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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과 탐험의 상징 '디스커버리'

도전과 탐험의 상징 '디스커버리'
| 글 | 김윤미ㆍymkim@donga.com |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가 11월 말에 예정된 비행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난다. 파란만장했던 그의 26년 역사를 사진으로 되짚어보며 우주 유인 시스템의 변천사와 디스커버리호가 남긴 재미난 기록들을 만나보자.

내 이름은 디스커버리호. 사람들을 우주로 태워 보내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이다. 과거 미국 대륙과 하와이 섬을 발견했던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이 사용하던 배와 이름이 같다. 앞으로 우주 미션을 수행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많이 하라는 기대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1981년 우주왕복선이 처음 등장한 이래 총 5대의 우주왕복선 중 가장 긴 운영 기록을 갖고 있다(38번 발사돼 총 351일을 우주에서 살았다!). 또 중요하고 역사적인 현장에 유독 많이 동행했다. 허블우주망원경을 우주에 띄웠을 때도, 챌린저호와 콜롬비아호로 중단됐던 우주 미션을 재개할 때도 사람들이 선택한 우주왕복선은 늘 나였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가슴 속에는 내가 ‘미국의 자존심, 인류 우주개발 리더십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내 머릿속엔 아직도 처음 발사될 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원래 1984년 6월 25일발사하려고 했는데, 발사 직전 갑자기 엔진이 꺼지면서 모든 동작이 멈췄다. 엔진에서 산소가 새어나와 주변 기기에 불이 붙었다. 다행히 두 달 뒤인 8월 30일 비행에 성공해 27년 째큰 탈 없이 현장에서 뛰고 있다. 하지만 만약 그때 불이 전체로 옮겨 붙었다면 처녀비행에서 뜨지도 못하고 폭발하는 불운의 우주왕복선으로 기억될 뻔 했다.









 



가장 위대한 우주망원경을 올리다


1990년 4월 24일, 나는 중요한 임무를 띠고 우주항로에 올랐다. 바로 12t이 넘는 허블우주망원경을 궤도에 올리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지상에서 610km 상공까지 올라갔다. 당시로서는 우주왕복선이 올라간 가장 높은 고도였다.

하지만 우주에서 날아 온 허블의 첫 사진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초점이 맞지 않고 흐릿했다. 머리카락 굵기의 1/5 정도로 미세하게 렌즈가 뒤틀린 것이 원인이었다. 결국 엔지니어 못지않은 정비 교육을 받은 우주비행사들이 엔데버호를 타고 우주로 가서 직접 수리를 거친 후에야 지금의 선명도를 가질 수 있었다. 나도 1997년과 1999년에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러 올라갔다.

만약 허블우주망원경이 처음 보내 온 사진에 실망한 나머지 수리를 포기하고 버려뒀다면 어땠을까. 아마 인류는 캐리비안 성운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우주의 나이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또 우주 팽창이론을 성립하지 못하고 암흑물질의 존재도 확인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람들이 허블망원경을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우주망원경으로 꼽는 것에 대해 나도 동감하고 있다.






 



사고 뒤에는 항상 내가 있다


1986년과 2003년에 각각 나의 형 챌린저호와 콜롬비아호를 사고로 잃은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14명의 소중한 생명을 잃은 충격에 NASA는 한동안 모든 우주수송시스템(STS)을 중단했다. 하지만 이대로 모든 것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나는 우주를 향한 사람들의 꿈을 이뤄주고 싶었다. 다시 그 꿈을 이루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챌린저호 이후 미션이 재개된 것은 975일 뒤, 콜롬비아호는 907일 뒤였다. 두 사고 후에 처음으로 발사대에 선 것이 모두 나다. 나는 우주왕복선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꼭 안전하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와야 했다.













 



마지막 미션을 기다리며


이제 나는 마지막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케네디우주센터에 서 있다. 38번이나 이 자리에서 카운트다운을 들었건만 이번만큼은 특별히 더 떨린다. 연료탱크에서 수소가스가 유출될 가능성이 있어 한 달 정도 발사가 늦춰졌는데, 부디 큰 문제가 아니길 바란다.

이번 미션에는 특별한 친구가 동행한다. 우주인의 역할을 대신할 로봇 ‘로보노트2’다. 상반신까지는 사람과 흡사한데, 하반신이 없어서 처음엔 깜짝 놀랐다. 하긴 우주에선 걸어 다닐 일이 없으니 크게 불편할 일은 없을 게다. 대신 팔과 손의 움직임은 지금까지 어느 로봇보다 정교하고 자연스럽다. 글씨를 쓸 수 있고 지구 중력상태에서 9kg의 물체도 들어 올릴 수 있다. 금빛 머리통 안에는 초고화질 카메라가 있다. 앞으로 우주비행사 대신 무거운 공구를 들거나 우주정거장을 청소하고 우주 바깥 공간에서 작업을 수행할 것이다.

그동안 지구 대기권을 수십 번 통과하며 1500℃가 넘는 고온을 견딘 탓에 내 몸 이곳저곳에는 그을음과 상처가 남아 있다. 이제 새로운 형태의 우주선에게 자리를 양보할 때다. 나는 이번 마지막 미션을 마치면 미국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항공우주 박물관에 전시된다. 부디 무사히 돌아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행복한 우주왕복선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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