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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혁명을 꿈꾸다




이원종 서울대 격자게이지이론연구단장


[창의연구단 공동기획] 이원종 서울대 격자게이지이론연구단장


2000여년 전,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의 중심은 지구이고, 태양과 다른 행성들이 지구 주변을 돈다’는 천동설을 주장했다. 오늘날 이 주장이 틀렸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16세기 말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었다.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교회의 경고를 받은 이야기는 유명하다.

‘과학혁명의 구조’를 쓴 토마스 쿤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천동설을 주장했던 까닭은 그가 세상을 보는 틀이 근대 물리학자들과 달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학이 객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사회가 공통적으로 수용한 거대한 틀, 즉 ‘패러다임’의 지배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과학이 ‘기존 이론→위기→혁명→새로운 이론’의 순서로 발전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도 기존 이론이 위기를 맞았다고 생각하며, 과학혁명에 도전하는 연구자가 있다. 이원종 서울대 격자게이지이론연구단장이다. 미국 프린스턴대와 콜롬비아대에서 입자물리를 ‘제대로’ 배운 그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이론이 영원히 완전한 것이 아니다”며 “기존의 이론에 오류가 있음을 증명하고 새로운 이론을 찾아내는 게 연구의 목표”라고 밝혔다.




[여기에 오기까지] 나를 키운 스승의 힘
이원종 단장이 어린 시절 꿈꿨던 것은 ‘마징가제트’나 ‘로봇태권브이’같은 만화영화에 나오는 과학자였다. 만화영화 속 과학자처럼 로봇을 만들어 나라도 구하고 지구도 수호하겠다는 게 그의 목표였다.

목표를 좇아 서울대 전자공학과로 진학했는데, 1980년대 정치상황 속에서는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다. 금요일에는 항상 시위가 있었고, 평일에도 종종 시위가 벌어져 학교에 최루탄 연기가 가득했다.

이 단장은 유학을 결심했고, 학부를 마치고 1년 뒤 프린스턴대에 입학했다. 이곳에서 그는 양자역학이나 상대론적 양자역학, 양자장론 등 물질의 최소 단위와 관련된 입자물리를 만났다.

“원래 공대 소속이었는데 수업을 들으며 물리학이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마침 제가 속했던 연구단에 연구비가 끊어져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연구원이 30명이나 되던 큰 그룹이었는데 말이죠.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차에 윌리엄 하퍼 교수님께 제 사정을 말씀드리게 됐죠.”





윌리엄 하퍼는 당시 미국 에너지부(DOE) 차관으로 발령받은 인물인데, 마지막 강의를 하면서 이 단장과 인연을 맺는 것이다. 그의 사정을 들은 하퍼는 갑자기 ‘청다오 리(Tsung-Dao Lee)를 소개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청다오 리는 31세에 입자물리학 연구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전설적인 물리학자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학자이고, 고국인 중국에서는 국민영웅 대접을 받는 사람이다.

“30초도 안 돼서 ‘가겠다’고 했죠. 그날 바로 하퍼 교수에게서 연락이 왔고, 청따오 교수가 있는 콜롬비아대로 옮겼습니다. 제 지도교수는 노먼 크리스트 교수였는데, 그 역시 청따오의 제자이고 입자물리학 분야에서 손꼽히는 학자에요. 스승 복이 참 많은 셈이죠.”

이 단장은 노먼 크리스트 교수 아래서 본격적으로 입자 물리를 공부했고, 청따오 교수를 만나며 차근차근 학문적인 깊이를 쌓았다. 그리고 IBM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한 뒤에는 미국국립과학원(Los Alamos National Lab)에서 교수까지 하게 됐다. 이 단장은 “최고의 스승에게서 배웠던 게 큰 축복이었다”며 “특히 청따오 교수와 인연을 맺은 것이 참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31세에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물리학자, 청다오 리


[어려움을 너머] 척박한 환경서 성장하다
“서울대로 교수로 와서 보니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실험실도, 장비도, 사람도 없으니 연구라는 걸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해외에서 연구를 하다 들어온 연구자들은 거의 저와 비슷하게들 느꼈을 거예요.”

이 단장이 한국에 왔을 2001년에만 해도 대학에서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교수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열악했다. 무엇을 하나 시작하려면 그때마다 장애물이 하나씩 걸렸다. 인간적인 어려움도 있었다. 외국 대학에는 신임 교수를 위한 멘토링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적응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한국에서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을 해야 했다.

그는 “자꾸 벽에 부딪히니까 몸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우울증까지 겪게 됐다”며 “다행히 그런 상황에서 좋은 연구원들이 연구단에 들어와 희망을 얻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마음에 안정이 조금씩 생기다보니 연구비 문제도 의외로 쉽게 해결됐다. 미국 DOE의 사이덱(SciDAC) 프로그램에 지원한 과제가 A등급을 받은 것이다. 덕분에 미국의 슈퍼컴퓨터를 사용했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이 등급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연구비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이 단장은 “과거 미국에서 14년간 생활하며 맺은 인연들과 현재 연구단원들처럼 좋은 사람들이 있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다”며 “어려움을 겪고 나니 정신적으로 한층 강해졌다”고 말했다.




[나의 성공담] 선택과 집중, 그리고 끈기
“사실 제가 머리가 특별하게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하나의 주제를 풀어내려고 끈기 있게 매달릴 뿐이죠. 여기까지 온 비결이라면 주제를 선택하고 집중한 뒤에 끈덕지게 물고 늘어진다는 점이겠네요.”

이 단장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를 골라 그것을 푸는데 자신의 온 에너지를 모은다. 여러 문제에 신경을 쓰다보면 능력이 나눠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12년 전부터 ‘입자물리학의 현재 표준모형은 옳은가’하는 문제에 매달리고 있다.

입자물리학은 이 세상이 무엇으로 이뤄졌고, 그것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밝히는 학문이다. 현재까지는 세상의 기본 물질은 공간을 점유하지 않는 입자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들의 상호작용을 힘이라 부른다.

현재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은 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을 다 포함해 세계를 해석하고 있지만, 뉴턴의 고전역학으로 원자 수준의 미시 세계는 설명하지 못했듯 더 작은 입자의 세계에서는 이 표준모형이 맞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이 단장의 생각이다.

그는 “지난 12년간 케이온(Kaon)이라는 작은 입자가 표준모형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를 이론적으로 연구해 왔다”며 “이제 조금씩 원하던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격자게이지이론연구의 미래상] ‘초표준모형’의 단서 제공하겠다
전자기력에 음전하와 양전하가 있듯이 물질을 이루는 최소단위라고 여겨지는 쿼크 입자는 3가지 다른 색소 전하가 있다. 이들이 서로 상호작용함으로써 힘이 결정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이론은 1973년 나온 양자색소역학(QCD)인데, 이를 계산하는 데는 엄청난 빠르기의 슈퍼컴퓨터가 필요하다.

“사람의 손으로는 쿼크나 글루온 등의 입자간의 힘을 표준모형으로 계산할 수 없어요. 격자게이지이론이란 QCD 이론을 컴퓨터로 변환해 계산할 수 있게 해주는 연구입니다.”

연구단은 1초에 100조번 사칙연산을 하는 컴퓨터 장비를 가지고 표준모형을 해석하고 있다. 현재 오차율은 5% 정도이고, 이미 주목할 만한 연구결과들이 나오는 중이다.

이 단장은 “오차율이 점점 줄어들면 표준모형이 맞는지 명확하게 증명할 수 있다”며 “현재 표준모형의 모순을 발견한 경우는 중성미자의 질량밖에 없지만, 앞으로 다른 오류들을 찾아낸다면 표준모형을 넘어선 새로운 이론, ‘초표준모형’이 필요하다는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 연구단의 논문을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며 “혹시 물리학의 역사에 남게 될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격자게이지이론이란 [편리한 도구]다
이 단장은 격자게이지이론을 굉장히 편리한 도구라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계산이 어려워서 연구하지 못한 것이 많다는 것. 그는 “격자게이지이론 덕에 10년 정도 연구하고 결과가 나오고 있다”며 “컴퓨터 속도도 빨라지고, 좋은 부품도 나오는 좋은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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