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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으로 본 ‘애가 타다’


| 글 | 정선용 경희대 동서신의학병원 화병스트레스클리닉 교수 ㆍlovepwr@khu.ac.kr |

“너 지난번에 좋다고 했던 남자랑은 어떻게 됐니?”
“아…. 말도 마. 밸런타인데이에 고백을 했는데, 생각해보고 연락 준다더니 며칠째 연락이 없어. 이렇게 애가 타는 기분은 처음이야.”
“에고, 우리 동생 애간장이 다 녹았겠구먼.”

우리말에 ‘애’라는 표현이 있다. 국어사전에서 보면 ‘걱정에 싸인 초조한 마음 속’과 ‘마음과 몸의 수고로움’이라는 두 가지 뜻이 나온다. 일반적으로 ‘애가 타다’에 쓰이는 애는 첫 번째 뜻인 초조한 마음이다.

본래 애는 창자(소장과 대장)와 간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이었다. 복잡한 심경을 강조하기 위해 간장(간)을 덧붙여 애간장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따라서 ‘애가 타다’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장이 타들어갈 만큼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심리상태’가 된다. 애가 ‘타다’ 외에도 ‘쓰다’, ‘터지다’, ‘달다’, ‘쓰이다’, ‘마르다’, ‘받치다’, ‘썩다’, ‘터지다’, ‘졸다’ 같은 동사와 함께 쓰이는 것을 보면 ‘애가 타다’를 간을 비롯한 내장 기관을 나타내는 단어에서 파생된 관용어라고 짐작하는 것에는 무리가 없어 보인다.






간은 영양소를 흡수하고 노폐물을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신진대사 작용을 관할하는 기관이다. 또 알코올 같은 자극 성분을 해독하고 소화를 돕는 쓸개즙을 생성하며 혈액응고인자와 혈장 단백질 종류인 감마글로불린을 만든다.

‘애가 타다’는 말처럼 초조하고 걱정스러운 심리적인 상태는 간 기능을 약하게 만들까. 서양 의학의 입장에서는 일시적인 심리 상태가 간 기능에 특별히 영향을 미친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른 장기의 기능은 제쳐두고 간만 콕 집어서 정신적인 문제에 예민하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초조한 상태가 되면 심장이 빨리 뛰고 진땀을 흘리게 되므로 오히려 심혈관계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고 볼 수는 있다.





다만 한의학에서는 사람의 장기마다 성질이 다르기 때문에 심리적인 자극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고 본다. 한의학에는 오행(五行)이라고 해서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라는 다섯 가지 기운이 수레바퀴 돌듯 돌아가면서 생명현상이 나타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목(木)은 새싹이 돋아나는 모습처럼 발생하는 기운을, 화(火)는 불이 활활 타는 모습처럼 무성한 기운을, 토(土)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어머니처럼 조정하는 기운을, 금(金)은 나뭇잎이 떨어지고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수렴하는 기운을, 수(水)는 다음 생명을 준비하는 씨앗처럼 저장하는 기운을 나타낸다.

이 중 간은 목(木)에 해당한다. 간은 봄철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처럼 기운을 위로 올라가게 만든다. 화가 날 때를 생각해보자. 화가 나면 기운이 올라가 눈이 빨갛게 되고 얼굴이 뜨거워진다. 이는 간이 기운을 위로 올리는 기능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 기능이 안 좋은 사람은 화를 내기 쉽고 화를 잘 내는 사람은 간 기능이 나빠지기 쉽다.




한의학에서 간은 기운을 위로 올라가게 하는 성질을 지녔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 이를 방어하기 위해 활동이 왕성해지고 심하면 타는 듯한 열을 발생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간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안 좋은 기운을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 한자를 보면 간(肝)이라는 글자 자체가 육달월(月)에 방패(干)를 더해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안 좋은 기운이란 서양 의학에서 말하는 바이러스와 세균, 독성물질도 해당되지만 사람의 감정을 심하게 흔들어 놓는 스트레스도 포함된다.



여기서 ‘애가 타다’가 어떻게 간과 연관되는지 찾아보자. 심리적으로 걱정에 싸여 초조해지는 감정은 사람의 감정을 심하게 흔들어 놓는 안 좋은 기운이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 간의 기운이 왕성해진다. 하지만 이 작용이 너무 심해지면 간의 기운이 위로 치솟아 오행의 발생순서상 화(火)를 생성한다. 즉 애가 왕성해지다 못해 타들어 가는 셈이다.

실제로 걱정을 많이 하면 간의 기운이 너무 왕성해져 열이 발생하는 간화상염(肝火上炎)의 증상이 나타나거나 기운이 제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심하게 뭉치는 간기울결(肝氣鬱結)이 발생할 수 있다. 흔히 이야기하는 화병은 간화상염에 가깝고, 간기울결은 보통 화병에서 열이 나기 직전 단계로 볼 수 있다.



화병을 일시적인 가벼운 증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화병은 197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체계적으로 연구돼 1996년에는 미국 정신과협회에서 한국인에게 나타나는 특이한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공인한 질병이다. 화병을 문화 관련 증후군으로 분류한 것은 서양의학에서 다루는 우울증이나 신체형장애와는 다른 독특한 증상과 특징들이 나타나기 때문이다(화병은 대부분의 환자들이 원인을 알고 있고, 본인이 화병인 것을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간화상염은 발열과 목마름, 충혈, 두통, 어지러움 같은 증상을 동반하지만 감정 변화에 따라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한다. 간기울결은 가슴 답답함과 옆구리가 묵직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중·고등학생들에게서 화병의 전형적인 모습인 간화상염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화병의 직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간기울결의 모습은 잘 나타나는 편이다. 대표적으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잠을 잘 못 자며 머리가 멍해져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시험을 망치는 증상이 간기울결의 대표적인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들의 유병률이 조사된 적은 없지만, 지역사회의 유병률을 보면 일반인의 4.2% 가량이 화병 증상을 가지고 있다는 연구가 보고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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