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 연구소

척척박사 연구소과학이야기제목별로 보기해설이 있는 과학

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자연과 상상력 넘나드는 예술

1세기 약초 세밀화에서 NASA 외계행성 상상도까지
| 글 | 이정아 기자ㆍzzunga@donga.com |



매달 ‘과학동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표지 그림이다. 이번 특집과 기획은 무엇일까, 일반 기사에는 어떤 내용이 실렸을까 하며 책장을 넘길 때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글이 아니라 화려한 그림이다. 어떤 기사는 그림만 보고도 주요 내용을 간파하기도 한다. 이뿐이 아니다. 천안함이 무슨 충격으로 어떻게 두 동강이 났는지, 나로호가 어떻게 발사돼 어떤 경로로 궤도에 진입하는지, 지각 판이 어떻게 움직인 까닭에 아이티에 지진이 일어났는지를 전달하기 위해 뉴스에서도 말이나 글보다 이해하기 쉬운 그림들이 등장한다. 이런 그림을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이라고 부른다.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은 복잡한 기계나 미세한 화합물 등을 단순화시킨 약화부터 인체나 동식물을 사실적으로 그린 세밀화까지 포함한다. 컴퓨터그래픽이 최고의 전성기를 달리는 현재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은 실제와 흡사하게 3D로 그리거나 주요 특징만 살려 단순하게 표현하기도 하지만, 원래는 연필 스케치 위에 얇은 붓으로 채색한 세밀화에서 시작됐다.

이를 처음 그린 사람은 고대 그리스의 약리학자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 1500종이 넘는 약용식물의 특징을 세세히 기록하는 데 글은 한계가 있어, 직접 하나하나 손으로 그렸다. 그 뒤 수많은 생태학자가 동식물을 그림으로 남겼고, 현미경과 망원경이 탄생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포나 분자에서 지구 밖에 있는 행성과 은하까지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어렵고 복잡한 과학이 어떻게 그림 속에서 살아 숨 쉴까. 과학을 그림으로 그릴 때 고려해야 하는 점은 무엇일까. 작가의 ‘붓끝’에서 과학이 탄생하는 모습이 궁금하다면, 과학과 미술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의 세상을 들여다보자.






바닷속 지형이 어떻게 생겼는지, 그 지형 안에 층별로 어떤 자원이 묻혀 있는지, 또 위치에 따라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는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설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인류가 아직까지 가본 적이 없는 토성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기를 구성하는 성분이 무엇인지, 고리의 생김새는 어떤지 한 번에 알려주는 방법은 없을까. 답은 하나다. 그림으로 그려서 설명하는 것이다.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은 교과서에서부터 도감, 백과사전, 그림책, 제품 사용설명서, TV 다큐멘터리, 뉴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분야에서 활용된다. 새로운 지식의 양이 많아지면서 쉽고 빠르게 전달하기 위해 긴 글보다는 잘 그린 일러스트가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최초로 일러스트 그린 이는 고대 그리스의 약리학자


누가 가장 처음으로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을까. 전문가들은 식물 생태학자들이 최초로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고 생각한다. 산과 들을 다니며 발견한 새로운 나무와 풀, 꽃을 지식으로 정리하기 위해서는 식물의 특징을 정확하게 기록할 필요가 있었다. 생김새가 닮은 식물끼리도 서로 미묘한 차이가 있었는데, 이것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웠다. 결국 식물 생태학자들은 식물의 세부적인 사항까지도 자세히 기록하기 위해 연필로 스케치를 했다.

미국 뉴욕주립박물관에서 22년간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온 패트리샤 커넌 일러스트레이터는 “모든 일러스트레이션의 시작은 자연을 보이는 대로 그리는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이라며 “최초의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은 1세기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가 펴낸 5권짜리 종합약물서 ‘마테리아 메디카’에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디오스코리데스는 고대 그리스의 의사이자 약리학자였는데, 저서에서 타임과 알로에, 페퍼민트 같은 식물의 생김새와 맛, 향, 약효 등을 정리했다. 그는 약용식물 1500여 종의 특징을 설명하기 위해 직접 세밀화를 그렸다.







고대 그리스의 의사이자 약리학자였던 페다니우스 디오스코리데스. 군의관이었던 그는 로마군을 따라 곳곳을 다니며 식물을 채집했다.





최초의 일러스트레이션은 1세기 디오스코리데스가 쓴 종합약물서 ‘마테리아 메디카’에 나오는 세밀화(①)다. 인도대마와 콜키쿰, 나리(②), 맨드레이크(③) 같은 약용식물 1500여 종의 생김새와 특징이 글과 그림으로 기록돼 있다(④). 이 책은 근대 식물용어를 규정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됐으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가장 우수한 약물학 교과서였다.








①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그린 핀치새의 한 종류 칵토르니스(Cactornis assimilis ). 부리가 찌르레기와 닮은 칵토르니스는 선인장 꽃 근처에서 산다. ② 다윈이 그린 비둘기. 한가운데 있는 양비둘기가 이들의 공통조상이다. 다윈은 한 조상에서 난 비둘기들이 사육 방법에 따라 생김새가 다르게 진화했다는 사실을 관찰해 그림으로 기록했다.③ ③ 르네상스 시대 최고의 화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해부한 인체를 정밀하게 그리거나(③) 석궁 같은 도구를 설계해 그림으로 그렸다(④).⑤ 188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지질학과 알렉산더 그린 교수는 1883년에 분출했던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토아 화산을 그렸다. 지층을 서로 다른 색으로 칠했으며, 마그마의 분포와 분출 장면을 표현했다.⑥ 독일의 식물학자이자 의사인 레온하르트 푹스가 그린 양귀비 꽃. 그는 식물을 관찰하고 세밀화를 그린 뒤 생김새와 특징에 따라 분류했다. 1543년에 ‘식물사’를 펴냈다.



르네상스 시대에 세밀화 그리며 생물 분류
항로를 개척하고 인간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서 어느 대륙이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자,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의 범위가 넓어지고 표본도 방대해졌다. 이제 과학자들은 동식물을 사실적으로 그릴 뿐 아니라 생김새와 특징에 따라 비슷한 것끼리 분류도 하게 됐다. 과학일러스트레이션 덕분에 생태학과 분류학이 발달한 셈이다.

패트리샤 커넌 일러스트레이터는 “자연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미술적 표현 기법도 과학일러스트의 발전에 한몫했다”며 “정밀한 과학일러스트가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르네상스’ 시대였다”고 말했다. 예술의 재생과 부활을 뜻하는 르네상스는 14~16세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을 말하며, 르네상스 시대는 과학과 미술이 공존하며 서로를 발전시켰던 시기다.

스위스의 동식물학자 콘라드 게스너(1516~1565)는 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동물들의 생김새를 저서 ‘동물의 역사(Historiae Animalium)’에 남겼다. 그는 근대 동물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독일의 식물학자이자 의사인 레온하르트 푹스(1501~1566)는 관찰한 식물을 세밀화로 그리는 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식물을 생김새와 특징에 따라 분류하고 저서 ‘식물사(De Historia Stirpium)’에서 각각의 서식지와 채집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 약효를 설명했다.

독일의 자연과학자이자 의사였던 윌렘 피소와 게오르그 마르크그라프는 1638년부터 7년간 당시 독일의 식민지였던 브라질을 여행한 뒤 ‘브라질자연사’를 펴냈다. 그들은 브라질에서 흔한 질병과 이를 치료하는 약효가 있는 동식물을 연구해 그림과 함께 담았다. 재미있게도 이 책에는 브라질에 사는 딱정벌레 350여 종의 세밀화도 등장한다. 두 사람은 이 책으로 열대 지방의 풍토병과 치료법에 대한 대가가 됐다.

프랑스의 의사이자 탐험가였던 피에르 블롱은 1546년부터 1549년까지 이탈리아와 아라비아, 팔레스타인, 그리스 등 지중해 지역을 여행하면서 관찰한 동물들을 해부학적으로 비교하는 그림을 그렸다. 특히 그는 지중해에 서식하는 조류의 생김새와 생태를 기록해 1555년 ‘조류의 역사’를 펴냈다. 르네상스 시대에 여행을 다니면서 관찰한 동식물의 생김새와 생태를 그림과 함께 남긴 이들은 1859년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내는 데 발판을 마련했다. 다윈은 남아메리카와 남태평양, 호주 등을 항해 탐사하면서 여러 동식물의 모습을 세밀한 그림으로 기록하고 생존 경쟁과 자연선택설을 담은 진화론을 주장했다.

르네상스 때 과학일러스트를 발전시킨 사람으로 빠질 수 없는 이가 바로 이탈리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다. 그는 사물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린 뛰어난 화가였던 동시에 건축과 의학 발전에 영향을 미친 주인공이기도 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사체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던 당대에도 다빈치는 인체를 해부했고, 부위에 따라 관찰한 내용을 스케치로 남겼다. 그는 토목이나 기계에 대한 아이디어도 뛰어나 새나 박쥐가 비행하는 모습을 본뜬 비행기, 단풍나무 씨앗을 닮은 프로펠러, 모든 방향으로 대포를 쏘는 탱크 같은 발명품도 설계해 그림으로 그렸다.




현미경 개발 이후 과학일러스트도 발달
그리스에서 약용식물을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던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은 이제 점점 동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무궁무진한 주제를 담아낸다. 르네상스 이후 일러스트가 과학과 함께 발달했기 때문이다. 패트리샤 커넌 일러스트레이터는 “현미경과 망원경이 발명된 뒤 과학이 무섭게 발달했는데, 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일러스트레이션도 함께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분자의 구조식을 그릴 때 벤젠을 육각형 고리로 처음 나타낸 사람은 독일의 유기화학자 프리드리히 케쿨레(1829~1896)다. 그는 꿈에서 벤젠 구조에 대한 힌트를 얻은 사람으로 유명하다. 벤젠은 탄소 원자 6개로 이뤄져 있는데, 각 탄소 원자마다 결합할 수 있는 수소 원자는 4개씩이다. 하지만 실제로 벤젠에 들어 있는 원자는 탄소 6개와 수소 6개뿐이다. 과학자들은 이들이 어떻게 균형 있게 결합해 벤젠을 이루는지 알아내려고 고심했다. 케쿨레 역시 이 문제를 풀려고 밤낮으로 고민하다가 깜빡 졸았는데, 꿈속에서 자기 꼬리를 물고 빙빙 돌고 있는 뱀을 보고 벤젠 고리의 육각형 구조를 떠올렸다고 한다.

지방이나 단백질 같은 고분자화합물의 구조를 처음으로 그린 사람은 누굴까. 1958년 X선으로 단백질의 한 종류인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밝힌 영국의 화학자 존 켄드루는 이 복잡한 모양을 어떻게 단순하게 설명할지 고민했다. 켄드루는 복잡한 단백질 구조의 틀을 막대 형태로 단순화시키고, 주요 원자를 구슬로 만들어 연결하는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수많은 막대와 작은 구슬을 꽂아 복잡한 미오글로빈을 단순한 모형으로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 미국 예일대 생물물리화학자였던 프레데릭 리차드는 RNA의 리보핵산을 가수분해하는 효소인 리보뉴클레아제의 구조를 밝히고 컴퓨터로 켄드루처럼 모형을 만들었다. 그는 단백질의 2차 구조를 아주 단순하게 나타내는 기호를 만든 사람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의 방식에 따라 지금도 단백질의 2차 구조를 그릴 때 알파나선구조는 길게 꼬여 있는 사슬 형태로, 베타병풍구조는 길쭉한 화살표로 그린다.

이렇게 화학자들은 자신이 발견하거나 관찰한 미세 물질의 복잡한 구조를 단순한 그림과 모형으로 만들었다. 생태학자들이 동식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세밀하게 그렸다면,
화학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구조를 도구의 힘을 빌려 알아낸 뒤 간단하게 그린 셈이다. 각종 원자와 분자, 화합물을 단순한 그림으로 나타낼 수 있게 된 뒤, 과학자들은 이를 이용해 고분자의 전체적인 구조는 물론 몸속에서 일어나는 대사 과정이나 나노튜브 같이 새로 개발한 물질의 구조와 원리도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됐다.









① 미오글로빈의 구조를 프레데릭 리차드의 방식으로 단순하게 그린 일러스트. 그는 최초로 단백질의 2차 구조 중 하나인 알파나선구조를 길게 꼬여 있는 사슬 형태로 그렸으며, 이런 방식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② ‘사이언스’ 1월 29일자에 실렸던 일러스트 중 하나. 과학일러스트레이션은 실험 과정을 순서대로 보여줄 수 있다.③ ‘사이언스’에서 주최한 과학기술시각화 공모전에서 수상한 한 작품. 세포의 분열 주기와 세포가 무분별하게 증식하지 않게 조절하는 메커니즘을 그렸다. 세포는 주기에 따라 염색체를 복제하고 분리해 2개의 세포로 나뉘는데, 각 단계마다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도록 감시체계가 있다.④ 폐렴 바이러스인 사이토메갈로바이러스(CMV)와 면역세포의 상호작용을 그린 일러스트. 미국 오리건보건대 연구팀은 CMV가 면역세포(T세포)를 속이는 단백질을 가지고 있어 과거에 감염됐던 사람도 면역 능력이 생기지 않고 여러 번 감염된다는 사실을 일러스트로 그렸다(그림 좌측). 그림 우측에는 바이러스에서 이 단백질을 없애면 CMV를 면역시스템으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음을 표현했다.⑤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팀은 혈소판이 관절에서 염증을 일으키면 류머티즘성 관절염을 부추길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일러스트로 나타냈다.⑥ 새로 개발한 항암치료제가 표적(암세포)을 찾아 혈관을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일러스트로 그렸다. 적혈구가 그려져 있어 그림의 배경이 혈관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붉은색의 커다란 원반 모양이 적혈구이고 알록달록한 고리가 항암치료제다.⑦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연구팀은 이온이나 단일 DNA분자처럼 아주 작은 입자가 흘러다닐 수 있는 탄소나노튜브를 컴퓨터그래픽으로 그렸다.








① 머나먼 나라(Distant Shores) l 패트 롤링즈, 1993년
탐사로봇과 함께 화성 표면을 탐사하는 상상도. 1992년 9월 미국은 화성 탐사선 ‘마르스 옵저버’을 보냈는데, 이듬해 8월 21일 안타깝게도 화성 궤도에 진입하자마자 통신이 두절됐다.
②어느 새벽(First Light) l 패트 롤링즈, 1988년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비행사들이 ‘밤의 미로’라 불리는 거대한 계곡 가장자리에 도착한 모습을 상상했다. 이곳은 태양계에서 가장 큰 계곡인 ‘마리너계곡’의 일부분이다. 마리너계곡은 깊이가 8km, 길이가 4500km나 된다.
③ 우주에서의 응급처치(First Response) l 패트 롤링즈, 1992년
지구와 달 사이의 통신 안테나를 설치하던 우주인이 달 표면에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긴급 의료원 2명이 그를 치료하고 있다. 지구가 아닌 다른 천체에서 사람이 다쳤을 때 어떤 응급의료기술이 필요한지 구상하려는 목적으로 그렸다.
④ 가족(Family) l 패트 롤링즈, 1997년
화성을 탐사하는 우주비행사가 화성탐사로봇 ‘패스파인더’를 들여다보고 있다. 지구를 벗어나면 사람과 기계가 공생할 수밖에 없음을 뜻한다.
⑤ 만남(Bridge) l 패트 롤링즈, 1994년국제우주정거장에 머물고 있던 미국의 우주비행사와 우주왕복선을 타고 날아온 러시아의 우주비행사가 우주유영 중 우연히 만나 악수를 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했다.



화성 그리려면 남극부터 다녀와라?
예전에는 과학일러스트를 그리는 사람들이 주로 과학자나 의사였지만, 과학이 점점 발달하면서 과학일러스트만 전문적으로 그리는 직업이 탄생했다. 과학일러스트레이터다. 이제는 눈이나 현미경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지구 내부의 모습이나 외계 행성처럼 직접 볼 수 없는 대상도 그린다. 과학일러스트레이터들의 상상력과 창의성이 더해진 덕분이다.

해외에서는 과학일러스트레이터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미술대학 내에도 과학일러스트만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과학 과목을 전반적으로 가르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과학일러스트레이터는 과학자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과학적인 내용을 그리는 일이 쉽지는 않다. 해외의 과학일러스트레이터들은 과학을 그리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으로 ‘근본적인 원리를 이해하는 것’을 꼽았다. 그리려는 대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겉으로 보이는 특징만 정리하면 됐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그것들을 이용해 몸속에서, 생태계에서 어떤 메커니즘과 경로를 거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현미경으로 적혈구를 관찰하면 적혈구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혈관을 어떻게 타고 흐르는지 과정을 그려야 한다. 또 새로 개발한 치료법을 설명할 때에는 적혈구가 일러스트의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이 되는 혈관 내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기계를 그리는 일도 과학일러스트레이터의 몫이다. 보이는 대로 정확히 그려내기 전에, 어떤 원리로 기계가 돌아가는지 원리를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계역학적인 일러스트를 그리는 데이비드 파슨스는 메르세데스 벤츠에서 새 모델이 나올 때마다 자동차의 안과 밖을 그린다. 그는 매끈하게 디자인된 차량의 겉모양부터 복잡한 엔진 구조까지 원리를 익힌 뒤, 마치 사진을 찍듯이 사실적으로 그린다.

그렇다면 직접 가볼 수 없는 행성이나 은하 같은 우주는 어떻게 그릴까. 32년 동안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우주 항공 관련 일러스트를 전문적으로 그려온 패트 롤링즈는 “직접 갈 수 없는 장소는 간접 경험을 통해 파악한다”며 “예를 들어 화성을 그릴 때는 지구상에서 화성 표면과 가장 비슷한 환경인 남극을 방문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NASA의 우주 일러스트레이터들에게 남극은 한 번 이상 꼭 다녀와야 하는 중요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그려야 하는 대상과 비슷한 환경이 지구상에 없을 경우, 일러스트레이터들은 우주비행사와 과학자에게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위성이나 탐사선이 촬영한 영상과 사진을 보기도 하고, 스케치를 한 뒤 내용을 제대로 소화했는지 과학자들에게 여러 번 확인하기도 한다. 우주에 관한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상상력이 가미된 것이지만, 이것 역시 다른 과학일러스트레이션과 마찬가지로 사실에 입각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줄곧 상상했던 미래가 과학으로 실현되는 순간, 과학일러스트레이션도 함께 태어난다.



내과학상자담기  E-MAIL 프린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RSS

나도 한마디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목록


내 당근 보러가기

내 뱃지 보러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