심지어 지금의 우리가 그리는 수십 년, 수백 년 뒤는 20세기의 상상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지식의 길을 묻다’의 첫 번째 주제는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이다. 과학의 발전은 상상력과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과거에 비해 확연히 느려 보이는 과학의 발전 속도는 실제로 늦어지고 있는 것일까. 또 미래를 그리는 인간의 상상력이 좀처럼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상상력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일까.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에 대해 니컬라스 네그로폰테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와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럴드 에델만 박사를 비롯해 로봇공학, 재료공학, 수학, 철학, 화학, 물리학, 전기공학 관련 전문가들에게 물었다.









상상력발전소’로 불리는 미국 MIT 미디어랩을 설립한 니컬라스 네그로폰테 교수는 “상상력의 힘은 여전히 무한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상상력이 과학과 엔지니어링과 결합하면서 사람들을 더 자유롭게 했다는 뜻이다. 다만 상상력을 실현하는 방향은 계속 바뀌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네그로폰테 교수는 “예전에는 한두 사람의 천재가 무엇인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을 연구해서 만드는 것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대체에너지나 우주개발처럼 몇 사람이 모여서 은밀하게 얘기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것들이 오히려 상상력의 한계를 규정지을 수 있다는 점에 대한 우려도 잊지 않았다.

197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제럴드 에델만 미국 신경과학연구소장은 “어떤 과학 분야라도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분석한다. 그는 “인공지능을 예로 들면 논리와 수학만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인간 지능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력”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간의 뇌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를 따라잡는 것이 지금 수준에서 불가능하기 때문에 더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며 “황당한 상상에 답이 없는 것은 오히려 충분히 황당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더 획기적으로 상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주를 가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안락하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재 상상력의 목표다.” 최영주 포스텍 수학과 교수는 ‘상상력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과거 인간의 상상력이 하늘을 날거나 우주여행을 한다는 막연히 원초적인 단계에 머물렀다면 지금은 현실화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구체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것이 유전자 분석에 대한 비전이다. 그는 “DNA의 구조를 밝혀낸 지 불과 반세기 만에 우리는 유전자를 분석해 과거가 아닌 미래의 삶의 질을 예측해 대비할 수 있는 단계를 눈앞에 두고 있다”고 강조한다. ‘양자 계산’에 대한 기대감도 숨기지 않는다. 양자 계산이 실현되면 SF의 단골주제인 ‘순간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얼마든지 먼 우주여행이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 최 교수의 설명이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팅본부 응용지원실장은 ‘거시의 상상력과 미시의 상상력’으로 과거와 현재를 비교했다. 상상력의 형태가 변했다는 뜻이다. 그는 “20세기 전반 양자역학으로 대표되는 물리학, 20세기 후반 분자생물학이라는 미시적 수준의 학문이 확립됐다”고 평가한 뒤 “이전의 과학기술이 인간의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현상에 중점을 둬 왔지만, 이제는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미시적인 세계에서 상상력이진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관계는 우주여행, 우주식민지, 심해도시, 하늘을 나는 자동차, 로봇, 외계인 등 쥘 베른 식의 거시적인 상상력을 먼저 보여준 뒤 이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이 뒤따르는 형태로 진행됐다.

하지만 지금 인류는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고 실현하는 데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실장은 “지상 3만 6000km 상공의 우주정거장과 지구 표면을 연결하는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은 과거의 상상력으로도 막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지금은 탄소나노튜브라는 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해 실제 엘리베이터를 만드는 데 상상력이 동원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계산과학의 발전은 현실 공간에서 이뤄지는 생명공학, 나노공학, 신경공학, 의학, 인공지능, 환경, 교통, 네트워크, 대체에너지 개발, 안보 등 많은 분야의 물리적 현상을 컴퓨터 속에 가상으로 구현할 수 있도록 했다. 가상공간에서의 연구는 인간의 상상력을 더 크게 발전시키고 이를 정확하게 다듬을 수 있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너무 빠른 변화는 인간을 무디게 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인간의 ‘오감’은 왜 무뎌진 걸까. 박지영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연구위원은 지나치게 빠르게 진행돼온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람들의 체감을 무디게 하고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박 위원은 “1980년 12월 컬러TV가 등장했고 30년이 지난 우리는 리모컨을 사용하고 뚱뚱했던 브라운관은 점차 얇아지고 있다. 플라스마디스플레이 패널(PDP)을 거쳐 액정디스플레이(LCD), 발광디스플레이(LED)가 나타났고 이제 입체(3D) TV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 같은 기술의 진보는 어느 날 갑자기 TV가 생겼을 때나 마차 대신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와 비교하면 충격이나 만족도에서는 크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박 위원은 우리가 느끼고 있는 과학기술의 향연이 어느 한 순간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986년 마르코니의 무선통신 발명, 1906년 드 포리스트의 3극 진공관 발명 등은 1936년 BBC가 첫 방송을 시작하기까지 40여 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빛을 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태엽자동차에서 1879년 벤츠의 자동차까지는 400여 년이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금의 과학기술 발전 속도가 느려졌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반면 금동화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전 원장은 “상상력의 미래상마다 난이도가 다르다”고 전제한다. 모든 기술을 동일선상에서 놓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비교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금 전 원장은 “비행기가 날고 암스트롱이 달에 착륙하는 것은 오랜 상상들을 현실화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고 자극적인 소재들이지만, 실질적인 기술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많은 과학기술이 의미나 완성도 측면에서 이에 뒤지지 않는다”며 “특히 많은 연구가 진행되면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것들이 탄생하고, 언론이나 일반인은 그 의미조차 짐작하기 힘든 성과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이 상상력을 앞서간다
엄정식 서강대 철학과 명예교수는 “과학기술이 인문학의 근거인 상상력을 앞서가고 있다”고 분석한다. 제우스의 불칼이나 이카루스의 날개처럼 상상력의 시초였던 신화를 이제는 아무도 믿지 않는 것처럼 과학기술의 발달이 상상력에 한계를 짓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특히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과학적 근거’가 상상력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다는 뜻이다. 엄 교수는 “철학자나 소설가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이 중에서 과학자가 아이디어를 얻는 구조가 바람직하다고 본다”며 “머릿속에서 얻어지는 원천적인 상상력이 나아갈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은 발전 속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휴머노이드 ‘마루’와 ‘아라’를 탄생시킨 유범재 KIST 박사는 “금방 느끼기는 힘들지만 상상력이 보여준 미래를 향해 과학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가구와의 충돌을 피해 집안을 청소하는 청소로봇, 전시관의 큐레이터 로봇, 군사정찰용 로봇, 수술용 로봇 다빈치 등은 아톰이나 로보트태권V, 터미네이터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뜻이다. 유 박사는 “현실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제자리에 있는 것은 아니다”며 “로봇의 관절을 구성하는 전기식 모터는 1990년대에 비해 크기와 무게는 반 이하로 줄었으며, 정밀도는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로봇에 전원을 공급하는 리튬폴리머 전지도 10년 전 니켈 카드뮴 전지에 비하면 크기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기술의 발달이 많은 분야에서 한계에 달하면서 새로운 창조적 기술의 개발이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상상력과 과학기술의 정체를 일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유 박사는 “반도체, 구동모터, 카메라, 인공지능 등은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인간의 상상력을 만족시키는 수준으로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새롭고 혁신적인 방법이 등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만 “15년 전 과학자들은 두 발로 걷는 인간형 로봇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던 적이 있었지만 결국 그 한계를 극복해냈다. 상상이 보여준 미래에 다가가려는 노력이 계속된다면 언젠가 영화 속 로봇을 현실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희망적인 전망도 잊지 않았다.



상상력의 적 ‘경제성’
네그로폰테 교수는 “상상력과 미래를 향해 만들어지는 기술에는 점차 다양한 관점이 형성되고 있다”고 말한다.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질문은 점차 사라지는 반면, 같이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연구 방향에 대한 의견이 갈라지는 일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 이를 적절하게 융합할 수 있어야 상상력과 과학의 결합이 좀 더 용이해진다는 것이 그의 조언이다.

작곡을 전공한 음악도 출신인 정재우 MIT 미디어랩 연구원은 “과거 단순히 상상력을 구현하는 데 목적을 뒀던 미디어랩은 최근 투입하는 비용에 비해 결과물의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과학을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하는 데 매달릴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경제성에 대한 논란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포기해야 하는 상상력에 대한 지적은 또 있다. 김홍구 미국 피츠버그대 나노연구센터장은 “달 탐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미국이 계획을 취소하고, 입자 가속기도 만들기를 포기했는데, 이는 할 수 있느냐 없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꼭 해야 하느냐는 필요성이 상상력을 향해가는 과학기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얘기”라며 “경제, 사회적으로 필요한 부분을 취사선택하는 것도 앞으로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식의 대통합 vs 전문화
1997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컨실리언스(Consilience)’라는 책을 내놓으며 ‘지식의 대통합’이라는 학문의 가장 오래된 화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모든 학문의 아버지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인간의 지식은 세분화와 통합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해부학, 건축, 식물학, 수학, 도시공학, 의상 디자인, 지질학, 군사과학 등 수십 가지의 학문을 넘나들었던 이탈리아의 ‘만능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마지막으로 지식은 세분화의 길만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영국의 프랜시스 베이컨이다. 베이컨은 1605년 발표한 ‘학문의 진보’와 1620년 ‘노붐 오르가눔(Novum Organum)’을 통해 학문의 세분화와 전문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지식을 최대한 세분화해 전문가들이 깊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 뒤로 400여 년이 지난 지금 학문의 융합은 전 세계의 새로운 조류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프라운호퍼연구소, 프랑스의 파스퇴르 연구소, 미국의 MIT 미디어랩, 일본의 이화학연구소에는 끊임없이 벽을 허물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윌슨의 제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2000년대 중반 컨실리언스를 번역하면서 ‘통섭’이라는 낯선 단어로 한국사회에 통합의 화두를 던졌다. 그 뒤 엄정식 서강대 교수, 정민 한양대 교수, 이덕환 서강대 교수 등이 모여 ‘문진’이라는 단어로 학제 간 융합을 시도했고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통섭교육사업, KAIST의 문화콘텐츠(CT)대학원 등이 학문 간 융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정확히 어떤 방향의 융합과 학제 간 연구가 이뤄져야 하는지는 아직까지 아무도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몇 년간 시대의 대세로까지 취급받았던 ‘통섭’ 역시 부침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박이문 연세대 초빙교수가 ‘통합의 인문학’을 발간하면서 윌슨의 통섭론을 비판하기도 했다. “과학이론도 인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세계관인 만큼 통합은 인문학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박 교수의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지식의 통합이 스쳐가는 유행이 아닌 사회적 과제라는 데는 대부분 뜻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방법을 찾아서 차근차근 접근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학문 간 벽을 허물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중간 단계도 만들어질 수 있다”며 “한국에서 학문 간의 분과가 심각한 수준인 만큼 과학과 인문사회학의 교류, 다양한 학문 간의 교류가 현실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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