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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라이 라마, 포도밭을 가꾸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찾는 스위스
| 글 | 박태진 기자ㆍtmt1984@donga.com |


스위스는 '생태관광(ecotour)의 천국'이다. 어디로 눈을 돌려도 녹음 진 숲, 맑은 계곡을 볼 수 있고, 있는 그대로 자연과 융화돼 살고 있는 스위스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생태를 즐기면서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걷기 여행'을 테마로 스위스를 찾았다. 론(Rhone) 강이 시작되는 곰스 계곡(Goms Valley)을 찾아 론 빙하(Rhone Glacier)를 향해 걷고, 스위스 와인의 40%가 생산된다는 발레(Valais) 지역의 와인 루트(Wine Route)를 돌아봤다. 한 여름에도 볼 수 있는 산 정상의 빙하와 이야기가 있는 포도밭 길, 발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와인의 맛을 소개한다.












 



기찻길로 연결되는 생태관광

 

 


바람을 느끼며 산을 바라봤다. 산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조용히 떠 있다. 눈을 돌리자 당장이라도 알프스 소녀 하이디가 나올 것 같은 초원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작은 집 한 채가, 옆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소와 땀을 닦는 목동이 보인다. 터널 하나를 지나니 높이 솟은 바위와 빙하가, 그 아래에 시원하게 흐르는 강물이 있다. 천천히 움직이는 기차 밖 풍경은 상상했던 스위스 그 이상이다.

스위스에 다녀온 사람들은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기차 탄 풍경’을 꼽는다. 기차 창문을 내리면 시원한 바람과 함께 평화롭고 장엄한 스위스 풍경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을 깎아 도로를 만드는 대신 깊은 산 구석까지철도를 놓는 방법을 선택한 스위스 사람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생각한 것처럼 보였다.

가파른 경사지를 오르는 ‘퍼니큘러’부터 도로 위를 다니는 ‘트램’, 레일 가운데 톱니바퀴 레일을 놓아 산악지대를 오르내리게 한 톱니바퀴 기차까지 지형에 맞는 다양한 기차를 보는 것도 즐거움 중 하나다. 차창 밖으로 빙하를 감상할 수 있는 빙하특급과 골든패스라인, 빌헬름텔 익스프레스 같은 관광열차도 따로 있다.

기차는 생태관광에 잘 맞는 교통수단이다. 1km를 갈 때 기차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은 38g 정도라 항공기의 1/6, 승용차의 1/8에 불과하다. 오랜 시간 동안 철도 문화를 발전시키며 지구와 환경을 덜 훼손한 스위스는 이미 생태관광을 실천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6만km 하이킹의 진미, 와인루트


기차에서 내려 도착한 곳은 스위스 서남부에 위치한 발레 주. 스위스에서 가장 많은 와인을 생산하는 지역인만큼 하이킹 코스도 포도밭을 끼고 있다. 해발 450~800m에 펼쳐진 시에르(Sierre)시 살게치(Salgesch) 마을의 포도밭에는 총 길이 66km의 하이킹 코스가 있다. 햇빛과 바람을 느끼며 포도밭을 걷는 하이킹은 스위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기에 더 없이 좋은 코스다.

“우리 지역 사람들은 포도 농사부터 수확, 와인 생산에 판매까지 모두 잘 압니다. 집집마다 와인 전문가들이 사는 셈이죠. 총 2만 2000개 농가에서 80여 품종의 포도를 재배하고 있답니다.”

발레 주의 하이킹 가이드가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포도밭에 난 길을 따라 3시간 남짓 걸었다. 발레 지역은 땅이 경사지고 돌도 많았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어봐도 기본적으로 고도가 높고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도 심해 식물을 키우거나 농사짓기에 나빠 보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스위스 최고의 와인이 만들어진다니.

“땅에 맞는 품종을 찾아 기르고, 좋은 와인을 만드는 데 몇 세대의 시간이 걸리기도 합니다. 땅과 포도에 대한이해가 깊어야 더 좋은 맛을 낼 수 있죠. 최근에는 돌이 많고 거친 발레 지역 토양과 여름과 겨울 간 온도차가 큰 환경에서 잘 자라는 ‘프티트 아빈느(Petite Aivine)’이라는 품종이 인기입니다. 극한 환경을 좋아해서 그런지이 포도로 만든 와인은 일반적인 와인과 달리 맵고 짠 맛까지 나요.”

옳거니!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던 와인 바에서 정답을 찾았다. 대를 이어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고 있다는이곳 사람들은 산을 깎아 농사짓기 좋은 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땅에 맞는 품종을 찾아내고 있었다. 이렇게 자연과 공존하려는 삶의 자세가 스위스 와인의 가치를 만들고 있었다.

와인 맛에 버금가는 것이 이곳의 경치다. 포도밭 옆에 흐르는 큰 강은 곰스 계곡에서 시작해 지중해로 흘러들어가는 론(Rhone) 강이다. 가파른 경사면에 펼쳐진 포도밭과 론 강, 그리고 이곳에 자리 잡은 마을은 자연과 공존하려는 스위스 사람의 평화로운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포도밭


“여기에 ‘세계에서 가장 작은 포도밭’이 있습니다. 1.618m2의 땅에 포도나무 세 그루가 자라고 있죠. 포도밭 주인은 달라이 라마(티베트의 종교·정치 지도자)랍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 궁금하시죠?”

스위스에는 대규모의 포도밭만 있는 게 아니다. 사일론(Saillon) 시에는 와인 한 병을 겨우 만들 수 있는 포도밭도 있다. 이곳에 내려오는 알프스의 로빈훗, ‘파리니(Farinet)’의 전설은 하이킹을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포도밭’으로 가는 길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동전을 만들어 나눠줬던 파리니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이 길의 안내를 맡았던 파스칼 투레(Pascal Thurre)는 “돈을 위조하는 게 옳은 행위는 아니지만 어려운 사람을 돕고자 했던 파리니의 뜻을 본받자는 의미로 이 길을 조성하게 됐다”며 “해마다 세계적인 인사들이 이곳을 찾아 기부의 뜻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살게치 마을처럼 산 중턱까지 펼쳐진 포도밭과 마을을 지나 언덕에 올라가면 ‘세계에서 가장 작은 포도밭’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있는 포도나무는 2000년 이전까지 성직자 아베 피에르(Abbe Pierre)의 소유였는데, 그가 2000년 방문한 달라이 라마에게 선물한 이후 ‘달라이 라마의 포도밭’이 됐다. 이 포도밭에서 나온 와인 1병은 다른 와인과 섞어 1000병이 된다. 이를 판 수익금은 전부 자선 사업에 사용된다.

기차로 스위스의 겉을 볼 수 있다면 두 발로 걷는 하이킹은 스위스의 속살을 느낄 수 있다. 스위스의 포도밭을천천히 음미하며 걸어보자.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사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게 될 것이다. 마침 스위스 정부는 2010년과 2011년을 ‘스위스 걷기의 해’로 정하고 국토 전역에 걸쳐 6만km의 하이킹 코스를 마련다. 각 코스마다 표준화된 안내판이 설치돼 있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스마트폰으로 하이킹 코스와 방향, 주변 경관, 식당과 숙소 정보도 받아 볼 수 있으니 편리하게 이용하면 된다.










 



“빙하는 회색이다”


“저 위에 또 사람이 올라갔네요. 안 그래도 점점 줄어드는데…. 사진을 찍는다고 삼각대를 세우거나 스파이크를 신고 빙하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빙하는 더 빨리 녹습니다.”

여름 햇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일 줄만 알았던 빙하. 하지만 눈앞에는 바위처럼 보이는 회색의 얼음덩어리가 있었다. 빙하 위로 올라간 사람들은 마치 거대한 암벽을 타는 것처럼 보였다. 기자가 찾았던 곰스 계곡의 론 빙하는 어두운 색을 띤 채 녹고 있었다.

“빙하의 길이가 1년에 60~80m씩 줄어들고 있습니다. 론 빙하로 가는 산 중턱에 호텔이 하나 있는데, 20년 전만해도 호텔 옆까지 빙하가 있었거든요. 이제 정상까지 가야 빙하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가이드는 다소 어두운 표정으로 길을 안내했다. 길 중간 중간에 빙하가 있었다는 표지석이 나타났다. 지금 볼 수 있는 초원이 모두 빙하였다는 생각을 하니 걱정스러워졌다.

회색의 빙하가 나타났을 때, 몇 번이고 눈을 비볐다. 주변의 먼지와 오염물질이 빙하 위에 쌓여 이렇게 됐다고했다. 계속 녹고 있는 빙하를 암시하듯 빙하 끝 부분에 작은 웅덩이가 있다. 가이드는 “가까운 미래엔 이곳에 커다란 호수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며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빙하 동굴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회색이 아니었다. 얼음의 두께에 따라 흰색과 파란색을 띠고 있었다. 5m보다 얇은 얼음은 흰색, 더 두꺼운 얼음은 파란색으로 보인다. 먼저 들어와 있던 어린이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파란색 얼음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사람이 들어올 수 없었지만 1996년부터 동굴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개방하고 있다.

가이드는 “빙하가 매년 조금씩 미끄러져 내오는 바람에 사람이 다니는 나무판을 매년 보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1600년대부터 녹기 시작했다는 론 빙하는 미래의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하지만 자연을 덜 훼손시키기 위해 철도 문화를 발전시킨 스위스라면, 산을 깎아 농지를 만드는 대신 땅에 맞는 포도 품종을 찾아내는 스위스 사람이라면, 변하는 자연과 공존할 길을 찾아낼 것 같다. 자연과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스위스 사람들의 건강한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생태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스위스 걷기 여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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