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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추구한 과학자들의 노벨물리학상 수상 성공담

최초로 노벨상과 이그노벨상 동시 석권


재미 삼아 시작한 연구로 노벨상 수상의 대박을 터트렸다. 올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의 영광을 얻은 두 주인공들의 이야기다.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04년 10월 22일, 노벨상 수상의 열기가 채 가시기도 전, 사이언스지에는 논문 한 편이 발표됐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안드레 가임 교수와 연구원 콘스탄틴 노보셀로프 박사가 꿈의 신소재 그래핀에 대한 충격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은 것이었다.

그래핀은 두께가 고작 원자 한 층밖에 안 되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소재다. 또한 탄소공이라고 불리는 풀러렌(1985년)과 탄소나노튜브(1991년)에 이어 등장한 탄소 나노소재이다.

탄소 삼형제 중 막내이긴 하지만 그래핀은 형들보다 나은 아우다. 꿈의 신소재하면 탄소나노튜브라고 얘기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했던 탄소나노튜브의 인기를 꺾고 최고로 각광 받는 귀한 몸이 되었다.




● 금요일 밤, 엉뚱한 실험에서 시작된 그래핀 연구


하지만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박사가 그래핀을 연구한 건 노벨상 수상이란 대망을 품고 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재미 삼아 시작한 거였다.

가임 교수는 "재미의 과학(Fun Science)"을 추구하는 과학자다. 그런 그는 금요일 밤이면 연구원들과 함께 엉뚱한 실험들을 벌인다.

그는 게코 도마뱀이 아주 매끄러운 면에서도 잘 붙어 다니는 것을 보고 게코 도마뱀을 모방해 초강력 접착제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개구리를 자기장 속에서 공중에 붕 뜨게 하는 엉뚱한 실험을 실현해보이기도 했다.

가임 교수는 개구리 공중부양 실험으로 2000년 이그노벨상 물리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올해 노벨상을 수상함으로써 그는 이그노벨상과 노벨상을 둘 다 석권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가임 교수는 2000년 이그노벨상을 수상했다. 올 노벨상 수상으로 그는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둘 다 석권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그래핀 연구에서도 가임 교수는 노보셀로프 박사와 함께 기발하고도 엉뚱한 아이디어가 발휘되었다. 여기에는 신소재 개발의 도구라고 하기에 무색한 스카치테이프가 동원되었다. 흑연에 붙였다 떼낸 스카치테이프를 10번에서 20번 정도 스카치테이프로 붙였다 뗐다를 반복해서 얻어낸 것이었다.

연필심으로 쓰이는 흑연은 그래핀이 여러 장이 켜켜이 쌓여있는 구조다. 이런 탄소 층상구조 덕분에 우리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글씨가 잘 써질 정도로 잘 떨어져나간다.

사실 그래핀의 존재는 이미 오래전에 알려져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1947년에 최초로 연구되었다.



하지만 고작 하나의 탄소 층, 즉 그래핀을 얻는 일은 그동안 과학자들에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최첨단 나노기술을 활용해 그래핀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이번 노벨상 수상의 두 주인공이 나서기 전까지는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두 주인공이 너무나도 간단한 방법으로 이 일을 해낸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은 흔히 구할 수 있는 흑연에 스카치테이프를 붙여 일단 여러 층의 그래핀을 떼어냈다. 그런 다음 이 스카치테이프에 새로운 스카치테이프를 붙였다 떼어 내면서 좀더 얇은 그래핀 층들을 얻어냈다.

두 주인공은 이런 방법으로 10번에서 20번 정도를 반복했다. 그러자 그동안 과학자들이 애써 얻으려고 했던 그래핀이 너무나도 간단하게 만들어졌다. 그것도 상온에서 말이다. 그런데 그래핀은 고작 원자 한 층으로 되어 있어 쉽게 부서지고 말 거라는 예상과 달리 매우 안정적이기까지 했다.







올 노벨물리학상이 돌아간 꿈의 신소재 그래핀. 육각형 벌집구조를 이루는 탄소가 고작 한 층만 있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소재다. 이 그래핀을 말면 탄소나노튜브가, 둥글게 만들면 풀러렌이 된다.

 

 


● 기이한 양자세계의 새로운 면 드러내


이렇게 세상에 깜짝 등장한 그래핀은 그때까지 과학자들이 생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놀랍고 신비로운 특성들을 보여주었다.

그래핀의 등장으로 물리학자들은 이론으로만 생각했던 기이한 양자현상을 증명해보일 수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그래핀 분야에 노벨상이 수여된다면 최초의 한국인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가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를 모았던 미 컬럼비아 대학의 김필립 교수가 2005년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이다.

2005년 김 교수는 이번 노벨상 수상의 주인공들과 같은 호의 네이처에 각각 그래핀만의 특이한 양자현상을 증명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를 어려운 말로 하면 ‘반정수 양자홀 효과’라고 한다. 이는 이론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것으로 그래핀이 등장하고 나서야 실제로 증명되었다.

또 다른 신비로운 점은 그래핀에서의 전자의 특이한 행동이다. 그래핀에서는 전자는 질량이 없는 양 빛처럼 행세한다. 빛이 진공에서 초당 30만km라는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듯, 전자는 그래핀에서 초당 1천km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

뿐만 아니라 전자는 그래핀에서 특이한 터널링 현상을 보인다. 터널링 현상은 입자가 벽을 뚫고 지나가는 것으로 양자세계에서만 나타난다. 터널링 현상은 벽의 높이가 높을수록 적게 나타난다. 그런데 그래핀에서의 전자는 이런 벽도 허물어버린다. 마치 벽이 가로막고 있지 않은 양 움직이는 것이다.




● 소떼처럼 몰리는 진짜 이유, 무한한 응용 가능성


그래핀은 이렇게 기묘한 양자현상을 보여주는 덕분에 그 어떤 소재보다 막강한 특성을 보인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과학자들을 그래핀 연구에 끌어당기는 건 소재로서의 우수함으로 인해 그래핀이 보여줄 무한한 응용 가능성 때문이다.

그래핀은 반도체 트랜지스터부터 투명하면서도 구부러지는 터치스크린, 태양전지판 등 각종 전자장치에 쓰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어찌나 무궁무진한지 이번 노벨상 수상자조차도 그래핀이 보여줄 미래 모습을 다 예상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그래핀은 풀러렌 형이나 탄소나노튜브 형보다 훨씬 우수한 소재 특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선 전기적인 특성을 보자면, 그래핀은 상온에서 구리보다 100배나 많은 전류를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빠르게 흘러가게 할 수 있다. 게다가 빛이 98%가 통과할 정도로 투명하기까지 하다.

열전도성도 탁월하다. 구리보다 열을 10배나 더 잘 전달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강철보다 100배 이상 강도가 세다. 면적의 20%까지 늘어날 정도로 신축성도 좋다. 게다가 완전히 접어도 전기전도성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팔방미인인 그래핀은 그 자체로도 쓰임새가 많지만, 플라스틱과 만나면 플라스틱에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플라스틱에 고작 1%의 그래핀을 섞으면 전기가 잘 통하게 된다. 플라스틱에 고작 0.1%의 그래핀을 집어넣으면 열에 대한 저항이 30%나 늘어난다. 그러니 얇으면서도 잘 휘어지고 가볍기까지 한 새로운 초강력 물질이 탄생하는 것이다.

이러니 과학자들이 그래핀에 반하지 않을 수 없는 거다. 그래핀 연구에 노벨상이 수여될 거라는 건 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아우보다 못한 맏형 플러렌이 1996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고, 둘째형 탄소나노튜브는 해마다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었으니 말이다.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교수가 처음으로 얻은 그래핀은 고작 마이크로 크기에 불과했다. 이후 소떼처럼 달려든 과학자들 덕분에 현재 그래핀은 무려 너비 70cm까지 커졌다.




● 특별한 인연의 두 주인공


올해의 주인공 가임 교수와 노보셀로프 박사는 인연이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다. 둘 다 물리학자로의 길을 러시아에서 시작했다. 나중에 가임 교수는 네덜란드로 옮겼는데, 여기로 노보셀로프 박사가 학생으로 오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가임 교수는 영국 맨체스터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노보셀로프 교수도 지도교수를 뒤따라갔다. 그리고 이제는 노보셀로프 박사는 가임 교수의 동료 교수가 되었다.

이처럼 오랜 기간을 함께 한 그 두 사람이 앞으로도 얼마나 더 대단한 일을 해낼지 궁금하다. 가임 교수는 올해 나이 51세이고 노보셀로프 교수는 36세로 아직은 젊기 때문이다.

올해는 노벨상이 깔끔한 인상을 준다. 시험관아기 개발에 돌아간 노벨생리의학상도 그렇고 이번 노벨물리학상도 그렇다. 2가지의 업적에 이곳저곳에 있는 두세 명의 수상자를 배출한 예년의 발표와는 대조적이다. 조만간 발표될 노벨화학상도 이런 분위기를 이어갈지 기대된다.

 

 

 

 

 



박미용 동아사이언스 객원기자 pmiy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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