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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가득한 ‘염증’ 치료해 볼까?




이상규 연세대 염증반응제어연구단장


[창의연구단 공동기획] 이상규 연세대 염증반응제어연구단장


“염증은 우리 몸을 보호하는 장치입니다. 외부에서 병원균이 들어왔다는 신호니까요. 이 신호가 있어야 면역이 진행되는 거죠. 하지만 치료해도 계속 염증이 발생하면 다른 질병이 됩니다. ‘만성염증’이 모든 질병의 원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세상에는 다양한 종류의 염증이 있다. 외부 병원균이 일으키는 염증은 물론이고 암세포나 높은 혈당, 독성물질, 스트레스 등도 우리 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런 염증들이 한번에 치료되지 않고 재발하는 경우 ‘만성염증’이 돼 몸을 괴롭힌다.

또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들이 우리 몸에 있는 정상세포를 병원균으로 오해해 염증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를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하는데 류머티스 관절염이나 아토피 피부염, 천식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상규 연세대 염증반응제어연구단장은 이런 다양한 종류의 염증을 연구한다. 병원균이 들어오면 우리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염증을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찾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 단장은 “2000년 염증반응을 조절할 수 있는 단백질인 PTD(Protein Transduction Domain)를 발견했다”며 “이 물질을 이용하면 질환 치료의 마지막 선수인 단백질이 직접 세포 속으로 들어갈 수 있어 치료효과가 좋은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오기까지] 면역학과의 만남이 인생의 전환점 되다


이상규 단장은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었다. 아버지와 숙부 8명이 모두 정치나 경제 쪽을 전공한 영향을 많이 받은 것. 하지만 경제학이나 경영학과는 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다. 몇 년 공부한 뒤 전공을 생명공학으로 선택했지만 그 꿈을 버리지 못했다.

“꼭 문과 공부를 하겠다는 집념이 있었는데, 정말 인연이 안 닿더라고요. 어느 순간 ‘이제 충분히 해봤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대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입대했습니다.대학원에 진학하는 친구들은 보통 몇 주씩 훈련만 받는데, 저는 33개월 동안 임진강 철책에서 근무를 하게 된 거죠.”

힘든 군대 생활을 하면서 이 단장은 ‘생명공학을 잘 해보자’는 결심을 했다. 문과를 쫓느라 가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며 혼자 책상을 만들어 따로 공부하기도 했고, 유학길에 오르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복학 후에도 그는 전공과 영어를 꾸준히 공부했다.

“1984년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때 나간 연구자들이 유학 1세대인데, 다들 분자생물학이나 생화학을 전공하더라고요. 그때 미국에서 이 분야 연구가 활발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는 ‘면역학’이 하고 싶었습니다.”

이 단장은 미시건대에서 면역학 강의를 들으며, ‘이 학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재가 얇은 만큼 알려진 게 없는 분야이지만 앞으로 중요해질 거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시건대에서 석사를 마친 뒤 예일대 의대 면역학과에서 박사 과정을 시작했다.

“예일대에 갔던 게 1988년이니까 30년 넘게 면역학을 연구했네요. 그걸 전공하고 1995년에 서울에 왔는데, 면역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저를 포함해서 셋뿐이었어요. 진짜 신생 학문에 뛰어들었던 셈이죠.”

1990년대 중반이 되자 면역학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학문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얇았던 면역학 교재는 두꺼워진데다, 2년에 한번씩 새로 나온다. 그만큼 발전 속도가 빠른 것이다. 이 단장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적절한 시기에 면역학 강의를 들었다”며 “내면에 숨어있던 과학에 대한 애정이 면역학 덕분에 일깨워 졌다”고 말했다.




[어려움을 너머] 연구실서 2박 3일


“제가 미국으로 유학갈 때 28살이거든요. 동기들보다 한 5년 정도 늦은 걸 만회하려니 잠자는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이 단장은 다소 늦은 인생의 진도를 따라잡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금요일에 연구실에 들어가면 월요일 아침까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연구에 집중했다. 연구실에 있는 라디에이터 위에 종이박스를 깔고 새우잠을 자야했지만, 쉴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가 다녔던 학교로 제자들이 유학가기도 하는데요. 그러면 당시 제 동료들이 제자들을 불러다가 ‘여기가 너희 교수님이 주무시던 곳이다’라고 알려준다고 해요. 허허허.”

누구보다 부지런히 살다보니 동기들과의 간격이 점점 좁혀졌다. 당시에는 6~7년이 걸려야 할 수 있던 박사 과정도 4년 반 만에 끝냈고, 박사후연구원 생활도 부지런히 해 동기들보다 1년 늦게 국내에 들어올 수 있었다.

이 단장은 “‘못할 게 없다’는 생각으로 뭐든 열정적으로 한 덕분에 좋은 결과도 얻고, 목표도 이룰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의 성공담] 소탐대실은 금물… 길게 보고 큰 연구하라!


이 단장은 큰 연구를 진행하면서, 중간에 나온 결과로 논문을 발표하지 않는다. 논문을 많이 발표하면 실적이 쌓일 수는 있지만, 그렇게 작은 것을 좇다보면 큰 목표를 잃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소탐대실(小貪大失)하지 않는 게 제 지론입니다. 물론 큰 것을 좇다보면 초기에는 연구결과가 적게 날수도 있어요. 하지만 길게 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해야 나중에 굵직한 연구 성과들을 낼 수 있습니다.”

이 단장은 “연구의 포트폴리오를 갖춘다는 생각으로 계획적인 연구를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내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염증반응제어연구의 미래상]뿌리거나 바르기만 하면 낫는다


대부분의 만성염증질환 치료제는 염증세포의 주변에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질환을 효과적으로 치료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단장이 발견한 단백질 PTD는 염증세포 속으로 들어가므로 염증반응을 효과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이 단장은 이 단백질로 약을 만들면 염증 부위에 뿌리거나 바르기만 해도 약물전달효과를 볼 수 있다”며 “덕분에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서 생기는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류머티스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노란색 알약 성분을 PTD와 결합해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이 알약은 관절염에는 효과가 있지만 그 독성이 강해 먹으면 위장 등의 소화기관을 해치고, 신장 이상도 일으키는 부작용이 있다. 맛도 너무 써 한번 이 약을 먹은 환자들은 노란색만 봐도 쓴 맛이 떠오를 정도라고 한다.

이 단장은 PTD 단백질로 약을 만들어 피부에 바르기만 해도 약 효과를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약은 현재 전임상 연구를 끝내고 임상 시험에 들어갈 만큼 효과를 인정받았다. 그는 “PTD 단백질처럼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단백질이 면역세포인 T세포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지도 모른다”며 “앞으로도 염증을 잘 잡을 수 있는 단백질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앞으로 생명공학 연구는 질환을 중심에 두고 접근하게 될 것”이라며 “몸 전체 시스템을 두고 어떤 커다란 그림을 그리는지가 중요하고 그걸 하는 사람이 연구를 주도하게 될 것”고 말했다.




염증반응제어연구로 삶의 질 높인다


이 단장은 염증반응제어연구가 삶의 질을 높여준다고 말한다. 염증은 온 몸에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고, 그것이 만성이 되면 삶이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염증반응제어연구단은 염증이 외부에서 오는 병원균에 재빨리 대응하고, 만성염증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염증세포와 면역세포, 그리고 온몸의 시스템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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