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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유전자 찾아 ‘死前약방문’ 만든다



그림

 



[개인게놈시대]<하>개인맞춤의학의 등장


美 49만원에 유전병 확률고지 서비스
발병 가능성 예측 사전처방 가능해져
유전적 차이 고려한 신약개발도 가능
고용-승진 등 차별 막기위한 제도 필요

기침할 때마다 피가 묻어났다. 숨쉬기가 힘들고 가슴 통증이 계속됐다. 고희진(가명·60) 씨는 2월 고려대 안암병원을 찾았다. 종양이 폐를 꽉 채우고 있었다. 폐암 4기였다. 의료진은 고 씨의 유전자를 분석했다. 폐암세포에서 ‘EGFR’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발견됐다. 이 유전자는 폐암세포의 생존과 전이에 관계가 있다.



의료진은 고 씨에게 폐암표적치료제 ‘이레사’를 처방했다. 현재 종양은 3분의 2 크기로 줄었다. 김열홍 고려대 의대 교수는 “돌연변이 폐암 유전자가 있으면 이레사 항암제를 썼을 때 종양이 반으로 줄어들 확률이 70∼80%”라고 말했다. 돌연변이 유전자가 없는 암의 경우 10%에 그친다.

키 176cm, 몸무게 76kg으로 건장한 체격인 김종락(가명·35) 씨는 오래전부터 혈관 속에서 피가 굳는 심혈관 질환을 앓았다. 뇌중풍(뇌졸중)과 심근경색도 이 병의 일종이다. 항응고제를 먹었지만 크게 호전되지 않았다. 김 씨는 1월 인제대 부산백병원을 찾고 나서야 10번 염색체에 돌연변이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은영 인제대 교수는 “일반인보다 5배나 많은 양의 약을 처방하자 증세가 나아졌다”고 말했다. 이 병원에선 환자의 유전자를 검사해 항응고제의 복용량을 결정한다. 검사 횟수만 벌써 500차례가 넘었다.




● “정보기술 혁명 맞먹는 사회 변화”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올해 4월 펴낸 인간게놈프로젝트 10주년 특집호에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고 평했다. 개인의 게놈 정보를 분석해 발병 가능성을 예측하고, 환자에게 딱 맞는 치료법을 적용하는 개인맞춤의학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게놈 분석 비용이 기록적으로 떨어지면서 이미 다양한 맞춤의학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국내 바이오기업인 테라젠은 개인게놈 분석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침을 용기에 담아 보내면 한 달쯤 뒤에 암, 당뇨, 고혈압 등 50∼100가지 유전질환에 대한 위험도를 미리 알려줄 계획이다. 같은 달 삼성의료원과 삼성SDS도 미국의 라이프사이언스테크놀로지(LT)와 협약을 맺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외국은 이미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미국 슬론케터링암센터는 개인의 유전 정보를 보고 어떤 항암제를 얼마나 쓸지 결정한다. 사람의 염색체 수에서 이름을 따온 ‘23&me’라는 회사는 유전자를 분석해 유전질환이 발병할 확률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430달러(약 49만 원)에 제공하고 있다. 이수연 성균관대 의대 교수는 “게놈 정보를 이용하면 효과는 가장 높이고 부작용은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30대 한국 남자의 게놈 지도를 ‘네이처’에 발표한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는 “3년 이내에 개인의 모든 유전정보를 1000달러(약 114만 원)에 해독하는 ‘게놈 1000달러 시대’가 올 것”이라며 “정보기술(IT) 혁명과 비교할 만한 사회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를 들어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은 간암세포와 정상 간세포 사이의 유전적 차이를 비교해 특정 유전자가 많으면 암세포가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유전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미리 유전자를 조절하는 약을 복용하면 암에 걸릴 확률을 낮출 수 있다. 임동수 사업단장은 “예전에는 유전자 한두 개를 연구했지만 지금은 전체 유전자를 분석해 정상 세포와 비교하기 때문에 질병 유전자를 찾을 확률이 훨씬 높다”고 설명했다.

인종이나 민족의 유전적 차이를 구분해 해당 민족에게 잘 맞는 신약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아시아 사람들의 게놈을 분석하고 있는 서정선 교수는 “아시아 인구가 세계의 절반인데도 유전 정보 분석은 미흡했다”며 “그동안 서양에서 나온 약은 유럽인에게는 효과가 좋지만 한국인에겐 듣지 않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 환경요인 무시한 유전자 결정론 우려도


하지만 개인게놈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유전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전자 결정론’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전자만으로 사람을 열성과 우성으로 구분하는 공상과학(SF) 영화 ‘가타카’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성진 가천의과대 교수는 “개인의 유전정보가 다 알려지면 고용이나 승진, 보험에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막기 위한 규제와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유전자 정보를 해고나 건강보험 가입 등에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유전자정보차별금지법(GINA)’이 시행됐다. 한국 역시 이보다 앞선 2005년 비슷한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

개인게놈이 만능도 아니다. 김은영 교수는 “게놈에서 질병 유전자가 발견됐다 해서 그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라며 “식습관 등 환경적 요인도 많기 때문에 이런 요인까지 고려한 질병 예측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부산=이정아 동아사이언스 기자 zzung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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