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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바도 농사짓는다






기자는 평소 과학소설이나 SF영화를 별로 보지 않는다. 과학기자가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이런 창작물을 외면한다니 의아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픽션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과학에서는 깜짝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발견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과학소설가도 생각하기 어려운 현상이 어디에서인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발견들을 음미하다보면 때로는 신기함을 넘어 자연의 오묘함에 전율하기도 한다.




농부 아메바가 사는 법


과학저널 ‘네이처’ 1월 20일자에 실린, 농사짓는 아메바에 대한 논문도 이런 ‘상상을 초월하는’ 예다. 여기서 농사를 짓는다는 건 은유적인 표현이 아니다. 논문 제목이 ‘사회성 아메바의 원시적인 농업(Primitive agriculture in a social amoeba)’이다.

아메바 하면 원생생물로 마치 인체면역계의 대식세포처럼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박테리아 같은 먹이를 포획해 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아메바에서 영감을 얻은 괴물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도 있다.

지난 수십 년의 연구 결과 원생생물(단세포 진핵생물)이라는 묶음은 분류학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포표면의 한 쪽이 부풀어 늘어나면서(위족이라고 부른다) 이동하고 먹이를 잡아먹는 형태를 보이는 ‘아메바’라고 불리는 생명체들도 알고 보니 분류학적으로는 서로 거리가 멀다는 말이다.









이번에 농부로 밝혀진 아메바인 딕티오스넬리움(Dictyostelium discoideum)은 ‘사회성 아메바(social amoeba)’라고 불리는데 독특한 생태 때문이다. 즉 먹이환경이 나빠지면 아메바 수만 마리가 모여 민달팽이처럼 생긴 다세포생명체인 점균류(slime mold)로 변신한다. 이 세포 덩어리는 세포의 수축과 팽창이 동조해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최종적으로 일부(20% 정도)가 말라 죽으며 얇은 기둥을 만들고 나머지 세포가 위로 올라가 껍질이 딱딱한 포자가 돼 사방으로 퍼진다. 그 뒤 환경이 좋아지면 포자를 깨고 아메바가 기어 나온다. 이 괴상한 생명체는 단세포 생물이 어떻게 다세포 생물로 진화했는가에 대해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미국 라이스대 데브라 브록 박사팀은 여러 곳에서 잡아온 35개 점균류의 생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3분의 1인 13개가 농부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 이들은 먹이인 박테리아를 다 잡아먹지 않고 일부를 남겨둔 채 포자를 만들었다. 그 결과 포자는 박테리아를 지니고 이동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포자를 깨고 나온 아메바는 동반한 박테리아가 증식하면 이를 잡아먹고 살아간다.

‘그게 뭐 농사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농사란 결국 먹을 수 있는 걸 다 먹지 않고 남겨뒀다가 이를 심거나(씨) 길러(가축) 수를 늘려 먹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아메바는 엄연히 농부인 셈이다. 다만 ‘원시적인’이라는 제한을 둔 건 이들이 농사를 효율적으로 짓기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미에게 한 수 배워야
논문을 읽다보니 저자들이 농부 아메바를 사람과 하나로 묶고 농사짓는 개미나 흰개미를 한 수 위의 농부로 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참고문헌으로 나와 있는, 곤충 농업의 진화를 다룬 리뷰논문(2005년 생태·진화계 연례리뷰)을 다운받아 읽어봤다.

미국 텍사스대 율리히 뮐러 교수 등 저자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곰팡이를 키우는 곤충의 농업체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이 농업전략을 개선하기 위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지난 5000만 년 동안 곰팡이 농사를 지어온 개미에게 농사 경력 1만년의 인간이 배울 게 왜 없겠느냐는 것.

저자들은 개미 외에도 곰팡이 농사를 짓는 흰개미와 암브로사딱정벌레도 소개했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이들이 사람보다 더 발달한 농업체계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래 몇 가지 항목에 대한 비교를 소개한다.






표


농사짓는 개미란 그저 잎을 잘라다 집 속에 넣어주면 곰팡이가 자라 그걸 먹고 산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던 기자는 이런 접근에 충격을 받았다. 한마디로 5000만 년 전 농사를 시작한 개미는 인류가 농사를 짓게 되면서 부딪친 여러 문제들을 역시 맞닥뜨렸고 오랜 진화를 거쳐 최적의 해결책을 내놓았던 것이다.

예를 들어 개미는 잎을 농장에 넣기 전에 몸에서 분비하는 소독액으로 씻어내고 농장을 구획화 해 병충해를 입은 작물(곰팡이)이 있는 구획을 서둘러 폐쇄해 병이 번지는 걸 막는다. 또 구획마다 농작물의 성장상태를 달리해 병이 퍼지는 걸 억제한다고 한다.

작물이 너무 빽빽해지면 일부를 새로운 농장으로 옮겨 일정 밀도를 넘지 않게 한다. 또 항생제를 만드는 박테리아를 데리고 와 작물 옆에 두고 병충이 왔을 때 무기로 쓴다. 한편 작물을 공격하지는 않지만 영양원(나뭇잎)을 고갈시키는 잡초(다른 종류의 곰팡이)는 보이는 대로 집어다 내 버린다.

이들이 진짜 고도의 농사를 짓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건 이들이 이사를 하거나 인위적으로 이들을 없애면 남겨진 농장이 순식간에 잡초와 병충으로 들끓더라는 관찰이다. 방치한 논이 순식간에 잡초 밭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두 달 가까이 구제역이 계속되면서 엄청난 피해를 끼치자 이참에 우리의 농업 방식 자체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생산성에 치우친 개량으로 약골이 된 농작물(또는 가축)과 고밀도 재배(또는 사육) 환경은 인류의 농업을 위기로 몰고 있다. 이미 수천만 년 전에 비슷한 상황을 겪었을 곤충 농부들의 지혜에 귀기울여봐야 한다는 곤충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이유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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