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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앓기 쉬운 5가지 마음병



| 글 | 이정아 기자ㆍzzunga@donga.com |


○○이 아픈 사람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거나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정상인 처럼’ 살아간다. 별다른 점은 다른 사람에 비해 불행하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는 것이다. 자신이 병에 걸린 줄도 모르고 그럭저럭 살면서 병을 점점 키운다. 때때로 그들은 안타깝게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눈치 챈 독자도 있겠지만 ○○에 들어갈 말은 ‘정신’ 또는 ‘마음’이다.



사람들은 종합검진을 통해 몸에 병이 있는지 수시로 관찰한다. 평소에도 몸에 좋은 음식을 먹거나 운동을 꾸준히 해 건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정신건강을 지키기 위해 평소부터 노력하고, 전문의를 찾아가 정기적으로 관찰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정신과를 드나들면 미친 사람으로 보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더라도 쉽게 방문하기 어렵다. 정신건강을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만큼 한국인들은 정신건강에 소홀하다.



정신질환이라고 하면 대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하는 ‘심각한 정신분열’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신질환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광적인 모습뿐이 아니다. 전문의들은 “정신질환이 있는지 여부조차 알 수 없거나 병원에 가지 않아도 정상적으로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많다”며 “이런 경우 오히려 병을 키우다가 안타까운 죽음(자살)을 맞는다”고 꼬집었다.



복잡하고 경쟁이 극심한 세상에서 현대인은 다양한 정신질환에 노출돼 있다. 내 자신과 사랑하는 가족, 친구의 행복한 삶을 위해 어떤 정신질환이 사회에 ‘있는 듯 없는 듯이’ 만연하고 있는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현대인이 흔히 앓는 정신질환을 홈페이지에 소개했다. 그중 한국 사회에서 정신질환인지 자각하지 못하거나, 병원을 찾지 않고 가볍게 여겨 병을 키울 가능성이 많아 ‘빨간 비상등’이 켜진 5가지를 골랐다.






‘화 누르며 살아가는 한국 엄마’ 폭발 직전, 화병


화가 나도 꾹꾹 참으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사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화를 오랫동안 참으면 화병(火病)이 된다. A씨처럼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한 며느리, 며느리 눈치를 보며 살아온 시어머니, 잘난 형제들 틈에서 무시당하며 사는 막냇동생 등 분노를 참는 사람은 많다. 화병은 특히 중년 여성에게서 많이 나타난다.



과거 화병은 우울증이나 스트레스관련 정신장애와 혼용돼 왔다.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의 이시형 원장과 정신과 종합전문병원인 서울 은평병원 민성길 원장은 화병이 독립적인 정신질환이라는 사실을 국내외 학계에서 인정받도록 노력해왔다. 마침내 민 원장은 2009년 “화가 나더라도 참는 것이 미덕이며, 자식을 위해 어머니가 인생을 희생하는 것이 도리인 한국 사회에서는 특별한 스트레스 관련 장애가 나타나는데, 이것이 화병”이라고 ‘세계 문화 정신의학지’에 발표했다. 국제 학계에서 화병을 하나의 정신질환(Hwabyung)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화가 나서 참는 행동이 모두 화병은 아니다. 화는 지극히 정상적으로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화가 나더라도 시간이 흐르면 흥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평온해진다. 그런데 화병은 수년에서 수십 년간 화를 참아서 병이 생긴다.



화병에 걸린 사람은 가슴에 응어리가 진 듯이 답답하고 통증이 느껴진다. 그러나 병원을 찾아가 X선 촬영이나 컴퓨터단층(CT) 촬영 검사를 해봐야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듣는다. 사실 화병 환자가 몸이 아픈 이유는 심리적 원인이다. 도파민 이나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로토닌이 부족하면 우울증까지 생기기 쉽다. 민 원장은 “우리나라에서는 화병만 치료해도 우울증이 많이 예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화병을 막으려면 화난 상태를 오래 놓아두거나 미움을 키우지 말고 분노를 빨리 긍정적으로 삭이라”고 조언한다. 피해의식을 줄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 대처하는 것도 좋다. 부정적인 생각과 분노를 축적하면 정신건강이 상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자기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가까운 사람에게 내면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보는 것도 좋다. 화병 환자가 자기 얘기를 어렵게 꺼냈을 때, 주변 사람은 꼭 해답을 줄 필요는 없다. 그 사람의 말을 들어주고 힘든 감정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기 때문이다.




열등감이 파 놓은 ‘죽음의 구덩이’, 우울증
자살을 보도하는 뉴스에 우울증이란 단어는 꼭 따라온다. 평소에 우울증을 앓다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해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한 이유’를 들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민성길 원장은 “우울증 환자가 자살하도록 조종한 범인은 대부분 ‘열등감’”이라고 말했다. 자기가 만든 열등감을 이기지 못해 죽음을 택했다는 뜻이다.



위 사례를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B양은 단순히 남자친구와 헤어진 것뿐이다. 하지만 B양은 자신이 부족하고 못생겨서 남자가 떠났다고 생각했다. 학창시절 때부터 자신이 못난 탓에 주변 친구들이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B양은 이별의 슬픔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만든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삶을 포기했다고 볼 수 있다.




학교부터 사회까지 경쟁의식이 지나치게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우울증이 많은 이유도 열등감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한국인 6명 중 1명이 우울증을 경험하고 있으며, 최근 청소년이나 노인층에서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그중 정신과 상담 치료를 받는 수는 25%밖에 되지 않는다.



우울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정상적인 감정이다. 사람은 누구나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진다. 그러나 즐겁고 슬픈 감정(조울)의 변화가 크지 않으며 안정한 상태를 유지한다. 큰 실패와 좌절을 경험했을 때는 더 우울해지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일정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온다.



반면 우울증 환자는 ‘시간이 독’이다. 슬픈 일들이 자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우울증을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적으로 지속되고 점점 심해진다.



학계에서 아직까지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로토닌 같은 뇌 속 신경전달물질과 호르몬의 균형이 깨져 우울증을 지속시킨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전문의들은 “본인이나 주변 사람이 우울증이라고 인지했을 때는 되도록 빨리 병원을 찾아 상담과 치료를 받으라”고 조언한다.



환자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환자를 많이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자 하는 심리가 환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우울증 환자가 먹기를 거부하는 행동에 대해 민 원장은 “살아야겠다는 무의식이 발동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굶으면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억지로라도 먹게 해 최소한 굶어죽는 결과는 막을 것이라는 심리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가족은 증상에 대해 비난하지 말아야 하며, 환자의 어려움을 듣고 공감을 하되 섣부른 충고는 하지 말아야 한다. 환자가 치료를 받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고 약을 잘 먹도록 신경 쓰는 일도 중요하다.




술 권하는 사회에서 ‘놀 줄 아는’ 당신은 알코올 중독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1~2월 국내 소주 판매량은 1752만 5000상자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8.1%나 증가했다. 전문의들은 한국 직장인의 약 25%가 알코올에 의존하는 성향이 있으며 과음 비율도 다른 선진국가의 4배나 된다고 말한다. 한국인이 알코올 중독에 취약한 이유는 사무적으로 처리할 일도 ‘술 한 잔’ 대접하면서 해결하는 사회관습과 사람을 만날 때 술이 빠지면 안 된다는 화끈한 음주문화 때문이다.



‘술 먹으면 개가 되는’ 사람들만 알코올 중독자가 아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술을 습관처럼 마시는 사람들, 예정했던 양보다 많이 마시는 사람들, 기억이 자주 끊기는 사람들, 술 없이는 못 살 것 같은 사람들을 모두 알코올 중독으로 진단한다. 술 잘 마시기로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은 대인관계가 원만한 인기인이 아니라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수많은 알코올 중독자 가운데 한명일 뿐이다. 또 술이 센 사람일수록 마음 놓고 마시기 때문에 알코올 중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왜 술은 다른 음료와 달리 중독되기 쉬울까. 술을 마시면 뇌에서 도파민이 분비돼 쾌감을 느끼게 한다. 이것이 반복되면 도파민에 의존하게 되고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한다(내성). 술뿐 아니라 마약, 도박에 중독되는 현상도 도파민과 관련 있다. 결국 알코올 중독자는 술을 12시간 이상 못 마시면 손이 떨리거나 일에 집중을 못하고, 머릿속이 온통 술 생각으로 가득 찬다(금단현상). 알코올 금단현상으로 온몸을 떨면서 환각을 보거나(섬망) 간질 대발작을 일으키는 합병증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알코올 중독은 다른 정신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가장 흔한 것이 ‘필름이 끊긴다’고 표현하는 일시적 기억 상실이다. 일시적 기억 상실이 반복되면 뇌세포는 평소에도 새로운 기억을 등록하는 기능이 떨어진다(알코올성 치매). 술 때문에 우울증이 생기기도 한다. 반대로 음주가 우울증의 한 증상일 수도 있다. 그래서 스트레스와 분노를 해소하려고 술을 마시면 오히려 부작용을 낳는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술을 ‘만성 자살’이라고 부른다. 민성길 원장은 “되도록이면 술은 적게 마셔야 하며, 술자리는 친근한 담소를 하다가 헤어지는 정도로 가볍게 즐기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성적 걱정에 밤새 잠들기가 어렵다면, 불면증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국민 징크스’에 빠져 오늘도 수많은 청소년이 잠을 잊었다. 학창시절 때부터 잠도 안자고 공부하는 습관이 든 직장인은 새벽까지 일을 한다. 공부나 일을 하지 않는 밤에도 일찍 자는 것에 대한 불안과 이미 굳어진 습관 탓에 잠이 오지 않는다.



불면증 환자는 대부분 자신이 불면증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 잠에 들기까지 오래 걸리거나, 밤새 여러 번 깨어나고 다시 잠들기가 어려우면 불면증이다. 7~8시간 정도 잤는데도 여전히 피곤하다. 잠을 잔 시간보다 깊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벽잠이 없어져 일찍 깨는 중년의 습관도, 전문의들은 불면증으로 판단한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 따르면 한국인 3명 중 1명은 일생 동안 1번 이상 불면증을 겪는다. 불면증 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1.3배 많이 나타나며, 65세 이상에서는 그 이하보다 1.5배 정도 많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분석한 결과 2005년에 비해 2009년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2배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단 5%정도만 전문의를 찾는다는 사실이다.



아예 자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굳이 병원을 가야 할까. 사람은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하루 동안 생각났던 것을 정리해 필요한 기억만 남긴다. 그래서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생체리듬이 깨진다. 각종 호르몬이 분비되는 시간과 양이 틀어진다.



서울대 생명과학부 김경진 교수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를 없애는 호르몬(코티졸)을 만드는 세포가 낮과 밤을 구별하는 생체리듬 분자를 갖고 있다. 코티졸은 낮에는 왕성히 분비되다 밤이 되면 현저하게 감소한다. 생체리듬이 깨지면 코티졸이 제대로 분비되지 못해 불면증이 생긴다.



불면증이 길어지면 기억력과 집중력, 판단력이 떨어지고, 신경이 예민해져 불안장애나 우울증 같은 다른 질환을 일으킬 확률이 50%나 된다. 지난 8월 가천의과학대 길병원 정신과 이유진, 김석주 교수팀은 “국내 중고생의 10.3%가 수면시간이 4시간이 채 안 된다”며 “청소년기에 수면 시간이 부족하면 우울증과 주의력과잉결핍장애(ADHD)가 나타날 위험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그렇다고 오지 않는 잠을 술로 불러들이는 습관은 좋지 않다. 밤새 몸이 알코올을 분해하는 탓에 잠을 자도 여전히 피곤하기 때문이다. 수면제는 종류가 많고 각자에게 맞는 처방이 있기 때문에 전문의의 처방을 받아 사용해야 한다. 불면증을 앓고 있다면 전문의와 상담을 하고 수면다원검사 같은 정밀검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민성길 원장은 “낮에 아무리 졸리더라도 깨어 있고, 밤에 잘 수 있도록 규칙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혼 갉아먹는 저승 문턱에 대한 기억, 트라우마
타고 있던 배가 침몰했다거나, 백화점이 무너졌다거나, 강도를 당했다거나…. 대형사건사고가 일어났을 때 ‘죽음의 위협’을 강렬하게 느낀 사람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다. 대개 재난이 끔찍할수록, 피해자의 감성이 예민할수록 심각한 후유증이 따른다.



사람들의 약 55%는 살면서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지만 트라우마가 발병할 확률은 6.7%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형사건사고를 겪으면 전문의와 상담하는 게 좋다. 이 질환이 사람에 따라 수십 년이 지난 뒤에도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받았던 심리적인 충격이 해결되지 않았다가 현재 비슷한 일을 겪어 떠오르거나, 나쁜 기억이 반복적으로 떠오르면서 자극적으로 발달한다.




전문가들은 트라우마의 생리적 원인으로 “뇌에서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 이 비정상적으로 활성화돼 혈압과 심장박동수가 증가된 상태로 지속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작은 충격에도 쉽게 흥분하고, 사건이 일어나던 장면이 생생하게 환각과 환청으로 나타나며 수면장애에 시달린다. 사건에 대한 기억을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하다가 극도로 긴장해 예민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동료들의 거의 다 죽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죄책감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결국 불안장애나 우울증, 정신분열 같은 다른 정신질환이 생길 수 있다.



트라우마를 조기에 발견했거나 증상이 가볍다면 단기간 동안 항우울제나 항불안제, 자율신경계 조절약물로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지속되거나 상태가 심각할 경우 입원해 질환에 대한 치료 외에도 사회에 다시 적응하기 위한 재활치료와 인지행동치료 등을 받아야 한다.



강력범죄가 날로 증가하면서 사람들이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트라우마에 시달릴 가능성도 높아졌다. 민성길 원장은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각별히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는 생명의 위협과 동시에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민 원장은 “성폭력 피해자가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정하도록 돕고, 더 이상 비슷한 일이나 관련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을 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범인을 검거하는 데 열중해 피해자를 여러 차례 심문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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