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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시험관 아기는 언제?

●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 이후 시험관 아기 연구는?


1960~70년대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는 수정란을 몸 밖에서 배양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에드워즈 박사는 산부인과 의사였던 패트릭 스텝토 박사와 함께 난자를 채집하는데도 성공했다. 시험관 아기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뼈대가 만들어진 셈이다.

‘시험관 아기의 아버지들’은 자연배란에서 난자를 얻어 시험관 아기를 시술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험관 아기가 보편화되기 시작한 건 미국에서 난자의 과배란을 유도하는 방법이 개발된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난자 1개만 나오는 자연배란과 달리 과배란은 난자 여러 개를 얻을 수 있어 시험관 아기의 성공률을 높였다.

 



● 국내 첫 시험관 아기는 1985년 태어나


올해 노벨생리의학상의 영예는 1978년 세계 최초로 시험관 아기를 탄생시킨 로버트 에드워즈 박사가 받았다. 그로부터 7년 뒤인 1985년 10월 12일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문신용 교수팀의 도움을 받아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다.

당시 결혼 4년째이던 부부는 아이를 갖지 못 했다. 1983년 아이가 생겼지만 자궁외임신이란 진단을 받았다. 자궁외임신은 수정란이 정상적인 위치에 착상되지 않고 다른 곳에 착상되는 현상을 말한다. 어머니는 수술을 받았고 이로 인해 난소에서 나온 난자를 자궁에 보내는 길인 나팔관이 폐쇄됐다. 이들 부모는 시험관 아기가 아니면 임신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문 교수 연구진은 약물을 투여해 난자가 더 많이 배란되도록 유도했다. 채취한 난자를 정자와 수정시킨 다음 시험관에서 배양한 뒤 자궁에 이식했다. 남녀 쌍둥이는 오전 5시경 제왕절개수술을 통해 세상에 태어났다 국내 시험관 아기의 성공은 아시아 지역에서 싱가포르, 일본, 대만에 이어 4번째였다.

현재 25살인 이들은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사람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은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대학을 다니고 있다.




● 시험관 아기에 대한 엇갈리는 반응


세계 첫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고 3개월 뒤 인도에서, 1980년 호주에서 두·세 번째 시험관 아기가 태어나면서 시험관 아기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처음에 시험관 아기에 대해 반대적인 입장이던 로마 교황청도 입장을 바꿨다. 지금까지 300만 명 이상이 시험관을 통해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불임부부에게 ‘희망이 빛’이 되는 시험관 아기는 여전히 논란 속에 있다. 성공률이 30%로 낮은데 반해 비용이 커 ‘없는’ 불임부부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다. 약물로 과배란을 유도하면 보통 10여개의 난자가 배란된다. 이 중에서 실제 시술에 필요한 난자 수는 3~4개. 나머지는 냉동 보관하거나 실험실에서 연구용으로 쓰인다. 난자가 다른 목적을 위해 쓰일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이 과정에서 ‘과배란 증후군’을 앓을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시험관 아기가 결과적으로 전 세계적인 불임률을 높일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가령 정자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시험관 아기로 아이를 얻으면, 이 사람의 유전자가 아이게도 전해져 또 다시 불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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