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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벗겨본 남녀 탐구생활


| 글 | 김윤미 기자ㆍymkim@donga.com |

머리핀 하나 사는 데 백화점을 두 시간째 돌아다니는 여친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남자들은 왜 싸울 때 주먹부터 나가는지 궁금하다면? 남녀가 다르게 행동하는 원인을 밝히는 기발한 연구들을 만나보자. 시간을 원시시대로 되돌려 따져보기도 하고, 수년째 초파리들에게 싸움을 걸며 지켜보기도 한다. 그런 실험이 정말 있다? 있다!

사소한 거 하나부터 너무 다른 남녀의 생활을 과학적으로 탐구해보는 시간. 오늘은 남녀의 쇼핑 행동에 대해 알아봐요. 먼저 남자의 쇼핑 행동이에요.남자는 정확히 1년 하고도 3일 만에 백화점을 찾았어요. 전에 양복을 사려고 엄마랑 함께 왔었는데, 엄마가 3시간이 넘게 남자를 끌고 다니며 옷을 입어보게 해서 탈진했던 기억이 나요. 남자는 자꾸 점원들이랑 눈이 마주치는 게 불편해요. 아무래도 그때의 자신을 기억하는 것만 같아 고개를 푹 숙여요.






오늘은 회사 체육대회에서 신을 운동화를 사러 왔어요. 특별히 선호하는 스타일은 없고 남자의 살인적인 발 냄새를 막아줄 튼튼한 녀석이면 돼요. 남자는 가장 가까운 매장으로 들어가요. 남자는 이 집이 이 층에서 가장 비싼 집이라는 사실을 몰라요. 아싸라비아! 바로 맘에 드는 운동화를 찾았어요. 운동화에 구멍이 송송 난 게 마치 “네가 나를 신고도 네 발에서 땀이 나면 너는 사람도 아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아요.

남자는 물건을 사요. 혹시 다른 색은 없는지, 비슷한 값에 다른 디자인은 없는지 묻지 않아요. ‘통풍 잘되는 편한 운동화’를 사는 게 목적이니까요. 남자가 좋아하는 오디오나 컴퓨터 같은 큰 물건을 사러왔다면 친구랑 와서 오랫동안 둘러보겠지만, 이렇게 어쩔 수 없이 사는 물건이라면 얼른 사서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에요.





남자는 만족스러운 쇼핑을 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다음은 여자의 쇼핑 행동이에요. 여자는 회사 체육대회에서 자신의 날씬한 각선미를 돋보이게 해줄 상큼하고 예쁜 운동화를 사러 왔어요. 여자는 베스트 프렌드와 동행해요. 백화점에서 함께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친구가 베스트 프렌드라고 여자는 생각해요. 여자는 자신의 주머니 사정상 어느 매장에서 물건을 살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아요. 더 값싸고, 더 예쁘고, 더 질 좋은 제품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전 매장을 세 바퀴쯤 둘러보고 나서야 여자는 본격적으로 물건을 골라요.

이미 어느 상품이 어디에 진열돼 있는지 머릿속에 입력돼 동선이 빠르고 정확해요. 유행은 안 타게 생겼는지, 재질은 좋은지, 할인은 안 하는지 꼼꼼하게 살펴요. 이런 우라질레이션. 디자인도 맘에 들고 기능도 좋은데 너무 비싸요. 아무래도 이 아이는 다음 주에 세일할 때 사야겠어요. 여자는 빈손으로 돌아가지만 오늘은 더 큰 만족을 얻기 위한 약간의 희생일 뿐이라며 기쁘게 돌아가요.







남녀 쇼핑 행동 차이는 원시시대 사냥·채집 습성


자, 이제 이 현상을 과학적으로 설명해봐요. 남녀의 판이하게 다른 쇼핑 행동을 미국 미시간주립대 다니엘 크루거 교수는 원시시대 때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식량을 찾아다녔던 남녀의 원시 습성으로 설명해요. 크루거 교수는 이런 결과를 국제저널 ‘사회와 진화, 문화심리학’ 2009년 겨울호에 발표했어요. 크루거 교수는 남성이 필요한 물건을 사서 재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행동은 이리저리 내빼는 사냥감을 용케 잡아서 얼른 집으로 돌아왔던 습성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해요. 그래서 남성은 아무리 멀고 낯선 곳이라도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서 집으로 돌아갈 길을 빠르게 찾아요.

반면 가장 만족스러운 물건을 사기 위해 쇼핑몰을 샅샅이 뒤지는 여성의 쇼핑 행동은 가장 잘 익은 열매를 따기 위해 덤불을 샅샅이 뒤졌던 여성의 채집습성에서 나왔어요. 여성은 채집하는 공간에서 물건의 위치를 구별하고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나요. 실제로 재래시장에 남녀를 불러다 놓고 진열된 과일과 채소의 위치를 기억하게 했더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훨씬 더 잘 기억해냈다는 실험도 있어요.




앗, 여기저기서 크루거 교수의 주장을 못 믿겠다는 의심의 소리가 나와요. 당신이 원시시대를 봤냐는 둥, 그럴 만한 근거가 있냐는 둥, 진화심리학은 그냥 그럴싸하게 말만 하는 학문이라는 둥 공격이 거세요. 국내 유일의 진화심리학 박사인 전중환 경희대 교수가 진화에 나서요. 그는 “진화심리학은 심장이나 허파가 자연선택에 따라 적응해온 것처럼 인간의 마음도 특정한 심리 메커니즘에 따라 진화한 산물이라고 해석하는 자연과학 성격의 심리학”이라며 “가설을 세워서 실험으로 증명하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으로 결과를 도출하므로 신빙성이 높다”고 설명해요.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최재천 교수도 전 교수의 저서 ‘오래된 연장통’ 서문에 “진화심리학은 인지과학, 뇌과학, 컴퓨터과학의 방법론을 이용해서 과학적 방법론을 수행하는 통섭형 과학이므로 신이 다 그리 되도록 미리 준비해 뒀다던가, 세상은 원래 다 그런 것이라는 식의 두루뭉술한 학문으로 봐서는 안된다”고 당부했어요. 크루거 교수의 논문도 470명에 가까운 대학생들에게 채집 활동에 관련한 쇼핑의 면면을 확인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남녀가 어느 유형에 속하는지 확인해서 얻은 결론이에요. 전 교수는 “현재 외국에서는 활발하게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국내에서도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가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겨요.





남자는 주먹질, 여자는 박치기다음은 남녀의 싸우는 방법이에요. 초등학교 앞에서 싸움이 났어요. 사내아이 둘이 주먹으로 치고받아요. 옆에서는 여자아이 둘이서 머리를 잡아당기며 싸워요. 이 네 명은 각각 커플이에요. 한 여자아이가 다른 여자아이한테 왜 뒤에서 내 욕을 하느냐며 따지다가 남자친구들 간의 싸움으로 번졌어요. 참으로 눈물겨운 시추에이션이 아닐 수 없어요. 한 남자아이가 다른 남자아이에게 어퍼컷을 날려요. 빗나가요. 그러자 다른 아이가 발차기를 준비해요. 손을 크게 휘저으니까 더 위협적으로 보여요. 여자아이들은 머리를 잡아당기다가 안 되니까 박치기를 해요.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영화에서 싸우는 어른들의 모습과 다름없어요.




과일파리(초파리의 일종)도 사람이랑 비슷하게 싸워요. 미국 하버드 의대 신경학과 에드워드 크라비츠 교수팀이 5년 동안 과일파리들의 싸움법을 관찰했더니 암컷은 상대를 머리로 들이받으려 하고(수컷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음) 수컷은 날개를 펼쳐서 상대를 위협하거나 킥복싱처럼 다리로 상대방을 가격하는 방법을 썼대요(역시 암컷에게서는 나타나지 않음). 연구팀은 과일파리들이 싸우는 모습을 관찰하기 위해 한 마리의 암컷을 두고 두 마리의 수컷을 경쟁하도록 만들거나 그 반대의 상황을 만들었어요.

과학자들이라 과일파리 열 받게 만드는 방법도 잘 알아요. 수컷 과일파일에는 ‘프루틀리스(fruitless)’라는 구애행동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있어요. 이 유전자를 암컷에게 심었어요. 그러자 암컷이 수컷처럼 발로 상대를 차며 싸워요. 반대로 수컷의 뇌에서 이 유전자가 만들어지지 못하도록 했더니 암컷처럼 머리로 밀거나 부딪히며 싸워요.







암컷 과일파리(①,②)는 싸울 때 상대를 머리로 들이받고 수컷은(③,④) 몸을 세워서 다리로 상대방을 가격한다는 사실이 관찰 결과 밝혀졌다.

아직까지 사람에게서 이런 기능을 하는 유전자가 발견되지는 않았어요. 곧바로 여자친구에게 “당신은 암컷 과일파리처럼 싸웁니다”라고 말했다간 바로 박치기를 당할 수 있다는 얘기에요. 크라비츠 교수는 2006년 11월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무척추동물의 싸우는 행동을 이해함으로써 다른 종의 공격 성향을 연구하는 데에도 영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어요. 생물학자들이나 유전학자들도 “이 연구가 공격성향과 같이 복잡한 행동이 신경체계에 입력되는 경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해요.








싸울 때 맞아도 남자가 참을 수 있는 이유


아이들의 싸움이 끝났어요. 선생님이 오셔서 싸우는 아이들을 떼어 놨어요. 갑자기 남자 아이들이 울기 시작해요. 여자 친구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맞은 곳이 아프다며 엉엉 울어요. 여자 친구들은 싸울 땐 괜찮다가 왜 싸움 후에서야 아프다고 우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아마 미국 프린스턴대 생태 및 진화 생물학과 미카엘라 하우 교수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테스토스테론 효과가 감소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거에요.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싸울 때 많이 분비돼요. 하우 교수팀은 유럽산 참새(Passer domesticus) 수컷의 몸에 테스토스테론의 농도가 높으면 고통을 잘 참는다는 결과를 실험을 통해 밝혀내 과학전문지 ‘호르몬과 행동’ 2004년 6월호에 발표했어요. 일반적인 수컷 참새는 51℃의 뜨거운 물에서 잘 참다가 이보다 온도가 더 높아지면 재빨리 발을 빼냈어요.

반면 등에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한 참새는 52℃의 물에서도 7.5초나 버텼어요. 테스토스테론을 투여하지 않은 참새보다 3배나 긴 시간이에요. 하우 교수는 “암컷을 두고 수컷끼리 싸울 때 테스토스테론이 부상에서 얻은 통증을 완화시킬 것”이라고 논문에서 밝혔어요. 이상 과학으로 벗겨본 남녀 탐구생활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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