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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앙리 파브르, 아마추어이기에 더 위대했던 곤충학자




파브르의 손. 파브르는 90살에 가까운 나이까지 곤충을 관찰하고 각종 실험기구를 직접 제작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사진제공 청년사)

[사진 한 장에 담긴 과학자의 삶]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고 있는 과학자를 꼽으라고 해보면 어떤 순서로 나올까.

아인슈타인, 뉴턴, 퀴리 부인, 갈릴레오, 다윈. 이런 이름들을 말하다보면 어느새 곰곰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아, 파브르가 있었지”하고 무릎을 치리라. 프랑스의 곤충학자 장 앙리 파브르는 이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아마도 열손가락 안에 드는 과학자일 것이다.

사실 유명한 과학자라고 해도 일반인이 그 사람의 업적을 제대로 이해하거나 직접 쓴 저서나 논문을 읽어보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 조차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파브르의 ‘곤충기’는 아마 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한 번쯤은 읽어보지 않았을까.




●수학, 과학 교사로 청춘 보내
기자 역시 한 30년 전에 파브르 곤충기를 재미있게 읽고 곤충을 채집하고 기르던 기억이 난다. 쇠똥구리, 니나니벌 같은 곤충 이름이 지금도 친숙한 건 곤충기 덕분일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성신여대 김진일 명예교수가 파브르 곤충기를 완역했다는 기사를 봤다. 총 10권 분량으로 김 교수는 2006년 1권을 낸 뒤 4년 만에 10권을 끝낸 셈이다. 우리가 어릴 때 읽은 한권짜리 곤충기는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내용을 쉽게 한 것 뿐 아니라 분량도 10분의 1로 줄인 축약본이었던 것이다.

‘철학자처럼 사색하고, 예술가처럼 관찰하고, 시인처럼 느끼고 표현하는 위대한 과학자’라는 문구에 갑자기 완역 곤충기를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먼저 1권을 샀다. ‘진왕소똥구리’ 얘기부터 시작하는데 너무 재미있으면서도 과학적 깊이도 대단해 깜짝 놀랐다. 이렇게 엄청난 책을 ‘곤충기’는 아이 때나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니 기자의 무지함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친김에 혹 파브르의 전기가 있나 해서 검색해보니 독일의 작가 마르틴 아우어가 1995년 펴낸 ‘파브르 평전: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한글판은 2003년 나옴)는 책이 있어 도서관에서 빌려봤다.

‘파브르 평전’의 앞부분에는 흑백자료사진이 22장이나 있어 무척 흥미로웠는데 그 가운데는 파브르의 손을 찍은 사진도 있다. 노인의 쪼글쪼글한 손을 찍은 이 사진은 기자가 어렸을 때도 보고 그 뒤 파브르 하면 떠올랐는데(그러면서도 구체적인 이미지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 사진을 보니 어릴 적에 본 게 ‘착각’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을 읽어보고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파브르는 뛰어난 곤충학자이기에 앞서 정말 ‘위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23년 남프랑스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파브르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수학, 물리, 화학을 독학해 교사자격증을 취득해 교사로 봉직했다. 당시 프랑스는 교사 봉급이 형편없던 때라 파브르는 책을 읽으며 현실의 고달픔을 잊곤 했다.

“책 속에 파묻혀서 교직의 구차한 어려움을 잊었다. 어떻게 내 수중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지만, 곤충학 관련 책들을 읽고 있었다.”

파브르가 우연히 읽은 건 당시 곤충학 연구의 권위자였던 레옹 뒤프르가 노래기벌의 습성에 대해 쓴 책이었다.

“새로운 인식이 계시처럼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예쁜 곤충들을 코르크 판지로 도배한 상자에 매끈하게 배열해 종을 정하고 분류하는 것만이 곤충학의 전부가 아니었다. 좀 더 큰일이 있었다. 그것은 동물들의 구조, 특히 이들의 특성을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일이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면서 책을 읽었다.”





곤충학 하면 분류학을 떠올리던 당시 파브르는 행동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연구를 직접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는 노래기벌의 집에 있는 먹이인 비단벌레가 죽어있음에도 몸이 썩지 않는 현상에 대한 뒤프르의 설명(벌의 독이 방부제 역할을 한다는)에 의문을 품었다. 그는 곧바로 관찰과 실험을 통해 비단벌레가 죽은 게 아니라 벌의 침을 맞고 마비된 상태라는 걸 밝혀 ‘자연과학연보’에 논문을 제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때가 1855년으로 그는 32세였다.

이후 파브르는 교사생활 틈틈이 곤충연구를 병행했으나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지 못해 고민했다. 결국 여러 교재를 펴내 상당한 인세를 확보한 파브르는 교사를 그만두고 1879년 세리냥의 알마스라는 외딴 곳에 땅을 사고 정착했다. 이해 56세의 파브르는 ‘곤충기’ 1권을 출간했다.

그 뒤 파브르는 1907년 10권을 낼 때까지 30여 년 동안 알마스에서 곤충연구에 몰두했다. 결국 우리가 어린 시절 읽던 곤충기는 보통 학자들이라면 경력이 끝날 무렵 시작해 84세의 고령까지 연구에 매달린 결과물의 축약본이 셈이다.



사진


파브르(앞)와 가족들. 파브르는 곤충을 관찰할 때 자녀들을 공동 연구자로 참여시켜 많은 흥미로운 결과들을 얻었다. 곤충기 곳곳에는 자녀들과 함께 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진제공 청년사)


●다윈과도 교류해
‘파브르 평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파브르와 찰스 다윈의 교류를 언급한 부분이었다. 1809년 생으로 파브르보다 14살 연상인 다윈은 평소 파브르의 연구업적에 깊은 인상을 받아 ‘종의 기원’에도 소개했다. 특히 1879년 나온 ‘곤충기’에는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는데 결국 파브르에게 연구를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의 편지를 보자.

“곤충이 제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아낸다는 당신의 훌륭한 실험과 관련하여 내가 제안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전부터 비둘기로 이런 실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과학계의 거장에게서 의뢰를 받은 파브르는 감격해서 실험을 진행한 건 물론 그의 편지를 좀 더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영어까지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1880년, 1881년에 걸쳐 진흙가위벌로 실험을 했는데 그 결과를 다윈에게 편지로 알리려고 하던 찰라 다윈의 사망소식을 듣는다. 이해(1882년) 출간한 곤충기 2권의 7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이 장과 다음 장은 영국의 저명한 박물학자 찰스 다윈에게 편지를 보내려던 내용이다. 그는 지금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뉴턴과 마주 누워서 잠들었다. 그와 오가던 편지에서 나는 그가 암시했던 몇몇 실험 결과를 알려주기로 되어 있었다.”

1907년 곤충기 10권을 낸 파브르는 84세의 고령에도 연구를 계속하며 11권을 준비했다. 그러나 시력이 약화되고 보행도 부치는 지경에 이르자 더 이상의 연구를 포기한 채 여생을 보내다 1915년 92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파브르가 남긴 다음의 말은 정식으로 곤충학을 배우지 않았지만 어떤 곤충학자보다도 위대한 관찰자였던 파브르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나는 꿈에 잠길 때마다 단 몇 분만이라도 우리 집 개의 뇌로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랐다. 모기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다. 세상의 사물이 얼마나 다르게 보일 것인가!”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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