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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천문학자가 좋다




임명신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장

 

 


임명신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장
“천문학을 공부하시면 살림살이는 괜찮으십니까?”

천문학자들이 흔히 듣는 질문이다. 망원경으로 하늘을 관찰하면서 돈을 벌 수 있겠냐는 이야기다. 하지만 임명신 서울대 초기우주천체연구단장은 ‘천문학을 공부해도 굶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의 말을 뒷받침할 자료도 있다. 2008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가 의외로 돈 잘 버는 직업에 천문학자를 선정한 것. 천문학자의 상위 10% 연봉은 15만 7000달러(약 1억 8000만원) 이상이었다. 특별하게 가난한 직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임 단장은 “오히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점에서 행복을 느끼는 직업이 천문학자”라며 “따지고 보면 천문학자의 숫자가 적어 경쟁도 덜 치열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행복하고 배부른 천문학자’로 살며 초기우주의 모습을 간직한 천체를 연구하고 있다.




[여기에 오기까지] 10살 때 한국으로~ “수학이 제일 쉬웠어요”
“일본에서 태어나서 10살까지 그곳에서 살았거든요. 그래서 우리말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게 숫자뿐이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수학과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됐죠.”

어린 시절 임명신 단장은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게 좋았고 자라서도 미술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 와서 수학이 좋아졌다. 유일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아톰 같은 만화영화를 보면서 막연하게 우주와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중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한 뒤에는 서점을 제집처럼 들락거렸다. 그곳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만났고 천체의 아름다움에 빠졌다. 결국 그는 이 아름다움으로 미술에 대한 동경을 해소하고,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천문학자가 됐다.

“학부 때 물리학을 전공했는데 천체 관련 과목이 늘 성적이 좋았어요. 대학원부터는 본격적으로 천문학을 전공했죠. 가장 먼저 연구한 것이 보이저 우주선이 찍은 초신성의 잔해였는데, 재미가 덜 하더라고요. 저는 좀 먼 과거를 보고 싶었습니다.”





국내 최초로 서울대 임명신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퀘이사 천체(중앙 오른쪽). 왼쪽의 일반 항성이 붉은 빛을 띠는 것과 달리 푸른 빛을 띠고 있다.임 단장은 우주가 탄생할 때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 ‘퀘이사’다. 퀘이사는 빅뱅 이후에 최초로 생긴 별들이 진화해 만들어진 천체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가스의 마찰열 때문에 밝게 빛난다. 이 빛을 분석하면 우주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빛이 지나온 시간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발견된 퀘이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미국 프린스턴대 마이클 스타라우스 교수팀이 발견한 것으로 지구에서 130억 광년 떨어져 있다. 임 단장은 “우주의 역사가 140억 광년이 됐으니 아직 초기의 10억 광년에 대한 정보는 없는 셈”이라며 “연구를 계속해 초기 10억 광년의 우주의 역사를 밝히는게 목표”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서울대 임명신 교수 연구팀이 발견한 퀘이사 천체(중앙 오른쪽). 왼쪽의 일반 항성이 붉은 빛을 띠는 것과 달리 푸른 빛을 띠고 있다.


[어려움을 너머] 걸림돌 아니라 디딤돌


임 단장은 지금까지 살면서 크게 어려움을 겪었던 기억이 없다. 원래 긍정적인 편이기도 하고 우리말을 몰랐던 상황을 잘 극복한 뒤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온다’라는 신념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2003년 한국에 교수로 왔을 때도 이 신념으로 수업과 천문올림피아드 등 많은 일을 하면서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에는 연구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어 힘들었는데 여러 일을 한 덕분에 경영마인드를 배울 수 있었다”며 “힘든 일을 이겨내면 그만큼의 보람과 배움을 얻는다”고 말했다.




[나의 성공담] 전화위복, 열악함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다!


“한국의 관측 장비가 열악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에 비해서 연구할 시간이 적기도 하고요. 그래도 환경만 탓하고 연구를 그만할 수야 없죠.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할 수 있는 연구를 생각해냈습니다. 보현산에도 1.8m의 망원경이 있으니까요.”

경북 영천에 있는 보현산천문대의 망원경은 미국에서 연구했던 망원경에 비해 빛을 모으는 능력이 25배나 떨어진다. 그래서 볼 수 있는 천체가 제한돼 있었고, 이 망원경으로는 가깝고 밝은 별에 대한 연구만 이뤄졌다.

하지만 임 단장은 이 망원경으로 퀘이사를 찾기로 했다. 가깝고 밝은 천체 중에도 퀘이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국 그는 2005년 지구에서 약 12억 광년 거리에 있는 퀘이사를 국내 최초로 발견했다. 이는 기존에 발견된 퀘이사 중 6번째로 밝은 것이기도 했다.





2007년에는 우리은하 외부의 ‘기피 영역’이라고 불리는 은하수 지역에서 40개의 퀘이사를 발견하기도 했다. 우리은하에 속한 별들과 먼지 구름이 빛을 가리기 때문에 천문학자들은 우리은하 밖에 떨어진 천체를 연구할 때 은하수를 피한다. 그런데 임 단장은 1.8m 망원경과 보현산 광학 에셸 분광기(BOES)를 이용해 퀘이사를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으로도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 중요하다”며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지에 대한 아이디어가 있었기 때문에 실천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연구단은 우주에서 가장 큰 폭발인 ‘감마선 폭발’을 연구하고 있다. 이 빛은 아주 멀리까지 전달되므로 초기 우주 상태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임 단장의 설명이다. 이렇게 새로운 아이디어로 우주 초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그의 일상이다.









전형적인 퀘이사의 주변 영역(위)과 기피영역에서 새로 발견된 퀘이사 중 하나인 ‘SNUQSO 2109+3532’의 주변 영역(아래)을 비교하는 그림. 이 그림은 기피영역에서 별 개수밀도가 일반적으로 퀘이사가 발견되는 고은위 지역에서의 별 개수밀도보다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 준다. 노란색 화살표가 가리키는 것이 퀘이사이다.



초기우주천체는 우리의 기원이다!
갈릴레오도 처음부터 세상에 큰 변화를 일으키겠다고 망원경을 들여다 본 것은 아니었을 겁니다. 망원경 같은 기계를 만지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천체를 보게 됐고, 그것을 분석하다가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결국 이것이 과학혁명으로 이어졌죠. 바로 그런 곳에 천문학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사실 천문학 연구를 현실에 응용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천문 현상을 이해하는 것이 먼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는 아무도 모른다.

임 단장은 초기우주천체는 ‘우리 모두의 기원’이라고 말한다. 우주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수소와 헬륨 외에 탄소 등의 원소가 생겨났고, 이런 원소들이 생명체로 이어진 것. 따라서 우주 초기의 모습을 보는 것이 우리의 기원을 아는 것이다.

그는 “이런 학문적인 목적뿐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줄 수 있다는 데도 큰 의미가 있다”며 “관측기기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기술은 군사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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