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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 장애 체험기… 혼자 밥먹고 사진작가 활동도 가능해

국립재활원재활연구소, 장애인의 날 맞아 시제품 발표회 개최


국립재활원 재활연구소는 19일 오후 서울 강북구 연구소에서 장애인들을 위해 1년간 연구개발한 성과를 선보였다. 이 ‘재활연구소 시제품 및 연구과제 발표회’에서 총 8종의 연구과제를 발표하고, 5종의 첨단 발명품의 시제품 역시 선보였다. 재활연구소는 2008년 11월 문을 연 국내 유일의 장애인 전문 연구기관이다. 의학, 보건, 공학 등 다양한 과학분야 인력이 공동으로 장애인을 위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20일 장애인 날에 앞서 재활연구소를 찾은 기자는 재활연구소의 시제품을 일일이 체험해 봤다. 기자 스스로 목 아랫부분이 움직이지 않는 전신장애인이라고 가정하고 재활연구소의 시제품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 경험을 장애인의 시각에서 일일 체험기 형태로 정리해 본다.







뇌파감지용 블루투스 헤드셋. 이 헤드셋을 쓰고 있던 환자가 극도의 긴장상태를 보이면 즉시 알람이 울린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 뇌파 전송해 간병인 호출… 식사도 혼자 척척


아침 햇살에 눈이 떠졌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뭐였지. 일단 책상 앞에 앉아 일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간병인을 불러야 할 텐데…. 잠을 깨우러 올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아 있다. 얼굴을 찡그려 확인해 보니 헤드 셋은 그대로 머리에 씌어져 있다. 뇌파를 24시간 측정하고 있다가 응급상황이 되면 신호를 보내주는 장치다.

긴장을 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수학을 싫어하는 나에겐 머릿속으로 최대한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1217X85는? 10만3445. 1980+2만8376……. 몇 번 세어보지 않았는데 침대 맞은편에 놓여진 모니터에서 긴장도를 나타내는 뇌파 숫자가 치솟기 시작했다. 60. 65. 70. 75……. 80까지 숫자가 올라가자 집안 전체에 사이렌이 울린다. 왜앵~ 왜앵~. 1~2분 지나자 간병인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무슨 일 있나요?”

“별 일은 아니에요. 나 좀 일으켜 주실래요? 서재에 가고 싶어요.”

“어휴. 깜짝 놀랐잖아요. 좀 기다리지 않고.”

간병인은 투덜거리면서도 내 몸을 일으켜 침대 한쪽에 펴져 있는 넓은 천위로 옮겨 앉힌다. 환자의 몸을 옮겨 주는 리프트와 연결된 일종의 의자다. 스위치를 넣자 지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전동 휠체어 위로 내 몸을 옮겨 주었다. 이 리프트를 쓰면 몸무게가 무거운 사람도 여성 간병인이 쉽게 옮길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장애인 식사보조 시스템. 턱 끝으로 우측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2개의 로봇 팔이 식사를 입으로 옮겨다 준다.

간병인은 서재에 가기 전에 아침식사부터 하라고 했다. 입으로 작은 조종간을 눌러 전동휠체어를 운전해 거실 옆 식당까지 갔다.

식탁위를 보자 간병인이 식사를 차려 둔 것이 보였다. 3가지 반찬과 밥이 식판위에 담겨 있다. 누가 도움을 주지 않아도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턱으로 버튼을 누르면 로봇 팔이 움직여 밥과 반찬을 순서대로 수저 위로 옮겨 주고, 다시 한 번 누르면 입으로 수저를 가져다준다.

간병인이 밥을 수저로 떠 먹여주는 것보다는 이게 더 편했다. 밥을 먹다보면 씹는 것을 잠시 쉬고 싶을 때도 있고, 목이 멜 때도 있다. 하지만 간병인이 그런 심정을 알 리가 없다. 그저 묵묵히 밥을 떠서 가져다 줄 뿐이어서 수동적으로 받아먹는 수밖에는 없다. 그런 것에 비하면 밥알 등 음식물이 조금 흘러내리기는 해도 이 쪽이 훨씬 편했다.







휠체어의 움직임을 마우스 커서와 연동할 수 있는 위치인식 시스템. 게임을 하거나, 그림 등을 그릴 수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 운동도, 컴퓨터 작업도 혼자서


아침밥을 먹고 서재에 들어서니 어제 편집하던 사진이 그대로 화면에 떠 있었다. 사진 찍는 것이 직업이다. 사고를 당해 전신불수가 됐을 때는 삶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좋아져 있었다. 지금 책상엔 입술움직임을 통해 커서를 움직이고, 입김을 불어 클릭을 할 수 있는 특수 마우스가 설치돼 있어 어지간한 컴퓨터 작업은 혼자 할 수 있다.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색상을 조금 화려하게 바꾸고,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낙관(컴퓨터사인)도 찍어 인터넷 판매 사이트에 올렸다. 원본사진을 사 가려는 사람이 있으면 e메일로 연락해 돈을 받고 판다.

사진을 등록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확인해 봤다. 오후에는 스튜디오에서 모델 사진 촬영이 있었다. 컴퓨터 전화기로 모델에게 전화를 걸고, 약속시간을 확인했다. 의상이나 촬영 주제 등에 대해 논의를 마쳤다.

소화가 잘되지 않는 것 같아서 조금 운동을 하기로 했다. 비록 목 아랫부분을 움직일 수 없지만 그래도 몰입해서 할 수 있는 운동은 꼭 필요했다. 또 다른 컴퓨터 프로그램을 시작시켰다. 한쪽 벽면에 비춰진 화면에 ‘벽돌격파’ 게임이 보인다. 이리저리로 움직이는 구슬을, 작은 막대기를 움직여 계속해서 받아내는 고전적인 게임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전동휠체어의 움직임과 그대로 연동된다는 것. 휠체어를 조작해 앞으로 가면 막대도 나를 따라 화면 속에서 움직였다. 한 시간 정도 앞뒤로 열심히 움직이며 게임을 하다 보니 땀이 흐른다. 간병인을 불러 목욕을 하고 보니 벌써 10시. 직장인 스튜디오로 출근할 시간이다.







전신 장애인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전동 휠체어. 전문가용 디지털일안반사식(DSLR) 카메라의 자동촬영 기능을 이용해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연구팀은 곧 사진기의 높낮이 조절, 줌 렌즈 조작, 수동 노출조작 등의 기능을 추가할 계획이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업무도 척척… 그래도 주변도움 꼭 있어야


직장은 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비가 오지 않으면 직접 전동휠체어를 운전해서 간다. 스튜디오에 도착해 동료에게 업무용 전동 휠체어로 바꾸어 앉혀 달라고 했다. 이 휠체어에는 컴퓨터와 작가용 고급 사진기가 붙어 있다.

찍고 싶은 것이 있다면 휠체어 앞 쪽에 붙어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구도를 잡는다. 턱과 입으로 버튼을 조작하면 카메라 높낮이와 각도, 화면의 밝기 등을 모두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사진을 찍을 때는 뺨 옆에 있는 둥근 판을 살짝 밀어준다.

“오늘은 햇볕이 너무 강한데. 아예 커튼을 모두 닫고 인공조명으로 사진을 찍읍시다.”
“그럴까요?”

직장 동료가 주문대로 커튼을 닫고, 조명도 맞추어 준다. 아쉽게도 이럴 경우엔 할 일이 별로 없다. 앉아있는 상태에서 일어날 수도 없고,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주위사람의 도움을 빌려야만 한다.

한참 일을 하다 보니 휠체어 화면에서 경고음과 메시지가 뜬다. 똑같은 자세로 너무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휠체어 바닥에는 압력센서가 내장돼 있다. 한 가지 자세로 계속 앉아 있다 보면 피부에 욕창이 생길 수 있으니 경고 메시지를 보내준다. 다시 동료의 도움을 빌려 앉아있는 자세를 조금 바꾸어 주었다.

아직 중증 장애인들에게는 불편한 것이 훨씬 많다. 특히 목욕을 하거나, 화장실을 가는 등 생리적인 현상을 혼자 해결할 방법이 빨리 개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자동으로 목욕을 시켜주는 욕조도 개발돼 있다. 하지만 목욕탕에 혼자 들어서지 못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겐 이런 시스템도 그림의 떡이다. 전동식이긴 하지만 휠체어에 의존하다 보니 계단 한 두개가 접근금지 표지판 처럼 보일 때도 많다.

그렇지만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혼자 식사를 하는 것도, 사진작가로 계속 활동할 수 있는 것도 얼마 전까진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 분명 더 좋아질 것이다. 그때는 조금 더 살만하지 않을까.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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