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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조원 사업단장, 꼴찌가 앞설 수 있었던 건 믿음때문

[기획 인터뷰] ‘더사이언스’가 만난 프론티어
봄날의 기운이 불씬 풍겼던 이달 7일. 이조원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만났다.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은 1999년부터 시작된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의 하나로, 올해 3월 10년의 대장정을 마쳤다.

이 기간 동안 사업단은 총 1382억 원을 지원받았다. 연구 인력 4400여 명이 이 길을 함께 했다. 10년간 학술지에 게재한 논문만 1027건이다. 이 중 932개가 SCI급 학술지에 실렸다. 특허출원 건수는 1251건이다. 삼성전자에 기술이전 한 32기가 40나노 낸드플래시 핵심기술을 비롯해 총 14가지 기술을 산업체로 이전했다. 기술이전료로 278억 원을 받는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은 사업단의 경제효과가 22조 원에 달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10년을 돌이키는 이 단장의 얼굴에는 잔잔한 웃음이 번졌다. 이 단장은 “후련하다”고 했다. “다른 나라가 앞섰던 건 따라갔고 우리가 앞선 건 선두를 계속 지켰다”는 말에서 일류를 키워낸 아버지의 마음이 엿보였다. 하지만 자식들 앞에선 당당해도 남들 몰래 눈물을 훔치는 뭇 아버지처럼 이 단장 역시 “마음을 졸였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 단장은 연구단의 대표 성과인 32기가 40나노 낸드플래시 핵심기술 개발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10여년 만에 기술개발 성공…세계 흐름 바꿔


1995년 삼성종합기술원에 있던 이 단장은 고민에 빠졌다. 당시 사용하던 반도체 제작 기술이 한계를 맞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간 나온 반도체 메모리 소자에 대해 1년간 문헌조사를 했다. ‘이건 되겠다’고 생각한 게 전하트랩플래시(CTF)였다. 기술원 내에서는 별로 주목받지 못 했다. “그냥 한 번 해봐”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장을 맡게 됐다. 당장 자신이 확신을 갖고 추진했던 CTF 연구가 사장될 상황. 이 단장은 해당 연구를 국가과제로 지정해 연구를 지원했다. 당장의 성과를 내는 게 사업단 평가에 유리할 법도 하건만 이 단장은 그러지 않았다. 될지 안 될지 모르는 연구를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모험이었다.

4년이 지났다. 2004년 삼성전자가 관심을 보였다. 이듬해 기술원에 있던 인력 모두를 삼성전자로 데려갔다. CTF 연구가 급물살을 탔다. 2006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선정한 ‘최고 과학기술 뉴스’로 꼽힌 차세대 낸드 플래시 기술은 그렇게 세상의 빛을 봤다. 이 단장의 ‘뚝심’으로 연구진의 땀방울을 어루만진 결과였다.

“도체를 이용하는 기존 방식은 반도체를 작게 만들수록 간섭현상이 일어나 효율이 떨어져요. 안정적이지도 않고. 하지만 이 방식은 부도체를 쓰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습니다. 지금 대다수의 반도체가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져요. 전 세계적인 흐름을 바꾼 거죠.”

이 단장은 “당시 국가과제로 (CTF 연구를)지정하지 않았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라며 “국가·연구소·기업의 협력이 성공한 사례”라고 말했다.




1차 평가 때 5개 사업단 중 4등하기도


처음부터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지 않았다. “오히려 부담을 느꼈”을 정도. 사업단의 이름부터가 그랬다.

199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나노기술(NT)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2000년 당시 클린턴 정부는 국가나노기술개발전략(NNI)을 발표했다. 이를 유심히 지켜보던 정부 역시 나노 분야를 자생식물자원, 자원 재활용과 함께 차세대 먹을거리로 꼽았다. ‘21세기 프론티어연구개발사업’으로 테라급나노소자개발사업단이 생긴 건 그 때였다.

“처음에는 엄청 부담을 느꼈어요.(웃음) 연구단 이름 앞에 테라급이 아니라 나노 소자였으면 했죠. 과연 테라급 반도체를 만들 수 있을지 두렵기도 했고요.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달려들었죠.”

원투펀치의 연속이었다. 2003년 1차 평가 때 5개 사업단 가운데 4등을 했다. “겨우 살아남았다”고 여겼다.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2차 평가가 있던 2006년에는 연구지원비가 10억 원 이상 깎였다. 80억 원 정도를 지원받았다. 예산이 부족했다.

연구를 진행하던 11개 세부과제 가운데 2개를 포기했다. 실리콘 반도체를 만드는 시모스 기술과 중앙처리장치(CPU)와 메모리의 연결효율성을 높이는 광연결 기술 사업이었다. 이 단장은 “눈물을 머금고 그만 뒀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다행히 2007년 광연결 기술 사업은 되살릴 수 있었다.

이 단장은 사업단 평가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각각 프론티어 사업단의 성격이 다른데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았다는 것이다.

“크게 3단계로 나눠 연구를 진행했어요. 1단계는 원천기술 확보, 2단계는 효율성 향상 3단계는 시스템 구축으로 말이죠. 그러다보니 사업성과가 단기간에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다른 사업단 같은 경우에는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결과가 바로 산업화로 연결돼지만 나노 분야는 특성상 그렇지도 않고요. 마음고생이 엄청 심했습니다. 단·중기 과제를 적당히 섞어서 했다면 덜 했을 텐데…. 사실 대박 터지는 기술을 좇은 제 잘못도 있죠.(웃음)”




믿음이 큰 힘 됐어


사업기간이 뒤로 갈수록 ‘꼴찌의 반격’이 두드러졌다. 2006년 40나도 32기가 낸드플래시 핵심기술 개발, 2007년 가장 정밀한 식각기술 개발, 2008년 전자 1개로 정보를 처리하는 단전자 트랜지스터 개발 등 대부분의 연구 성과가 후반기에 터져 나왔다.

이 단장은 “정부에서 사업단장을 믿고 자율권을 많이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가령 교육과학기술부 관계자가 “이거 안 되는 기술이라는데, 왜 계속 하는 거야”라고 압박을 했다면 장기적인 과제를 추진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단장은 이를 ‘신뢰 사회 구축’이란 단어로 함축해 표현했다. “실패에 대한 위험부담을 누가 지느냐, 하는 문제가 있지만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이 단장 역시 세부과제 책임자에게 권한을 이양했다.





2020년 슈퍼 인텔리전트 사회 올 것…국가 나서서 연구해야


이 단장은 “혁신을 이루려면 연구원이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보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며 함께 있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 융합의 시대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좋기 때문이다.

이어 “집단연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가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통해 직접 나가서 세계와 일분일초를 다투는 ‘연구 전사’를 길러내야 한다고 이 단장은 말했다.

시계가 11시 50분을 가리켰다. 인터뷰에 응한 지 1시간 30분 째. 이 단장의 얼굴에선 여전히 미소가 맴돌았다. 사업을 끝냈다는 후련함과 아쉬움, 자신과 일선 연구원들이 농사지은 연구결과에 대한 뿌듯함이 섞인 묘한 미소였다. 그는 “앞으로 슈퍼 인텔리전트 사회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큰 컴퓨터가 주머니 안으로 넣을 수 있을 만큼 작아지는, 그러면서 성능은 향상된 슈퍼 인텔리전트 사회가 올 겁니다. 그런 연구소를 차세대 동력으로 삼아 국가에서 지원해야 해요. 2020년 이후에는 정보기술(IT)·나노기술(NT)·생명공학기술(BT)가 세상을 완전히 바꿀 겁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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