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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도 막지 못한 청년 과학자의 꿈


| 글 | 김종립 기자ㆍjlkim00@donga.com |


KAIST 기계공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김동원(27) 씨는 미국 미시건대 전액 장학생으로 뽑혀 8월 말 유학을 떠났다. 김 씨는 앞으로 재활의공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사람의 두뇌에서 나오는 신호를 받아 마음대로 움직이는 로봇 팔이나 의족 등을 만드는 학문이다.



공학도가 재활의공학을 연구한다는 게 무슨 뉴스나 될까. 하지만 김 씨의 유학 소식은 남달랐다. 김 씨가 뇌병변 2급의 중증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오른손을 잘 움직이지 못해 혼자서 와이셔츠 단추 하나 채우는 데도 5분이 넘게 걸린다. 손을 움직이기 어려워 칠판글자를 옮겨 적기도 힘든 장애인에게 수학이 일상 언어처럼 쓰이는 공대 수업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느린 손동작으로 복잡한 수식을 적으려니 숙제 한 번 하려면 밤을 꼬박 새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김 씨는 한양대 공대를 졸업하고 국내 대표적 이공계 대학인 KAIST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김 씨의 지도교수였던 장평훈 KAIST 교수는 “밝고 긍정적인데다 연구성과 역시 탁월하다”고 전했다.






글씨도 못 쓰던 아이가 수재로


김 씨는 어린 시절 모형 자동차 만들기를 좋아했다. 하지만 양손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으니 아버지가 눈 앞에서 만들어 주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어릴 적 ‘내 손으로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욕심이 한양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원동력이 됐다. 자동제어와 전기, 전자 과목을 수강하고 자동차에 대한 전반 지식을 쌓았다. KAIST를 찾은 이유 역시 운전을 할 수 없는 장애인도 어디든지 타고 갈 수 있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대학원에 들어와서 크게 바뀌었다. 어릴 적 꿈보다 더 큰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로봇 기술을 공부하면 자신처럼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생각이나 몸짓만으로도 움직이는 ‘로봇 팔’이나 ‘로봇 다리’를 만드는 게 그의 꿈이다.



“저는 신경에 손상이 있어서 몸의 오른쪽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요. 만약 기계가 두뇌에서 오는 신호를 받아 움직일 수 있다면 제가 원하는 대로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재활의공학은 재활운동에도 효과적이다. 팔, 다리를 쓰지 못하는 사람은 근육이나 뼈, 신경의 손상이 일차 원인이다. 뇌가 팔, 다리를 움직이는 방법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원리에 따라 팔, 다리는 뇌 신호에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자극하고, 뇌에는 팔운동을 학습하는 기회를 주는 치료용 보조로봇도 만들 수 있다.



김 씨는 “이런 재활로봇 치료가 수동적인 물리치료보다 낫다”며 “장애인을 돕는 로봇을 만들기 위해 KAIST에서 로봇과 로봇제어의 기본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미시건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로봇기술을 개발할 계획이다.



김 씨는 태어나고 7살 때까지 걷지 못했다. 어머니의 등에 업혀 병원, 한의원, 민간요법 치료소 등 좋다는 곳은 어디든 찾아 다녔다. 오랜 치료가 효과가 있어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도 그는 몸을 마음대로 움직이기가 힘들다. 대학도 재수를 해 들어갔다. 장애인들이 시험을 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았기때문이다.



“많은 유형의 장애인들이 한 장소에 모여 시험을 치르거든요. 시험에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문제를 읽어주는데 이 소리 때문에 집중이 잘 안됐어요.”



대학에 입학하자 그는 육체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해 2004년 8월 국토대장정에 참가했다. 친구와 함께 20박 21일 동안 부산에서 출발해 충남 대천을 거쳐 경기 과천까지 걷는 일정이다.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불볕더위. 걸음걸이조차 온전하지 않은 그는 고된 일정에 발톱까지 빠지면서도 650km를 완주했다. 김 씨는 자신감이 붙자 홀로 일본에 5박 6일간 배낭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돈은 차비 정도만 가져갔습니다. 거의 무전여행이었어요. 빵과 우유로 끼니를 채우고 잠은 빌딩, 운동장, 역, 버스 등에서 잤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런 김씨를 ‘밝고 낙천적’이라고 평가한다.






사진

“장애인 돕는 사업가로 변신”
KAIST 졸업 전 그는 용돈을 모아두었던 100만 원을 학교에 기부했다. 학교 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였다. 모교인 KAIST에는 “장애 학생의 특성에 따라 KAIST가 입학기준을 유연하게 정했으면 좋겠다”며 “장애인을 위한 학업 환경 개선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씨는 미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후 귀국하면 ‘사업가’로 변신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로봇 팔을 개발해 장애인을 돕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큰돈을 벌어 자신 같은 어려운 사람들을 경제적으로도 돕고 싶다고 했다. 그가 도움을 준 사람들이 다시 자라나 사회를 위해 또 다시 봉사하는 것. 그것이 장애를 딛고 과학자가 된 김동원 씨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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