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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과학기자의 ‘한국 미라’ 발굴단 참여기




미라 발굴단원들이 미라에게 입혀 둔 수의를 벗기며 세균체취 등의 과학적 조사 작업을 함께 벌이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부장품 해체작업만 8시간 걸려… 한 겹 벗길때마다 세균 채취 조선중기 사망한 사대부가 부인… 만성 폐질환 사망원인 추정


쇠끌로 소나무 관 뚜껑을 비틀어 열었다. 진한 소나무 향이 물씬 배어 올라왔다. 부검전문의, 의상전문가, 역사학자 등이 한 팀이 돼 관 옆을 둘러싸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신을 염한 부장품을 한 겹 씩 벗겨낼 때마다 소나무 향은 점차 사라져 갔다. 대신 사체(死體)에서 배어 올라오는 부패한 단백질 냄새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발굴 작업이 시작된 시간은 오전 9시다. 비교적 밝은 분위기 속에서 작업하던 발굴단원들은 오후가 되자 점차 지친 기색이 역력해져갔다. 옆에서 허드렛일을 돕고 있던 기자의 손놀림도 점점 느려져갔다. 잠시만 차가운 바람을 쐬고 돌아오고 싶은 욕구가 간절했다. 하지만 차마 발길을 돌리긴 어려웠다. 눈앞에선 조선 중기 이전에 사망한 여성미라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려대 의대 김한겸 교수 연구팀은 9일 부산 서경문화재연구원, 울산 박물관추진단과 공동으로 발굴단을 꾸리고 미라 작업을 진행했다. 지난 해 4월 발굴된 ‘나주 귀부인 미라’ 이후 1년 만에 나온 미라였다. 연구진의 허락을 얻어 사진촬영, 시료채취 작업 등을 도우며 미라발굴단 일원으로 참여했다.




●옷 벗기는데 8시간
미라는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육신, 의상, 장묘관습 등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타임캡슐이다. 의료, 복식, 생활풍습 등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쓰인다. 이번에 발굴된 미라는 경기 오산 가장2일반산업단지 개발 전 답사과정에서 발견됐다.

발굴단은 오산 현지에서 회곽(횟가루를 개어 만든 틀)을 부수고 안에 들어 있는 소나무관을 꺼내 뚜껑을 열지 않은 채 고려대 구로병원 부검실로 옮겨왔다. 지금까지는 발굴된 현장에서 관 뚜껑을 열고 그대로 미라를 수습했다. 강한 햇볕, 주변의 습도 등이 영향도 받았다. 관속 환경이 보존되지 않은 상태에서 미라만을 꺼내 연구를 진행해온 셈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연구팀은 미라를 발굴과정부터 철저히 조사키로 했다. 김한겸 교수팀이 미라의 과학적 의미를, 서경연구원은 부장품의 역사적 가치를 연구키로 하고 모인 것이다.

발굴은 시신(미라)을 염해 둔 옷가지들을 한 꺼풀씩 벗겨내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옷 한 벌 한 벌이 모두 수백 년 전 유산. 이런 부장품이 손상될까 우려해 최대한 조심스럽게 작업했다.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떨어진 것이 있으면 일일이 실로 기웠다. 부장품 한 점이 나올 때 마다 꼬리표를 달고 사진을 찍었다.



김한겸 고려대 의대 교수가 미라의 얼굴에 붙은 과두(머리덮개)를 벗기기 위해 생리식식염수를 뿌리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이 과정에서 과학적인 조사도 한몫했다. 한 꺼풀씩 옷과 부장품을 벗겨낼 때마다 측정지를 이용해 산성도, 단백질함량 등을 측정했다. 특이한 현상도 발견했다. 처음 관을 열었을 때 산성도를 나타내는 수치인 ‘ph’ 값이 중성인 7로 나왔다. 이 수치가 옷을 벗겨낼 수록 8, 9로 증가하는 것을 확인됐다. 염기성 상태로 미라가 보관되어 있었다는 의미다. 지금까지 미라는 미생물의 활동이 둔해지는 산성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기존 학설을 부정할 수도 있는 조사결과여서 참여 의료진들의 관심을 얻었다.

이들은 또 발굴과정에서 관 속에서 머리카락, 손톱, 나뭇조각 등이 나올 때마다 채취해 시험관에 담았다. 곰팡이 등 세균흔적이 보이면 면봉 등으로 조심스럽게 닦아 시험관에 넣었다. 이런 시료들은 모두 고려대 연구팀을 통해 세균배양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이 과정을 거치면 미라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세균이 관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한겸 교수는 “지금까지 미라를 꺼내 사망원인 등을 밝히는 연구는 진행한 바 있지만 미라가 만들어지는 환경은 과학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면서 “이번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미라가 마르고 부패하는 과학적 원인을 다시 한 번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폐병으로 사망한 사대부집 부인
모습을 드러낸 미라를 살펴보던 김 교수가 끌끌 혀를 찼다. 만성질환으로 고생 끝에 죽었을 거라는 것이다. 의료진이 이날 미라 발굴과정에서 육안으로 살펴본 결과 50세 이후 노년기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특히 한 쪽 폐가 비대해진 바싹 마른 체형으로 볼 때 폐병 등 만성질환을 앓았을 확률이 높았다.

이 미라는 묘비 등의 문구를 살펴보니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됐다. 남편은 정6품 관직을 받은 사대부 가문의 부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관 속에서 나온 부장품도 이런 사실을 증명했다. 금실로 수놓아진 옷, 옥으로 만든 노리개 등이 높은 신분을 증명했다. 소나무 관 자체도 일반 관보다 훨씬 크고 튼튼하게 짜여진 고가품이었다. 미라가 들어있던 회곽에도 큰 흠집 하나 없었다. 외부 공기가 유입됐을 확률은 없었다.

발굴단은 이런 사실을 들어 미라의 보존상태 역시 우수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실제 미라의 보존상태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8시간이 넘는 작업 끝에 발굴된 미라는 키 154cm의 ‘반미라’ 였다. 상반신은 온전한 미라였지만 하반신은 군데군데 말라 흰 가루가 툭툭 떨어졌다. 한 쪽 다리는 말라 바스러져 뼈만 남은 백골 상태였다.




시료채취를 담당한 발굴단원이 미라의 코 입등 신체내부에서 표본을 채취하고 있다.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미라는 보관상태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상태가 극도로 좋은 미라는 살아있는 사람과 별 차이 나지 않은 살구색 피부를 가지고 있다. 이런 경우는 체내에 수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자기공명영상(MRI)촬영을 해도 영상이 나온다.

하지만 이 시점에서 미라의 정확한 사망 시기는 아직 알 수 없다. 머리카락이 아직 검은 점, 치아 등이 생각보다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점 등을 들어 보다 젊은 나이에 사망했을 확률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과학적인 조사방법도 존재한다. 치아를 뽑거나 다채널컴퓨터단층촬영(MD-CT) 촬영을 해 치아의 마모도를 측정해 대강의 나이를 유추하는 방법을 주로 쓴다. 탄소동위원소 검증법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연구팀은 미라의 가치 등을 판단해 추후 연구 계획을 세워나갈 전망이다.

발굴단은 이날 조사한 오산 미라와 함께 찾아낸 또 하나의 회곽묘에 주목하고 있다. 아직 주변의 회곽을 부수지 않고 다음 일정을 기약하고 있다. 또 한 구의 미라가 출토될지 관심이 크다. 발굴단 지휘를 맡은 김우남 울산광역시 박물관건립추진위원단장은 “미라 발굴과정에서 이번처럼 체계적인 조사를 병행한 것은 처음”이라며 “수백 년 전 조상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만큼 앞으로도 미라 연구에 전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부장품을 벗기며 시료를 채취하는 모습.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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