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 연구소

척척박사 연구소과학이야기제목별로 보기해설이 있는 과학

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스티븐 추, 21세기 오펜하이머를 꿈꾸는 물리학자




스티븐 추 장관이 1980년대 벨연구소에서 일하던 모습(왼쪽). 그는 이곳에서 레이저로 원자를 냉각해 가두는 실험에 성공해 199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사진제공: 미국 에너지부
[사진 한 장에 담긴 과학자의 삶]
스티븐 추(Steven Chu).

작년 초 중국계 물리학자가 미국 에너지부 장관으로 임명됐다고 해서 국내에서도 화제가 됐다. 과학자가 에너지부 장관이 된 건 스티븐 추가 처음이라고 한다. 미국은 안 그런 줄 알았는데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가나 사업가 출신의, 소위 에너지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주로 장관자리를 차지했다고. 아무튼 그런가보다 했는데 과학저널 ‘네이처’가 지난해 마지막 호에서 ‘올해의 뉴스메이커’로 스티븐 추 장관을 선정해 6페이지나 할애해 기사를 실었다. 도대체 스티븐 추가 누구인가 하는 궁금증이 들어 기사를 읽었고 내친김에 노벨재단 사이트에 들어가 스티븐 추가 쓴 회고록까지 봤다.




●연구 위해 교수 자리도 마다하는 열정
스티븐 추는 1948년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43년 미국 MIT에 유학왔다가 중국이 공산화되는 바람에 미국에 눌러앉았다. 그의 집안은 학벌이 화려한 걸로 유명한데 추는 어려서부터 예외적인 존재였다고. 공부보다 친구와 로켓을 만들거나 옆집 토양의 산성도와 영양상태를 분석하는 실험에 몰두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가족 가운데 유일하게 아이비리그(미국 동부의 8개 명문사립대)에 들어가지 못했다.

뉴욕에 있는 로체스터대에 입학한 추는 물리학개론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교재가 ‘파인만의 물리학 강의’였다. 수학과 물리학에 매료된 추는 동경하는 아인슈타인, 파인만처럼 이론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캘리포니아대(버클리) 대학원에서 실험에 재미를 붙여 레이저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이때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 1978년 30세에 조교수로 임명됐다.

8년 동안이나 버클리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는 시야를 틔워주기 위해 2년 동안 그를 벨연구소에 파견키로 했다. 당시 벨연구소는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아무런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기초연구의 천국이었다.

“비좁은 실험실 때문에 우린 다른 연구자들이 뭘 하는지 알 수밖에 없었고 끊임없이 토론을 했다. 이런 분위기를 버릴 수 없었기에 나는 버클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추는 지금도 이 일을 생각하면 대학에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교수들이 자신의 결정을 이해하고 용서해줬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수자리가 날 때까지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보통 과학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모습이다. 아무튼 그는 벨연구소에서 포지트로늄(positronium)의 스펙트럼을 연구하기로 했다. 포지트로늄은 전자와 반입자인 양전자로 이뤄진 원자로 워낙 불안정해 수명이 140나노초(1나노초는 10억분의 1초)밖에 안 된다. 따라서 포지트로늄을 연구한다는 건 당시론 불가능한 과제였다.





2년간 실험에도 결과가 안 나오자 주위에서 시간낭비라며 실험중단을 권고했지만 추 박사는 동료 앨런 밀스와 끈질기게 실험을 계속해 마침내 레이저 펄스를 만들어 원자의 에너지를 측정하는데 성공한다. 위의 사진은 벨연구소에서 레이저 실험에 몰두하던 추 박사의 모습으로 걷어 올린 소매와 뿔테 안경 뒤에 보이는 예리한 눈빛에서 그의 강한 집념이 잘 드러나 있다.

그 뒤 피코초(1피코초는 1조분의 1초) 레이저 연구를 하던 추 박사는 우연히 ‘빛으로 원자를 포획한다’는 꿈을 꾸고 있던 물리학자 아르트 아시킨을 만나게 된다. 아시킨의 연구는 진전이 없어 당시 4년째 중단된 상태였다. 원자를 냉각시키면 포획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추 박사는 하던 실험을 제쳐놓고 레이저냉각실험에 들어가 이듬해인 1986년 드디어 성공한다. 이때 그의 팀이 레이저 6대를 동원해 만든 온도는 1백만분의 240K다(K는 절대온도 단위(켈빈)로 절대0도는 영하 273.15℃다).

1987년 대학(스탠퍼드대)으로 돌아간 추 박사는 레이저 연구를 계속했고 2004년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해 행정가로서의 제2의 삶을 시작했다. 직원 4000명, 예산 6억 5000만 달러(약 7500억 원)의 거대 조직을 이끌며 추 박사는 기후와 에너지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에너지 연구를 위해 새로운 실험실을 차리고 우수한 과학자들을 유치했다. 그리고 오바마 정권이 들어서면서 2009년 에너지부 장관으로 발탁됐다.


2009년 1월 13일 추 장관이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에너지부 장관 후보로 선서하는 모습. 추 장관은 취임 1년 동안 에너지와 환경 문제에 늘 무책임했던 미국의 태도를 180° 바꿔놓았다. 사진제공: GAMMA

지난 1년 동안 추 장관은 많은 일들을 했는데 무엇보다도 ‘고 위험(성공확률이 낮은), 고 수익’을 모토로 혁신적인 연구를 하도록 과학자들을 격려하는데 힘을 쏟았다. 기존 시스템의 효율을 높이는 걸 추구하는 연구로는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1940년대 맨하튼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얻어 8개의 에너지 혁신 허브를 제안하기도 했다. 즉 인공광합성시스템, 탄소포획저장기술 등 8가지 획기적인 연구에 매년 각각 2500만 달러를 5년 동안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또 지난 10월에는 37개의 고 위험 에너지 프로젝트를 선정해 1억51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그의 행보가 어떤 결과를 나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인류 에너지 소비량의 25%를 차지하면서도 에너지나 환경 문제는 나몰라라 하던 미국의 태도를 바꾼 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네이처’지에 논문도 내
지난 2월 18일자 ‘네이처’에는 흥미로운 논문이 실렸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을 원자시계 실험을 통해 실험실 수준에서 검증해볼 수 있는 방법에 관한 논문으로 주제 자체도 재미있지만 저자 3명 가운데 한명이 바로 스티븐 추 장관이었다. 현직 장관이 순수과학을 주제로 ‘네이처’ 같은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내는 건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다. 도대체 추 장관은 어떻게 이런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논문의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인 홀거 뮐러 캘리포니아대(버클리) 교수에 따르면 2008년 10월 어느 날 그는 추 교수팀의 1999년 논문(레이저로 냉각시킨 원자로 중력가속도를 측정하는 방법을 다룬)을 읽다가 실험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뮐러는 당시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소장으로 있던 추 박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3일 뒤 받은 답장에서 추 박사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말하며 공동연구를 수락하고, 자신이 곧 장관으로 가지만 밤과 주말, 비행기에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답했다.

논문 말미의 ‘저자 기여도’ 항목을 보면 ‘모든 저자가 중요한 기여를 했다. 원고는 뮐러와 추가 썼다’고 명시돼 있다. 사실 추 장관은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소장으로 있을 때도 연구를 병행해 주위에서 이들 두고 ‘과학 휴가(science vacations)’라고 부르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과학자 출신 장관이 몇 차례 있긴 했지만 추 장관이 보인 이런 경이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멋진 과학자 출신 행정가가 나온다면 얼마나 신날까.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내과학상자담기  E-MAIL 프린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RSS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나도 한마디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목록


내 당근 보러가기

내 뱃지 보러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